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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환경사상과 생태정치 – 녹색전망

출간 의의

리는 우리 자신과 후손들

이 땅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의 삶과 그 터전을 녹색의 의미
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반성적으로
전망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녹색전망은 자연과 인간성을 파괴하는 현대 문
명에 대한 생태적 성찰과 저항을 의미하며,
상실된 녹색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삶의 논리를 책임 있는 태도로 모색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환경 사상과 생태정치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인문사회학자들 가운데 이론과 실천에서
보다 적극적인 연구자들이 집필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
에 종사하고 있는 집필자들이 철저한
자기 성찰과 전망에 기초하여, 선정하고 집필한 논문들로 보아도 좋을 것
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환경담론의 발전과 환경 문제의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
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책을 펴내면서 中

이 책이 나오기까지
녹색전망-21세기 환경사상과 생태정치?심포지엄 발표 논문 엮

3월 29일(금) 대구대학교에서 (사)대구경북환경연구소가 주최한 “녹색전
망 : 21세기 환경사상과 생태정치”
토론회는 생태?환경담론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위기
에 처한 환경문제에 대하여 그동안
자연과학 및 공학적 연구와 학술대회는 많이 있었지만, 인문?사회과학 분
야에서 이와 같은 학제적 대규모 학술대회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21세기 담론의 중심과제라고 할 수 있
는 환경사상 또는 생태이론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인문?사회과학자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학자들
의 발표 논문 23편을 엮었다. 이는
예전에는 일찍이 없었던 야심찬 시도이며, 이 책은 우리나라의 환경?생태
담론이 집대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류와 비주류, 그 최초의 만남

이 책은 지금까지 환경문제의 주요논의 주제였던 환경윤리에서부터 생태철
학, 생태맑시즘, 생태정치, 환경정책,
과학기술의 문제 이외에도 전통사상, 생태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논
의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들의
주요 내용으로 환경정의, 생태아나키즘, 생명윤리, 녹색정부, 생태민주주
의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었다.
환경문제의 접근에 있어, 개별학문의 차원을 넘어 포괄적인 학제적 접근
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누차 강조되어왔던
바이다. 이 책의 경우, 그간 일반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환경관련 책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광범위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각의 주제를 다양하게 접근, 분석함을 통해 포괄적?균
형적인 인식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주요한 의의가 있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겠다. 더불어, 그간 환경관련 논의
에서 주요한 논제로 대우받지 못했던
환경정의의 문제, 대안적 철학적 모색으로서의 아나키즘, 문학의 위상?역
할(시?소설), 생명사상?생명운동의
인식과 사적 고찰 등의 공론화는 이 책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주요 내용

제1세션 환경윤리와 대안적 생태철학 : 환경정의와 생태 아나키즘

경담론의
기초가 되는 환경윤리와 환경철학에 대한 논의, 그리고 환경?생태 분야에
서 최근 가장 주요한 이론적,실천적
자원이 되고 있는 환경정의 이론을 고찰하고, 아나키즘과의 연관성을 탐색
한다.

