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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단체국제연대 교육연수 자료집 – 21세기 한반도의 비전

21세기 한반도의 비전 – 냉전의 섬에서 평화의 허브로

글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civil@peacekorea.org

흔히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는 지정학적 원인으로 설명된다. 이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접점에 한반도가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지난 수세기 동안 한반도를
동북아 지역의 패권 확보와 강화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왔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침략전쟁을 방지하는 국제체제가 성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교류 협력이 증진
됨에 따라 직접적인 지배가 아니더라도 국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북아
주요 국가들이 이미 서로를 파멸시키거나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춤으로써 영토
적 패권주의 추구 경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한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래의 통일 한반도
가 과거와 같은 약소국이 아니라는 점도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
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동북아에서의 안보 환경의 변화가 냉전 시대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이 완화되거
나 일방적인 안보 추구에서 공동 안보로 이행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않고 있다. 동북아에
서는 여전히 상호간의 군사력과 의도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 이에 기초한 불신 및 견제 심리가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미래가 과거의 되풀이는 아닐 지라
고 과거 못지 않은 불확실성과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한반도는 동북아의
불확실한 미래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가 동북아 국제관계의
현재와 미래 사이에 대단히 복잡한 함수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맞
이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사이의 핵심적인 딜레마는 한반도가 동북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영토적 현상
변경 세력’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한민족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
는 ‘한반도 통일’이다. 한반도 통일은 과거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의 극복이라는 민족사적 과
제를 달성한다는 의미와 함께, 분단과 적대 관계를 이유로 왜곡되고 유보되어온 인간과 공동체로
서의 권리와 삶의 양식을 정상화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제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 ‘안’으로부터의 당연한 요구와 과제는 한반도의 ‘밖’과 근본적인 긴장관계
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 동북아 세력균형 차원에서 강요되었던 한반도의 분단은 ‘과거’의 조건만
이 아니었다. 냉전 시대는 물론 탈냉전 시대에도 한반도의 분단은 동북아 세력균형 유지의 ‘하나
의 필요조건’으로 작용해왔고, 이러한 속성은 미래에도 쉽게 극복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동북아에서의 ‘현상 변경’을 의미하는 한반도의 통일이 진행되면, 동북아 전반에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 ‘세력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동
안 한반도의 분단과 불안정성을 이유로 주변 국가들이 추구해온 국가전략에도 적지 않은 혼선을
야기하면서 상호간의 대응 방안 역시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 6워러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
국들간의 치열한 외교 각축전이 벌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분단된
한반도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구심력’이 강해질수록, 주변 국가들은 한반도에서의 현상 변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원심력’이 강해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
21세기 들어 동북아의 주요 현안들과, 앞으로 예상 가능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검토해보면, 위에
서 설명한 한반도의 딜레마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또 나타날 것인지를 알 수 있
다. 21세기 들어 동북아의 핵심적인 평화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강경정책 및 동북아 패권
강화, 북한의 핵, 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문제, 중국의 부상, 일본의 재무장, 미국의 동
북아 미군 전력의 강화 및 장기 주둔 움직임, 한미-미일 동맹의 강화, 한-미-일 삼각체제에 기반
을 둔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러시아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재건 노력, 남북한
의 화해협력의 증진 등 도전적인 요소들과 희망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한반도의 딜레마와 연관시켜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세계의 다
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북아 질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중국의 위협’이
라고 해석하면서 21세기 핵심적인 외교안보전략의 방향을 ‘중국 봉쇄’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야
기되는 한반도의 딜레마이다. 냉전 시대에 한반도의 북쪽은 중국과, 한반도의 남쪽은 미국과 동
맹관계를 맺었다. 탈냉전이후 북-중동맹은 상당히 약화되긴 했지만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
고, 한미동맹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 코리아가 미국과 동맹관
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될 것이라는 판단을 중국이 하면,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 변경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즉, 중국의 우려
를 씻지 못하는 한,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통일코리아의 출현보다는 안정화된 분단
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력하에 놓일 것이라고 판단
하면 분단 유지·관리 정책을 동북아 전략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삼을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만약 통일이후에도 한반도에 주한미군이 주둔할 가능성이 높다면, 중국은 한반
도의 통일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미국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통일이후에 주한미군
주둔이 어려워질 경우에는 미국이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미
국의 MD 구축을 대중국 포위 및 봉쇄 전략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국이, 한반도 통일이후에
는 물론이고 통일이전부터 미국이 일본에 이어 한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MD 전략의 최전방 기지
로 활용할 것으로 판단한다면, 대한반도 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중국이 MD에 대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만의 명시적인 포함이 이뤄지지 않더
라도 해상체제에 기반을 두고 지상과 공중 요격체제가 보완하는 방식으로 한-미-일 삼각 MD 공조
체계가 이뤄진다면, 대만의 독립 의지를 부추기는 것과 함께 대만과의 무력 충돌시 미국의 개입
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중국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는 곧 중국이 통일이전에 남한, 그리고 통일이후에 한반도에 MD 관련 무기체계가 배치될 것이라
는 판단을 할 경우,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중대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
다.
