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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 책속의 세상이야기(7)]’거창하지 않은, 그러나…’

[우리
아이 책속의 세상이야기(7)]

‘거창하지 않은, 그러나 적나라한 평화의 메시지

핵의 아이들
-`86 한국 원폭피해자 2세의 현장-

박수복 지음 / 한국기독교 가정생활사 /
1986 /
240면

이 책은 외형이나 내용 모두에서 소박하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라는
단체의 자료집으로 출판의 기교 없이 투박하다. 초록색 표지는 촌스
럽고 문장은 거칠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
프다. 적나라한 표현에 마음도
상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
는, 만약
서방연합군이 원자폭탄을 만들지 못하면 히틀러가 먼저 그 무기를 갖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41년 ‘맨하탄 계획’을 추진한다. ‘맨하탄 계획’이란 바로 핵폭탄
을 만들라는 계획이다.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의 이름난 물리학자들이 핵분열 폭탄
을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모여들었고
그 중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핵심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를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페르미의 동료들 일부는 원자폭탄이 인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들은
핵폭탄이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망치게 될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다. 맨하탄 계획은 극비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1945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죽고 대통령직을 물려
받았던 트루만 조차 그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1945년 7월, 원폭실험 준비가 완료되자 일부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의
도덕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그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뉴멕시코 주의 아라모고
드 사막에서 진행된 원폭실험은
만든 이들조차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1945년 8월6일, ‘꼬마(Little Man)’라는 별명을 가진 우라
늄 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전쟁은 이제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첫 폭발 이후 사흘
뒤에 ‘뚱보(Fat Man)’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로 떨어졌다.
두 차례의 공습은 약
10만 명의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또 다른 10만∼15만 명의 사
람들은 수년에 걸쳐 방사능
후유증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했다. 그들의 자녀는 기형아로 태어나
지금까지 최악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우리나라에 원폭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
르고 있다.
이 책을 만든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1983년 한국인 원폭피해자 실태
조사보고서를 1차 발간한 이후
한국에 살고 있는 320여명 피폭자들의 치료비·생계비·2세 교육비
등을 지원해왔다. 처음 그
일을 할 때만해도 일본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조차 피복 2세의 유
전문제를 다룬 문헌이 전무했다.
히로시마 병원 의사들은 원폭병이 2세에게 유전되지 않는다고, 의학
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지기 바로 두달 전인 1986년 4월, 현대사가 잊
지 못하는, 피폭이 인류에게
어떤 재앙이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23분.
콰앙 쾅!!
(구)소련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의 고요한 밤하늘이 무너졌다.
체르노빌 ‘레닌 핵발전소’ 원자로 폭발, 순간 불기둥이 솟았고 동시
에 그 도시에는 재앙이 활활-
타올랐다.
처음에 (구)소련 정부는 약 5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됐고, 31명(서방
언론에서는 3천 명이라고
발표)이 사망했으며, 2천명(서방언론 보도는 10만 명)이 부상했고
약 20여만 명이 평생 방사성
질병과 관련된 검진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변국에서의 피해사례까지 접수되면서 체르노빌 사고의 피
해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흑해 서쪽 터키의 듀체에서는 체르노빌 사고 후 7개월 동안 10명의
아기가 무뇌아로 태어났고,
삼슨에서도 같은 기간동안 22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고 했다. 이들
지역에는 체르노빌 난민이 모여
살았는데, 특히 아이들이 집단 수용된 곳이다. 또 폴란드에서는 체르
노빌 사고 1년 후 신생아
출산율이 예년의 3할 정도로 감소했다고 주장했고, 서독의 <베를 린 자유대학 인간유전학 연구소>는
1987년 2월에 다운증을 가진 장애아의 출산이 예년에 비해 5배나 늘
었다고 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체르노빌’로 인한 피해의 연장이었다.
급기야 1992년, 우크라이나 정부도 이 사고로 우크라이나에서만 3만2
천5백71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6백83명은 어린아이였다고 발표했다. 또 4백만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방사능 피해권역
안에 살고 있다고.
일본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의 이마나까 테쓰지 교수는, 체
르노빌 사고로 인해 6백만
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이중 수십만 명에게는 ‘틀림없
이’ 체르노빌 사고가 직접 원인인
암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방사능이 음산하게 깔린 죽음의 도시 체르노빌, 이 사고는 세
계로 하여금 ‘핵’을 재고하게
했다.

이제 전쟁 후 반세기가 지났고, 냉전도 끝났
다. 역사의
상처 따위도 아물어가는 듯하다. 핵 무기와 방사능 오염에 대한 혐오
가 커진만큼 그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일도 공공연해졌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 피폭자와 그들의 2세, 3세들은 여전히 병고와 빈
곤, 사회의 냉대속에서 버겁기만
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고단한
발자취를 직접 따라가 기록한 글이다.

-그날 아침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폭풍에 호된 태질을 당하
는 느낌이었다. …어느 간호원의
비명으로 나는 내 왼쪽눈이 거의 빠지기 직전까지 튀어나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찬기
/ 경기도 강화)
-곧이어 넷째 딸애가 태어났다. 오른쪽 눈자위가 위로 치뜨여진…,
큰머리를 바닥에 처박듯이 누워
있는 둘째(온몸이 뼈가 없이 물렁대기만 하는 해파리 같은)놈을 보면
서 나는 혼자만의 한숨을 깨물었다.…다섯째
아이를 낳았을땐 며느리도 반 실성했고….(한희수 / 부산시 영도구)

-먹고 애만 낳았지요.…피폭 후 5남매를 낳게된 사실을 부끄럽고 죄
스럽게 여기는 말투였다. (이어지는
아이들의 죽음이) 자기의 무모한 성적 욕망 때문에 빚어진 과오라는
뜻인지 알길은 없다. (황창주
/ 경기도 포천)
-엄마는 꼭 죤(집에서 키우던 개) 같애. 밤에도 헐떡이고 낮에도 헐
떡이는 걸.(김숙희 / 경남
울산)
-무엇보다 임여인에게 어두움을 주는 일은 큰아이와 막내가 모두 국
민학교 4학년, 2학년에서 학업을
중단한 사실이다.(임옥선 / 대구 서구)
-56년생인 3남 용곤은 국민학교 입학 이후 저능현상이 두드러졌다. 5
학년에 자기 이름자도 쓰지
못하고 졸업….(김용곤 / 경남 마산)
허약하고 비정상적인 몸, 거기에 동물같은 본능, 지독한 가난, 배우
지 못한 서러움, 2세에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만들어진 1986년은 세계 평화의 해
였다.

피폭 30년의 기록이 담긴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의 저자
박수복은 부산일보 기자를
거쳐 MBC 방송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안개꽃 외의 다수 방송극을 쓴
여성작가이다. 프로듀서
시절 <절망은 없다> <희망> 등의 원폭피해자의 이야기
를 담아냈다. <희망>은
독일 등 유럽의 반핵운동가들이 ‘핵’의 무서움을 알리는 자료로 사용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글 끝에 말한다.
“평화합시다. 평화합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핵의 경주란 어
린이불장난임을 깨달읍시다.”

※글: 김소희 님/ 어린이도서관 <책읽는 엄마 책읽는아이>
관장, 5살배기 ‘동화’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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