최병두 “환경정의 이론의 재구성”
심각한 생태적 위기에 봉착한 현대 사회의 이러한 위기 극복은 위기를 유
발하는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문제는 과학적 비판에 덧붙혀 이
를 해결하고자 하는 윤리적 실천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환경윤리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윤리는 기존의 사회적 윤리와는 달리, 의사소통
이 불가능한 자연과의 관계에서 형성되어야
할 어떤 윤리라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며, 결국 인간의 생태적 이성
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러한 해결방안은 환경윤리의 이데올로기 문제
에 봉착하게 되지만, 환경윤리 또는
환경정의를 생태적 성찰 및 저항과 자유의 추구라는 점에서 개념화함으로
써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정의란 오늘날 이와 같이 위기적 상황에 처해 있는 생태적 불
평등에 대해 저항하고 생태적 위험으로부터
자유를 확보하도록 하며, 우리의 실천을 안내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함으로
써 궁극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양식을 이루어 나감을 의미한다.
환경정의에 관한 주장은 1980년대 후반 이후 특히 미국에서 국지적 환경
및 생활공동체 운동을 전개해 온
실천적 운동가들로부터 먼저 제기되었다. 미국에서 환경정의에 관한 이러
한 주장은 미국 정부의 정책에도 크게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 세계에도 주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환
경정의운동의 영향으로 1992년 미국에서는
환경정의법이 제정되었으며,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을 위한 인수과정에 환
경정의팀이 구성되어 환경문제의 인종적,
계급적 불평등에 관한 자료 수집과 정책대안 제시가 이루어지기도 했
다.
환경정의에 관한 연구는 이와 같이 단지 개념적(이론적 및 철학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여 환경문제의 사회공간적 불평등을 분석하고, 이를 해소하
고자 하는 시민환경운동에 보다 세련된
환경정의의 이념을 제시하거나, 또는 환경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국내 및 국제적 정책들에게 주요한
원칙이나 지침을 제시하기도 한다. 환경정의의 관점에서 현실의 환경문제
를 분석하고자 하는 연구는 자원 이용이나
비용 부담, 피해의 방어 능력, 특히 부의 외부효과를 발생하는 여러 가지
환경기초시설들(매립장, 소각로,
핵발전소 등)의 입지 등이 사회공간적으로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불평등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환경정의의 개념에 기초한 정책의 개발은
우선 환경정의에 기초한 정책 기조
또는 원칙들을 제도화시켰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정책 기조에 근거
하여 환경문제의 사회공간적 불평등을
시정하고 새로운 환경정책들이 더 이상 이러한 사회공간적 불평등을 야기
하지 않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환경정의와
관련된 정책 개발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정책의 입안 및 시행과정이 민주
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바는, 환경정의론은 현실세계의 3가지 관계들, 즉
인간과 자연 간의 (물질적) 관계,
자연을 매개로 한 인간들 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상호주관성)를 매개로
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에 근거하여,
이들 각각에 적용될 수 있는 생산적 정의, 분배적 정의, 승인적 정의를 포
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이 관계들을 매개하는 노동, 필요, 그리고 담론들의 원칙에 근거하여 평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정의의
각 범주들은 현실 세계의 각 영역들을 가지지만, 또한 동시에 서로를 전제
로 하며 상호보완적이다. 환경정의의
실현은 이러한 3가지 영역들 또는 범주들에서의 정의의 동시적 추구를 통
해 이루어 질 수 있다.

