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활동소식

페놀사건은 현재 진행형

2005년 3월 16일은 구미공단 두산전자공장에서 페놀원액 30톤이 무단 방류되어 대구시민들의 식수원인 다사수원지에 페놀폐수가
유입된 국내 사상 최대의 환경오염사건이 대구지역에서 일어난지 1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회원은 ‘우리는 수돗물을 생수처럼 마시고 싶다!’ 란 슬로건으로 2.28 기념공원 입구에서
페놀사건 14주년, 캠페인을 열었다.

캠페인 장소에는 수돗물을 가장 오염시키는 물질에 대한 설문조사판, 수질오염방지 알림판, 페놀피해 사진판 등이 전시되었고,
물의 소중함을 알리는 메세지가 적힌 상자를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 날, 1991년 3월 16일

페놀사건은 1991년 3월16일 시민의 제보로 시작되었다. 수돗물에서 심한 악취가 나고 물을 먹고
나니 이상한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구미 공단의 두산전자에서 3월14일 밤1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8시간 동안
페놀원액 30톤을 불법방류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산전자에서 흘려보낸 독극물이 옥계천을 지나 그대로 낙동강 원수에 흘러들어 천오백만
영남지역 시민들의 식수로 쓰여진 것이다. 특히 직접 피해지역인 대구에는 당시 42만 세대 162만명이 페놀로 인한 피해를 당했다.
대구 인구의 71%에 달하는 사람들이다.

페놀은
어떤 물질인가

일반적으로
습진, 염증, 유두종, 탈색 등 피부손상, 출혈을 일으키고 심하게 중독되면 폐경색, 기관지 폐염, 농성 기관지염,
심근변성과 괴사가 있을 수 있다. 지속적으로 페놀을 섭취하면 신장에 실질신염, 혈구의 공포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페놀사건 당시 다사유원지에 유입된 페놀은 정수과정에서 살균제인 염소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클로로페놀을 형성하였다.
클로로페놀은 페놀의 300~500배에 달하는 발암성 유독물질이었다. 1991년 3월21일 시민단체가 실시한 실험에서,
페놀 허용 기준치 용액에 금붕어 두 마리를 넣었더니 20분만에 발작을 일으켜 허둥대다가 3시간 45분만에 두 마리
모두 죽어 물위에 떠올랐다. 당시 페놀로 오염된 물을 이용한 시민의 약92%가 수돗물에서 특유한 악취를 느꼈고
44%가 소화기증상과 같은 페놀관련 증상을 호소하였다. 두통, 구토를 비롯하여 수족관 물고기 떼죽음, 한약 오염,
장, 김치, 음식류 오염, 음식점 조업 중단 같은 물적피해도 막심하였다. 피해 임산부들이 겪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임산부들은 대체로 설사와 구토, 피부질환에 시달렸으며 인공유산 휴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피해자가 있는가 하면
분만한 아이의 피부 및 기관지 질환, 사산, 유산, 기형아 출산을 하기도 했다.

페놀이 보여준 세 가지 얼굴

페놀사건의 본질을 알려면 1991년부터 1995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몇 가지 초점을 추슬러
봐야 한다.

첫째, 대표적인 공해기업인 두산전자의 모습이다. 페놀사건은 놀랍게도 몇 차례에 걸쳐서 재연되었다.
1991년 3월 1차 파동이후 두산전자 측 관련자가 구속되고 대구시 관련 공무원들이 소환조사되고 환경부 민간합동조사단이 구성되어
전국이 시끄러웠지만, 두산전자는 조업 정지처분 취소 행정심판을 신청하여 17일만에 변칙적으로 조업을 재개 하였다. 그러나 4월에
또 다시 페놀을 불법방류하는 2차 파동을 일으켰다.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미 1차 파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두산전자의 페놀 불법방류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당시 두산전자를 대표로 하는 기업들이 기업의 환경파괴행위에 대하여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환경오염규제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문제가 너무나 미미하다보니 환경처리비용보다 얼마간의 벌금이나 위로금을 내는 것이 기업에게는
훨씬 이익이었을 것이다. 이후 진행되는 재판과정에서도 두산은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시민을 우롱하였다. 특히
당시 두산에 매수된 전문가들은 페놀이 인체에 무해함을 증명하는 각종 실험과 조사보고서로 일관되게 사태호도에 대한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철저하게 기업편을 들었던 것이다.