이처럼 주한미군과 MD로 상징되는 미중간의 전략적 이해관계의 상이함은 한반도에 엄청난 딜레
마를 안겨주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중국이
통일이후의 주한미군 주둔 및 한국(통일 한반도)의 MD 참여를 자신의 심각한 전략적 이해관계의
훼손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반대로 ‘중국의 부상’을 ‘중국
의 위협’으로 동일시하면서 이를 봉쇄하는데 주한미군의 영구 주둔 및 MD에의 한국 포섭이 반드
시 필요하다는 미국의 고집스러움이 꺾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누구의 편을 들기도 힘
든 처지에 있다. 한국의 정책적 선호가 어느 일방으로 기운다고 다른 나라가 판단하면, 그 나라
는 한반도의 통일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통일 실현
이라고 하는 한민족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1세기 한반도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미국과 전략
적 이해관계를 ‘대체로’ 함께 하고 있는 일본 역시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
본 내부에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1세기 들어 두드러진 대세는 반북감정의 확산
과 중국위협에 대한 경계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사적 경험과 현재 및 미래에 대한 일본 나
름대로의 해석이 반영된 것이지만, 동북아 질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강하게 투영된 것이기
도 하다. 즉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독자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비전 하에 동북아의 질서를
바라보기보다는 미국과 일본 내 친미세력이 양산해온 ‘북한혐오론’과 ‘중국위협론’이 일본인들
의 시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는 일본의 군사력 강화, 과거 식민지배
에 대한 책임 회피, 미일동맹의 강화, 군사강국을 향한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 등으로 나타나
고 있기도 하다. 즉, 일본이 부분적인 탈미(脫美)와 미국 견제를 시도하면서 20세기와는 다
른 ‘일본’을 기획하지 않고 익숙한 관성대로 대미 편승에 의존한다면, 동북아 전체가 다른 질서
를 지향할 수 있는 기회가 유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은 한국에게 적지 않은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한국의 군비증강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
로는 일본의 위상 강화와 함께 한국을 미일동맹 체계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
기 힘들게 하고 있다. 즉, 미국의 요구에 따라 미일동맹이 갈수록 강화되는 현실에서 한국은 반
일감정과 대미종속이 혼재되면서 정체성을 찾아나가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연계시켜 바라보면 이러한 딜레마가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
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그리고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과는 달리,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통일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한국
국민들은 통일 코리아가 또 다시 주변 강대국의 패권 경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강력한 국가
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고, 이러한 희망 속에는 ‘강해지는’ 중국과 ‘부활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하게 깔려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기대감이 현실화될 경우, 통일코리아는 ‘대미 종속성
을 탈피한 자주적인 국가’와 ‘주변 국가들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의 결합으로 나타날 가
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희망사항’으로 끝날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강대국들이 이러한
통일코리아의 출현을 팔짱끼고 지켜보지도 않을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에서부터
대중적인 정서와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미래의 비전에 대한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실 통일이라는 막연한 염원이외에 미래의 비전에 대한 한민족의 ‘일반의지(general
will)’의 결여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을 떠나 ‘부국강병 자주 국가’에 대한 다수의 한국인들의 희망이 일본인들의
한반도 견제 심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통일이후의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고 통일
코리아가 강력한 국가를 지향할 것이라고 일본이 판단한다면, 많은 일본인들은 통일 코리아
를 ‘일본을 향해 뻗친 대륙의 칼’로 인식할 것이다. 특히 미군이 통일이후에 철수한다면, 역사
적 경험과 지리적 이점, 한-중 양국의 대(對)일본 견제 심리가 맞물려 통일 코리아가 중국으로
편향될 것이라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일본은 향후 불확실한 미래
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군비강화와 평화헌법의 개정과 같은 군사주의적 노선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곧 동북아 전체의 군비경쟁과 상호 불신 심화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
이다.
