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프로그램

환경운동연합10주년기념심포지움 – [문화] 생태문화를 향하여

1.
사람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서,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 속에서 죽는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
도 사람은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사람은 물질과 에너지의 순
환이라는 자연의 근본법칙이 나타나는 한 모습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자연을 대치시키는 것
은 틀린 것이다.
생태문화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문화를 뜻한다. 그러나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말 속에
이미 사람과 자연을 대치시키는 잘못된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 우선 이 점을 똑바로 이해할 필요
가 있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사
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을 일구고 살게 되면서 우리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떼어놓고 생각하게 되었
다. 특히 근대 공업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떼어놓고 생각하는 차
원을 넘어서 아예 ‘자연의 지배자’로 여기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자연 속의 존재라는 사실을 까
맣게 잊고 만 것이다.
생태문화의 요체는 무엇보다 우리가 자연 속의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데에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며, 자연을 돌보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
이다. 그러므로 생태문화는 단순히 자연을 돌보는 문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돌보는 문화
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너무나 먼 길을 떠나와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연으로
부터 떼어놓고 생각하는 데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 밖의 자연을 우리 마음대로 이용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 속의 존재인 우리 자신을 우리 마음대로 바꾸
어가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분명히 ‘문명의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는 면을 가지고 있다. 자연 속의 존재로서 우
리는 아주 나약하다. 그러나 우리 밖의 자연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또한 자연 속의 존재인
우리 자신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가 되었다.
우리는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우리의 놀라운 숫적 증가가 이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멋진 신세계’는 다른 생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자신에게도
확실히 ‘무서운 신세계’이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을 끝장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
리에게는 이 힘을 올바로 이용할 슬기가 부족하다.
생태문화는 우리가 이룬 놀라운 문명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그것은
이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
을 추구한다. 우리가 다르게 살게 될 때,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
고 이 세상도 다른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2.
문명(civilization)은 도시(civic)의 산물이고 문화(culture)는 농업(agriculture)의 산물이라
고 한다. 그러나 문화를 삶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문명도 문화의 한 부분이 된다. 여기서 나아
가 문화를 농업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도 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농업은 우리가 자연 속의
존재로서 우리 밖의 자연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한 방식이다. 이렇게 본다면 문화는 순수하
게 인간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실 문화를 자연과 대비시키는 논리야말로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떼어놓는 잘못된 논리의 마르
지 않는 샘이다. 이 논리에서 우리 밖의 자연은 ‘야만’으로, 곧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부
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는 삶 자체가 ‘야만’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문화’를 향
한, 곧 ‘좋은 것’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 귀결은 ‘자연의 정복’, 그리고 ‘자연
의 파괴’이다.
문화와 자연을 대비시키는 문화관은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 문화가 있다. 하나는 문
화와 자연의 대비 위에서 이루어진 ‘파괴적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어내
는 ‘상생적 문화’이다. 앞의 것을 대표하는 것이 현대의 공업문화라면, 뒤의 것은 공업문화의 팽
창과 함께 시나브로 힘을 잃다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생태문화를 가리킨다. 공업문화에 대
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생태문화는 새롭게 힘을 얻게 되었다.
생태문화의 가치는 생태위기에 대한 인식 위에서 올바로 평가될 수 있다. 생태위기는 자연의 순
환 자체가 엉클어져서 그 재생산이 심각한 변동을 겪을 상황에 놓인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위
기는 결코 우리 밖의 위기가 아니다. 우리 자신이 자연 속의 존재이며 자연의한 부분이기 때문
에, 이 위기는 우리에 관한 위기이며 우리 안의 위기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위기를 일으
킨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생태위기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
