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위 – 태안기름사고를 낸 ‘삼성1호’ 초대형 크레인에 오른 주민들이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사진가운데 – 거제 삼성중공업 정문앞에서 전개된 바다의날 삼성규탄 집회에서 환경연합 구자상 바다위원장이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아래 – 거제 삼성중공업 정문앞 바다의날 집회에 참석한 태안주민들이 삼성관계자 면담을 요구하자 경비들이 저지하고 있다.
“ 태안주민들의 2008년 바다의 날 ”
태안 주민들은 끝까지 삼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해상오염사고로 기록되는 대형 사고를 친 뒤 법정 뒤로 숨은 삼성.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기진맥진한 태안주민들은 그래도 삼성이 정신을 차리고 책임을 다하기를 바랬다. 주민들이 보트를 이용해 태안사고를 저지른 ‘삼성1호’ 초대형 크레인 위에 오를 때 삼성중공업 직원들은 우루루 몰려나와 몸으로 막았다. 주민들이 이들을 향해 남긴 마지막 구호는 ‘삼성은 잘해라!’였다. 안타까웠다. 과연 삼성이 소위 사회적 책임을 다할까? 사고후 수십여번의 태안방문을 통해 평소 삼성이 외쳐대는 기업정신, 일류정신의 실체를 이미 확인한 필자였다. 하지만 태안주민들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태안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함께 모인 5월 31일은 대한민국 바다의 날. 태안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의 거제본사 정문 앞과 사고주인공인 ‘삼성1호’ 초대형 크레인 바지선 위에서였다. 다음은 이날 행사배경을 소개하는 안내글이다.
“ 5월 31일은 바다의 날입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에 의해 태안과 서해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지금 삼성은 책임을 모면하려 법정 뒤로 숨어 꼼짝 않고 있습니다. 자살한 주민의 영혼과 더불어 태안주민의 한숨이 깊어갑니다. 사회학자들은 태안사고가 환경사고(environmental accident)에서 사회재난(social disaster)으로 곪아가고 있다며 한국이 위험사회에서 책임사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태안주민들의 건강상태도 심각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상을 둘러싼 갈등은 태안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태안기름유출사고의 피해주민들이 가해자인 삼성중공업 거제본사를 찾은 것은 지난 4월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처음 항의방문은 5명의 대표단이었고 오늘은 버스를 대절한 본격적인 집단행동이다. 거제 삼성중공업 본사를 찾은 이들은 태안시내에서 상업을 하는 주민들을 주축으로 모두 40여명. 태안주민들이 ‘죽어버린 바다의 날’을 조용히 넘기기 힘들었던가 보다. 이들은 새벽잠을 설치며 거제행 버스에 올라 오전 10시경 거제대교를 넘었다. 서울과 울산, 부산 그리고 마산과 사천, 통영 등지에서 환경연합 회원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바다위원회와 태안특별위원회에 소속된 활동가들과 회원들이다. 두 세번 이상 태안방제활동에 참여한 바 있는 이들은 태안주민들과 함께하는 거제행사를 위해 전날 오후부터 서둘렀다.
서울 삼성본사앞 등 삼성의 주요시설물 주변은 한달에서 길게는 세달까지 경찰에 집회신고가 되어있다. 삼성중공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참석자들은 집회신고를 하지 못해 문화행사의 형식을 빌어 정문앞으로 모였다. 환경연합 태안특별위원회 거제상황실이 정한 문화행사 제목은 ‘삼성아, 이제 사고 좀 그만 치렴’이었다.
삼성그룹의 무노조 횡포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이끌어 나가는 삼성일반노조
정문앞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삼성중공업 대표를 만나 피해주민의 요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거제환경운동연합은 며칠전 정식으로 공문을 띄워놓았었다. 하지만 삼성측은 꼭꼭 걸어잠근 정문을 풀지 않았고 오히려 전투경찰까지 동원하여 주민들을 자극했다. 바리케리트를 밀고 당기는 힘겨운 정문대치가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양측이 숨을 돌리는 쉬는 시간, 행사 참가자들은 상대방 삼성중공업 경비들과 경찰에게 마시던 물병을 건넸다. 자식나이의 젊은 사람들과 이게 무슨 짓이냐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정문봉쇄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히 준비해온 세판의 달걀이 참석자들 사이를 돌았다. 삼성중공업 간판을 가려놓은 정문건물을 향해 달걀세례가 퍼부어졌다. 안면도주민으로서 그리고 서울환경연합 의장으로서 삼성중공업 정문을 두번째 찾은
정문앞 행사에 이어 주민들과 환경연합 회원들은 고무보트를 나눠 타고 ‘삼성1호’ 크레인 선박으로 향했다. 1호와 2호 크레인 선박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보트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오일펜스를 쳐 놓았다. 일행은 오일펜스 사이를 뚫고 크레인선박에 접근했다. 위험과 업무방해를 경고하는 대형현수막을 내걸고 수백여명의 삼성직원들이 승선을 저지했다. ‘사람 죽이고 바다 죽인 삼성을 규탄한다’, ‘무한책임 완전보상’ 참석자들의 구호가 거제바다를 울렸다. 참석자들은 1만500톤의 기름을 태안바다에 쏟아낸 사상 최악의 환경재난을 유발한 ‘삼성1호’의 앞측왼쪽 모서리인 충돌부위를 찾아내 ‘삼성규탄’과 ‘WORST OILSPILL’라고 흰색 페인트 칠을 해 놓았다.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라는 뜻의 영어표현이다. 환경운동연합 거제상황실은 사고를 저지르고도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삼성의 못된 행위를 국제사회에 알려내겠다고 경고를 한 바 있어 사고크레인선박의 벽면에 영어표현을 사용한 것. 참고로 ‘삼성1호’ 크레인은 삼성물산 소속으로 삼성중공업에 장기임대 상태다.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배위에서 휘두른 장대에 맞아 보트를 몰던 바다위원회
이어 주민들은 삼성의 저지선을 뚫고 두 차례에 걸쳐 20여명이 ‘삼성1호’에 올랐다. 물대포가 쏟아지는 크레인선박의 닷 줄에 매달려 올랐다. 배에 오르자 곧 바로 삼성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대치상황이 전개됐다. 주민대표는 태안바다를 죽인 크레인선박의 사고부위를 직접 확인하는 평화적 방문을 하겠다고 취지를 밝혔지만 100여명의 삼성직원들에 밀려 배 후미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태안사고 발생 다음날부터 두 달이상 현장에 머물고 지금도 수시고 태안을 찾아 방제작업과 주민피해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한 환경운동가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 들며 온 몸으로 항의했다. 사고선박 ‘삼성1호’에 오른지 두 시간이 다되면서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사다리를 이용하여 배에서 내렸다.
글,사진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