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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환경워크숍 – 환경운동, 왜 생명인가

환경운동, 왜 생명인가
-생태적 삶과 상생순환의 논리

모든 만물은 이어져 있다. 대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대지의 자녀들에게도 일어난다. 대지가
사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대지에 속한 것이다. 생명의 거미줄은 사람이 짠게 아니다. 사
람은 그 거미줄의 한 오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거미줄에 무슨 짓을 하던 그것은 곧 자신에
게 하는 일이 된다. 사람이 땅에 침을 뱉으면 그것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이다. / 시에틀 추장

1. 환경과 생명의 위기

지금 우리 모두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몸이 생명력을 잃고 병들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 그 심성은 날로 황폐해져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급기야 인류라는 종
의 정상적인 번식 자체가 심각히 위협받기에 이르렀으며 인간 사회는 생명의 상품화와 공동체의
파괴 등 광기에 찬 집단 병리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과 생물
종의 멸종 심화로 자연생태계, 하나밖에 없는 지구 생명계 전체가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
다.
인류의 문명사적 대전환기 또는 빅 카오스 속의 우주적 대전환기라고 일컫는 이 시대에 가장 절
박한 과제는 생존과 치유이다. 대재앙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그리고 병든 우리자신과 사회, 자연
생태계를 건강하게 치유하는 일이 그것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병든 심신을, 세상
과 생태계를 치유해 낼 것인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지구 생명계 전체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러한 재앙의 원인이 자연을 거
스르는 문명양식과 쓰고 버리는 삶, 곧 물질적 풍요와 편리에 대한 무한 욕망의 추구, 그 확대
재생산에서 비롯된다는 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재앙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환경문제란 인류의 문명양식과 인간의 삶의 방식의 문제라는 의미이다. 그렇
다면 문제의 해결이란 결국 어떻게 문명양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 가는가에 달려있음이 자명하
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삶과 인류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는 것이다.
환경을 인간자신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을 땐 환경문제란 없었다. 그리고 이제 환경이 곧 생
명임을 자각했을 때 환경문제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이며 생명의 문
제임이 분명해졌다. 인간의 생명, 존재 그 자체와 분리된 환경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다. 그런 점에서 생명위기시대의 환경운동 또는 환경생태운동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생명운동이
어야 하며 반생명적인 문명과 사회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내는 변혁운동이자 생
명과 존재의 실상을 자각하기 위한 각성운동이어야 하고 우리 자신의 삶과 삶터를 다시 푸르게
일구어 내는 삶의 운동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환경생태운동이 생명운동, 생태적인 문명운동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생명
의 세계관 곧 생명과 존재의 실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이란 무
엇인가, 존재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성, 그 깨달음이 없이는 당면한 생존위기에서 벗어
날 수도,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운동, 생태적 문명운동
의 핵심은 생명과 존재의 실상에 대한 각성 곧 생태적 깨달음에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삶
터를 생명의 근거지로 바꾸어 가는데 있다. 이러한 생태적 각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삶을 자연의
이치인 생명본연의 원리에 맞게 가꾸어 가는 것이 곧 자신을 치유하여 생기찬 삶을 일구는 일이
며 수행(修行)이고 문명과 세상을 푸르게 바꾸는 변혁운동의 시작이자 그 내용이라고 할 수 있
다.

2. 생명에 대한 이해

생명, 그 존재의 실상이란 무엇인가. 들숨과 날숨, 밥과 똥, 새 세포의 생성과 낡은 세포의 괴
사 그 끊임없는 생멸현상, 삶과 죽음의 반복 속에서 이 생을 이어간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이
죽음 속에 또한 삶이 있다. 밥과 똥이 하나이며 생사가 일여하다. 분리가 없는 곳에서 생명, 그
존재의 완전함이 있다.

