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프로그램

환경운동연합10주년기념심포지움 – 녹색주류화를 위해

1. 환경운동의 15년
공해추방운동연합을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환경단체로 본다면 우리의 환경운동의 역사는 15년이
된다. 그 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등 큰 환경단체도 생겨났고, 지역의 특
정한 환경문제를 다루는 단체들도 다수 결성되었다. 환경운동의 이념이나 활동내용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의 15년을 회고하여 그 평가 위에 미래를 전망할 필요가 있다.
1993년 환경운동연합의 결성을 계기로 환경운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민주화이야말
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요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환경운동은 민주화운동의 한 부분이라
고 간주되었다. 그래서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민주화운동가, 학생, 종교인 등 이었으며
민주화운동과 환경운동이 중첩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있어서 운동의 주안점은 산업공해에 의
해 피해를 받는 지역주민들을 지원하는 것이며, 반핵평화운동을 통해서 국가의 핵정책에 반대하
는 것이었다. 낙동강폐놀오염사건(1991)은 산업공해가 일반주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환경운동은 정치체제를 문제시하였고, 반기업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1992년의 리후유엔환경개발회의를 계기로 국민들의 환경의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언론매체들은
각기 여러 가지 환경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언론매체들은 환경문제를 들고 나왔을 뿐만아니라, 언
론을 통해서 환경단체들의 활동을 잘 소개하였다. 환경단체들 가운데는 언론매체와 공동캠페인
을 벌인 경우도 있었다. 1993년에는 서울의 공해추방운동연합이 중심이 되어 전국의 지역 환경단
체들을 묶어서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였다. 녹색연합도 환경연구소활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전환하
였으며,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환경운동에 참여하였다.
환경운동이외에도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생겨났다. 경실련, 참여연대, 여성민우회, 소비자단체,
YMCA, 등 다양한 단체들이 ‘시민운동’의 이름으로 연대운동을 하고 있으며, 좀 더 민중지향적인
인권운동, 평화운동, 통일운동도 활발하였다. 환경운동은 이러한 시민운동, 민중운동의 일원으로
서 전체로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2000년의 총선연대활동은 시민사회운동
전체로서 정치적 영향력확대의 계기가 되었다.
1993년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정부-환경단체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종래 적대적이었
던 정부-운동단체 간의 관계가 바뀌어 정부도 환경단체를 대화의 상대로 삼게 되었다. 환경단체
들이 정부의 자문기구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도 문민정부시절이었다. 환경단체가 주장하여 에코
마크제도를 도입하였고, 쓰레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갖게 된 것도 이러
한 정부와의 관계의 결과이다. 또 정부는 시민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책정하고, 시민단체
간부들을 해외연수를 보내는 등 시민단체에 대한 포섭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정부와의 협력관계와는 별도로 핵폐기물 건설과 둘러싸고 정부와 환경단체간에는 정면 대
립이라는 긴장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환경단체들은 핵폐기물처분장 건설의 저지, 추
가적인 핵발전소 부지선정 저지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대의 환경문제의 성격도 바뀌었다. 공해산업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도시
환경문제가 대두하였다. 쓰레기문제, 자동차에 의한 배기가스문제, 수질오염문제 등 가해-피해
의 구분이 애매한 환경문제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수도권매립지와 관련된 주민운동은 쓰레기
정책을 크게 바꾸는데 기여하였다. 도시의 소각장 건설, 음식물쓰레기문제 등 다양한 새로운 환
경문제가 등장하였다. 말하자면 생활환경문제가 언론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환경문제의 다양화와 확대에 따라 환경단체들도 그 규모를 확대하였다. 1995년을 전후하여 환경
단체의 회원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환경운동연합을 예를 든다면 2-3천명의 회원이 만명이상으로
증가하였다. 회원 모집의 방법도 다양하였다. 종래 운동권 중심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회원을
확대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회원을 권유하는 방식을 바뀌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회원이 될 수 있고 일반시민들이 회원의 중심을 이루었다. 또 활동가도 공개채용을 통해서 확보
하게 되어, 특별히 운동권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회원도 활동
가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양상과는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환경단체도 사무실을 확장하고, 신규조직과 부설기관을 다수 만들어 장소, 인원, 재정을 크게 확
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재정확대를 위해 회원확대는 물론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협찬, 정부의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여야 하였다. 환경센터는 다수의 시민참가와 기
업협찬을 이끌어 내어 마련할 수가 있었다. 환경단체의 조직과 재정의 확대로 환경단체가 비판
을 받은 일도 있었지만, 환경단체는 이렇게 조직과 재정확대를 통해서 크게 성장한 것도 사실이
다. 그러한 한국의 환경운동이 국내의 자원동원에 의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
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원조에 의존해 왔던 사회단체들이 원조의 감소와 더불어 급속하게 쇠퇴
해 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강댐건설반대운동은 한국의 환경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댐건설을 둘러싸고 정부
내에서 부처간에 찬반이 갈려지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의 방침에 맞서 반대하고 나섰으
며, 언론매체도 모두 댐건설반대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으며, 일반시민들, 환경단체이외의
다른 많은 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운동을 하였다. 또 이 운동은 생태계의 파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환경운동이 항상 피해가 발생하면 그에 대항
하는 방식을 취하였지만, 이 경우에는 사전에 큰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
요한 의의는 생태주의를 내걸고 운동에서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종래의 환경문제
가 주로 인간에게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환경문제’로서 구성되었던데 비해, 동강의 경우에는 생
태계의 파괴를 사람들이 걱정하고 반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 감수성은 1990년대이래의
시민들의 환경의식의 고양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태주의적 운동은 새만금간척반대
운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향후 한국의 환경운동의 기본 이념으로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지난 15년 간의 환경운동의 도달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환경운동의 이념이 반공해운동에서 생태주의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어가고 있다.
(2) 환경운동의 중심은 운동권 학생이나 지식인에서 일반시민으로 바뀌어 갔다.
(3) 환경운동의 성장에는 정부와 언론의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4) 환경운동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의 시민사회영역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환경운동이 좁은 의미에서의 환경보호를 넘어서 사회정치 참여운동을 확대하였다.

