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활동소식

영양과잉시대의 ‘윤리적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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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민심의 폭발에는 오늘날 식량 문제의 근원을 이루는 윤리적 불평등과 세계무역의 이름으로 과잉 영양을 강권하는 부조리의 문제가 겹쳐 있다. 지난해 6월 반세계화활동가들이 G8 정상회의장 앞에 설치한 굶주린 사람을 형상화한 조각상. <경향신문>

시경(詩經)에 행역을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낙이 읊었다는 ‘여분(汝墳)’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대를 보지 못했을 때 그리움은 아침 시장기와 같았어라.’ 그립다는 정서적인 울림이 배고프다는 원초적인 욕망과 대비되는 묘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침 시장기였을까? 저녁식사 후 12시간 가깝게 지난 아침에는 긴 수면으로 장기의 활동성이 떨어진 탓에 입맛이 별로 없다. 더구나 옛날에는 아침과 저녁 두 번만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지금은 아침 시장기의 의미가 달라진 사회고 시대다. 언제고 먹기로 작정하면 과식을 넘어 폭식까지 하기 일쑤다. 그러니 아침밥을 챙겨 먹으려는 의지가 자연 박약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아침밥 챙겨먹기 캠페인’은 영양 결핍이 아니라 영양 과잉을 우려해서 나온 것이다. 밥 먹을 때를 놓쳤으니 보충해야겠다는 자기 보상적 탐식을 줄여 과잉 섭취에서 오는 비만을 막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시경은 거의 2500년 전에 불리던 중국의 민요와 시를 묶은 책이다.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의 밥상을 상상해보라. 그들의 밥상은 소박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볼 때도 오늘날에 비해 그때의 밥상이 풍성했을 리 없다. 밥 때가 아니면 이른바 간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해 지면 자고 해 뜨기 전 일어나는 고대 농경사회에서 아침밥은 정말 포기하기 어려운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세계무역이란 이름으로 쇠고기 강권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2004년 세계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많은 매출을 올린 약품은 초국적 제약기업인 화이자 사의 콜레스테롤 제거제 리피터(Lipitor)와 머크 사의 조커(Zocor)였다. 고지방과 고단백 위주의 식사를 몸이 견딜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했을 때 생기는 콜레스테롤 질환이 그만큼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질환은 잘 사는 나라의 질병일 뿐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기아 퇴치가 최우선 과제다. 인류의 식량 생산 능력은 현재 약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5초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따라서 과잉 식사를 거듭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더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일은 절대 빈곤층을 제외한다면 극히 윤리적인 문제에 속한다.


“우리 소비자들도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대통령의 말에 울림이 없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쇠고기가 비싸다 해도 우리는 이미 쇠고기를 못 먹어 문제가 되는 수준을 졸업한 지 오래다. 대한민국은 미국처럼 이미 비만이 질병처럼 창궐하는 영양 과잉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인 것이다. 쇠고기와 같은 고단백 육류를 마치 공산품 찍어내듯 엄청난 속도로 생산하는 미국 축산업계는 자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시장에 쇠고기를 팔아야만 유지된다. 값이 싸므로 많이 팔아야 한다는 건 미국 축산업계의 입장이지 우리가 취할 논리는 아니다. 쇠고기를 자주 먹지 못하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투지만, 사실 쇠고기를 우리가 그렇게 많이 소비해야 할 영양학적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민심의 폭발에는 오늘날 식량 문제의 근원을 이루는 윤리적 불평등과 세계무역의 이름으로 과잉 영양을 강권하는 부조리의 문제가 겹쳐 있다. 아침 시장기를 그리워하는 시경의 구절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다. 아침이면 배가 고픈 게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인체의 반응을 가능케 하는 먹을거리에 대한 절제와 윤리적 소비가 가능하다면, 진정 우리는 광우병 쇠고기를 우리 식탁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뉴스메이커 77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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