박홍규 (“아나키즘과 에콜로지”)
생태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충분히 주지되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그 점
을 더 이상 상론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 해결 방법이다. 환경문제의 해결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한가, 불
가능한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자를
지지하는 환경주의자와 후자를 지지하는 생태주의자 사이에 아직도 논쟁
이 있다. 후자는 기술적 장치들은 문제의
주위를 겉돌 뿐이며,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와 물질적 자원을 소모하고,
따라서 더 많은 공해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성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져 지구의 공급체계를 고
갈시키고 손상시킨다. 또한 성장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여도 관련된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도리어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생태주의는
심원한 사회적 사고와 실천에서의 변화 그리고 인간적 가치와 도덕성 관념
에서의 변화를 주장한다.
<중앙집권적 권위주의>를 주장하는 견해는 각 정부가 강력하게 지
속 가능한 환경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나라에서 환경운동가들이 흔히 주장하는 견해가 바
로 이것이다. 현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주의에 입각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
로는 양자가 산업성장, 생산수단의 확장,
유물론적 윤리, 무한한 기술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나아
가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좁은 시각에서
지구는 정복되어야 하고 큰 것이 아름다우며 측정될 수 없는 것은 무가치
하다고 보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권위적 지역공동체>를 주장하는 견해는 정부가 아닌 위계적인 소규모 지역공동
체를 정책결정의 단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 악명 높은 문화혁명 시의 중국에서 실험된 것이다. 정신적
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마을도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마지막인 <아나키즘적 해결>은 지역공동체를 정책결정의 중심으로
보는 점에서 앞의 <권위적 지역공동체>를 주장하는 견해와 같으나, 공동체 내의 관계에서 권위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적?평등주의적?참여주의적인
아나키즘에 입각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구 차원에서 생 각하고 지역 차원으로 행동하라>는
구호가 바로 그러한 아나키즘적 주장을 요약한다. 여기서 <지구 차원 >이란 바로 생태문제를 지구
또는 자연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파괴를 낳
는 <성장주의>에 반대하는
<자연주의>는 아나키즘과 생태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와 같이 자
연 그 자체가 중요하나 자연의
중요성은 단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이 모두 자연적이어야 한다
고 주장하는 점에서 더욱 강조된다.
그러한 자연주의는 단순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환경파괴를 가져온 기술 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사건들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최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부정하고, 그 대신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윤리를 주장한다. 그것은
기술에 반대하지는 않으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작은 기술을 옹호하고, 거대 도시의 비인간성을 비난한다.
나아가 다양성과 항상성이라고 하는
생태적 원칙에 뿌리박은 영속성과 안정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보다 단순하
고 규모가 더 작으며 자연에 더욱
밀접한 친근한 삶, 노동집약적 생산양식, 물질적인 것에 대한 평가 절하,
개별적인 자급자족성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이 추구된다. 자연주의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나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는 <자유>와 <자치>라고
하는 또 다른 <자연>의 차원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와 <자치>도
<자연>을 배반하거나 파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제2세션 (노진철 “현대 첨단기술의 자기준거성과 환
경문제”)

자본의 논리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현 자본주
의 사회에서 인간해방을
목표로 하는 맑스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생명공학을 비롯한 첨
단 과학기술을 생태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오늘날 첨단기술의 발전은 환경문제와 어떤 관계
를 이루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다같이 제시된다. 사람들
은 첨단기술에서 환경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희망과 동시에 막대한 환경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회의의 양면
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술발전과
환경문제간의 관계에 내재하는 이러한 패러독스로 인하여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일관된 방법론이나
인식틀을 갖추지 못한 채 진행되어 왔다. 이는 첨단기술과 관련된 환경손
상에 대한 판단이 과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다. 첨단기술의 발전은 비록 사회
와 자연의 기술적 처리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높였지만 확률적으로는 낮더라도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환경손
상을 야기할 수 있는 돌발사건의 개연성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따라서 환경문제 해결에
서의 첨단기술의 역할에 대한 탐색
작업은 기술발전이 사회와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실상
생태학적 쟁점이 소통의 전면에 부각된 것은 자연이 더 이상 인류의 삶에
외적인 것이 아니라 기술발전에 기초하여
인류의 삶이 자연에 전면적으로 침투했고 자연의 질서를 다시 세우고 있
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의 발전이 환경문제와 맺어지는 관계를 파악하려면, 기술적 가공
물이 물리-화학적 혹은 유기체적 실재와
상호침투하여 실재를 기술적으로 통제된 영역과 통제되지 않는 영역으로
나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실재의 재구성은 통제가능성의 기술
적 실현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첨단기술의 자기준거성과 연계된 환경문제는 인류의 삶
과 자연환경에 대한 통제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사회체계에 의해 저질러진 ‘인류의 삶과 자연을 위협하는 자극
제’이다.
기술은 지속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기능을 상실한다. 그러나 그것
을 적용함에 있어 첨단기술은 일반 시민들의
수용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첨단기술의 정상적인
작동을 통해 재생산되는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인 결과에 불안해하는 시민들은 정치적 개입을 통해 첨단기술의 발
전방향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또한
국가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과학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향력있
는 과학?기술정책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국가는 공적인 기술영향평가기구를 통해서 혹
은 일반인들을 참여시킨 합의회의를 통해서
내려진 첨단기술의 발전을 둘러싼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정책결정
과정에서 참고하게 된다. 국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인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보이는 과학?기술정책의 입안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광범위
한 참여는 첨단기술의 활용과 발전이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과, 기술의 방향전환이 더 이상 기술적인 문제가 아
니라 보다 광의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단체들을 중심
으로 첨단기술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
조절의 요구와 정책결정과정 그 자체에 대한 시민의 참여요구가 강하게 제
기되고 있다. 그 결과 첨단기술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정책입안자의 태도가 꾸준히 개선되고는 있지만 기술
영향평가기구나 합의기구가 제도화되는
데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연은 불확실성에 대한 제도
적 필요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첨단기술의 사회경제적 기여에 대한 과대평가와 조급함,
첨단기술의 발전이 미치는 결과에 대한
무관심과 과소평가, 관료적 정치체계의 권위적 소통구조로 인하여 아직 정
책결정과정에의 시민들의 참여권 요구가
미흡한 탓이다.

