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프로그램

무탄트(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무탄트(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 “무탄트(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
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건 / 정신세계사 /
어른책이다. 이른바 문명세계에서 마음이 황폐해질
때 읽어보자.

『마지막 거인』(-지난호에서 소개)을 읽는 내내 또 다른 책이 연상
됐습니다.
아무도 갈 수 없는 땅(never – never land, 호주 서남쪽의 불모지)
의 토착민인
‘참사람’ 부족의 이야기 『무탄트』입니다.
‘참사람’ 부족의 얼굴과 팔다리에는 다양한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
다. 팔뚝에는 도마뱀이, 다리와
등에는 뱀과 캥거루와 새들이…. 마지막 아홉 거인의 몸이 그들의 생
활과 대자연을 담은 것처럼
‘참사람’ 부족은 물기라곤 전혀 없는 곳에서도 물을 찾아낼 수 있습
니다. 바위틈에서 물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가진 물의 양이 아무리 적어도 찾아낸 물을 몽땅 차지하
는 법이 없습니다. 그 물은
동물들의 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랍니다. ‘참사람’ 부족은 한 곳에 나
있는 식물을 몽땅 먹어버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늘 충분한 양의 식물을 남겨 놓아 그 식물
이 다시 번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들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 줄곧 ‘아무도 갈 수 없는 땅’에 살았다
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들이
호주에서 살아온 기간이 적어도 5만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어떤 숲도
파괴하지 않고, 어떤 강물도 더럽히지 않고, 어떤 동물도 멸종위기
에 빠뜨리지 않고, 어떤 오염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풍부한 식량과 피난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파괴를 몰랐던 건 중앙아시아 어느 깊은 곳에 살았던 그 거인들도 마
찬가지였나 봅니다. 3천년
이상 살면서 고작 손바닥 하나만한 다른 종족들을 정복하지 않았으
니 말입니다.
‘참사람’ 부족은 태고적부터의 기억과 보편적인 진리를 잃어버렸거
나 차단해버린 사람들, 이른바
문명인을 무탄트라 부릅니다. 자연속의 ‘돌연변이’를 의미한다 합니
다.
‘참사람’ 부족은 말합니다. 무탄트들에게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 것
같다고.
“대부분의 무탄트들은 들판에 발가벗고 서서 비를 맞는 게 어
떤 기분인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다. 인공 냉난방이 완비된 건물을 짓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정상
적인 기온에서는 일사병에 걸린다.
또 무탄트는 더 이상 훌륭한 소화기관을 갖고 있지 않다. 식량을 가
루로 빻고 죽으로 만들고 가공하면서
자연에 어긋나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 심지어는 기본 음식과 공기중
에 떠다니는 꽃가루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무탄트는 자신의 관점에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에 이해력이 한정되어 있다.
저들은 오늘 말고는 어떤 시간도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내일을 생
각지 않고 파괴를 일삼는다.”

평생을 살고도 자신의 재능이 뭔지를 끝내 모르거나, 자기는 아무 재
능도 부여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삶의 의욕을 잃고 살다가 죽는 무탄트, 모두 한줄로 늘어서
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하고, 들판에 발가벗고 서서 비를 맞는 게 어떤 기분
인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 나 역시 오늘 말고는 어떤 시간도 인식하지 못하며 하루하
루 나와 내 옆의 존재에 대한
파괴를 일삼고 살아온 무탄트였지 싶습니다.
그런데, ‘참사람’ 부족은 곧 지구를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
은 가장 높은 차원의 정신생활로
금욕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가
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곧 순수한 인류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추장 ‘당당한 검은 고니’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영혼에다 인간의 형상을 부여하며 이곳에 살
수 없다.”
그들은 우리 무탄트들에 의해 종말을 맞은 것이 분명합니다. 명예와
황금을 좇는 누군가에게 목을
베인 거인 ‘안탈라’처럼.

*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우리는 자연을 이 요술 이야기 대하듯 믿고 있나 봅니다. 오
늘 이만큼 훼손해도 내일 또
그만큼의 생명을 갖고 태어나리라 보기에 겁없이 잘라내고, 파헤치
고, 지배하면서 더럽히는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연에 대한 끝없는 ‘정복’으로 세계경제는 일어섰고
당장의 사람들은 풍요로와졌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위기’라는 부메랑이 인간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자연의 정복이라는 말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표현도
없으리라. 이 말은 인간이
자연의 힘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 거짓 환상을 갖게 한
다. 또한 이 말은 자연이라는
것을 인간이 세운 목표에 동원되는 에너지의 원천정도로 보고 있는
범죄적 자만심에 가득 찬 표현이기도
하다.”
르네 듀보스가 『내부에 있는 신』에서 ‘지구에서의 공생’이라는 자
연의 규칙을 저버린 인간을 두고
한 말입니다.
공생의 규칙이 깨진 것은 ‘만물의 영장’ 인간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
니다.
달걀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을 묻자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바닷 사나이 크리스토퍼 콜롬부스가
성큼 나섰다고 합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달걀의 한쪽 끝을 깨뜨
려 세웠답니다. 사람들은 그
‘콜롬부스의 달걀’을 두고 발상의 전환, 창조성과 진취적 기상이라
고 극찬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달걀을 세워 보라 하면 왜 오래도록 고개만 갸우뚱
하게 되는 것일까? 본능적으로,
달걀을 깨뜨려서는 안된다고 전제한 때문일 것입니다.
신대륙에 도착한 콜롬부스는 맨 처음 서인도제도 히스파니올라 섬의
타이노족을 몰살했습니다. 그
후 1천6백만 명의 토착민이 살육됐고, 역시 그만큼의 아프리카 흑인
들이 ‘노예’로 사냥됐습니다.