2. 한국환경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5년간 환경운동은 양적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그러나 환경운동이 과연 환경파괴의 방지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는가? 환경운동에 때때로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환경파괴적 정
치경제구조와 반환경적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
지만, 그 생각은 막연하며, 정치적 결정이나 소비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녹색평화당은 초라한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며, 환경운동연합
이 중심이 되어 무소속 녹색자치후보운동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는 환경이 전혀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행정수도의 이전과 같은 개발프로젝트가
중요한 관심사이었다. 또 노무현정부에서는 정부의 주요과제 가운데 환경의제는 포함되지도 않았
다. 환경문제는 아직 국정의 중심과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환경운동의 탈정치화가 그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1990년대 초
에는 정치가 바뀌면 환경도 바뀐다는 당연한 생각이 운동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환경문제를 정
치화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구조가 더욱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은 정치영역으로부
터 유리되었다. ‘환경운동하는 사람이 왜 정치에 관여하나?’라는 생각이 환경운동참가자와 외부
인들에게 널리 퍼져있었다. 사람들의 일차적인 요구는 환경개선이 아니라 지역의 발전이며, 소
비증대에 있다. 그래서 환경문제에 정치를 복원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마찬가지로, 환경운동은 개별기업을 대상으로 공해문제를 둘러싸고 투쟁하는 일이 적어졌다. 지
난 10년간 공해기업을 대상으로 싸우는 일이 줄어들고, 오히려 국가기관(공기업 포함)과 대립 각
을 세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운동 대상의 ‘탈인격화의 현상’이 일어나고 환경파괴자의 추상
화현상이 두드러졌다(이 점에 있어서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대조적이다).
두 번째의 원인은 우리 내부에 구조화, 내면화되어 있는 소비주의에 대한 방심이다. 프랑스의 녹
색정치인 리피에츠는 좌파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그 이유를 그들이 갖고 있는 무비판적 생산력
주의를 들고 있다. 우리 자신들도 우리 경제의 성장발전, 우리나라의 국위선양을 위해서 생산력
주의에 감탄하고, 평가하지 않았던가? 우리들에게는 소비주의, 경제체제로보면 생산력주의야말
로 환경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공격대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애써 간과한 것이 아닌
가? 우리가 도달한 환경운동이 단순히 나이브한 생태주의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우리의 내면
에 자리잡아 가고 있는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공해기업에 대한
비판에 비해 훨씬 어려운 과제이나, 이것을 간과해서는 환경운동은 의례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
다.
정치의 복원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내부를 구조화, 내면화하고 있는 것으로서 국가주의를 어떻
게 극복하느냐도 중요한 과제이다.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와 12월의 ‘촛불시위’는 민족의 자존
심을 확인하는 대중운동이었으나 우리 내부에 자리잡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
하였다. 우리의 내면에 구조화된 국가주의는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와 파병
을 ‘국익차원’이라는 설득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찬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지난 100년간 나라세우기를 앞세워 왔고, 우리는 철저하게 이러한 이념을 교육받았다. 생
태주의의 지평에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다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무지배체제(anarchism)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환경운동을 전진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국익을 내
세운 핵발전소, 국책사업이라고 강변하는 새만금사업, 국익을 앞세운 기후변화대응, 북핵문제에
대한 국가주의적 접근, 나라세우기의 하나로서의 경제성장이데올로기 등, 수없이 많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국가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를 벗어나지 않으면 환경문제가 진
정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자녀들의 생명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하여 해외이민을 가 버린 전 국
가선수의 사례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시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환경보전의 관점에서 국가를 상
대화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 환경운동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구두선처럼 말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 경제와 국가를 지속
가능성개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속가능성을 불문에 부치면서 환경과 자원, 생태를 생
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가? 우리나라의 국토, 생산, 자원, 소비 등의 변수를 생각
해 보면 우리는 전혀 지속가능한 경제를 가질 수가 없다. 그것을 불문에 부치고 우리는 현재의
생산체제를 인정하고 생산과 소비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중요
한 과제이다.