어느 것 하나같지 않되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생명
생명의 존재양식을 그 드러난 특징에 따라 흔히 다양성, 관계성, 순환성, 영성 등으로 표현하기
도 한다. 생명체들의 이런 존재양식을 통해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다.
물질우주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같은 게 없다. 강변의 수많은 모래알조차 제 각기
그 모습을 달리한다. 같지 않음으로 고유함 이것이 존재의 근거이자 그 가치이다. 어떤 존재도,
그 어떤 생명도 다른 것과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지 않음으로써 평등
함 그것이 생명의 등가성(等價性)이다. 천지만물, 뭇생명은 이 같은 다양성(多樣性)에 의해 풍요
를 실현하며 고유한 가치와 평등성을 구현해 간다.
관계성(關係性)이란 생명의 그물망이다. 생명계는 따로 떨어진 개별 생명체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고도로 다차원적이며,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그물망이다. 모든 개체 생명체는 이 생명계
안에서 서로의 생명을 주고받는 순환 고리 가운데 살아간다. 이 관계의 그물망을 떠나서는 그 어
떤 생명도, 어느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서로의 관계에 의해서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이
러한 생명의 상호 연계성 곧, 네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상생연기의 관계성이 생명의
실상이자 존재의 양식이다.
생명이란 대사현상,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과정이다. 흐르고 돌아야 산다. 흐름이 멈추면, 돌고
돌지 못하면 그것이 곧 죽음이다. 들어옴과 나감, 생성과 소멸 이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생명은
자기를 실현해 간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성(循環性)이다. 모든 생명은 물질과 에너지, 그 기운
을 존재의 안팎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시키므로 써 자신을 영위하며 우주적 연계성을 갖는다. 들
숨과 날숨, 기혈의 순환, 밥과 똥의 순환이 그것이다. 이렇듯 살아있다는 것은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다시 밥이 되는 그 순환의 과정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체 생명은 생명의 그물망 그 우주적 연계성 속에서 영원과 무한의 존재인 우주와 한 몸, 한 생
명으로 이어져 있다. 영성(靈性)이란 모든 존재, 모든 생명 안에 깃든 근원성이다. 존재 그 자체
가 신성의 거룩한 표현인 것이다. 모든 생명에 깃들어 있는 불성, 한울, 거룩하고 신령한 생명
의 본성, 내 안의 하느님이 그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거룩하고 신성하다는 것, 이것이
존재의 본질인 것이다.

나 밖에 남이란 없다
관계성과 다양성 등 생명의 여러 특징을 통해 나타나는 생명의 본질은 모든 생명은 근원에서 하
나이며 개체 생명으로서의 각 존재는 그 근원의 다양한 드러남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나
와 자연(우주)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나의 생명, 나의 존재의 근원은 자연이라는 것이다.
이는 나라는 생명체의 본질을 그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와 생명을 이어가는 요소로 살펴볼 때 더
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로,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자연(우주)으로부터 온 것이다. 곧, 나는 자연의 요소로 이
루어진 존재로서 나는 나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구성요소).
둘째로, 나는 자연에 의해 나의 생명을 유지하며 실현해 간다(생존요소).
이렇듯 우주 대자연 속의 물질들이 나의 존재를 구성하고 나의 생명을 유지해 간다. 자연의 요소
와 나는 둘이 아니며 자연을 떠나서는 나는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살아갈 수도 없다. 물이
없으면 나 또한 없으며 공기가, 나무가, 저 구름과 바람이 없으면 나 또한 없는 것이다. 자연과
그 자연을 이루는 요소와 나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모든 생명체 그 존재물이 이와 같다.
셋째로, 모든 생명체는 구성요소뿐 아니라 물질결합방식도 똑 같다. 모두 DNA형식의 생명체들이
다(결합방식).
박테리아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같은 물질이 같은 형태로 모인 똑 같은 타입
의 생명체이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모두 동일한 형태의 생명인 것이다. 이러한 결합방식을 통해
내 존재, 그 의식 속에는 인식적인 경험뿐만이 아니라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과정에서 습득한 생
물학적인 모든 정보까지 다 들어 있다.
어떤 생명체가 이처럼 구성요소뿐 아니라 생존요소, 나아가 그것의 물질적 결합방식까지 똑 같다
면 그 생명체는 둘이 아니라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이와 같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가 그 본질에 있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인 것이다(天地同根, 萬物一體).
그러므로 우리 눈앞에 드러나는 개체 생명의 차별성(차이)란 동일한 근원에서 피어 낸 다양성,
한그루 생명나무(우주목)의 여러 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잎새들로서의 다양성이다. 그것은 서로
분리된 별도의 개체가 아니라 근원인 한 생명의 풍요를 위한 자기표현으로서의 다양성이다. 자연
은 이처럼 한 몸인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풍요를 실현한다. 우주 만물이 한 송이 꽃(萬
物一華)인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한 생명이다. 제 각기 생명체로서 조직 안팎으로 반응하
면서 대사작용, 복제작용, 교환작용을 한다.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살아있는 생명체
로서의 세포들이 모여 인체의 여러 기관들을 이루고 이 기관들이 다시 그 자체로서의 생명활동
을 하며 이 모든 것들의 전체로서 우리의 몸, 그 존재와 생명을 형성한다. 우주, 대자연의 생명
또한 이와 같다. 우리 몸, 생명체로서 우리의 존재는 전체 생명계의 한 부분, 곧 우리는 지구 생
명체의 한 세포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생명의 근원인 우주 대자연, 그 신성의 드러남이며 내
속에는 우주 대자연의 근원, 신성이 있다. 나와 천지만물이 둘이 아니며 내 속에 우주가 있고 우
주 속에 또한 내가 있다. 나 밖에 남이란 없다.