둘째, 행정당국의 은폐, 조작 행위이다. 대구시는 사건발생 이후 3월17일 수질분석을 통해 수돗물에
페놀이 함유되어 있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신천 배수전의 배출작업을 확대하고 안동댐 방류량을 초당 30톤에서 50톤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하면서도 언론매체를 통해서는 페놀농도가 음용수 기준치 이하이므로 냄새는 나지만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했다. 대구시는
페놀이 다사 수원지에 유입되기 시작한 3월16일 9시30분의 페놀농도와 14시30분 달서구 주민의 가정 수도전에 최초 급수된
클로로페놀 농도는 무시하고 3월17일 3시30분에 측정한 다사수원지 원수의 페놀농도 0.0035ppm을 근거로 사건을 수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페놀과 클로로페놀의 수돗물 최대 허용치가 0.001ppm임을 차치하고라도(당시 우리나라 페놀기준치는
0.005ppm) 이후 대구보건환경연구원, 국립보건원,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측정한 페놀농도는 대구시의 수치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다.
또한 대구지방환경청은 상시 단속반 일일 보고서를 허위로 기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1차 페놀파동 이전인 1990년부터 두산전자
구미 공장의 페놀 폐수 소각로가 고장나 방치되어 작동하지 않았고 공장 앞마당에는 폐수 드럼통이 야적되어 공장에 들어서기 1킬로미터
이전부터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는데도 실제 현장을 확인하지도 않고 아무런 위반 사항이 없었다고 허위 일일보고서를 작성하였던
것이다.
검찰은 두산이 비밀배출구를 통해 고의로 페놀을 방류하고 서둘러 비밀배출구를 폐쇄한 것을 인지하면서도 고의성이 없는 과실행위로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1차 페놀파동이후 여론이 잠잠해지자 환경처장관 및 대구시장의 문책방침을 철회했다.

환경처 행정심판위원회는 두산전자의 조업중단으로 전자제품수출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경제계의 압력을 받고 두산전자에 대한 조업정지를
17일만에 변칙적으로 해제하였다.

ⓒ연합뉴스

셋째, 임산부 피해문제이다. 당시 대구시에 신고된 페놀피해보상신고 건수는 4월말까지 총만3천여
건이었으며 금액으로는 무려 160억이 넘었다. 여기에는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로 인해 유산을 하거나 기형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공유산을
한 임산부 131명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4월30일까지 접수한 피해신고 건수는 모두 1,617건이었는데
임산부 피해가 663건(유산255건)으로 전체피해건수의 53.8%에 달하였다. 피해증상은 대체로 복통, 설사, 구토, 유산,
목이 타는 듯한 통증 및 피부 가려움증, 붉은 반점이 생기는 것이었다. 정상이던 아이가 산달에 사산되거나 기형아를 출산하기도
했다.
페놀 피해 임산부 800명이 대구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 배상을 신청하였으나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의 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산부 16명이 대구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93년부터 시작된 공판은 결국 당시 수돗물 중
페놀과 클로로페놀의 농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또한 그것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밝히지 못한 채 95년에 재판부의
조정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재판부는 조정 내용으로 ‘두산전자는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감안하여 대구시를 통해 1억2천만원을
페놀피해임산부모임에 지급하고 대구시는 위로금조로 2천만원을 지급하라. 단, 두산전자와 대구시가 페놀사태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시인한 것은 아닌만큼 당사자 쌍방은 물론 어느누구도 조정결과를 가지고 페놀사태의 법적 책임의 존부 범위에 대한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끊임없이 재연되는 페놀사건

페놀사건은 많은 과제를 남긴 채 정리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해기업에 대한 최초의 경고와 응징,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식 확산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환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전환점이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페놀사태에 대한
국민적 응징은 전국규모라는 점에서, 그리고 해당 공해기업의 전 제품을 대상으로 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환경운동 사상 최초의 대규모
저항으로 기록된다.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두산그룹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기업으로 하여금 공해에 대한 시민반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각인시켜 준 것이다. 나아가 대기업 전반의 산업폐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국민 스스로도 자신이 버리는
생활하수가 심각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무엇보다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산은 우리나라 시민운동, 특히 환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계기가 되었다. 이제 환경문제는
언제 어느 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임을 시민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페놀사건은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다. 1994년 낙동강 악취사건을 비롯하여 2004년 6월에는 구미공단으로부터 또다시 1,4-다이옥산이 수돗물에 흘러드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페놀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중금속이 섞인 눈비가 올 때마다, 수돗물을 켜고 쓸 때마다, 수돗물 염소 냄새를 맡으며 세수를
할 때마다 페놀사건의 악몽은 우리 의식 저 밑바닥에서 언제나 엄중한 경고를 타전한다.

글/ 대구환경운동연합 이은정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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