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은 더 이상 인류가 환경을 볼모로 물질
적 확대와
그 소비에 길들여진 생활문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열려야 했다. 그
러나 현실은 여전히 전 세기의 낡은
관성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한 채 시작됐다. 환경연합은 ‘환경운동’의 단계로부
터 더욱 새롭고 높은 단계의 운동, 삶의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삶 자체를 환경친화적이며 생태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구에 직면했다.
그것은 ‘생명운동’, 또는 ‘영성의 환경운동’으로 자기투신, 심화를 의미한
다.
2000년 한국시민사회는 전 세기의 낡은 관행과 권위에 얽매여 다른 사회 부문
전체의 발목을 잡는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됐다. 99년말 준비가 시작되어 총선 전까지 진행된 시민단체연합
의 총선시민연대 활동은 낙천·낙선운동의
신화를 한국현대사에 짜넣으며 시민의 여망에 보답했다.
한편 1999년부터 새만금사업 타당성조사를 행한 민관공동조사위원회는 2000년 4
월 말까지 1년간의 연구조사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결론과 입장을 만들지 못했다. 공동조사단은 파행적으로 운영
되었고 민간위원들은 들러리로 이용당했다.
전국적인 반대운동이 조직되어 여론은 압도적으로 새만금갯벌을 살리자는 입장
이 되었다. 한국 4대 종단을 비롯해 미래세대들,
현지 어민들, 관련 학계를 비롯한 전문단체들, 전국의 뜻 있는 시민들이 한 목
소리로 새만금갯벌 간척반대를 외쳤다.

2000년 5월 매향리 농섬의 현장조사

2000년 6월 매향리에서 열린 매향리 공동대책
위 집회

2000년 10월 아셈회의 현장에 매향리 주민들
이 올라와
임옥상 화백이 포격장의 폐철을 모아 만든 불구의 거인상을 불태우며
매향리 미군 폭격장의 해체를 요구했다.


2000년 2월 서울역에서 명동성당으로 행진하
는 총선연대
가두시위대

2000년 2월 서울시 종묘, 총선연대의 낙선운
동 집회

2000년 4월 3일 총선연대는 정동 아트센터에서
4.13 총선의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2000년 4월 강동송파 환경연합 주체로 낙선대
상자인
지역구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이 벌어졌다.
사진은 낙선운동 자전거 투어의 한 장면

2000년 11월 서울 종로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
에서
새만금 생명평화선언이 있었다.

2000년 11월 새만금 생명평화를 선언하고 거리
로 나선
천주교 수녀단의 가두시위

2000년 7월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열린 환경연
합 회원대회를
마치고
회원들이 새만금 갯벌을 구하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하는
대규모 퍼포먼스를 벌였다.

환경연합 회원대회 참가자들은 전국각지에서
만들어 해창갯벌로
보내진 새만금 지킴이인 장승들을 새우며 새만금 갯벌 보존의지를 다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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