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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거청산 운동의 현단계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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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_과거청산운동(김동춘).hwp

2001.3.29

한국의 과거청산 운동의 현단계와 과제

김 동 춘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

1. 한국의 역사청산과제

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이자 국가폭력의 세기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국가폭
력의 희생자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응분의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거 발생했던 국가폭력의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으며, 희생자에 보상, 배상을 받지 못하게됨으로써 21세기의 미래가 인권의 세기가 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과거청산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예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발생했던 미청산된 과거
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대부분은 한국의 민간인들이 국가 혹은 외국의 피해
자인 경우이지만 베트남전의 경우처럼 한국인들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우선 일제하의 정신
대, 징용. 징병 문제, 친일 협력자 처벌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
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문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 60년대 군사
독재정권이 수립된 이후 발생한 각종의 의문사, 고문, 불법적인 법 집행과 처형에 대한 진상규명
과 가해자 처벌 및 보상 문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상 문
제, 최근의 박정희 기념관 반대 운동 등에 이르기 까지 실로 수없이 다양한 과거 청산 과제가 말
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채 지금까지 남아서 21세기 새로운 사회건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에서 이렇듯이 과거청산 과제들이 미해결된 채 지금까지 계속 누적되면서 진행되고 있
는 이유는 바로 지난 한 세기 동안 한반도가 겪은 역사정치적 조건의 특성에서부터 설명될 수 있
다. 우선 일제의 전쟁범죄는 미국의 일본 재부흥 전략, 전범처리에 대한 불철저성 및 한반도에서
의 친일파 기용전략에 의해 일차적으로 좌절되었다. 즉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의 구축은 일본
과 한국에서 군국주의에 동조했던 극우세력이 동시적으로 부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이들
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 하에서 반공의 보루를 쌓는다는 명분하에 과거 전쟁 범죄의 명백
한 진상규명 및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구성되었던
반민특위 활동이 이승만의 조직적인 방해로 좌절된 것은 한국에서 과거청산 운동이 시련을 겪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전후 동서냉전의 격화 및 미국의 세계전략, 및 국내에서의 민족/반민족, 좌익/우익
의 갈등의 복합적인 산물인 한국전쟁이 발생함으로써 이러한 일제 식민지재배와 관련된 과거청산
과제가 더 어려워짐과 동시에 그보다 더욱 심각한 국가폭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한
국전쟁 과정에서 미군, 한국의 국군과 경찰, 북한의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건이다. 그런
데 전쟁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massacres) 혹은 국가폭력은 이 전쟁이 어느한쪽의 승리로 귀결
되지 않고, 분단된 두 국가의 체제를 더욱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매듭지워짐으로써 일제하의 국가
폭력보다도 더 완벽하게 망각되고 말았다. 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이 가장 대규모적이었으며 이
후 분단이후 남한사회에서 발생했던 모든 국가폭력, 반인권의 기원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 거론되었으며, 피해자의 조직화가 가장 여럽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낮은 이유도
아직 휴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지 않고 있으며, 남북한의 군사정치적 적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65년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후 베트남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은 한국군이 직접 가해자
로 등장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자체가 한국정부의 단독결정에 의해 이루
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한국의 종속적 지위에서 진행된 것이므로 그
것은 한국전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실제 당시 최고위 지휘관이
한국전쟁 참전자였으며, 여타 지휘관들고 일제 제국주의 군대의 파시즘적 군대문화와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던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한국군인들의 행동은 일제 하의 국가폭력의 연장 속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이후 80년 광주 대학살의 가교 역할을 하면
서 20세기 한국의 학살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군부독재, 파시스트적 성격을 지니고, 그것의 뒤를 이은 전두환 정권이
더욱 억압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 이후 발생한 각종의 고문, 의문사, 불법 사형집행, 대량학살 등
의 사건들은 대체로 모두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군사정권 하에서 발생한 국가폭력 사건과 유사
하다. 그것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설정한 군사독재 정권,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공안기구, 정치권력의 시녀가 된 군, 경찰 조직, 언론자유의 제약과 보도 통제, 대중들의 수동
성 등에 힘입어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초기의 정부수립에서 오늘의 문민정권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의 가해자들 및 그들과 연
관된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해 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관련 자료를 조
직적으로 폐기하였으며,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침묵시켰고, 또한 과거 문제가 새롭게 들추어지는
것을 조직적으로 거부하거나 방해하고 있으며, 대중매체를 통해 과거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가로
막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제하의 정신 대 문제에서 80년대 말의 의문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도 진실이 제대로 규명된 사례가 없고,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
에 있게 되었다.