이기적 유전자와 깨달음
개별 생명체는 자기를 유지 실현하기 위해 영양의 섭취와 신진대사, 자기복제, 자극에 대한 반
응, 정보의 유지와 교환 등의 활동을 한다. 이것을 생명활동의 주요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
한 활동의 중심은 자기생명유지, 자기복제(종의 번식)에 있다. 이처럼 생명체가 외부에서 끊임없
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자기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종의 번식을 통한 자기복제에 의해서 생명
의 지속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생명체의 자기유지를 위한 이러한 집착을 흔히 생명
의 본능, 존재의 본성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나와 너의 구분, 인간과 자연의 분리 곧 생명의 근
원에서 스스로를 분리 차단하는 무지와 불행이 비롯된다.
이기적 유전자란 이처럼 자기유지를 위해 본래 하나인 생명, 그 존재를 나와 남으로 구분하고 분
리하는 생물의식이다. 자기에 대한 집착(에고의식)이 심어진 물질이 생명이라는 지적이 이것이
다. 분별심이란 에고의식(무명)의 소산인 것이다. 자기라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눈앞에 보이
는 현상에 가려져 있는 존재의 본질과 실상을 바로 알지 못하는 한 되풀이되는 자기살해적인 이
어리석음과 비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 생명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경운동이 생명운동이
어야 하고, 생명운동이란 생명의 실상에 대한 각성운동이며, 환경문제의 해결이란 궁극적으로 인
간의 무한 탐욕을 다스리는 문제 곧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개체로서의 생명체가 자기유지를 위해서 외부로부터 에너지(영양)를 공급받아야 하지만, 이 때문
에 다른 생명을 나와 분리하여 경쟁적이고 적대적 관계로 만들어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명
의 존재양식인 관계성과 순환성을 통해 알 수 있다. 생명의 관계란 대립 경쟁이 아니라, 생명의
그물망이란 다층적 복합적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밥이 되어 살고 살리면서 동시에 밥이 똥이 되
고 똥이 다시 밥이 됨으로써 생명을 지속시켜 나가는 상생 순환의 관계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각성이란 에고의식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존재의 실상이 아니라, 오직 연
기의 관계망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생태적 각성이란 존재
와 생명의 근원자리인 자연과 나라는 인간 존재의 관계를 새롭게 깨닫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깨달음이란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일원론으로의 귀의라 할 수 있다. 모든 존재가 근원에서
하나(同一根源)이며 모두 다 하늘을 모시고 있음을(天地萬物 莫非侍天主)을 자각하는 것, 존재물
들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신령함 그 우주적 연관성을 깨닫고 생명 가치의 절대성과 등가성, 비교
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유일, 절대가치로서의 평등성을 아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각성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생명계의 위기, 자기 살해적 문명과 삶의 위기가 생명의 근원
으로부터 분리된 데 있음을 아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개체 생명체 그 존재
물의 드러난 모습의 다양성을 본질의 다름으로 착각해서 나누고 쪼개고 고정, 고착화시킨 우리
의 무지, 에고의식의 탐욕에 찬 분별심에서 불행과 비극이 발생한 것임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
되어야 한다.

3. 생태적 삶, 근원으로 돌아가기

삶터가 무너지면 어떤 꾀로도 생존이 불가능하다.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 뿌리를 내림으로
써 자신의 삶과 삶터를 새롭게 일구어내어야 한다.

상생순환의 삶
오늘날 현대문명과 도시를 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처한 불행은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을 통해 생명
의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혀 있다는 데 기인한다. 뿌리 뽑힌 채로는 결코 행복할 수도 건강할 수
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명력을 잃고 병들어 시들어갈 수밖에 없음은 이 때문이다. 이런 점
에서 현대인의 삶의 위기는 뿌리 뽑힌 삶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자신의
삶이 뿌리 뽑혀 시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생태맹의 상태라는 데 있다. 이처럼
위기의식이 마비되어 있다는 것에 문제의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생존과 치유의 핵심은 다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생태적 삶이란 생태적 각성을 토
대로 자연과 조화되어 산다는 것이다. 자연에, 땅에 가까워질수록 충실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
기 때문이며, 생명의 근원자리에 뿌리내릴 때만 진정한 풍요와 존재가치를 충실히 실현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생명의 근원인 자연으로, 땅으로 돌아감 그것은 대지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이
다.
쓰레기를 줍고 공해배출 업체와 댐 건설을 반대한다고 모두 환경운동, 생태운동이 되는 게 아니
다.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의 여부가 핵심이다. 운동 이전에 생태적 삶
이다. 쓰레기란 없는 것이다라는 인식에서 버림이 없는(無棄物) 삶으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환
경생태운동이란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다.
나와 너,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나와 한 몸, 한 생명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생태적 삶이 가능하
다. 존재의 그물망 속에서 함께 살지 않는 한 아무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뿌린 대로 거두어야 하는 인과윤회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적 삶이란 공생적 삶의 다른 표현이다.
자연의 상생, 순환의 원리에 따르는 것, 물질(에너지)과 정보의 순환, 밥과 똥의 순환을 이루어
가는 삶이 생태적 삶의 구체적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태적 삶이란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을 분리한 이원론으로 인한 상생순환의 가치관 상실과 물질(에너지)과 정보의 순환을 차단하
는 현대문명의 대표적 병리를 치유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인 것이다.

