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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새만금 5차 증인신문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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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제 5차 증인신문은 서초동의 법원청사 안에 나즈막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렸다. 꼬일대로 꼬인 새만금 간척사업의
한 전기를 마련했던 법원에서 공사중치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이후 최종 결정을 앞두고 ‘피고’ 측에서 내세운 회심의 일격과 같은 그야말로
‘최고수’들이 나오는 자리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국무총리실에서 진행되었던 민간합동조사단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이 생태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한 그 본인들이 증언하는 자리였다.

‘J´accuse…’, 나는 고발한다라는 명문으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참여’라는 뜻의 앙가쥬망(engagement)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드레퓌스 사건과 새만금 사업은 여러 가지로 닮은꼴을 가지고 있다.

과연 지식인의 참여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전문가’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문가라는 말이 폭넓은 함의를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IMF
때 대우의 분식회계 사건이다.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참여했지만, 결정적으로 분식회계 방식과 수법을 밝혀낸 것은 보다 못해 자청해서
조사작업에 참가한 세무사들이다. 펀더멘탈은 튼튼하다고 우겨댔던 수많은 경제학 박사들은 사실 별 도움이 못되었다. 그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우리는 전문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일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일면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전문가’라는 단어가 포괄적으로 사용되면서 ‘학자적 양심’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 점이다. 전문가에게 양심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미국 프로야구는 선수들에게도 ‘양식’과 ‘소양’을 요구하는 반면, 프로 농구는 별로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아 코트의
신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야말로 마이클 조단 정도 되어야 어느 정도의 양식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이다. 야구는 백인을 대표하고,
농구는 흑인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약간은 논리적 비약일 터이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을 놓고 전문가도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논리와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입장은 찬성인가 반대인가, 둘 중의 하나이다.
전문가들의 토론에서 답이 나오지 않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결국은 법원에 이 사건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 종점을 눈앞에 두고
소위 피고측에서 추가로 요청한 증인들의 추가 심문이 지금 진행되는 새만금 재판이다.

삼보일배의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김경일 교무님 등이 방청석에 참가하셨고, 아름다운 시인인 최승호 시인과 이정전 교수님
등도 그 한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새만금의 생태적 가치와 새만금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이날 심문의 주요 사항이었다.

재판 성립의 주요한 논거에는 취소와 무효라는 행정 용어가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점 사이에서 존재한다. 쉽게 설명하면 좀 잘못된
것들이 취소의 대상이고, 완전히 잘못된 것이 무효의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취소 요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첫 행위로부터
90일 이내에 진행해야 하는데, 이미 10년이 지난 공유수면 매립허가로부터 시작된 새만금 사업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좀 잘못된
정도로는 안되고, 그야말로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입증을 해야하는 것이 원고측 입장이고, 피고측에서는
좀 잘못되기는 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무효로 할 정도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 기본적인 구도는
새만금을 살리고자 하는 원고들의 훨씬 불리한 상황이다.

군산대 해양과학대의 양재삼 교수는 새만금은 중요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서해에 별 상관은 없으므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글이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전에 쓴 글과 지금에 쓴 글의 입장이 뒤집혀져 있고, 그래서 자신이
옳다는 걸 보여주기가 더욱 어렵다. 최고로 좋은 대학을 나왔고, 해양 생물학도 A학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슬픈 마음이 들었다. 천연갯벌의 중요성에 관하여 강조한 본인의 글을 제시한 김호철 변호사의 질문에 대하여
그건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서 쓴 글이고, 어차피 그 정도는 다 하지 않느냐라는 대답에, 슬픔을 넘어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다.

