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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사 환경교육 워크샵 – 생태적관점에서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생태적관점에서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유정길 (전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들어가는 글
환경적 가치과 생태적 가치는 같은 듯 다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 용어를 크게 변별하려
고 하지 않지만, 엔드류 돕슨(Andrew Dobson)처럼 이 두가지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환경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하면
서, 다른 한편으로 환경교육의 끝은 ‘환경’이라는 과목이 만들어지는 것과 환경교육이 별도
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과와 모든 교육, 나아가 성인교육의 모든 내용에 생태적 세계관이
녹아들어가야만이 진정한 생태적교육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가장 훌륭한
교육제도는 바로 ‘사회’이 듯이 생태적 가치는 사회속에 완전히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다.
그렇다고 한다면 무엇이 생태적이고 무엇이 생태적이지 않다는 것인가. 이분법적이라고 오해될
수 있음을 무릅쓰고 무엇에서 무엇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언급해 보
도록 하겠다.

생태적 세계관과 반생태적 세계관
환경문제는 데카르트 이후부터 시작된 인류역사의 근대적 기획에 대한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부
정을 의미한다. 생태위기를 조장해온 페러다임은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
왔으며, 자연의 인식에 있어서도 근본입자의 조합으로 인식하는 분절적인 사고를 해왔다.
직선적인 시간관과 인과관계를 기조로 하면서 양적인 것을 중요시하고, 인간의 필요에 복무하
는 것만이 중요시 해왔고 획일적인 가치를 초래했다. 그러나 생태적 페러다임은 이와같은 사고
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그래서 주체와 객체의 상호보완과 상호작용하며, 인간과 자연은 분리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모든 지식의 가치중립성보다는 가치관여적인 지식을 지향하
고, 분석적이고 분절적인 지식이 아니라 종합적인 인식능력이 강조되며, 순환적인 시간관과 인
과관계, 삶의 질과 정신적, 영성적가치, 깨달음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자연
과 물질은 그것이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의 내재적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
에 소중하며, 생태계내에서의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한다.
반생태적인 페러다임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위계질서와 효율을 중시하고, 시장적 질서
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며, 그속에서 ‘경쟁적 삶’을 자연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를
위해 보다 빨리, 보다 높이를 추구한다. 그리고 노동을 자기실현의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
동을 돈을 벌기 위한 행위로 인식하고, 더 많은 소비가 더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
태적인 페러다임은 인간의 자연파괴로 자연과 인간 모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또한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인간의 공동체파괴와 사회질서의 교란, 인간심성의 파괴를 초래한 원
인이라고 생각하며, 생태적인 사회는 이 모든 것의 통합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계와 효율보다는 평등과 과정, 그리고 참여를 지향하고, 시장적 질서보다는 공동체적 질서와
협동적 삶, 그리고 단순하고 느린 생활양식을 지향한다. 특히 노동은 그 자체의 즐거움이자 자
기실현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덜 쓰지만 더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반생태적인 가치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을 상품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이용하는데 관심있고, 생태계의 질서보다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다. 이러
한 생각의 근저에 자원은 무한하다는 신념이 도사리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무한한 성장이 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나라와 사회는 미국과 같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추구하는 것
이 진보나 발전이라고 한다. 또한 문화적 가치는 무시하고 물질적인 가치만을 기준으로 하여 풍
요를 이룬 나라를 앞선나라(先進國), 혹은 문명국(文明)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를 뒤처
진 나라(後進國) 혹은 라고 말하고 나아가 야만(野蠻)국이라고까지 폄하한다.
그러나 생태적사고는 이러한 사고와 결연한 결별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해서는 안되
며, 조화와 공존관계여야 한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의 필요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내재적인 가치 때문에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한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다. 그래서 경제성장보다는 생태적균형을 중시하고 경쟁보다는 연대와 협동을 강조하며 인구문
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반생태적인 사고는 오로지 자기와 자기세대의 이익에만 관심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을 숭배하고 맹신하며 자원의 한계는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규모 거대 플랜트의 고
도화된 기술개뱔을 강조한다.