3. 환경운동의 비전—녹색주류화를 위해서
10년후, 30년 후에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의 운동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
난 10년간 우리의 의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민의 환경의식이 급격하게 변하였고, 시민의
식도 고양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발보다는 환경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
에 정착되었다. 또 미래에도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인
식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예고하는 선행지표이다. 그래서 방향은 확실하다. 바로 생태주의이념
이다.

생태주의 이념을 기치로
문제는 생태주의의 이념을 어떻게 사회변혁의 중심 사상의 위치에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생
태주의는 좁은 의미에서 환경보전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
서의 새로운 대안으로 의미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생태주의는 자연과 인간, 자연과 자연, 그리
고 인간과 사회 간의 유기적 연결과 순환구조, 그리고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다. 동강댐건설반대
운동은 생태주의를 중심으로 무지개연대를 실현한 것이다. 생태와 문화, 생태와 여성, 생태와 정
치, 생태와 이데올로기 등 생태와 친화적인 다양한 영역을 묶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 전개
되고 있는 반전운동도 사회의 각 영역에서 연대하고 있으며 지향점은 인간과 생태계의 죽임에 대
한 거부운동으로서 무지개연대이다.
동강댐건설반대운동은 생태주의의 이념으로 여러 갈래의 운동을 묶어내었다. 우리는 생태주의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산, 소비의 메카니즘을 녹색화하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우리의 경제를 생태적으로 의미있게 바꾸려면 무엇부터 바꾸어야 하는가? 경제는 생활을 지탱하
는 수단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경제엔진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의 생활, 생명, 생태가 희생
을 당하고 있다. 생태주의적 상상력이란 우리의 일상생활, 또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조에 대
해서 생태주의에 입각하여 비판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환경운동의 일상생활
에서부터 시작하여 경제구조, 정치적 질서, 남녀간의 관계 등 여러 방면에 있어서 생활의 영역
과 구조와 영역을 연결짓고 해석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경제중심국가→사회중심국가, 그리고 생태중심국가로의 이행으로
노무현정부가 환경문제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운동진영의 실망은 매우 크다. 그러나 노무
현정부는 변화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정부는 경제성장과 시장
원리를 최우선하는 ‘경제중심국가’에서 분배와 사회적 공정성을 추구하는 ‘사회중심국가’로 이
행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사회중심국가에서는 인권, 복지, 교육, 문화, 여성, 분권, 시
민참여 등을 강화하여 사회세력이 시장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노
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영역에 개혁세력이 포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사회중심
국가가 성공한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생태중심의 녹색국가의 실현의 길도 열릴 것으로 생각
하고 있다. 실로 녹색국가에는 양성평등, 평화, 인권, 문화와 복지 등을 강화하고있으며, 이와
생태주의 정치는 바로 이러한 무지개 연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중
심국가를 지향하는 세력들은 사회중심국가세력과 연대하여 경제중심세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
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중심국가에서 생태중심국가로 로의 이행을 촉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사회중심-생태중심의 결합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환경운동 진영의 분발이 필요하다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우리가 녹색주류화를 지향하는 중간과정으로서 우리는 녹색정치실현을 위한 다원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환경운동을 한다고 자처하면서 다른 운동과의 연대에 진정을 힘을 실어보지 못
하였다. 또 다른 운동단체들도 환경운동을 특화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녹색운동은
다면적이며 영역 관통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녹색과 성 평등, 녹색과 소비자운동, 녹색과 참여
민주주의운동, 녹색과 인권, 녹색과 평화통일 운동 등의 다면적 접근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지
금까지 환경운동이 영향력을 갖지 못한 이유가운데 하나는 이것이 너무 ‘녹색’에 머물러 있었다
는 것이다. 그래서 녹색과 다른 영역의 운동세력과 연대하여 하나의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
여야 한다. 선거제도의 변화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서는 녹색정치의 ‘공간’이 의외로 빨
리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정치상황에서 녹색정치는 강력
한 정치적 교섭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정치성의 복원을 통해서
녹색국가로의 변화와 이행을 위해 환경운동은 정치력을 복원해야 한다. 환경운동은 넓은 의미에
