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프로그램

환경운동연합 현장운동사(함께사는길 100호특집)-생명을 위한 헌신1999


1999년은 전년도에 시작한 동강살리기운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환경연합은 조직적인 명운을 걸고 전력으로 이 문제의 해결에
매진했다. 이를 통해 한국환경운동은
그 역량을 점검하고 배가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었고 나아가 강살리기운동이 가
지는 세계적인 의의 또한 획득하게 되었다.
강을 살린다는 것은 실제로는 강뿐만 아니라 산림보호, 국토보존, 야생동식물서
식처의 보호운동 등 전반적인 생활환경,
자연환경보전운동에 맞물려 있는 것이다. 한국환경운동진영은 이 운동을 2000년
까지 3년여에 걸쳐 진행하면서 마침내
2000년 6월 5일 정부의 백지화 선언을 이끌어내게 된다.
동강살리기운동을 통해 환경연합은 이전의 운동과는 선명하게 구별되는 운동을
펼쳤다. 이전의 운동이 환경보전에 중점이
주어진 것이었다면 이 운동은 생태가치의 보전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우리 사회
의 개발지상주의자들과 대립전선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역의 주민동력을 주로 한 투쟁방식에서 주민동력
에 전국적 여론조직운동을 기승시키는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폈다. ‘생태가치냐 개발이익이냐’는 질문을 사회의제화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편 99년 4월 민관공동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새만금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들어
갔다. 새만금간척반대운동 또한 우리
사회가 생태가치의 중요성에 얼마나 주목하는가에 관한 대사회 질문이었다.

생명을 위한 한길

환경연합은 1998년~2000년 상반기까지 동강살리기
운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하였다. 환경연합은 전국의 각종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이 문제를 한
국 환경의 미래지표로 삼아 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국민성금으로 총 13회의 시리즈 광고가 나갔고, 영화인, PD협
회, 문학인들 등 전국 각계
각층의 모임과 조직들이 한 뜻으로 모여 이 운동의 지지성명을 내는 등 동
강살리기 운동은 명실공히 궁민운동화했다.
결국 민관 공동의 동강조사단은 2000년 6월 2일 동강댐 건설 불가라는 공
식 조사결과를 내놓았고 정부의
백지화 선언이 뒤따랐다. 이로 인해 공급 위주의 물관리 정책을 펴오던 건
교부와 수자원공사는 수요수급관리로
정책기조의 전환을 강제받게 되었다. 하나의 운동을 통해 국가 정책의 기조
를 바꾸어낸 역사적 드라마가 연출된
것이다.

일본이 영국에서 재처리한플루토늄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일본 서해안변의 핵발전소 밀집지대로
해상수송하려는 시도에 대해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사진은 통과 예정지 가운데 하나였던 부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상시

동강은 한반도의 남북방 생태한계선이 교차하
는 지역의 생태계
보고로서 댐이 들어서면 이 원시 비경과 이곳의 귀한 생태계는
일거에 파괴될 운명이었다.

99년 3월 환경연합은 동강을 살리기 위해 33인
의 백지화선언을
하고
33일 동안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99년 4월 동아그룹이 매립한 동아매립지를

산업부지로 전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환경연합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현장을 방문해 반대시위를 벌였다.

99년 11월 인천항에서 터미네이터 기술이 적용
된 미국산
수입 대두를
쏟아 부으며 유전자조작기술의 폐해를 고발하는 환경연합 활동가들

admin

참여프로그램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