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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제5차정책포럼 – WTO와 문화

글 :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
1. 전사(前史): 영화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 사수투쟁

새로운 무역라운드인 DDA의 출범으로 문화개방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로 인해
문화개방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해야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자유무역 사이의 갈등이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당시 문화개방에 대
한 협상이 있었고, UR과 이후의 여타 과정을 통해 이미 문화의 상당분야가 개방되어 있는 상황이
다. 그리고 개방협상의 첫 번째 대상이 된 것은 영화분야였다.

1980년대 들어 미국은 한국이 미국 영화에 대해 불공정한 수입 규제를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했고, 이로 인해 1985년과 1988년에 두 차례에 걸친 ‘한·미 영화협상’이 열렸다. 이 협상에서
한국정부는 미국의 요구사항 중 상당부분을 수용하여 미국영화사 한국 내 지사 설치 허용, 외
화 수입 가격 상한선 및 수입쿼터 제도 조기 철폐, 외화 수입 1편당 1억원이던 국산영화진흥자
금 납부 제도 폐지, 영화업 등록시 내야하는 예탁금 7억원을 5천만원으로 인하, 시판용 비디오
테이프의 합작투자·생산판매 허용, 외화 복사 필름 벌수 제한 폐지 등의 내용을 합의하였다.
한국은 1차 협상 때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영화법을 개정하였고, 1987년 7월 1일 ‘6차 개
정 영화법’의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한국은 영화상영을 제외한 영화의 전
부문을 개방하였다. 1988년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가 시작되자, 영화인들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이미 합의된 내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미국의 직배영화는 차츰 한국 영화시장을 잠식
해 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한국영화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된다. 1980년대 중반에 30∼40%에
달하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직배영화의 허용이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1993년에는 15.9%
까지 추락하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들어 한국영화는 다시 회생할 조짐을 보인다. 대기
업의 영화산업 진출, 새로운 기획시스템의 등장 등을 배경으로 꾸준히 산업화의 길을 모색하던
한국영화가 다시 시장점유율을 늘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기반을 닦
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영화의 유통기회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스크린쿼터제가 있었기에 가능했
다. 시장 개방은 한국영화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위기를 불러왔고, 재
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기반은 오히려 개방을 하지 않고 유지했던 스크린쿼터제라는 문화정책이
었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 미디어기업들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용인하지 않았다. 1998년 한국
의 제안으로 체결을 시도했던 한미투자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의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자국의 재화와 용역의 사용을 강제할 수 없다’고 규정한 양자간
투자협정 표준문안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면서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를 요구하였다. GATT 4조는 스
크린쿼터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제는 국제경제법상 아무런 하자가 없는 제도이
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양자간투자협정의 문안을 근거로
이 제도를 폐지하라는 억지 주장을 편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당시 한국 정부는
수용하려 했었고, 이에 스크린쿼터제를 지키기 위한 국민적인 저항이 이어졌다. 한국 영화인들
과 문화예술인들의 투쟁에 시민사회단체와 국민의 지지가 이어졌고, 결국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
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미투자협정 과정에서 미국이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강력히 요구한 것은 한국을 굴복시킴으로써 영화도 무역협정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원칙
을 분명히 하고,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는 국가들의 문화논리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
이었다. 이후 미국의 문화개방에 대한 공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문화 역시도 자유무역의 협상대상이 되었다
는 것과 자유무역질서가 우리 문화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고, 우리문화 발전을 위한 문화정
책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고가 거세짐에 따라 문화개방
에 대한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DDA의 출범과 GATS 협상의 본격화

