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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삼보일배] 수경 스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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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의 편지>

생명평화, 전쟁반대
실현을 위한
三步一拜 발로참회를 시작하며

▲ 수경 스님

춘래 불사춘이라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닙니다.
지리산에 매화가 피고 산수유꽃이 피었지만
그 꽃들마저 불안하고 불안합니다.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고
녹색별인 지구에도 21세기의 화두인
생명평화의 푸른 기운이 일고 있지만
이 봄바람마저 예사롭지 않고
생명평화의 푸른 기운마저 위태로울 뿐입니다.

이는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오만한 미 제국의 이라크 침공 때문이자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외면하는
대한민국 개발독재의 광풍 때문이며
우리 모두의 가슴 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죽임의 문화와 투쟁의 독 기운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20세기적인 ‘죽음의 향연’에 길들여져
스스로 ‘불타는 집’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와 난개발의 뿌리는
서로 다르지 않고
말 그대로 반평화, 반생명, 반환경의 독입니다.
반드시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업보의 화이자 독일뿐입니다.

산이 죽으니 강이 죽고
강이 죽으니 바다마저 죽어갑니다.
북한산과 지리산이 죽고
낙동강이 죽어가니 새만금 갯벌도 죽어가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온통 죽음의 굿판입니다.
산은 아스팔트의 이름으로 죽어
그대로 거대한 무덤이 되고
강물은 댐의 이름으로 썩어 수장이 되고
갯벌은 매립의 이름으로 죽어
뭇생명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됩니다.

도대체 이 땅에 누가 있어
상극과 공멸의 광풍을 잠재우고
상생과 생명평화의 장을 만들겠습니까.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진리는
도대체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그 어디에 존재하며
“너는 나의 뿌리이며, 나 또한 너의 뿌리”인
화엄경의 연기론은 또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피고 또 피는 꽃들의 가르침과
틱낫한 스님의 간절한 평화의 기도가 다르지 않으며,
아직 어린 여중생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과
해창 갯벌의 무수한 생명체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우는 문규현 신부의 기도가 다르지 않으며,
북한산 오색딱따구리의 울음과
이라크의 죄없는 민중들의 대성통곡을 들으며
오늘 삼보일배를 시작하는 저의 참회가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유엔이 정한 ‘세계 산의 해’에
국립공원인 북한산이 파헤쳐지고
올해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해’에
썩은 물의 저장고인 댐 계획이 추진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강행되듯이
유엔의 결의도 없이
미 제국은 이라크를 침공하고 말았습니다.
동체대비의 세상은 간 곳이 없고
죽임과 난개발과 학살만이 전지구적으로 한 몸입니다.

도대체 어찌하란 말입니까.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미 죽거나 죽어가는 유정무정의 생명들에게
극락왕생의 아미타경이나 읽어주며
털썩 주저앉아 있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미타경도 참회의 실천이어야 하고
수행도 세상을 바로잡는 정념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수행처는
지리산 실상사의 극락전이자
북한산의 농성장 철마선원이며
해창 갯벌의 컨테이너 법당 해창사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수행처는
세계화의 첨단기지인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자
녹색별의 베이스캠프인 펜타곤이며
이라크의 사막이자 아비규환의 바그다드입니다.

마침내
백척간두 진일보의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하여
제가 먼저 몸숨을 바칠 각오로
삼보일배 참회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세 걸음에 한번 절을 올리며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가고 또 가겠습니다.
내 몸 속의 독과 화를 뿌리째 뽑아내며
살아 있는 유정무정의 뭇 생명들을 부르고
죽어가는 모든 생명들을 부르고 또 부르며
수행의 길, 고행의 길을 가겠습니다.

한 걸음 내디디며
전생 현생 제가 지은 죄를 고해하고
한 걸음 내디디며
치열하지 못한 수행의 자세를 가다듬고
한 걸음 내디디며
두 손 모아 발로참회의 절을 올리겠습니다.

또 한 걸음 내디디며
지리산에서 희생된 좌우익 영가들을 부르고,
또 한 걸음 내디디며
난개발로 죽어가는 뭇생명들을 부르고
또 한걸음 내디디며
미선이와 효순이,
이라크의 미선이 효순이를 부르고
두 손 모아 극락왕생을 비는 큰절을 올리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문규현 신부와 뜻을 모았으니
오체투지의 자세로 참회하고 또 참회하며
먼저 제 몸 속에 고로쇠물처럼 차오를
생명평화의 그날을 맞이하겠습니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고,
하나의 몸이 청정하면
모든 중생의 몸이 청정하고,
하나의 국토가 청정하면
일체 국토가 청정하다”고 했으니
제가 먼저 청정해질 때까지
동체대비의 길을 가고 또 가겠습니다.
탈진해 쓰러지는 저의 몸 속에
마침내 환하게 꽃피는 봄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불기 2547년(2003) 3월 27일
만물 상생의 봄날 收耕 합장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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