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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극물’ 때문에 이 지경 됐는데, 안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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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구미산단 공장인 (주)휴브글로벌 앞의 거의 대부분의 가로수들과 조경수들이
말라죽어 있었다 ⓒ 정수근     


▲ 공단의 말라죽은 나무들 ⓒ 정수근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9월 27일 경북 구미산업단지 내 화공업체인 ㈜휴브글로벌에서 ‘불화수소산'(불산)이라는 맹독성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현장조사를 벌인 구미시는 “누출된 유독가스가 인체 유해기준치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특히 해당지역 농가마을의 농산물과 가축의 피해가 상당히 컸습니다. 다행히 사고 발생 직후 축사에 있었던 봉산리 마을이장의 긴급대피령이 없었다면 대형 인명사고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피시킬 수 없는 농작물과 가축들은 ‘불산’이라는 맹독성 가스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여서 추가 피해도 예상됩니다.

사고 일어난 지 정확히 이틀 뒤인 지난 29일 오후 4시께 공장과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산단에서 공장 부근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단의 가로수들이 하나 같이 고사해 있었던 것입니다.

바깥에 나가 잠시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도, 목이 굉장히 따가웠습니다. 사고가 일어난지 이틀이나 지났지만, 그곳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불산 독가스 유출로 인해 초토화된 봉산리 마을

가수 유출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일대 지역은 지난해 구미 단수 사태로 일주일간 수돗물 대란 사태를 겪은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4대강사업으로 주민들을 곤욕에 빠트리더니, 올해는 국가산업단지의 독가스가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 포도나무도 벼도 거의 대부분 고사했다. 마치 엄청난 양의 제초제를 뿌린 것 같다 ⓒ 정수근     


▲ 나락도 모두 죽어버렸다. 지금은 한창 생육해야 할 시기라 했다 ⓒ 정수근     

불산은 공기보다 가벼워 확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피해도 광범위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영수(55)씨는 “바람이 동쪽으로 불 때 봉산리가, 서쪽으로 바뀔 때 공단과 인근 신당리와 양포동이, 다시 바람이 동쪽으로 불 때 봉산리 넘어 산동면 임천리까지 피해를 입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면적만 해도 엄청나다.

불산은 불소화합물인데 불산의 주성분인 불소는 기본적으로 독극물로 분류된다. 불소는 쥐약과 살충제의 주성분인 맹독성 물질이기도 하며 화학전에 사용되는 군사용 신경 독가스의 기본 물질이기도 하다. 이 화학 물질은 세포조직을 쉽게 통과하고, 흡입·섭취·피부 접촉 등 거의 모든 노출경로에 대해 독성을 갖는다.

시민환경연구소 고도원 연구원은 “목으로 흡입시 비염·기관지염·폐부종 등을 일으킬 수 있고, 눈으로 흡입시 각막 손상으로 실명에까지 이를 수 있다”며 “또 이 물질은 끓여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뼈 같은 곳에 농축돼 뼈를 녹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뇌신경세포의 기본기능을 저해해 지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안이한 대처로 커진 피해와 주민의 분노

사람이 죽고, 농작물이 집단 고사하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당국의 대처는 안이하기 그지없다는 지적이다. 봉산리 마을이장 박명석씨는 “당국이 ‘(독극물이) 기준치 이내이므로 안전하다, 이제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밝혔다”며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봉산리 주민들은 9월 27일 사고 직후 집을 떠났다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28일 오전 11시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 한창 수확은 앞둔 가을포도가 송이째 말라가고 있다 ⓒ 정수근     

여기서 당국이 말했다는 ‘기준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수많은 환경피해 현장에서 꼭 등장하는 말이 ‘기준치 이내’라는 표현이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는 이 ‘기준치’에 대해 “방사능 기준치처럼 기준치라는 것은 주민 건강상의 기준치라기 보다는 당국의 관리상의 기준치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여러 가지 면에서 관리하기 편하도록 만든 것이 소위 말하는 ‘기준치’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방사능·독가스와 같은 화약약품 등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절대로 흡입하거나 접촉하면 안 된다. 사람마다 기질이나 체질이 각기 다른데, 일괄적으로 ‘기준치’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당국의 안이한 대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산이란 독가스를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물이 아니라 석회가 필요한데, 그 석회 역시 사고 발생 후 22시간이 지나서야 뿌렸다. 이토록 위험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데도 문제의 공장도, 구미시도 중화제인 석회 비축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석회를 뿌리기 전에는 물을 뿌려서 그냥 씻어냈다는 것인데, 물과 반응한 불산이 연기까지 뿜으면서 사태를 더 심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불산 함유한 물이 낙동강으로, 식수원은 과연 괜찮을까?

주민들을 분노케하는 것은 또 있다. 박명석 이장은 “이런 독극물이 인가와 채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공장이 이곳에 들어올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회 한번 열지 않았고, 추후에도 안전에 대한 어떠한 조처나 안내가 없었다”며 분개했다. 주민들은 “사실 그동안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라며 공분하고 있다.


▲ 물청소 중인 당국. 이 오염수는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고, 결국 식수원 낙동강으로 흘러
든다 ⓒ 정수근     

불산가스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사고 공장과 불과 6km 떨어진 낙동강으로까지 비산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봉산리와 인근 구미시 양포동과 산동면 임천리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식수원인 낙동강으로 문제의 독가스가 유입됐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29일 봉산리에서는 구미시 당국이 소방차를 동원해서 마을 이곳저곳에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을에 가라앉은 불산을 물로 씻어내겠다는 것.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청소한 물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인근 하천인 한천까지는 거리가 불과 1㎞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그 한천이 낙동강을 흘러가는 데 직선거리로 5㎞밖에 안된다. 그리고 구미시의 취수원인 해평취수장은 사고지점에서 직선거리 6㎞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인근 지역의 항공사진 모습이다 ⓒ 정수근     

게다가 가을 낚시철을 맞아 한천에는 낚시꾼들이 몰리고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낚시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독가스의 총체적 관리부실에 따른 인재, 구미시는 사죄해야

구미산단 ㈜휴브글로벌에서 터진 맹독성 가스 유출사고는 구미시 당국이 기대하는 바와 달리 상당히 위험한 사건이라는 게 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구미시 당국은 문제를 축소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주민의 건강상의 안전을 최우선 고려해 이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그에 걸맞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농산물조사, 토양조사, 수질조사, 주민 역학조사 결과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판명날 때 비로소 주민들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 고사한 채소밭 대부분의 밭과 논의 작물이 대부분 고사했다 ⓒ 정수근    


▲ 소들은 피신하지도 못한 채 독가스를 그대로 마셨다. 이들의 운명이 걱정이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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