새로운 무역라운드인 DDA의 출범으로 문화개방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먼저 DDA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제4차 WTO 각료회의는 DDA(Doha Development Agenda: 도
하개발의제)의 공식 출범을 결의한다. 각료회의는 DDA의 논의의제를 기설정의제(BIA: Built-In
Agenda)였던 농업과 서비스 등으로 한정하면서, 대신 7년 이상 소요되었던 UR의 전철을 밟지 않
기 위해 협상을 3년 안에 끝내기로 합의했다. WTO를 구성하는 주요협정 중 하나인 GATS(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는 DDA의 일정에 흡수되어 본격적
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GATS는 2002. 6. 30 까지 양허요청안(타국에 대한 시장개방 요구안)
제출, 2003. 3. 31까지 양허안(자국의 시장개방 계획안) 제출, 2005. 1. 1. 협정의 공식 출범이
라는 일정을 가지고 협상을 진행중이다. GATS는 법률, 의료, 우편, 통신, 건설, 유통, 교육, 환
경, 금융, 운송 등 서비스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문화분야 역시도
GATS가 분류해 놓은 서비스에 포함되어 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GATS의 서비스 항목 중 문화
와 관련된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① 사업서비스: 기타사업서비스(광고, 사진, 인쇄·출판서비스 등)
② 커뮤니케이션서비스: 시청각서비스(영화, 방송, 음반서비스 등)
③ 오락·문화·스포츠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뉴스에이전시, 도서관·박물관,
스포츠서비스 등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이미 UR과 이후 협상 과정에서 문화분야의 상당부분을 개방한 상
황이다. 한국은 광고서비스, 사진서비스, 신문·정간물을 제외한 인쇄·출판서비스, 영화 및 비
디오 제작·배급서비스, 음반서비스를 개방했다. 전체 WTO 회원국들의 개방현황을 살펴봤을 때,
이와 같은 한국의 개방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일례로 144개 WTO 회원국 중 영화 및 비디오
제작·배급서비스를 개방한 나라는 23개국에 불과하다.
우리의 문화 개방수준이 높고, 무분별한 개방으로 우리문화의 위기를 초래한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2년 6월 DDA 양허요청안 제출 당시, 다른 나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화시
장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이 양허요청을 하고 양허요청을 받은 현황을 살펴보면, 먼저 우리나라
는 중국, 미국, EC, 동남아 등 22개국에 대하여 광고, 출판, 영화 및 비디오 제작·배급, 음반,
공연 등의 분야에서 양허요청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중국, 뉴질랜드, 브라질, 멕시
코 등 13개국으로부터 사진, 출판, 영화상영, 방송,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에 대한 양허요청안
을 접수받았다고 한다.
정부가 문화분야에 대한 양허요청안을 제출하면서 편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이미 문
화분야의 많은 부분을 개방한 상태인 만큼 공세적으로 대외협상에 임해야할 필요가 있고, 무역장
벽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최소한 우리나라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여 국내 문화산업의 해
외진출을 효과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GATS에서도 문화정체성 유지를 위한 방안이 마련
될 수 있고, 이것은 미국 등의 국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가 많이 개방했기 때문에 다른나라에 우리만큼 개방할 것을 요구해야한다는 논리는 일면 타
당한 듯 보인다. 그러나 무역협상의 틀 안에서 문화개방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것 자체가 문화를
일반상품과 똑같이 취급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과 같다. 그리고 개방요구는 우리에 대
한 개방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결코 우리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없다. 또, GATS에서도 문화정체성 유지를 위한 방안이 마련될 수 있다하지만 이것은 미국
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스크린쿼터제를 인정하는 GATT 4조를 예로 들면서 이
러한 주장을 펴고 있지만 지난 한미투자협정의 과정에서 확인한 것과 같이 미국의 주장은 이율배
반일 뿐이다.

DDA의 문화개방 협상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의 입장이 제시되고 있다. 캐나다와 같이 문화적 가
치를 존중하는 나라들은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고자 하는 국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유무역에 반대
하면서, 문화본연의 가치가 지켜지는 새로운 국제기구가 설립될 때까지는 국제통상협정에서 문화
분야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현재의 무역규정
내에서도 시청각서비스의 문화적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청각 서비스
의 무역은 더욱 투명하고 예측가능하며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DDA
GATS 협상을 통해 본격화된 문화개방 압력은 이제 WTO 회원국들이 문화의 논리와 무역의 논리
중 한 쪽을 선택해야함을 의미하고 있다.