동북아 주둔 미군을 바라보는 동북아 각 국의 시각 차이는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일이후에 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라는 나라는 역시 일본과 미국이다. 중국은 결단
코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영구 주둔을 바라지 않고 있고, 러시아 역시 정도는 중국보다 덜 하지
만 통일코리아의 주한미군 주둔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는 주한미군이
통일이후에도 주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정부 입장과는 달리 국민들 사이에서 남북
한이 본격적인 통일 과정으로 진입하면 미군 철수론이 강하게 제기할 것이다. 반면에 한국과 중
국은 주일미군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다면, 주일미군의 계속 주둔이 바람직
하다고 볼 것이다.
미군 주둔을 바라보는 동북아 국가들의 이러한 시각 차이는 통일이후에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이 필요하다는 미국측의 논리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주한미군이 철수
할 경우에, 일본 내에서 주일미군의 철수론도 강하게 부상할 것이기 때문에 동북아 전체의 안정
과 세력균형 유지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이 바람직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
다는 것이다. 특히 탈냉전이후 군비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추세를 감안할 때, 주일미군의
철수, 혹은 대폭 감축은 ‘핵보유 가능성’을 포함한 일본의 재무장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일미군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대단히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가 직면한 딜레마는 쉽게 해소되기 힘든 속성을 갖고 있다. 특히
각국의 정부들이 이러한 딜레마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동맹체제 및 군비
강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반도와 동북아의 딜레마를 해소하는데 정부들
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결국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다른 미래’, 즉 군비경쟁과 패권경쟁을 내포한 불확실한 미래
를 상호번영과 공동안보라는 바람직한 미래를 기획하고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편협한 국가
중심의 이익에 종속되지 않은 동북아 시민사회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과 연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
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있어서도 동북아 국제체제에
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한반도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
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이상과 비전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과 같은 인식과 실천상의 과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대원칙으로 한반도의 냉전해체와 남북한의 통일과정이 동북아 전체의 공동 안보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즉, 한반도에서의 현상 변경(통일) 과정이 동
북아의 새로운 불확실성을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
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 그 자체를 강조함으로써 한반도 민족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불러오기보다는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서 통일을 자리매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한반도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통일’보다
는 인류사회의 보편성을 반영하는 ‘평화의 조건’으로서의 통일을 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동맹체제와 강력한 군사력에 기초한 부국강병형의 통일 코리아의 미래상을 그리기보다는
정부의 정치외교력과 시민사회의 신외교에 기반을 둔 동북아 질서의 중재자 및 중추국가(hub-
state)로서의 미래상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불행했던 과거가 미래에도 되풀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과거의 교훈에 대한 ‘피해자’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래의 한반도는 과거
와 같이 주변 국가들의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될 정도로 약하지 않을 뿐더러, 동북아 국제체제의
성격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식해, 냉전의 섬에서 동북아 평화의 허브
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에 찬 21세기 기획을 지금부터 가꾸어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동북아에서 미국이 안정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미래상을
다시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것은 ‘안정유지’라는 외피를 쓴 ‘패권
주의’와 다르지 않다. 향후 동북아 질서가 불안정할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하나
의 신화에 불과하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이 강화되고 있고,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21세기의 질서를 과거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동북아의 불안정을 이유로, 또 이를 양산하면서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
는 미국식 발상에 기초한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이러한 미국식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
는 것은, 21세기 한반도의 안보전략의 운신 폭이 극히 좁힐뿐더러,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동북
아 공동체 건설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넷째, 핵무기를 포함한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와 대안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길게는 한국 전쟁이후, 짧게는 탈냉전이후 한반도 평화 문제의 가장 중심적인 문
제가 핵문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핵무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NGO가 거의
없다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전쟁 위기설이 제기될 정도로 북한 핵문제가 첨
예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고, 미국의 핵전략이 갈수록 공세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향후 가
장 우려되는 동북아의 군비경쟁이 핵무기 경쟁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에서의 핵문제를 슬
기롭게 풀어가고, 이를 ‘동북아 비핵지대’라는 보다 거대한 목표로 이어가기 위해서도 한국 시민
사회의 반핵운동 활성화는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다섯째, 반핵문제를 포함한 평화문제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연구
자 차원은 물론이고 활동가 차원의 치밀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
국 평화운동의 시급한 과제가 ‘국제화’에 있다는 점에서, 언어와 인터넷, 전문 지식을 갖춘 연구
자와 활동가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평화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
고, 젊은 계층이 외국어와 인터넷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화 전문가 양성을 위한
중요한 필요조건을 충족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부와 학교, 그리고 NGO들이 이러한 잠
재적인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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