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 록 2 ●
<헌법 다시보기> 무엇을, 왜 하나요?
왜 헌법을 다시 보나요?
지난 해 대통령 탄핵이나 행정수도 위헌판결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미처 몰랐
던 헌법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보안법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지문날인제도 같
이 시민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이 헌법재판관 몇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헌재에
물어보는 사회’로의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헌법을 다시보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 다시보기>의 문제의식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헌법 다시보기>가 주목하
는 더 근본적인 측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지구화와 정보화라는 거대한 변화가 그것입니다. 또한 성과 생태, 평화와 문화를 중심으
로 하는 시민사회의 가치 변화가 그것입니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구조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국민’의 일상생활․정서․의
식 구조․사고방식에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00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의
하면, 오는 2020년에는 자녀 없이 부부만 살거나 혼자 사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를 넘어설 것
이라고 한다. 특히 1인가구 중 독거노인 가구의 점유율은 40%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
은 현상은 고령사회 진입, 기존의 남성가부장 중심의 가족 해체, 이혼율 증가 양상 등이 두드러
지면서 부부와 자녀가 동거하는 ‘정상’가정이 급속히 줄어들 것임을 뜻한다. ‘가정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삼는’ 다시 말하면, 가정 내 여성노동을 성역할 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현재의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이라는 의미다.
<헌법 다시보기> 무엇을, 왜 하나요?
2005년 현재 한국사회의 각종 지표를 살펴보자. 여성 가구주는 전체 가구주의 19.5%인 370만 6천
명으로 20년 전 보다 3.6배 증가했고, 1인가구가 15.5%, 부부가구 14.8%, 어머니나 아버지 한 명
과 자녀로 이루어진 ‘한(single)부모’가구가 9.4%이다. 결혼하는 사람 100명 가운데 8명은 국
제결혼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 3위이다. 지난 34년간 인구 1천 명당 이혼 건수는
7배 증가했지만, 혼인 건수는 30% 이상 줄었다. 작년에 이혼한 부부 중 동거기간이 20년 이상인
황혼 이혼 비중은 18.3%로, 23년 사이에 4배 증가했다.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15~1.17명으로
전세계적으로 당대 최저이자, 근대 국민국가 역사상 최저이다.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100년 한국의 인구는 1,621만명으로 감소된다. 한국은 2004년말 현재 42만명의 외국인이 취업하
고 있는 유엔이 정한 이민국가다(유엔은 이주노동자를 이민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
든 수치는 ‘공식’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특
히, 이주노동자는 100만명을 훨씬 넘는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산업구조, 지구화, 여성의식의
변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 모든 변화들을 주도하는 것은 여성이다.
이제 여성들은 더이상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 ‘집안’ 일과 ‘바깥’ 일, 육아의 삼중노동
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 겸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이중 메씨지 사이에서 분열
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인도인데, 대신 인도는 기혼
여성의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국 여성들은 자살하느니 이혼을 선택하는, ‘합리적
인’ 사람들이다.
– 정희진, <헌법의 탈식민화와 ‘현실화’를 위하여 - 한국헌법의 남성성과 국가주의의 문제>,
창비-시민행동 공동 심포지엄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 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 자
료집 중
헌법은 곧 국가입니다. <헌법 다시보기>가 주목하는 것은 영토와 국민, 주권 등 모든 영역에서
도전에 직면한 국가, 그리고 보장받아야 하고 확대되어져야 할 새로운 정체성들과 새로운 가치들
입니다. 그 정체성들과 가치들 사이의 새로운 합의 혹은 공동의 꿈, 그리고 그 합의와 꿈에 기반
해 거듭나는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찾아나서는 길찾기입니다.
<헌법 다시보기>의 지향과 목표
<헌법 다시보기> 무엇을, 왜 하나요?
헌법, 누구의 목소리인가?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헌법 다시보기>는 그 ‘모든 국
민’이 실제로 누구인지를 살펴봅니다. 아동과 청소년, 여성과 다양한 성소수자들, 장애인과 지
역민들 또한 ‘모든 국민’에 실제로 포함되고 있는지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또 <헌법 다시보기>는 ‘모든 국민’만으로 충분한지도 되짚어봅니다. 조선족들, 이주노동자들,
난민들 같은 다양한 이방인들, 지구촌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들과 뭇생명들의 목소리를 헌법은 어떻게 담고 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헌법, 절대적인가?
많은 사람들이 헌법을 절대적인 것, 최상의 법규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헌법 다시보기>는 바
로 그 절대성에 대한 수많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과연 헌법은 <세계인권선언>이나 <환경과 개
발에 관한 리우선언>보다 우선해도 좋을까요? 헌법에 규정된 수많은 ‘보편적’ 권리들은 정말
‘보편적’일까요?
다른 한 편에서는, 헌법을 통한 문제해결 과정은 엘리트들의 것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보통 사람
들의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 과정인 정치적 영역을 더 중시해야 하며 헌법은 간명하게 최소한의
기준만을 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헌법을 두려워하고 논의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야말
로 헌법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헌법을 문제삼지 않는 정치는 결국 헌법 / 국가 테두리 내에서
의 정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 다시보기>는 헌법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이지 못한 지금의 헌법을 고쳐 절대
적일 수 있는 헌법을 만들려는 것도 아닙니다. <헌법 다시보기>는 오히려 마지막 성역이었던 헌
법을 일상 정치의 영역으로, 사회적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헌법을 끊임없이 재
검토하고 재해석하고 재규정하면서, 과도하게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헌법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려는 것입니다.
새로운 합의 혹은 공동의 꿈
<헌법 다시보기>가 헌법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과 생태,
평화와 문화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정체성들과 가치들 사이의 새로운 합의 혹은 공동의 꿈을 만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새로운 합의는 지구화와 정보화라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
는 것이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더 확장된 시민권, 더 민주적인 정치, 경제질서 등이 모두 <헌
법 다시보기>의 고민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초월적 헌법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합의는 제 몫
을 알고 있는 합의, 소통가능한, 즉 계속적으로 재검토와 재해석, 재규정이 가능한 열린 합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은 1~2년 내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새로
운 가치들을 ‘선언’적으로 끼워 맞추는 것은 결국 헌법을 다시 박제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정말 제대로 된 헌법에 들어 갈 내용이 담긴 사회적 아젠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 사
회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보자는 것이고 그럴 때만 실제 의미있는
개헌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나 과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는 ‘정치적’ 과정이 될 것입니다.
헌법과 현실 사이
그래서 <헌법 다시보기>는 헌법을 고치는 것에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합의들을 만
들어가고 그 합의들이 현실 속에 반영되게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게다가 우리 헌법에는 더욱 발
전시켜가야할 많은 조문이 있습니다. 새로운 합의의 내용들이 현실과 헌법 해석에 반영될 수 있
도록 여러 가지 논의와 실천을 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