그러나 생태적사고는 과학기술은 비판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며, 자원은 생태학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원의 복원능력이나 정화능력을 벗어나서는 이용이어서는 안되며, 미래세대가 사
용해야 할 자원에 대한 분배와 제3세계와의 평등한 자원분배,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명
이 살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고려한 인간의 발전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반생태적 페러다임은 중앙집중화된 대의제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소위 전문가
들에 의한 지배, 남성중심의 사회와 제도정치가 강조되고, 좌우대립의 이원적인 가치가 강조된
다. 그러나 생태적 페러다임은 분권화된 참여민주주의를 지항하며, 지방자치적 풀뿌리 민주주의
를 기반으로 하고 남녀평등의 가치를 지지한다. 생태적정치는 좌우대립이 아니라 경제성장주의
와 생태적가치를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생태주의교육과 환경교육
생태적교육은 반생태적인 사회속에서 만들어진 교육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생태적교육
은 환경과목을 넣어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태적인 교육
은, 반생태적으로 짜여진 세계에 대한 부정이며, 나아가 반생태적인 교육시스템과 교과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전교과과목에 대한 변화를 도모하는 것
이며 나아가 교육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더욱 나아가 생태교육은 학교교육을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은 평생교육이어야
하며 따라서 개인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학습할 수 있는 지역에 기반한 다양한 학습제도가 마
련되어야 하고, 다양한 사회교육이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어쨌든 모든 교과과목과 교육시스템, 교사들의 학습방식과 시험방식등에 생태적세계관이 녹아
들어가야만 하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살림의 교육이며 생명의 교육인 것이다.

생명운동으로서 생태적교육의 내용
생명운동이 갖고 있는 특징은 “관계성, 순환성, 다양성, 영성”이다. 필자는 생명운동으로서
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관계성의 교육, 순환성의 교육, 다양성의 교육, 영성과 깨달음의 교
육”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관계성의 교육
현대 사회는 분절적이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서로 고립된 개체로 인식한다.
따라서 서로의 변화가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인간
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을 이용하거나 식민지
화, 전쟁 등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이익을 도모한다.
관계성의 교육은 그동안 자기 중심의 이해를 기반으로한 교육이나, 개인의 성공과 경제적 성장
에 집중하는 교육이 아니다. 1) 인간과 인간과의 공동체적 각성을 체득하는 교육이 어야 한다.
또한 2) 인간과 자연, 생명과의 관계를 인식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관계성은 무수한 많은 생명들과 자신과의 호흡, 일체의식을 느끼고 체험하는 교육
이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임을 인식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한 장의 종이속에 나
무의 향내와 벌레의 울음소리, 물과 바람, 구름과 비소리를 듣고, 벌목공의 땀내음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성의 인식은 반드시 참여와 자발성을 중요한 것으
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 발전적인 관계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교
육인 것이다.
또한 이 관계성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공간적 관계성), 즉 이웃과 국가, 민족과 지
구와의 관계뿐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를 소중히 생각하며 나아가 미래세대의 가능성(시간적 관계
성)을 동시에 통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성만이 아니라 수많은 식물과 동
물, 뭇생명과의 관계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2) 순환성의 교육
관계성은 바로 순환성을 그 성격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서로 그물처럼 연결되어 서로 영향
을 미친다면 그 영향의 흐름이 바로 순환성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의 인식은 끝임없이 진보
로 향한 직선적인 역사로 인식한다. 시작에서 출발하여 끝을 향해 수직 상승하는 발전사관인 것
이다. 그것이 서양의 대표적인 역사관이며 바로 그점이 환경위기시대에 제기를 받고 있는 패러
다임이다. 과거 많은 사회운동가들이 추구해온 진보에 대한 관념 또한 이러한 직선적인 시간관
에 예속되어 있다. 과거는 언제나 미개했고, 미래는 언제나 진보했다는 사고, 그리고 미래에 인
간은 행복해 질 것이라는 사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위기는 이러한 인간의 선형적 역사관의
유토피아적 사고가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구체적인 현실가능성은 디스토피아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 것이며, 역사관의 새로운 변화, 진보에 대한 새로운 명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가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순환하는 것처럼, 그리고 생태계에서 탄소와 산소가 순
환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모든 것은 순환과 윤회를 그 성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
리의 사고는 마치 수세식 변기처럼 더러운 것을 물과 함께 가능한 멀리 떠나보내면, 그것은 나
와는 관계 없다고 사고한다. 그러나 재래식변소는 순환적 시스템이다.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
며, 또한 물로 씻겨져 한강으로 가서 바다로 흘러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이며
우리가 먹어야 할 채소의 먹이가 되고, 그 채소는 사람의 먹이가 되고 사람은 다시 똥은 만드
는 순환의 과정의 소중한 하나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쓰레기란 본래 없는 것이다. 바로 순환,
윤회, 그리고 돌림을 잘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바로 순환과 윤회, 돌림이 끊어져서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3) 다양성의 교육
관계성은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양성은 획일적이고, 단순화를 반대하는 것이다.