신대륙 발견 5백주년에 행해진 가상재판에서 콜롬부스는 유괴와 살인
을 저지른 잔인한 침략자로 단죄됐다고
합니다. 또 ‘신대륙 발견’이라는 기록도 여지없이 폐기됐는데, 신대
륙이 아님은 물론이고 ‘발견’
아닌 ‘도착’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어쩌면, 달걀을 깨뜨릴 수 있는 발상은 콜롬부스였기에 가능했는지
도 모릅니다. 이른바 신대륙의
무수한 생명과 문화를 깨뜨릴 수 있었던 그였기에.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 손을 들어 바다를 가리키며 서 있는 야
심찬 콜롬부스의 동상앞에서
한 학자는,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공황에서 신대륙을 찾아 비
행기로 출항하고 있는 수많은
콜롬부스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라고 썼습니다.
5백년이 지났지만, 콜롬부스의 후예 ‘문명인’들에게 토착민이란 여전
히 ‘야만인’이고 진보의 장애일
뿐입니다. 그들의 문화와 자주성 따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제거하
거나 ‘문명’ 사회로 흡수하려고만
합니다.
오늘도 토착민들은 콜롬부스 후예들로부터 ‘토벌’ 당하고 있습니다.

에콰도르의 와오라니 족은 최근까지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습
니다. 그러나 석유개발에 의해
그들의 존재가 드러났고 토지는 모두 파헤쳐졌습니다. 인도 서부의
원주민들은 나르바다 강에 계획중인
거대한 댐 건설에 의해 쫓겨날 운명에 있습니다. 댐이 완성되면 주
로 빌스 족과 타다비스 족으로
이루어진 6만 명 이상의 토착민들의 생활터전이 수몰됩니다. 인도네
시아 시베루트 섬의 멘타와이
족 역시 10만 명의 대규모 이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야자 농장
을 위해 숲이 벌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부는 화살과 독화살촉으로 사냥하며 살아온 말레
이시아의 페낭 족은 정부가 사라와크에서
벌인 삼림벌채에 대항해왔습니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문화와 주거지
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그들 대부분은 체포되거나 투옥됐습니다.
지구의 55억 인구 중 6억 인구가 이들 토착민입니다. 그러나 문명세
계의 욕심 때문에 이들의
문화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치 멸종하는 생물종처
럼.
욕심이 지나친 주인 탓에 거위의 황금 알이 다 사라진 것처럼 이제
자연도 인간도 필요충분 조건인
서로를 위해 생명을 나눌 여유를 다 잃었습니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 존재하
는 끈질긴 생명력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새의 이동, 밀물과 썰물의 바다, 막 움트려고 하는
새싹들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 함께 매우 상징적인 그 어떤 뜻이 숨겨져 있다. 되풀이되
는 자연의 변화에는 어떤 무한한
자기 치유의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겨울이 가
면 봄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처럼.”
레이첼 카슨의 이 말처럼, 겨울 지나 봄이 오는 자연법칙대로 생명
이 유지되자면 우리가 과거로만
여겨 업수이 했던 토착민들의 삶, 즉 자연과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에
서 출발하는 생활자세만이 미래의
대안일지 모릅니다.
“나는 북아메리카·동남아시아·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에 사
는 다양한 토착원주민들의 입에서
몇 번이나, 공통된 말을 들었다. 그들은 ‘우리는 대지에 속한다. 그
러나 대지가 우리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토착민들을 위한 보호운동을 벌이고 있
는 <국제생존협회>
창립멤버인 로빈 한베리 테니슨의 말입니다.
기나긴 세월동안 토착민들이 자연 속에서 살아온 태도가 바로, 지구
에 살아야 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로빈 한베리 테니슨의 표현처럼, 그들은 이 땅에 남겨
진 ‘자연의 가장 좋은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글: 김소희 님/ 어린이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관
장, 5살배기 ‘동화’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admin

admin

참여프로그램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