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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길 뚫어준 오진 · 늑장

콜레라 길 뚫어준 오진 · 늑장

첫 발병자 ‘식중독’ 진단…발생 보름 후에야 ‘환자’ 확인

경상북도 영천시 완산동에 사는 이종식씨(68)는 지난 8월22일 이웃 주민 10여명과 계모임을 가졌
다. 아주 싸고 맛있는 식당이 있다는 한 주민의 추천으로 이씨를 비롯한 계원들은 영천 시내에
서 자동차로 20분이나 걸리는 고경면까지 이동했다. 그곳은 5천원만 내면 50여 가지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뷔페 식당이었다.

ⓒ 시사저널 이상철
뒷북 : 보건 당국은 콜레라가 만연하자 효과도 없는 연막 방역에 나섰다.

그런데 8월27일 아침부터 이씨는 설사를 했다. 사흘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자, 이씨는 8월30일 동
네 의원을 찾았다. 이씨를 검진한 의사는 그에게 환절기성 장염이라며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을
지어 주었다. 약을 먹고 이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9월8일 이씨는 콜레라 환자로
판명되어 병원에 격리 수용되었다. 이씨가 계모임을 가졌던 식당은 이번 콜레라 전염의 진원지
인 ’25시 만남의 광장’이었다.

10년 만의 유행 주기, 말뿐인 ‘대처’

1991년 1백13명, 1995년 68명을 감염시킨 뒤 잠잠했던 콜레라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
해는 우리나라에서 10년에 한번씩 콜레라가 유행하는 주기에 해당해 보건 당국도 8월13일 전국
보건소 71곳과 병의원 2백53곳을 콜레라 감시기관으로 선정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말뿐이었지, 실제로는 두 손을 놓고 있었다. 이번 콜레라 확산에는 보건 당국의 늑장 대처와 병
·의원의 오진이 한몫을 했다.

8월31일 울산시 울주군에 사는 우 아무개씨(68)가 처음으로 콜레라 환자로 확인되었다. 첫 콜레
라 환자가 발생하자 보건 당국은 바짝 긴장했다. 9월2일 화물차 운전기사 3명이 동시에 콜레라
환자로 판명되었다. 보건 당국은 화물차 운전기사를 역학 조사한 결과 이들이 모두 ’25시 만남
의 광장’ 식당을 이용했다는 것을 밝혀내고, 콜레라 확산의 발원지로 식당을 꼽았다. 그러나 때
는 늦었다.

국립보건원 중앙 역학조사반은 식당 종업원이 이번 콜레라의 발단 환자라고 본다. 종업원 최 아
무개씨(36)와 권 아무개씨(50)가 콜레라에 감염된 채 음식을 조리했고, 이들이 조리한 음식을 먹
은 사람들이 모두 콜레라에 걸렸다. 종업원들은 8월14일 회식을 한 뒤 설사를 하는 등 콜레라 증
상을 보였다. 권 아무개씨는 설사가 심하자 8월18일부터 20일까지 영천시에서 두 번째로 큰 ㅍ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첫 발병자가 제 발로 병원 갔는데…

ⓒ 시사저널 이상철
콜레라로 간판을 내린 문제의 식당.

하지만 담당 의사는 권씨를 여름철에 흔한 식중독 환자라고 진단했다. 콜레라 환자가 제 발로 병
원을 찾았는데도 의사가 오진한 것이다. 권씨는 일반 환자들과 함께 입원해 자칫 병원에서 2차
감염이 일어날 뻔했다.

담당 의사는 “영천 지방에서 콜레라가 발생한 적이 없어서 콜레라 환자라고는 생각지도 못했
다”라고 말했다. 만일 그가 권씨를 콜레라 환자로 의심만 했어도 콜레라 확산은 막을 수도 있었
다. 8월20일에 퇴원한 권씨는 21일부터 곧바로 음식을 만들었다. 적어도 8월21일 이후부터 25시
만남의 광장에는 콜레라균이 득실거렸다.

그런데도 관계 당국은 8월24일부터 식당이 문을 닫은 30일까지 이용한 사람만 콜레라에 감염되었
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때문에 8월22일 이 음식점을 이용했던 이종식씨는 콜레라
환자로 확정된 9월8일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지냈다.

발단 환자인 권씨뿐 아니라 음식점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설사가 나자 동네 의원을 찾았다. 동네
의원도 콜레라에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씨가 찾았던 동네 의원 원장은 9월7일 취재진이 확
인 전화를 할 때까지 이씨가 콜레라에 걸린 줄 모르고 있었다. ㅇ 의원 이 아무개 원장은 “개인
병원·의원에서 콜레라 환자를 판명하기는 힘들다. 보건소에 환자의 가검물을 채취해 의뢰해야
한다”라고 해명했다.

이원장에 따르면, 가검물을 채취하는 배양기구 역시 지급이 늦었다. 미리 지급해서 의심이 가는
환자를 검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콜레라가 발생하고 나서야 일선 병·의원에 지급되었다. 보건
당국이 말로만 주의를 당부했을 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콜레라 확산은 위생 관념 부재가 부른 인재였다. 역학조사반을 이끌고 있는 임현
술 동국대 교수는 “콜레라균 자체가 후진국형 세균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발생한다. 하지만 설
사 환자가 조리에 참여하고,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상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을 통해 콜레라가
확산된 경우는 전형적인 후진국형이다”라고 지적했다.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자료제공: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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