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환경용어

[상식] 기업인이 알아야할 무과실책임주의

기업인이 알아야 할 무과실책임주의와 개연성론

구자건 지음(서울환경컨설팅)/현암사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신문 한 쪽 구석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
해배출업소 명단이다. 공해배출업소란 법으로 정한 배출허용기준(폐수, 대
기오염물질, 소음 등)을 위반한 업체를 말한다. 공해배출업소 명단에는 우
리에게 잘 알려진 대기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다. 아직까지도
기업인의 환경보전 의식이 일반 시민의 환경보전 의식에 크게 뒤져 있다
는 증거이다. 이런 보도가 기업인들의 이미지를 좋게 보이게 할 리 없다.
환경오염 피해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이들 공해배
출업소들이 배출한 환경오염 물질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
다. 물론 법적 기준을 어겨 피해가 발생했다면 피해를 일으킨 기업이 당연
히 보상을 해야 한다. 환경정책기본법에는 환경오염을 일으킨 원인자가 환
경오염 피해 보상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이른바 <오염자부담 원칙>을 명시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기업이 배출허용기준을 준수했는데도 피해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될까? 피해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즉
기업의 과실이 없을 경우 발생한 피해에 대해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하느냐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답은 “보상을 해야 한다”이다. 환경정책기본법 제31조 제1항에는
“사업장 등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피해가 발생한 때에는 당해
사업자가 그 피해를 배상해야 할 것”이라는 <무과실책임원칙>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과실이 없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환
경오염을 일으킨 원인자가 피해 보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인자부담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기업에서 배출하는 환경오염 피해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
다. 공해로 인한 피해를 일으킨 배출업소가 한 곳일 경우 문제는 간단하나
배출업소가 두 개 이상 있을 경우 문제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어느 업소
에 의해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 피해 배상 책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환경정책기본법 제31조 제2항은 “사업장 등이 2개 이상 있는
경우에 어느 사업장 등에 의해 제1항의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에는 각 사업자는 연대하여 배상하여야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러나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연대하여 배상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똑같이
분담하는 것은 아니다. 각 기업이 환경 피해를 일으킨 오염물질을 얼마만
큼 배출했는지 정확히 산출하여 그 양에 따라 배상액을 분담하는 것이 통
례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배상액 분담을 둘러싸고 기업간 의견 차이가 생
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업들이 서로 협의를 해 문제를 해결하면 다행이
나 그렇지 못할 경우 환경관련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그 결과를 토대
로 분담액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아주 안좋게 되어 환경오염 피해를 일으킨 기업이 배상
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되면 기업과 피해를 받은 이웃 주민들
사이에 감정 싸움이 벌어지기 쉽다. 그리고 문제는 아주 복잡해진다. 민사
소송법에서는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원고가 피고의 가해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업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는 개인이나
주민이 전문지식도 없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증명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과관계 입증을 연구기관에 의뢰한다고 할 경우 상
당한 비용이 드는데 이를 감당하기도 벅찬 일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
해를 입었을 경우에도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공해소송에 대해서는 <개연성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개연성론이란 쉽게 말해 보통의 상식으로 판단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
다는 정도를 말한다. 즉 피해자는 피해 가능성을 증명하면 되고, 가해자는
반증(反證)으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그 책임을 벗
어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미 1974년에 대법원의 판례에 의해 <개연성론>이 확립된 바 있다.
1974년 12월, 대법원은 울산 화력발전소의 아황산가스로 인한 과수원 피해
소송에서 공해로 인한 불법 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정도의 개연성만 증명하면 충분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가해자가
이를 반증하지 못하는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없다는 개연성론에 입각해 판
시한 것이다. 이 판례는 환경오염 피해에 있어서 개연성론을 받아들인 것
으로 여러 공해사건에 일관성 있게 적용되고 있다.
<신(新)개연성론>이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오염 물질 배출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가해자가 그 무해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1991년 7월 경기도 의정부시 나전모방공
업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로 인한 관상수 피해 사건의 판결은 그 예이다.
신개연성론은 개연성론에 있어서 피해자 입증 책임을 더욱 경감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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