제3세션 (정정호 “자연, 문학, 생태학적 상상
력”)

우리나라의 전통사상에서 유래하는 생명담론이 서
구의 생태담론에 버금가는
상상력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문학이 환경과 생태의 시기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본다.

“예술”이 환경에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
가? 예술도 궁극적으로는
어떤 한 입장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며 시대나 지역 상황에 따라 “인정
받지 못한 입법가들”인 예술가들에
의해 환경생태 전략이 선택될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인류가 예술 양식을
창출하면서 살아온 이래로 자연의 타자로서의
문명은 꾸준히 또는 급격히 발전했으므로,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편
에 서서 문명에 저항하는 모습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의 속성 자체가 자연의 미학화 또는 자연의 사회화, 자연의 문화화이
다. 여기서 미학화, 사회화, 문화화라는
말은 모두 자연의 예술화이다. 예술화란 여러 가지 예술기법이나 예술사상
을 가리킨다. 자연을 그대로 옮기거나
정제시키거나 확대 축소시키기도 하고 자연을 뒤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자연을 낯설게 하는 행위이다. 무엇
때문에 자연을 낯설게 만드는가? 그것은 자연을 단순히 훼손, 굴절, 변형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더 잘
보고 더 잘 의식하기 위한 것이다. 굴절시켜 똑바로 보이게 하는 것, 숨겨
서 더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거짓말(“가짜”)을 통해 추한 진실(“진짜”)을 드러내는 방식
이 예술의 생존전략이 아닌가?
그러나 또다시 중요한 것은 예술이 본질적으로 “몽상”이라는 점이다. 그
것은 현실과 꿈의 “중간지대”이고,
하나의 “기억,” “사유,” “느낌,” “흔적” 또는 “에피파니”이다.
예술이 환경 문제의 구체적 대안이나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이미 예
술이 아니라 선전이나 운동이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훈련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
만이 예술이 완악한 인간으로 하여금
이미 언제나 자연에 대한 외경심, 숭고미, 겸애, 돌봄에 대한 인식을 갖
게 하고 늘 환경친화적으로 깨어있게
하는 길이다. 예술적 “몽상”은 단지 중재자이며 촉매제이어서, 예술은
철학, 윤리학보다 환경 문제해결에
대한 훨씬 더 구체적인 추동력을 결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몽상은
자연, 인간, 문화 속에서 상호연계성과
상호침투성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각성하고 배우게 만드는 참여의 미학과
조화의 정치학을 실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환경생태적 미래는 문학예술에 (매)달려 있다.
서구의 “근대신화”에 빠져있는 우리가 공자와 노자를 다시 읽고 정지용
과 김동리를 계속 논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맹사상은 광속과 같은 무한경쟁의 서구 자본주의 시대에 새로운 문화윤
리학을 마련해 주고, 노장사상은 인간중심주의
시대에 새로운 생태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정지용은 유기론적 비/전근대주
의를 통해 전통사회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되살려내어 근대화 속의 우리의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고, 김
동리는 반근대적 토속주의로 한국적
혼의 세계를 통해 근대화의 목을 비틀고 미래의 한국사회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보여준다. 최근에 부상되고
있는 저항담론의 하나인 유교 자본주의론이나 동아시아 담론도 이러한 맥
락에서 배태된 것이 분명하다. 근대의
타자들인 제3세계, 동아시아, 여성, 전통, 자연 등이 저항운동의 권위가
된다. 최근의 전통론은 주체성
담론의 수준을 넘어 탈근대성을 지향한다. 탈근대성은 근대성의 동일성 논
리를 타파하고 차이와 타자에 주목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은 탈근대론의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
리가 이 시대에 우리의 “전통”을
다시 논하는 것은 단순히 전통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에
배운 것을 익히고 밝혀 새로운 도리를
깨닫고 지금과는 다른 지식과 견해를 펴는 것이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
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제4세션 (문순홍, “민주주의와 환경결합 논의
들의 재구성”)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위한 환경정책과 국가/지
자체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 보고, 이를 견인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태민주주의론을 생
태정치의 차원에서 논의한다.