재판은 10년간의 타임머신 같은 역할을 한다. 10년 전 상황에서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재판의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무엇이 변화하였을까? 생태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서해안의 생태계에 대한 파괴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적조도 이제는 자주 발생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커졌다. 국민 소득 7천불 언지리를 머물던 시절과
국민 소득 만 불에 가까워진 지금 시점에서 자연 생태계에 대한 경제적 가치도 더 커졌다. 그만큼 국가적으로는 ‘지불의사(willingness
to pay)’가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10년 전에도 그랬을까가 재판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충남대 농업대의 임재환 교수는 소위 그 유명한 ‘국토확장효과’라는 걸 집어넣은 장본인이다. 최초의 사업에 대한 경제성 평가는
사업의 편익 부문은 그런대로 상식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갯벌이 가지고 있는 비용, 즉 갯벌의 가치의 훼손 부문이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경제성이 있다는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 1999년의 민간합동조사단에서는 이 갯벌의 비용을 다시 계산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래서 갯벌의 가치를 찾아내고 계산하려고 하는 동안에, 이 임재환 교수가 한 일이 편익 쪽을 부풀리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국토확장효과와
안보미가 논리라는 희안한 2중계산 기법이 동원되었다.

안보미가 논리를 잠깐 생각해보자. △식량은 안보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식량은 자급되어야 한다. △이 때의 식량은 쌀이다.
△그리고 자급은 100%라고 전제한다. 이런 몇 단계의 논리적 전개를 통해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쌀은 반드시 100%
자급을 이루어야 하고, 새만금 사업은 여기에 기여하는 최적의 정책이다. 논리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결합되는 것이 국토확장효과이다. 새만금의 농지가 추가로 사회에 공급되면, 그만큼의 농지가 다른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논리이고, 농지가 건물이나 상업지로 전환되면 당연히 농지보다는 경제성이 높으므로, 그 차이분만큼이 국토확장효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국토확장효과의 기본 논리이다.

이 국토확장효과가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부풀려진 가치계산이 한 쪽에 차지하고 있으므로,
새만금 사업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절반의 가치가 없다고 하면, 새만금 사업은 경제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중계산의 측면을 차지하고라도 이 국토확장효과를 인정하게 되면 생태적 파괴를 동반하는 공공사업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평가는
하나마나이다. 만약에 남산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백화점을 짓는다고 하자. 이 경우는 국토확장에 해당할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국토가
늘어나지 않지만, 평지가 늘어나므로 국토는 확장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게다가 명동을 비롯한 서울 중심부의 땅값이 워낙 높으므로,
그 자리에 들어설 백화점의 가치도 높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남산을 허물고 백화점을 짓지 않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되지만, 서울시민의 상식에 반하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될 것이다.

새만금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데, 새만금과 상관없는 상업용지 표준지가가 대입되었다는 얘기는 이런 남산의 백화점과 정확히 같은
논리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물론 경제학적으로도 전혀 말 안되지만, 말이 되게 만들어주는 요상한 논리적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 ‘국민경제’라는
개념이다. 임재환 교수 본인도 ‘사경제적 관점에서는 전혀 경제적 타당성이 없지만 국민경제적 관점에서’는 이라는 말을 했다. 도대체
국민경제라는 것이 무엇일까? 국민경제는 개방경제와 폐쇄경제를 비교하기 위해서 무역의 개념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 국민경제라는
개념이 한국의 농업경제학계에 들어와서 시장과도 상관없고, 상식과도 상관없고, 이론과는 더더군다나 상관없는 공공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작의적 계산을 뒷받침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아연했다.

더더군다나 이렇게 뒤집어진 논리적 문제로 일괄하고 있는 소위 농업 전문가들이 실제로 개별 농업의 ‘국민경제적 기반’을 포기하고,
농정실정 상태로 몰아간 장본인들이라고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번에는 전북도 최고의 괘변론자인 전북도 최수 환경국장과 지금은 전북지사보다 더 유명한 편영수가 증인으로 나온다. 볼만할거다.

증인심문을 구경하면서 피고측은 어디에서 재판비용을 댈 것인가 같은 소소한 궁금증이 들었다. 태평양과 화우를 포함한 그야말로
최고의 변호사 앞에선 원고측 자원봉사 변호사들 사이의 설전을 보면서, 이 국민경제의 옹호자들의 소송비용도 국민경제의 일부분에서
갹출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경제’가 그야말로 대한민국 서초동의 작은 방에서 심하게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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