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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2년 환경정책 평가 토론회 – [토론글]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0. 참여정부의 환경정책의 파탄은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정부는 출범시 일정 부
분 개혁 성향의 정체성을 내세웠지만 환경에 대해서만큼은 일관되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왔
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대 정권의 개발정책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
서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반환경적인 모습이 시사하는 몇 가지 생각해볼 거리는
있다.

1. 우선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이들은 획기적인 친환경정책을 기대했다기보다는 환경정책
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과거 정권보다 더 강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 현재 진행되는 환경문제는 정치인, 언론들이 얘기하듯이 ‘환경(생명)과 개발’ 간의 대립
이라기보다는 그 근원에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의 결여가 놓여 있다. 참여정부는 노무현 대통
령 후보 시절과 당선자 시절 과거 정권이 벌여놓은 대형 개발 사업에 대한 재고를 약속하는 등
이런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그런 약속들이 오히
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참여정부 역시 이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참여정부는 각종 갈등해결모델이나
위험 평가 기구에 대한 강조를 끊임없이 ‘립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해왔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에 참여하는 일부 인사의 경우에도 개인적인 수준에서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역시 엉터리로 추진하는 일에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하거나, 불
신의 골만 깊게 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겠다.

– 하나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일본과 같은 ‘토건국가’ 모델로 구조화돼
있다는 것이다. 산업자본이면서 토지자본이기도 한 기업, 관료, 정치인, 언론 등이 중앙, 지방
할 것 없이 얽혀있고, 이것은 일종의 자기 동력을 갖고 끊임없이 재생산을 하고 있다. 여기서 주
목할 것은 이미 엄연한 구조로 존재하는 이상 기득권 세력뿐만 아니라 국민 상당수도 이런 구조
를 통해 (그것이 비록 단기적이고 중장기적으로 자기 파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수혜를 입고 있
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여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권이 지속적으로 경기하강 국면에서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
양, 대규모 국가 주도의 토목 정책을 펴왔고 거기에 대해서 국민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동조를 해
왔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최근의 대표적이면서 가장 엉터리로 진행되는 예가 바로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업도시’일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환경에 대한 또렷한 국정 철학이
부재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정책으로 견인할 만한 동기도 없었던 참여정부가 쉽게 기존 기득권
세력에 포획된 것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 다음은 각종 갈등 해결 모델이나 위험을 평가하는 기구에 대한 강조다. 사실 각종 갈등 해결
모델이나 위험을 평가하는 기구에 대한 강조는 그것이 시작된 서구에서는 일종의 ‘사전 예방적
성격’이 강했다. 즉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그 가능성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합
리적인 대화의 토대를 마련해보자는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갈등 해결 모델이
나 기구에 대한 강조는 이미 갈등이 상당 부분 진행돼 양측 다 깊은 불신의 골이 생긴 후에, 한
쪽(대개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일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새만금 간척사업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대상 자체도 과거 정권이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비합리적이고 불투명한 절차
를 통해 추진해온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갈등 해결 모델이나 위험 평가
기구의 안건이 되지 못할 사안을 가지고, 이미 불신의 골이 깊어진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중립
적이지 못한 중재자(정부)가 일을 벌이는 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서구 참여민주주
의, 심의민주주의 제도적 성과들이 하나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변질돼 이름만 남은 채 추
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앞에서 언급한 토건국가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는데 일부 제도만을 지엽적
으로 수정ㆍ도입한 데 있다. 즉 서구에서 이런 제도들이 확립된 것은 어느 정도 국가의 개발 시
스템에 대한 관행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존 시스템
을 완고하게 고수하면서 이런 제도들을 도입하는 시늉을 해 ‘분칠’만 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2. 그렇다면 앞에서 살펴본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환경운동의 대응이 보여준 아쉬운 점을 한두 가
지 짚어 보겠다.