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생태문화는 근본적인 가치를 지니
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문화의 확산은 대단히 어려운 사회적 과제이다. 현대의 공업문화는 현대의 공업사회
의 산물이다. 공업문화의 파괴력에 맞서서 생태문화를 확산시키는 과정은 현대의 공업사회를 새
로운 생태사회로 바꾸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생태문화는 단순히 생태적인 생각이나 정서를 뜻하
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통해 나타날 새로운 삶
의 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생태문화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새로운 생태사회에 대한 논의로 이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생태문화의 확산은 대단히 어려운 사회적 과제이다.
우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우리는 오늘날 성숙한 공업사회에서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
며 살고 있다. 사실 그 풍요의 도가 지나쳐서 세계 최고의 에너지 낭비국, 세계 최고의 물 낭비
국, 또 세계 최고의 쓰레기 배출국이라는 오염을 얻기에 이르렀다. 가난한 농업사회가 불과 20여
년이라는 짧디 짧은 시간에 이같은 파천황의 변화를 이룬 것이다. 이 사회는 부유한 공업사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파괴적 문화’가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 결과 이미 이 사회는 누구도 생
태적 전환의 필요를 부정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생태적 전환의 대상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의 구조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문제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와 우리가 살아가
는 지배적인 삶의 방식은 생태적 전환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
지만, 그것을 고치고 바로잡는 데에는 주저하게 된다. 생태적 전환은 그 나름대로 댓가를 요구하
기 때문이다.
물론 생태적 전환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댓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 사회에서 많
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많은 기득
권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이 기득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사회의 지배적인 구
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의 생태적 전환과 생태문화
의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구조
를 심각한 문제의 근원으로 여기고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3.
자연에는 한계가 있고, 따라서 생태적 쇠퇴는 필연적이며, 따라서 생태적 전환도 필연적이다. 그
러나 전환은 우리가 능동적인 계획으로 추진할 수도 있고, 우리에게 던져진 돌연한 파국으로 맞
이하게 될 수도 있다. 앞의 것이 우리에게 이로우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생태적 전환의 과제를
적극적으로 밀고나가는 과정에서 생태문화는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뻗게 될 것이
다. 이를 위해서는 이 사회의 기반부터 새롭게 다져야 한다. 핵심적인 과제로 두가지를 들고 싶
다.
하나는 전기의 생산 및 이용과 관련된 것이다. 현대는 ‘전기의 시대’이다. 만일 전기를 쓸 수 없
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과 아주 다른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기의 이용에
만 눈길을 둬서 핵발전의 위험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핵발전은 극단적인 위험을 내장하고 있는 전기 생산방식이며, 또한 고도로 중앙집중적이고 전문
가주의적인 전기 생산방식이고, 낭비적 이용을 조장하는 전기 생산방식이다. 따라서 핵발전의 폐
지는 생태사회를 향해 성큼 나아가는 것이며, 생태문화를 확산하는 결정적인 계기이다.
다른 하나는 물의 생산 및 이용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물을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또한 물
은 모든 공업활동의 기본적 자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요한 물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용하기 위
해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댐들을 쌓았다. 그러나 강을 막고 들어선 커다란 댐들은 마치 핵발전처
럼 커다란 위험을 내장하고 있으며, 고도로 중앙집중적이고 전문가주의적이고, 낭비를 조장하는
물 생산방식이다. 그것은 물의 이용에만 촛점을 맞춰 파괴되는 자연과 문화에 눈길을 돌리지 못
하게 한다. 커다란 댐들이 늘어가면서 어마어마한 땅이 물에 잠기고 많은 마을들이 사라지고 많
은 사람들이 ‘수몰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전기와 물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대 자원이다. 두 자원을 어떻게 생산하고 이
용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구조는 크게 바뀌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크게 바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 자체가 바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풀빛 미
래’를 향한 꿈이 영글어가게 될 것이다. 지금 두 자원은 ‘파괴적 문화’를 퍼트리는 방식으로 생
산되고 있다. 그리고 ‘공익’의 논리가 이 방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장기적으
로 포괄적인 안목에서 ‘공익’을 생각한다면, 두 자원은 ‘상생적 문화’를 키우는 방식으로 생산되
어야 한다.
‘문명의 역설’은 현대 공업사회의 한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한계를 깨닫고 바로잡을 수 있는
슬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대 자원의 생산방식을 고치는 데서
새로운 생태사회가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새로운 생태문화가 자
라나게 될 것이다.

글 : 홍 성 태 (상지대 교양과,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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