오늘날 제도교육은 영어, 수학 등 단지 몇몇 과목의 능력에 의해 사람의 서열과 순위가 만들어
진다. 예술적 능력이나, 문학적 감수성, 체육에 대한 능력이 있어도, 그것은 무시된다. 오로지
성적순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과 관심은 다양하다. 오로지 하나로만 판단하고 평가될 수 없다. 또한 나와 같아져
야 한다는 것도 바로 다양성을 헤치는 사고인 것이다. 다양성은 차이를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서 바로 그 차이점 때문에 오히려 소중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위와 서열이라는 것이 본래 없다
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획일성은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와의 순위와 서열만들기와 연관되어
있다. 물질적인 풍요를 유일한 척도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고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것, 그
것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나와 같아져야 한다는 강박은 바로 폭력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또
한 다양성은 책임감과 독립성을 의미한다. 다양성은 평등함과 그속에 참여적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생명교육으로서 환경교육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과 특성을 차별적인 사회적 요구,
경제적 요구, 문화적 요구에 이끌림 없이 자유롭게 발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영성 및 깨달음의 교육
영성(Spirituality)은 신비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유물주
의, 보다 철저한 과학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관계성, 순환성, 다양성을 인지하는
것은 그야 말로 환경위기시대의 과학적 사고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를 온몸으로 채득하는 것
이 바로 깨달음이며, 이것을 다른언어로 영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즉 통찰력과 예지력, 직
관적 인식, 통합적인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합리성과 이성을 넘어서는 문화적인 내용, “깨달
음”을 뜻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입시 (그것을 입시라기보다는 고시라고 할 수 있었는지 모르
지만)였던 과거제도는 개인의 기술적 능력이나 전문성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력, 인격,
풍류를 판단하는 기제였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으로서의 됨됨이, 그리고 인격적 완성
과 깊이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입시는 교육의 페러다임이 과거와
는 달라진 것이다. 통합적인 인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다루는 기술과 지식을 원하
는 것이다. 영성은 사람과 자연의 모든 관계에 대해 보다 성찰적이 되는 것이다. 물질을 넘어서
서 정신적 가치에 대한 소중함, 풍요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가난과 자발적인 검소함
(Voluntery Poverty),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소중함, 자연과 인간사이
에서 이해심과 자연 속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근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나가는 말
도대체 이러한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결국 과거와 같은 혁명적인 사회변혁으로 사회
구조와 교육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해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해충이나 생명을 박멸하겠다는
것도 바로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인식이듯이, 과거사회를 일거에 파괴시키고, 새로운 사
회를 만드는 것도 비슷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사회의 무게중심이 이동되는 것이다. 이
렇게 볼 때 생명운동은 산업사회의 ‘틈’을 비집고 전개되는 운동인 것이다. 산업사회에 있으
면서 산업사회에 포섭되지 않은 영역의 틈을 벌려나가는 것, 저항운동속에 대안적 가치를 실현
하는 운동인 것이다.
모든 주류는 어제의 비주류였다. 역사는 변방에서 시작되듯이, 모든 사회운동의 에너지는 작은
구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생태적 세계관에 기초한 모든 변화의 기획들이 오늘날의 현실이 아
니라고 5년뒤까지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 10년간의 변화를 당시에는 예
측하지 못했듯이, 우리의 인식이 근본과 잘 연결된 것이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그것은 현실화될
것이다.

자료제공 : 환경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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