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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모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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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베니스를 다시 찾으며 가슴이 부풀었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기대만 못했다. 관광 비수기라는 데도 베니스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도시 전체가 잡다한 관광상품매장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32년 전 처음 베니스에 발을 디뎠을 때, 이리저리 굽은 좁은 골목 끝에서 별안간 눈앞에 펼쳐진 산마르코 광장은 글자 그대로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광장 건너편에 서 있는 산마르코 성당의 그 화사한 자태에 가슴 뛰는 황홀함을 느꼈던 건 그 때 나 자신의 꽃다운 나이 때문이었을까?
베니스는 겨울철이면 ‘아쿠아 알토’, 즉 높아진 수위로 사리 때마다 산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긴다 들었다. 서서히 물에 잠겨가는 그 아름다운 도시에서 발이 좀 젖은들 어떠랴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는 물이 빠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발을 적시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광장에 줄지어 늘어 놓은 평상들이 피곤한 관광객들의 벤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이 신기한 ‘물의 도시’는 지금 침수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역사 이래 최대의 실험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래 습지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도 하지만, 20세기 들어 산업용수로 지하수를 대량 빼 쓰면서 지반이 가라앉아 갈수록 침수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에 착공된 이 공사는 이태리어 약자로 ‘모세(MOSE, Modulo Sperimento Elettromeccanico) 프로젝트’라 불리운다. 뜻을 풀면 ‘전기기계적 실험적 장치’쯤 될까.
정말 기발한 실험적 아이디어다. 아드리아해의 바닷물이 베니스 군도로 드나드는 입구 세 곳에 수위가 높아질 때만 닫히는 강철 가동보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가로 20m, 세로 20~30m, 높이 5m의 거대한 강철상자 79개를 바다 밑에 여닫이문처럼 설치하는 것이다.


물에 잠겨가는 ‘물의 도시’

속이 빈 이 상자들은 평소에는 바닷물이 채워져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수위가 110cm 이상 높아진다는 기상예보가 발령되면 공기를 불어넣어 물을 빼버린다. 그러면 상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바닷물이 더 이상 베니스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막는 댐이 되는 것이다. 기상예보 발령으로부터 보가 일어서 물을 막기까지 30분, 보의 역할이 끝나 다시 강철상자들이 드러눕는데 15분이 걸린다고 한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밟은 길고도 치밀한 절차다. 수중보 건설의 계기가 된 것은 1966년 11월 4일의 기록적인 침수였다. 전날 저녁 불어나기 시작한 물은 평소라면 다음날 아침 빠져나가야 했지만 하루 종일 줄지 않고 194cm의 사상 최고 수위를 기록하며 베니스 전체를 물에 잠기게 했다.
이 일로 이탈리아 정부는 1973년 베니스 침수문제 해결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선포하는 베니스특별법을 제정한다. 이 법에 따라 1980년에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그 때 응모한 6개 계획 중에 가동식 수중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고 과학계 정계 문화계 미디어 지역주민단체 등이 참여한 대대적인 토론이 벌어지게 된다.
1984년 제정된 두번째 베니스특별법에 따라 50개의 회사가 참여한 ‘새 베니스 콘소시엄’(Consorzio Venezia Nuova)이 구성된다. 이 사업의 복잡성과 예민성 그리고 시급성(!)에 비추어 단일 기관이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이후 4년에 걸쳐 베니스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연구 분석을 거친 끝에 ‘새로운 균형과 환경’이라는 방대한 제안서를 내놓는다.
가동보는 그 중의 일부이며 기존의 제방 보강에서부터 수질오염방지에 이르는 종합적인 대책이 포함되었다. 가동보의 실험모형이 만들어져 수많은 실험과 변형 끝에 나온 예비 디자인이 당국의 승인을 받은 것은 1994년.
이에 따라 1997년에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부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수중보의 디자인을 개선한 뒤 2001년에야 합격통지를 받는다.


길고도 치밀한 그들의 절차

예산 확보와 통과에 다시 2년을 보낸 뒤 2003년 드디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공사의 첫돌을 놓는 착공식이 거행되었다. 2008년 현재 40%의 공사 진척도를 보이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2011년 공사를 완료해 2012년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모세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미친듯이 질주하는 우리의 4대강 공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토론도, 상식적 판단도, 최소한의 법적 절차조차 생략한 이 국책사업을 막을 길은 하나뿐인 듯하다. 국민의 작은 권리, 선거를 통한 평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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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선 환경연합 공동대표


* 이 글은 3월 9일자 내일신문 <지영선의 녹색세상>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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