2. 과거청산 작업의 현 단계

보는 각도에 따라 한국의 과거청산 작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그것
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한지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신군부
의 등장의 계기가 된 12.12 군부구테타가 헌정 파괴 범죄행위로 규정되었으며, 5.18 당시 가해자
인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이 법정에 서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
면 그것은 매우 피상적인 관찰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필자는 과거청산의 작업을 사
태의 객관적 진상이 규명되었는가, 가해자가 밝혀지고 응분의 처벌을 받았는가, 피해자가 응분
의 보상 혹은 배상을 받았는가, 국가폭력의 사실이 교과서에 반영되고 후세의 반면교사로서 일반
화되었는가의 차원을 설정해보고, 그러한 기준에서 한국의 과거청산 작업의 현단계를 점검해 보
고자 한다.
우선 관련 과거청산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예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법이 제정
된 경우는 5.18 특별법, 제주 4.3 특별법 및 거창사건 특별법, 민주화운동 보상법 및 의문사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앞서서 제정된 것은 역시 광주민주화운동관
련 5.18 특별법이었다. 광주 5.18 특별법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이 가능
하기 까지는 유족회, 부상자회 및 관련 사회단체의 줄기찬 투쟁이 있었다. 이 특별법으로 학살자
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어 형벌이 부과되었고,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피해자에 대
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졌다. 특히 책임자 처벌의 문제가 제한적이나마 해결되었다는 점에
서 광주 특별법은 과거청산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진전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가해자
가 곧바로 사면되었으며,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주로 보상에 치중했다는 점에
서 큰 한계를 갖고 있다.
제주 4.3사건 역시 그 동안 관련단체나 학계, 언론 측의 줄기찬 문제제기의 결실로서 99년 12
월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전문위원 선임, 시행령 확정을 둘러싸고 관련 단체와 정부 간
에 큰 진통이 있었으며, 이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사건의 성격, 피해 사실 여
부, 억울한 피해자의 범위를 둘러싸고 진상규명 작업은 큰 난항을 겪을 것이 예상된다. 그 동안
좌익으로 분류되어 사망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문제는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양보하기 어려
운 공식해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화운동 보상법 및 의문사진상규명법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공인받고, 군사독재 과
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직접적으로는 1998년 11
월 4일부터 1999년 12월 30일까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전개한 유가협 회원들의 노력
의 결과다. 민주화운동보상법은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하 의문사진상규명법)과 함께
1999년 12월 28일 국회를 통과하였고주지하다시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이하 민주화운동보상법)’은 2000년 1월 13일 두 법률에 대해 서명식을 갖고 공포하였다. 이후
정부는 행자부에 두 법 시행을 준비하는 지원단을 구성하였으며, 이 두 지원단은 우선 시행령 마
련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화운동 보상법의 경우 민주화 운동의 개념을 둘러싸고 큰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보
안법 관련자, 노동운동가를 민주화운동가로 포함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큰 쟁점이다한편 보상을
둘러싸고도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체로 보상 중심으로 정부가 대처하기 때문에 민
주화 운동의 대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보상을 포기하고 있으며, 획기적인 법 개정이 없이는 이
것으로 인해 과거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훼손되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세력이 면죄부를 받게 되
며, 또 의문사의 진실규명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의문사 진상규명운동의 경우 애초에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생명권 침해사건(고
문, 실종,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였으나 ‘의문사’만을 조사하는 특별법으로 결론이
났고, 대통령 산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현재 80여건에 대한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
지고 각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의 권한은 약하고, 조사기간도 짧
으며, 조사는 할 수 있어도 수사나 처벌이 불가능하고, 양심선언자에 대한 사면, 제보자에 대한
보호조항, 처벌조항 등이 미약하다. 그래서 계승연대에서는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제보와 양
심선언 캠페인’을 진행함과 동시에 법개정운동을 추진 중이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는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법’의 시행에 따라
① 처음으로 약한 수준에서나마 지난했던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②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피해의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③ 의혹으로만 떠돌던 의문사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④ 이를 통해 과거 학정의 주역들을 밝혀내 이후 응징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으며
⑤ 이는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강고히 구축하는데 기여함과 아울러 국가적 차원의 기념사업
으로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및 군사정권 하에서의 학살 및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운동이 이처럼 특별법 제정으로 약간의 진전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문제나 한국전 당시 미군과 한국 군,경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문제는 아직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했다. 따라서 공권력이 자행한 대