서 정치운동이다. 왜냐하면 경제중심국가에서의 환경운동은 ‘시장밖’에서 시장의 변화와 제어를
위한 정치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생산력주의와 시장원리을 넘어서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든지,
과학기술적 명제보다는 가치선택을 우선하는 등 정치적 자원론(voluntarism)은 환경운동의 본래
적인 원칙이다. 정치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모든 환경운동에 정치적 함의를 고려해야하며, 환경
운동을 정치세력화해야 한다. 정치적 세력화는 정책과정에서의 다양한 영향력 행사를 비롯하여
의회주의적 세력화도 포함한다. 서구에서는 녹색정치에 환경, 인권, 성 평등, 평화 등 다양한
명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녹색당은 사실은 환경운동을 중추로 하는 연합전선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의 복원과 더불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녹색의 주류화이다. 지금 녹색정치는 현재
경제와 정치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녹색정치가 언젠가 우리 사
회, 정치, 경제의 중심가치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얼마나 빨리 우리가 그것을 실
현할 것인가는 우리들의 운동의 세력화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민운동의 국제화를 위해서
우리만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어렵다면 지역적, 지구적 차원에서 이를 추구하여야 한
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경제성장은 돌출하고 있지만—세계의 공장과 시장—정치
와 시민사회의 후진성을 극복해야 한다. 한국은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으며, 참여민
주주의도 앞서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지역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또 다시 생태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민주발전
과 시민사회의 발전, 그리고 생태적인 재건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하는 책임을 우리는 지고 있다.

4. 환경운동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아직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미국과 일본의 시민운동이 왜 극심하
게 쇠퇴해 가고 있는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줄어들고, 전문스탭의 수가 급격하게 줄
어들고 있다. 하나는 미국에는 각종 클럽이라는 중간집단이 사라져 가고 있고, 일본에서는 운동
권 세대가 다 성장해 버려, 운동을 이어갈 세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
은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에서 회원도, 활동가도 공급받아 왔다. 시민단체
들은 헌신적이고 운동에 투신을 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구할 수 있었고,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
동에 참여하였던 세력은 지금도 시민운동의 배후 지원세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 외부의 ‘공급원’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사회적 관심도 소비사회
의 영향을 받아서 사회운동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은 그래서 회원, 활동가를
재생산하는 메카니즘을 갖추어야 할 뿐아니라, 시민들의 새로운 욕구와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활
용하여 운동방향을 다시 고쳐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년 6월의 ‘붉은 악마들’으로 상징되는 월드컵의 대중적 참가, 12월의 촛불시위, 그리
고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한 ‘노사모’의 열정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러한 대중운
동은 종래의 시민사회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열기와 전파력,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
였다. 이러한 운동들은 대체로 ‘중심성이 없는 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강력한 지도부가 동원한
것이 아니고, 시민들이 ‘집합적 상징’와 인터넷 정보를 이용하여 자발적으로 모인 운동이다.
한편 시민운동단체들은 회원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운동을 위해 회원참가를 이끌어 내
지 못하고 있다. 수년전부터 등장한 ‘1인시위’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지 않기 위
해 개발한 전략이기도하지만, 회원동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호하는 켐페인 방법의 하나이다.
환경운동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종래의 ‘전위조직’과 같은 형태를 벗어나야 한다. 중앙
조직과 지역조직의 거대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시민들이 보람을 가지고 참여할 자리는 많지
않다. 촛불시위의 특징은 모두가 작은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상징성이며, 붉은 악마의 집합행동
은 모두가 ‘큰 자아’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속감이며, 노사모는 정치적 상징성과 민주적 절차가
내부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실감을 갖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회원의 중심성, 전체의
의 소속감, 그리고 참여의 실감을 갖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대중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