– 우선 정부나 환경단체들이 부쩍 강조하는 ‘거버넌스’를 살펴보자. 원래 뜻을 고려하면 ‘협
치’로 번역할 수 있는 이것은 일종의 시스템의 변화를 전제한 지배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
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참여정부는 사실상 시스템의 변화는 거의 전무하다. 그런 상황에서 ‘거
버넌스’의 강조는 말 그대로 시민사회를 포섭하기 위한 일종의 통치기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예를 들어 ‘거버넌스’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최소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호약속
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서로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
금 정부와 환경운동 사이에서 주고받을 게 있는가? 혹시 ‘말은 통하는 (통한다고 믿고 싶은?)
과거의 동지’들과 협의(?)하는 것을 ‘거버넌스’가 실현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환경단체 일반이 갖고 있는 ‘대안’ 강박증이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언론까지 (자기들
의 임무 방기와 태만은 고민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
다. 사실 지금 환경단체의 문제점은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반대도 못 하고 있는 것
이다. 예를 들어 연말에 줄줄이 통과된 기업도시법을 필두로 한 각종 개발법안이나 골프장 규제
완화 정책을 거의 손놓고 다 놓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여론의 주목을 받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되는 그간의 환경운동의 관행상 그 결과가 실
제화 안 된 이런 법안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치명적 결과
가 명백히 예상되는 이런 법안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환경단
체의 무기력증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이 법안 때문에 전개될 각종 반환경 정책이 실제로 수행
될 때 그것을 다 어떻게 감당하고 막을 것인가? 또 법안이 통과될 때 뭘 하고 있었느냐는 악의적
인 비판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 이번 지율스님 단식 사태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당시 환경단체는 거의 손을 놓
고 사태를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통정책과 같은 대안을 말해야 하는 게 환경단체의 역할인
데, 그런 극단적인 ‘종교인의’ 방식에 동조할 수 없다는 명분이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서 똑
같은 종교인들의 자기 고행을 통한 헌신적인 실천이었던 새만금 삼보일배에 처음부터 끝까지 환
경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환경단체만의 생각이다. 지율스님 단식의 효과는 그 과정에서 환경단체가 어떤 입
장을 취했든 환경운동 전체의 공과로 시민들에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문제는 몇 주
간 전 국민적 관심사였던 사안이다. 당연히 환경단체는 지율스님과 ‘따로 또 같이’ 전략을 취
하면서 이 문제가 단지 도롱뇽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 환경정책과 그 동안의 개발 관행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적극 알려낼 의무가 있었다. 만약 지율스님의 목소리
에 부족한 게 있었거나 기존 논의에서 미흡한 게 있었다면 환경운동의 목소리를 덧붙여서라도 그
런 목소리를 내려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단식사태가 끝난 후 언론과 정부가 쏟아낸 각종 비판이
나, 또 3개월 공동 환경조사가 결국 별 성과 없이 끝날 때 지율스님이나 환경단체에 쏟아질 비
판을 염두에 둔다면 환경단체의 소극적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3.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기로 하자.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사실상 ‘과학기술의 정치’
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지난 한해 우리나라 전체를 달궜던 황우석의 인간배아 복
제 연구 문제나 전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유전자 조작 식품(GMO)에 대해서 환경
운동은 ‘강 건너 불 보듯’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최신의 과학기술
이슈에 침묵(또는 묵시적인 반대)으로 일관하면서도 ‘지구 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데 있어서는 일부 기후학자들의 ‘재앙 시나리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는 것이다. 이런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앞으로 환경운동에 큰 장애물로 다가올
것이다.

먼저 현대 과학기술은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변수일 뿐만 아니라, 이미 국정 운
영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 정치의 주류 개념인 ‘혁신’을 향후 국
정 운영의 키워드로 내세운 데서 또 행정수도 이전 등을 국가혁신체제, 지역혁신체제로 이어지
는 과학기술 혁신 논의와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앞으로 언급한 배아
복제 연구나 GMO같은 대중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각종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이 대안적인 초록
정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운동에게 큰 과제로 다가오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
이다. 지금이라도 입장을 정리하고 대응 역량을 기르지 않은 채 마냥 미뤄둘 수 있는 문제가 아
니라는 것이다.

한편 환경운동의 ‘과학주의’적 대응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와 같은 환경문
제를 접근할 때 과학적인 증거들(대부분 ‘재앙 시나리오’)에 기대면서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
은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각종 재앙 시나리오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
가? 그 때에는 지구 온난화에 대응해 환경단체가 주장했던 각종 대책들이 무의미해진다는 얘긴
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인 근거들을 통
해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환경운동의 실력을 쌓는 어려
운 길을 가야 한다.

자료출처 : 환경정의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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