90년대는 대안 민주주의 논의의 르네상스기라 칭해진다. 이 대안민주주
의 논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mocracy)”를 추구하는 학자군과 “민주주의의 급진화
(radicalization
of democracy)”를 추구하는 학자군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반면 생
태정치론에서 생태친화적인
현실 정치유형으로서의 생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된 시점은 1980
년대 중반 이후였다. 전반적으로
생태문제틀과 이로 인한 “사회의 정치화”과정은 대안민주주의
논의를 촉발시켰고, 반면 오래된
민주주의 논쟁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안민주주의 논의는 생태민주주의
논의를 정교화?분화시키고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생태민주주의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논의를 범
주화하고, 이들이 “민주주의”와
“환경”이란 주제로 제기하고 있는 물음들을 재구성하여, 생태민
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는
전략적인 사회공간들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생태민주화의 설계
도 그리기란 부제로 표현하였다.
설계도는 완성된 집에 대한 개념과 이의 짓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생태민주주의란 이상향이고 생태민주화
전략은 이에 도달하기 위한 설계도이다. 이 생태민주화의 설계도는 전략
적 논의의 수준들로 이들을 사회체계에
따라 조합하고 엮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 그물짜기의 초기적 물음은 자유
민주주의를 넘어가기 위한 노력에 어떤
유형의 전략들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전략 네트워크은 두 축
즉, 제도 디자인의 심급들이란 수직축과,
분화된 사회영역들(정치-경제-문화)이란 수평축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후
자의 짜기 전략을 필자는 1적소?2원
과정?3중 고리론으로 정리한바 있어, 여기서는 전자 즉 제도디자인의 심급
에 따라 생태민주화의 설계도를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제시하였다.
첫째는 시민사회를 다시 정의하는 것으로 이의 핵심엔 새로운 유형의 개인
을 재발견하고 생태공동체를 복원하는
문제가 놓여있다. 특히 이분법적 분할과 배제 문제의 극복을 화두로 하는
공영역의 급진화가 논구되어야 한다.
둘째는 환경이슈를 중심한 공영역의 구성요소인 자율적인 결사체들을 육성
하고, 이것들과 국가 사이의 소통루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아가 공영역 그 자체를 녹색화하는 실험이 논의되어
야 하는데, 이의 한 유형으로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전제한 공영역 운영방식이 실험되어야 한다.
셋째, 자유민주주의의 주요 정치기관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정당체제, 이것과 사회(다원적인
결사체들로 구성된 사회)간 소통로의 역동성, 행정체제의 개방성 여지 등
이 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헌법적인 수준에서의 논의(생태헌법)로 자연계약의 타당성 여부가
검토되어야 한다.

자료문의 : 정유진 (730-1326
/ 016-863-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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