‘중심없는 사회’의 운동전략
지난 10년간 환경운동은 조직을 건설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중심을 향한 운
동이었으며, 지역독점을 전제로 하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운동과 지역독점이 오늘날
새로운 운동환경에 적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중앙조직의 기능을 슬림화하고 지
역, 직능, 기능조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다중심 네트워크화가 필요하다. 또 조직
의 형태도 종합적인 지역분할 보다는 직능분할, 세대분할, 취미와 관심에 따른 동아리운동 등 다
양한 형태로 조직을 기능적으로 분화시키고 이것을 연대조직으로 묶어낼 필요가 있다. 지역독점
의 지역조직은 낡은 형태이다. 연구소가 전국시스템을 갖고 있듯이 지역조직과 연관하여 주제별
네트워크, 주체별 네크워크가 필요하다.

환경운동의 재생산을 위해
환경운동에 지속적으로 회원과 활동가를 공급해주는 ‘운동권’이 더 이상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환경운동은 스스로 운동자원의 재생산을 해야한다. 환경운동의 재생산을 위해 우리는 청년 대학
생의 운동세력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환경운동연합에는 대학생회가 있기는 하다. 앞으로 환경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대학과 환경운
동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생들의 환경운동을 견인하여 우리나라의 환경운동
회원, 활동가, 오피니언리더를 양성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 대학에는 어떤 운동세력
도 대학생운동을 주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학생운동은 대체로 쇠퇴되어 가고 있으며, 대학생
들은 종교적 신비주의와 출세지향적 실용주의, 무기력한 일상성에 빠져들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미래지향적인 환경운동을 권유하는 것은 환경운동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의 대학문화를 혁신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환경운동을 통해서 그들에게 자기중
심성과 소속감, 그리고 연대감을 갖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사회변동에 중요한 주체로 성장해 갈
것으로 생각한다.

생활환경운동으로
환경운동연합에서는 작년 ECO생협을 발족시켰다. 지금 이 운동은 큰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지
만, 이 운동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우선 생협운동은 생활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운동으로 발전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먹거리뿐만아니라, 소비생활, 생산자와의 관계, 생활주체의 문
제, 신체성과 젠더문제, 국제연대 등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운동이다. 또 거대개발에
저항하여 싸우다 보니 생활의 문제를 소흘히 한 면이 없지 않다. 생활에 대한 반성(나는 이것을
생활의 사상이라고 부른다)은 새로운 인식수단이다. 어떤 문제라도 생활에 비추어보면 그것이 과
연 합리적인가 아닌가 알 수 있다. 생활의 사상은 인식의 수단 일 뿐아니라, 비판의 도구이다.
생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도 정치도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생활의 전
체성(holism), 구체성, 그리고 통일성이 그 중요한 기준들이다. 그래서 생태주의와 생활의 사상
이 미래의 환경운동의 이념적 견인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생활환경운동은 환경운동의 주체를 강
화할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에는 여성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농민도 노동자도 즉 생산자
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같이 환경운동에 참여할 때 비로소 생산의 녹색
화, 소비의 녹색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은 일본의 <대리인운동>의 사
례와 같이 녹색정치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정치가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생산-소비의 음모적 결
합을 깰 수 있는 가능성이 이 운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활협동조합운동은 환경운
동의 정치화의 기초로서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맺음말
아직 실현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 현재 우리 자신을 투신하는 것, 이것은 벤처기업 정신과 유사
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벤처는 그것이 언젠가 우리사회의 중심, 즉 주류가 된다는 믿
음을 가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운동은 확실히 유망한 벤처이다. 왜냐하면 녹색
은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이 시 재 (카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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