먼저 자신을 경배하라
생명운동이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자각을 통하여 생명가치,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한편에서 생명의 상품화를 반대하는 일과 다른 한편에서 생명을 공경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일이다. 생명의 상품화에 반대하여 물질가치, 이윤쟁탈 중심에서 호혜시장으로 시장을 성화(聖
化)하고, 자립적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지역 순환적인 생명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생태
적 사회와 그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기본과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먼저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경 그것은 우선 자기 생명의 소중함, 그 가치를 공경하며 사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와 한 몸, 한 생명인 다른 생명을 그렇게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생명운동의 시작이다. 나란 존재, 나란 생명은 무엇인가. 나는 사회적 존재이
자 생태적 존재이며 동시에 우주 영성적 존재이다. 이러한 자신의 존재가치, 생명가치를 깨닫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서 생명사랑이 시작된다.
먼저 너 자신을 사랑하라. 이 몸을, 이 생명을, 이 존재를 온전히 사랑하기. 이 몸, 이 생명이
없으면 이 존재 또한 없다. 이 몸은 자연의, 어머니 대지의 산물이다. 이 몸이 바로 의식의 시작
이다. 몸의 감각 그 생태적 감성을 일깨워라. 몸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자연의 원리에 충실할
때 삶이 아름답고 생기차다.
감사하기. 그것은 자신과 근원에 대한 경배이다. 살아있음을, 숨쉬고 있음을, 사랑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자신의 내면을 사랑으로 채우기 이를 통해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다른 생명을 치유하
고 마침내 세상을 치유하는 일, 그것이 생명운동의 실천이며 생태적인 삶을 사는 일이다.
깨어있는 삶을 사는 일이 수행이다.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근원에서 하나임을 깨닫고 자신의
내면에 깃든 근원성, 그 신성을 자각하여 사랑과 공경으로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사는 일이 수행
인 것이다. 이처럼 수행이란 자신의 내면을 빛으로 채움으로써 태풍의 고요한 중심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생명력이 충만한 세상과 문명을 열어갈 폭발적 에너지를 창출해 가는 일이며 그 삶이
다.

아끼기, 풍요롭게 살기
존재의 근원과 이어져 있으면서 건강과 풍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을 보
다 단순히 하는 일이다. 땅에 뿌리내린 자립적인 삶만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실현할 수 있
다. 삶을 단순히 할수록 풍요롭고 땅에 다가갈수록 삶이 건강하고 자립적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삶이 주는 풍요의 비결, 그것은 아낌에 있다. 아낀다는 것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상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 그것이 쓰고 버리는 삶으로 인한 삶의 황
폐화를 치유하고 물질적으로 제한된 이 행성에서 더불어 함께 건강과 풍요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연이 뭇 생명을 낳고 기르면서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은 버림이 없기 때
문이다. 하늘을 섬기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 있어 아낌보다 더한 것이 없다(治人事天莫若嗇)는 말
씀이 이것이다. 어머니 대지인 땅에 의지하여 삶을 꾸리면서 아낌에 바탕하여 불필요한 것을 놓
아버리고 진정한 필요에 충실할 때 비로소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의 길이며 신성한 존재로서의 품위와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이제 미친 듯이 달리기를 멈추어야 한다. 왜, 무엇을 하고자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왔던가. 그렇
게 달려온 지금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 그 껍데기의 화려함에 눈멀어 잃어
버린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멈추어 서서 자신과 주변을 다시 돌아보
면서 우리가, 세상이 어떻게 병들어 가고 있는지, 우리와 뭇 생명의 삶의 터전이 어떻게 무너져
가고 있는지를 바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또한 눈먼 환자였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내면, 그
존재의 근원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생명, 유일하
면서 모든 것인 이 존재의 실상에 맞게 사는 길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이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서 우리가 살아남고 함께 살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문명
의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이제 다시 봄을 준비해야 한다.

글 : 이병철 (녹색연합 공동대표, 전국귀농운동본부 대표)
자료출처 : 불교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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