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은 환경연합이 창립년도에 보여준 가능
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해였다. 환경연합은 전국적인 시민조직으로 조직확대를 성공적
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94년 초의
5천 회원에서 1년만에 1만5천명으로 회원확대를 이루어 운동의 동력을 확대했
다. 특별히 반핵운동에 집중하여 4월에는
그린피스인터내셔널과 연대해 전국반핵선박투어를 벌였고 11월에는 굴업도핵폐
기장 건설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다음해인 1995년 내내 지속되었다. 또한 1994년은 환경연합의 상근조직이 정비
되어 서울과 중앙조직으로 재편되고
이를 통해 조직화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94년 4월, 그린피스 한국방문 반핵선박시위

94년 5월 현대그룹 시베리아 산림파괴 실태조사를 위해 파견된 환경연
합 활동가들이 현지에서그린피스
활동가들과 함께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94년 5월 환경연합은 체르노빌 핵사고 10주년을 기념해 우크라이나 키
에프에 활동가를 파견하고 연대활동을
별었다. 방사능에 피폭된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린이 방사능 환자에게
환경련 기념품을 전달하자 어린이가
미소를 띠고 있다.

서울 명동에서 열린 환경연합의 체르노빌 10주기 기념 반핵퍼포먼스

94년 6월 발족한 한강종합감시단의 팔당호 감시 활동

94년 8월 웨스팅하우스사 핵연료 장착 핵발전소 가동중단을 요구하며
한국웨스팅하우스사를 점거한 환경연합
활동가들

박정희 개발독재의 비호아래 세워진 여천 화학공단은 96년 결국 극심
한 대기오염의 참혹한 실태가 외부에
알려졌다. 주민들은 대부분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었다.

94년 9월 서울스모그란 용어가 생길 정도의 대기오염상황을 경고하는
액션을 펼치기위해 광화문 세종로
이순신 장국 동상에 오른 환경연합 활동가들

94년 11월 환경연합의 신문로 사무실(92~95) 외벽에 덕유산 파괴 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95년말의 파헤쳐진 덕유산

95년 11월 덕유산 파괴에 항의하는 현장고공액션을 펼치는 환경연합 활
동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