량학살 건에 대해서는 정부나 정치권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아직은 운동의
차원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는 현재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주로 다루
고 있다. 이 단체는 베트남전당시의 한국군 학살은 비록 전쟁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반
인도적인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면서 피해실태조사,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 사업, 평화역사기념관
건립사업 등 각종 문화 행사 등을 통해 베트남전의 진실을 들추어내고 피해자들에게 응분의 사과
를 하기 위한 취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전 당시 발생한 민간인 학살 문제는 이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풀기어려운 과제이다. 그것
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당성이 6.25 전쟁에 근거해 있으며, 전쟁과정에서의 희생을 불가피한 희생
이거나 혹은 좌익 소탕을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공식적인 시각이 엄연히 지배하고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 전국적인 진상조사 작업에 착수할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
고 있으며, 노근리 사건 해결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 측의 활동을 그냥 따라가는데 그치고
있다. 결국 올해 초 클린턴 대통령이 노근리에서 미군이 한국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이 발표되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작업에 찬물이 끼얹어지고 말았다. 향후 한국
정부가 수십건의 특별법 제정 청원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청원 건을 어떻게 해결하려하는지가 주
목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
민위원회가 조직되어 통합특별법 제정과 피해실태조사 자업, 집단 소송과 청원에 지원 사업을 전
개하고 있다.
한편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정신대)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사회와 관련자 처벌 및 보상 문제
는 여전히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한채 미제로 남아있다. 특별히 작년 12월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이 시민단체 주도로 일본에서 개최되어 주목을 끌었다. 물론 이 법정은 유고나 르
완다 전범 재판처럼 법적인 강제력을 갖지 못한 것이었지만 상징적으로나마 전범을 기소하는 절
차를 밟아 범죄를 처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3. 향후의 과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청산 작업은 진실의 규명이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이다. 가해자에 대
한 처벌 혹은 사면, 피해자에 대한 보상, 혹은 위령 기념사업은 모두 진실이 확인되지 않는 조건
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치권력이 과거의 폭력을 자행한 정권과 직접 연결되어 있거나 정치
가 혹은 지배집단이 가해집단과 이해관계로 얽혀 있을 경우 이러한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 자체
가 기득권 유지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문제의 제기 및 해결에 대단히 소극적이
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학살사건이 가
장 먼저 공개되고 특별법이 제정된 이유도, 그것이 발생된지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
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6월 항쟁이라는 민주화운동 광주민주화 운동의 연장 속에서 발생했으
며, 이후의 문민정권이 광주민주화 운동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한국전당시의 민
간인 학살이나 베트남 전 당시의 민간인 학살 문제가 아직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사건이 모두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수립된 분단국가의 권력기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정착 혹은 독재를 뒷받침했던 법들이 폐지되지 않는 상태에서 과거청산이
시작되거나, 진실의 규명이 불철저한 상태로 과거청산이 이루어질 경우 그것은 반드시 책임자 처
벌이나 역사바로잡기와 같은 과제를 배제한 채, 피해자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나 형식적인 위령
사업 등으로 왜소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운동의 객관적 의의 혹은 국가폭력의 피해 사실
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 등은 왜소화되거나 망각되어 버리고 오직 국가가 개인적 피해를 구제하
는 양상을 지니게 된다. 즉 전쟁범죄나 국가범죄는 분명히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인데도 불구
하고 그것을 개인적 소송, 피해보상 등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부분적으로 해결될 수는 있으나 진
정한 역사청산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 경우 과거는 청산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할 가능성이 있
다. 일본에 신우익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과거 동경재판의 불철저한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고, 독
일에서 신나찌가 등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과거청산은 어떤점에서 미래를 위한 정치
투쟁이며, 그것이 가진 정치적 성격을 거세할 경우 그 결과는 개인적 피해보상을 얻어낸 대신에
국가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해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국가폭력은 재연될 수 있는 기반을 갖게되
는 것이다.
과거청산 운동이 정치적 사회운동이라고 본다면 그것의 최종의 목표는 단순한 특별법의 제정
이 아니라 정치 사회가 그러한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정치사회적 법
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의 과거청산운동의 경우 이러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
과 같은 일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1) 관련 자료의 확보

