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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한미투자협정(BIT),무엇이 문제인가? – 한미투자협정과 문화

한미투자협정이 우리 문화에 미칠 가장 큰 문제점은 널리 알려진 대로 스크린쿼터를 축소, 폐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는 투자협정문 제6조의 ‘이행의무부과 금지’ 조항에 의해 문
제가 되고 있다. 6조는 외국인 투자와 관련해서 국가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과하는 조건을 금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에게 국내에서 일정한 생
산량을 달성하라는 조건을 부과하거나, 국내의 물건을 사용하라고 강제하거나, 일정한 외화를 획
득하지 않으면 생산을 위해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경우와 생산품 판매를 규제하는 규정 등
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조항에 근거하여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필름의 사용을 강제
하고 있다며 이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투자협정은 외국인 투자에 관한 협정이기 때문에 6조의 조항을 그대로 적용한다해도
미국인이 투자한 극장에만 스크린쿼터제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물론 이 내용대로 협정이 체결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미국은 협정문의 조항을 넘어서서 스크린쿼터제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
다. 스크린쿼터제는 GATT 4조도 용인하고 있는 제도이다. 미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WTO 체제 내
에서도 문화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한국과의 양자간 협상에
서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모든 사항이 합의되었음에도
스크린쿼터 문제 때문에 협정이 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경제관료들의 주장은 사안의 본질을 호
도하기 위한 술책이거나,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알아서 기는’ 태도일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는 한국영화산업의 붕괴를 의미한다. 경제관료들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이 40%를 웃돌고 있으니 스크린쿼터제를 폐지 또는 축소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스크린쿼터
제가 없다면 단 한 번의 점유율 축소가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나락으로 우리영화를 몰아넣을 것
이다. 묶음판매 등 극장으로 하여금 충성을 강요하는 기존 90년대 중반 할리우드의 배급관행에
서 보여지듯 한번 내준 시장을 다시 회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스크린
쿼터제 폐지는 우리 영화산업을 제작편수 감소와 투자위축, 다시 시장축소라는 끊임없는 악순환
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영화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제작편수, 즉 안정적인 컨텐츠의 지속적인 공급
을 통한 극장 확보라는 배급력에 달려있다. 안정적인 제작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 위축이 불가피해져, 한국영화는 더 이상 산업적으로 존립할 근거를 박탈당할 것이다.
영화산업 시장의 크기에 따라 자본의 규모와 상업적 능력이 좌우되는 ‘규모의 경제’가 어김없
이 관철되는 분야이다. 소수 민족의 언어, 문화권을 가진 우리가 전 세계시장을 상대로 할리우드
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투자협정이 문화분야에 미치는 파장은 스크린쿼터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협정문 제2조에
는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이
것은 지적재산권을 보장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큰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이 분야를 별
도의 협약을 통해 최고 수준에서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다. 미국은 지적재산권의 국제기준인 ‘베
른협약’에 따라 50년 소급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1957년에 저작권법을 제정할 당시 소급
적용 조항을 두지 않았다. 1996년 법을 개정하면서 소급적용 조항을 신설했지만, 역시 1957년 이
후의 저작물부터 저작권을 보호하도록 했다. 미국은 96년 법개정을 기준으로 50년 전인 1946년
저작물부터 소급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베른협약에 소급적용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각국의 사정에 따라 별도의 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협정문 제7조는 경영자에 대해 국적요건을 부과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정간물법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않은 자는 정기간행물의 발행인이
나 편집인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방송법은 외국인이 방송국의 장이나 편성책임자가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7조의 조항은 방송의 외국인 지분참여 제한 철폐와 정간물법,
방송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방송개방 요구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방송은 WTO 양허표 상, 아직까지 개방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부분적으로 빗장이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과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이 33%까지 허용
되어 많은 외국자본이 국내방송에 진출해 있다. 수도권에 10개 이상의 종합유선방송사업을 소유
하고 있는 C&M 커뮤티케이션의 경우 미국의 올림퍼스 캐피탈로부터 200만 달러의 투자유치를 받
았으며, 한국케이블 드림씨티 방송도 외국자본이 유치된 상태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경우, m-
net 채널을 소유한 뮤직네트워크는 MTV ASIA와 소니뮤직이, LG홈쇼핑은 모건 스탠리 등의 투자사
들이 각각 33% 미만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MBC 스포츠 역시 미국의 ESPN이 33%의 지분을 소유
하고 있다. 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처럼 아예 외국 채널이 국내 방송채널사용사업자로 들어
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방송위원회는 이 지분을 49%까지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개방이 계속 확대되면 공중파의 외국인 참여 제한, 한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80%이상
편성해야 하는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 영화 음악 애니매이션 등의 콘텐츠에 적용되는 각종 방송
쿼터와 같은 문화정체성을 지키고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제도 역시 폐기될 수밖
에 없다. 한미투자협정의 이행의무부과 금지 조항은 스크린쿼터 뿐 아니라 위와 같은 방송정책들
의 폐지를 요구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진행중인 WTO DDA 협상에서도 이 부분에 대
한 개방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번 개방을 약속해버리면 이에 대한 번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뉴질랜드는 UR협상에서 방송분
야를 전면 개방하여, 기존의 각종 쿼터제가 폐지되고, 주요 방송사들은 외국 자본에 흡수되었
다. 1999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여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 쿼터와 음악 쿼터
를 도입하려 했으나 WTO의 규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경우
광고시장 개방이 그 예가 될 수 있는데, 한국은 UR 협상에서 광고시장을 개방하였다. 그러나 개
방이 미칠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라는 국영미디어랩을 통해
방송광고시장을 통제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그간 개방약속을 지키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
고,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월 13일, 방송광고 독점 대행의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섣부른 개방약속의 결과가 무엇일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미투
자협정은 방송개방 압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처럼 한미투자협정은 영화분야 뿐 아니라 문화분야 전체에 큰 폐해를 불러올 독소조항들로 가
득하다. 결과적으로 한미투자협정은 문화개방을 확대하고, 이 분야에 대한 미국인 투자자의 권리
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글 :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영화인 대책위
자료출처 : 자유무역협정․WTO 반대 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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