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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현장운동사(함께사는길 100호특집)-생명을 위한 헌신1997


1997년은 환경연합이 활동의 무대를 국제적
영역으로
넓힌 시기로 볼 수 있다. 통상적인 국제연대는 일상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것이
었으나 대만핵폐기물의 북한 반입 반대운동으로
환경연합은 국제적인 환경질서를 위해 복무하는 국제환경단체로서 위상을 높였
다. 전년도의 지리산반달곰 살리기 캠페인에
이은 모피 안 입기 캠페인은 더욱 높은 수준에서 동물보호운동을 펼치는 계기
가 되었다. 한편 영흥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으로 불거진 한국의 대용량발전 장거리 송전체계의 문제점은 이후 97
년 말 불거진 IMF로 대변되는 국가적
경제난 속에서 1998년과 1999년을 통해 한국전력이라는 독점적 전력회사를 분할
해야 한다는 요구와 그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국치로 표현되는 IMF사태로 인해 그 동안 외형적인 확장에 골몰한 한국사
회 전체가 그간의 발전방식에 대한
반성을 요구받았다. 환경연합 또한 운동 자체만이 아닌 재정의 운용에 대한 더
욱 높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라는
요구를 받게 됐다.

생명을 위한 한길

정부는 이미 전국 6개 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
정하고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해 왔으나 모두 실패하고 94년 11월 최후로 핵폐기장 후보지 카
드를 내놓았다. 굴업도 핵폐기장
지정고시가 그것이었다. 환경연합은 이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정부
가 핵폐기장을 안전하게 건설, 관리할
수 있다는 허위광고를 각종 매체를 동원해 발표하자 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
한 바 있었다. 이후 굴업도 핵폐기장건설
반대운동은 전국적인 국민의 지지를 획득해 나갔으며 결국 95년 11월 30일
지정고시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후유증은 컸다. 굴업도 핵페기장 반대운동을 진행한 덕적도(굴업도
의 모섬) 주민의 생계는 완전히 피폐해
졌으며 사회적인 불필요 소요경비 또한 막대하게 소모됐다. 모두 정부의 진
실을 왜곡하는 굴절된 핵정책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특히 초기 정부의 ‘핵폐기물은 안전’ 운운한 허위광고
로 인한 손개는 이후 반핵운동의
대중화에 찬물을 끼얹고 국가 전체를 1년이상 시민과 정부로 나누어 소모전
을 펼치게 한 주범이기도 했다.
때문에 환경연합은 96년 초 핵폐기장 허위광고에 대한 국민 피해를 대변하
는 소송을 내기에 이른다.

97년 6월 대만핵폐기물의 북한 반입기도를 저
지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반대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사진은 파고다 공원에서 벌어진 규탄집회 중의 퍼포먼스

97년 4월 목포에서 벌어진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해상수송 저지를 위한 환경연합의 해상훈련

97년 3월 인천 팔미도 앞바다에서 펼쳐진 제 1
차 대만
핵폐기물 북한반입 저지를 위한 해상훈련, 이후에도 목포, 부산, 군산
등지에서 지속적인 해상훈련이
전개됐다.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수송은 죽음의 수출에
다름아니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당시 포스터

97년 11월 롯데백화점 앞에서 벌인 환경연합
대학생회와
활동가들의 퍼포먼스. 모피를 위해 길러지는 야생동물들의 비참상을 그
렸다.

환경연합은 세계 각지에서 모피때문에 희생되
는 야생동물들을
구하기 위한 반모피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사진은 모피철을
맞아 도살된 핀란드 한 농장의
푸른여우

시화호 방조제를 기준으로 방조제 오른쪽의 담
수호지역은 완전히
검은 빛이다. 이 썩은 물이 방류됐던 것이다.

97년 4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대부도 일대의
주민들이

참가한 시화호 오수 방류 규탄 퍼포먼스,
주민들은 오수를 청사에 퍼부으며 항의했다.

시화호 폐수가 방류되자 인근 해역은 오염된
해수가
흰거품을 내며 인근 해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영향으로 일대 어장은 황폐화됐다.

97년 3월 오염된 시화호 썩은 물의 무단 방류
저지를
위한 환경연합 직접행동대 <생명의 빛> 단원들의 해상시위

시화호의 무단방류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

배수갑문 앞에서 해상시위를 벌이는
환경연합 <생명의 빛> 단원들은 해경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97년 11월 동강댐 예정지를 찾아 펼친
동강댐살리기 퍼포먼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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