국가의 범죄행위 특히 의문사 및 학살 사건의 경우 정부나 관련자들이 조직적으로 자료를 폐기
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사건의 실재를 입증하는데 있어서 관련된 자료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는 문헌자료의 확보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 제보나
목격자들의 양심선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관련 문헌에 대한 정보 공개, 연구자들
의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 피해자(가해자)들의 발설하기
한국은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고, 가해세력이 지금까지 계속권력을 장
악해 왔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조직화가 유난히 어렵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
으로 양심선언한 경우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피해자나 양심적인 가해자들이 입을 여는 것이 대
단히 여럽고, 그것이 문제해결의 가장 큰 장애이다. 우선 이들이 입을 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보복의 두려움, 가해자가 자신의 동료들로
부터 당할 수있능 압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정
보공개법, 부패방지비, 내부자 보호법 제정 등을 통해 과거 사실을 발설하는 사람이 피해를 입
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환경을 조성한 다음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이들을 설득하여 발설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2) 피해자들의 운동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회나 한국의 5.18 유족회, 혹은 민주화 운동 유가협 회원들의 투쟁
에서 볼 수있었듯이 피해자의 끈질진 항의와 운동만이 정치권력과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
인 힘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항의집회처럼 아직 충분한 결실을 얻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일단
으로 그러한 지속적이고 완강한 문제제기가 전제되지 않고서 정치권력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3) 여론의 조성과 역사교육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권력이 과거의 일들이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교과서에서 삭제했기 때문
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설사 일어난 것에 대해 알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주로
이러한 작업에 앞장서야 한다. 과거 사실의 발굴과 진상의 규명, 그리고 그 사건이 가는 성격과
의미, 그것이 오늘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혀주는 작업이 언론, 대중문화 매체,
교과서 등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때로 이러한 작업은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 투쟁
의 양상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곧 교육적인 효과를 지니게 될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
이 사실을 인지하고, 그 해결의 필요성을 공감할 때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는 풀릴수 있을 것이
다.

4) 국제연대
국제법정의 구속력과 효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인 여론조성이
가해자이자 일차적인 문제해결의 주체인 개별 국가에 미치는 압박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
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지난 50년 동안 발생했던 국가폭력 관련 사건들은 대체로 미국의 묵인과
지지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의지 못지 않게 미국의 의지도 중요하
다. 현재 한국의 전민특위에서는 미국을 전범국가로 제소해 놓고 있는 상태이지만, 미국 내에서
의 여론조성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5) 종합적인 구상

과거청산 운동은 미래 구축 작업이므로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원상태로 복원하는데 중점을 두어
서는 안되며 이후 기념사업을 위한 종합적인 상을 그리고 운동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사망자가
되살아나는 일이 없듯이 이러한 사건의 해결이란 곧 억울한 죽음의 의미를 정치사회적 죽음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특별법 제정 작업에서도 법 시행 전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한 전략적인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전술적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
다. 그러한 프로그램은 새로운 사회건설의 청사진을 염두에 두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 범죄
를 규명하고 그 잘잘못을 가린다는 것은 곧 국가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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