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활동소식

어린이용품 유해물질 관리 ‘후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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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의 어린이 장난감 환경유해성 대책은 업계의 반발에 밀려 솜방망이로 그치고 말았다. 사진은 한 백화점이 선보인 인체에 해가 없는 친환경 장난감. <경향신문>
석탄을 캐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위험한 일이다. 갱도 안에서 무색무취의 유독가스들이 새어나오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땐 이미 늦었다. 유독가스가 스며들어 몸의 신경계가 마비되는 속도가 그것을 대뇌에서 알아차리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부들은 새장에 카나리아를 넣어 갱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광부들은 카나리아의 지저귐이 멈출 때쯤이면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석탄을 더 캐보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해 카나리아가 숨을 거둘 때까지 남아 작업했던 사람들은 십중팔구 카나리아와 같은 운명을 맞았다.

지금은 세계의 탄광 그 어디에서도 카나리아의 노래는 들리지 않는다. 유해 화학물질의 위험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유해 화학물질은 탄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까지 침투했다. 무방비 상태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5월 19일 환경부는 시중에 판매되는 106개 장난감의 환경 위해성을 검사해 발표했다. 그 결과 플라스틱과 금속 재질의 장난감에서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되는 물질과 중금속류가 검출됐다고 한다. 하지만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상품 회수, 판매 중지 권고, 제조업체 지도 단속과 수입 제품 세관 단속 강화 등이 고작이었다. 환경부는 문제가 된 제품과 제조회사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런 정도의 대책으로 우리 아이들을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어린아이들이 사용하는 장난감에조차 솜방망이 대책이 나오는 것은 ‘환경보건법’에 ‘어린이용품의 위해성을 자율에 의해 관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이 법은 규정을 어긴 제조회사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대신 개선을 권고하는 데 그치고 있다. 장난감 제조회사들로서는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해도 그만, 사용하지 않아도 그만인 셈이다.

기업 자율관리 수준으로 법률내용 후퇴
환경보건법이 처음부터 이처럼 기업 친화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봄, 이 법률이 입법 예고되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법률의 내용이 기업을 이중 규제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환경부는 결국 경제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정책 효과가 의심스러운 권고와 기업 자율 관리 수준으로 법률 내용을 후퇴시킨 것이다.

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어린이 건강권을 소홀히 취급하는 사례는 이뿐 아니다. PVC 제품에 유연성을 더하기 위해 가소제로 사용하는 프탈레이트 규제도 마찬가지다. 프탈레이트는 발암성 생식 독성물질로서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이다. 유럽연합은 작년 1월부터 14세 이하 어린이 용품에 프탈레이트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작년 2월부터 이 물질의 사용을 금지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의 지정고시’를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프탈레이트 가소제 사용이 금지되면 수출이 감소될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주장에 굴복하고 말았다.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생산하는 화학회사들과 완구공업협동조합 회원사들이 자발적 협약을 맺는 내용으로 고시 내용이 축소된 것이다. 만일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취급제한물질로 고시되었더라면, 장난감 제조에 프탈레이트를 사용하는 기업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업계에서 협약을 ‘자율적’으로 깨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과 환경보건법이 모두 관련 업체들의 자발성에 의지하게 된 현재의 상황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두 법의 핵심 내용인 규제 방식이 자발적 협약으로 약화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카나리아의 울음이 그친 지하 갱도 속에 놓여 있다는 방증이다. 더 이상 지저귀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다 종내는 숨을 놓아버리는 카나리아는 바로 우리 아이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화학물질로 가득한 세상에서 21세기의 카나리아들이 하나 둘 노래를 멈춘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노릇인가.


* 이 글은 뉴스메이커 780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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