3. 자유무역에 맞선 국제사회의 대응

문화가 자유무역의 대상이 됨으로 인해 각국의 문화정체성과 인류의 문화다양성은 심각한 위기
를 맞고 있다. 특히 산업적으로 발달한 시청각서비스 분야에서 문화의 독점, 획일화 현상은 더
욱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할리우드 영화에 의한 독점현상이다. 현재 할리우드 영화
는 전세계 영화시장의 80%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영화들이 멸종의 위기
를 맞고 있다. 1998년에 벨기에 영화는 자국시장에서 0.5%, 네덜란드 영화는 5.6%, 룩셈부르크
영화는 0.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호주영화는 1999년에 3%의 점유율을 기록했고, 캐나다 역시
평균 3%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영화는 국가의 지원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처지이며, 인도네시아 영화의 경우는 더욱 절망적이어서 2000년 자국시장의 점유율이 0%였다. 이
상의 통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역자유화가 미국영화의 일방적 확대와 문화획일화를 불러왔고, 이
로 인해 다양한 인류의 문화는 하나씩 인류의 문화환경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를 느끼는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문화정체성을 지키고 인류의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 왔다.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들이 처음 취했던 행동은 ‘문화
적 예외’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문화적 예외는 무역협정에서 문화개방에 대한 어떠한 요구
도 하지 않고, 요구받지도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1995년부터 OECD 가입국들이 체결을 시도
하던 ‘MAI(Multilaterl Agreement on Invesments: 다자간투자협정)’가 문화분야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1998년에 파기되자, 문화다양성의 문제는 국제사회의 시급한 현안으로 제기되
었다. 국제사회는 ‘문화적 예외’가 무역협정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
을 인식하고 문화다양성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재 47개국
문화부장관들이 참여하고 있는 ‘INCP(International Network on Cultural Policy: 세계문화부장
관회의)’가 발족하였고, 이어서 세계 문화NGO들의 총회인 ‘INCD(International Network for
Cultural Diversity: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가 출범하였다. INCD와 INCP는 매년 총
회를 개최하면서 자유무역에 맞서 문화다양성을 확대하기 방안들을 모색해 왔다.
세계문화계는 자유무역질서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법적 강제력을 가지는 ‘문화협약’의 체
결을 모색한다. ‘문화협약’은 각국의 문화정책을 진흥하고, 다른 문화를 침해하지 않는 문화교류
를 확대하기 위한 협약이다. 무역협정에서 문화를 다룸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
해 문화에 대한 논의를 무역협정에서 완전히 제외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문화협약’을 마련한 것
이다. 2002년 10월 남아공에서 열렸던 INCD-INCP 총회에서는 ‘문화협약’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
가 진행되었다. INCD와 INCP는 총회가 끝난 후 각각 ‘문화협약’의 초안을 완성하여 발표하였다.
DDA의 출범이후 문화시장 개방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자, 국제사회는 DDA에 맞서기 위한 본격적
인 대응에 나선다. 2002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렸던 제9차 ‘프랑코포니(Francophonie:
불어사용국) 정상회의’에서는 55개국 정상들이 ‘베이루트 선언서’를 채택하여, 문화를 단순 상품
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면서, WTO 협상에서 문화분야를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10월 브릭슨에서 열렸던 ‘문화와 교육 분야 유럽지역 장관회의’에서
는 ‘브릭슨 선언서’를 채택하여 문화다양성과 이를 지지하기 위한 바탕으로서의 공공성의 확대
를 요구했다. 특히 이 선언서는 교육분야와 문화분야가 시장경제에 의한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전
락할 때 필연적으로 소수의 독점이 심화되고 공공성과 공영성의 영역들은 급격히 파괴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WTO GATS 협상에서 교육과 문화가 완전히 제외되어야 함을 밝혔다.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협약’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들이 계속되었다. 지난 2월 초, 프랑스 파
리에서 35개국 100여개 문화전문가 단체의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던 제2차 CCD 총회(문화
전문가단체회의)에서는 유네스코를 통한 문화협약 체결이 결의되었다. 유네스코는 이미 2001년
제31차 총회에서 186개 유네스코 회원국 대표들의 동의로 ‘세계문화다양성 선언서’를 채택한 바
가 있다. 세계문화다양성 선언은 4조에서 문화다양성의 수호가 인류의 윤리적 의무이며 인간 존
엄을 존중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8조에서 문화는 단순 생활용품이나 소비
자상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9조에서 각국 정부는 자신의 실정에 맞는 문화정책
을 수립,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문화다양성 선언’은 단지 원칙적인 선언
에 머물렀고, 눈앞에 다가와 있는 자유무역질서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지는 못
했다. 유네스코를 통한 ‘문화협약’ 체결 결의가 갖는 의미는 유명무실한 기구였던 유네스코를 무
역의 상징인 WTO에 맞서는 ‘문화의 상징’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2005년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협약’을 발효하는 것을 목표로 구체적인 작
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31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166차 유네스코 집행이
사회에는 프랑스, 캐나다, 독일, 그리스, 멕시코, 모나코, 모로코, 세네갈 이상 8개국이 공동발
의한 문화협약에 대한 안건이 상정되어 있다. 여기서 ‘문화협약’에 대한 안건이 집행이사국의 과
반수 찬성을 얻게 되면 올 9월말에 개막될 제32차 유네스코 총회의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다. 32
차 총회에서 다시 회원국의 과반수 찬성으로 안건이 통과가 되면 유네스코에서 ‘문화협약’을 체
결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2005년 33차 총회에서 최종문안이 2/3이상 동의를 얻게 되면 ‘문화협
약’은 공식 발효된다. 이후 각국이 이 협약에 가입하게 되면 비로소 WTO를 대신하여 문화에 대
해 논의할 형식적 틀이 완성된다. 물론 이것이 간단한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계속되
는 자유무역질서의 위협에서 다양한 인류의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4. 시청각서비스를 양허안 제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결정이 갖는 의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2월 중순에 WTO DDA 양허안 제출 때 시청각서비스를 제외하기로 결
정했다. 그리고 문화적 예외의 원칙을 앞으로의 국제통상협상에서도 유지해 가겠다는 방침을 밝
혔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변화는 16개 문화예술단체의 연대기구인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 의>를 중심으로 한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수위의 발표는 지금까지의 산업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문화적 가치가 중심이 되는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중대한 결정이
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정책이 진정한 문화정책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기에 머물러서
는 안될 것이다. 발표내용을 분명하게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문화적 예외의 원칙을 지켜가
기 위해선 작년 6월에 제출했던 문화분야 양허요청안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은 시청각
서비스에 대한 양허안은 제출하지 않았지만 이미 제출했던 양허요청안은 철회하지 않은 상황이
다. 우리는 개방불가를 천명해 놓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꼴이다. 양허요
청안을 철회해야만 앞으로의 무역협정에서 문화적 예외의 원칙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서 더 나아가 ‘문화협약’ 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것만이 계속되는 자유무역협
상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에 ‘문화협약’ 체결을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정부가 새로운 문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했음에도 최근 불길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
월 미국에서는 MPAA, AOL 타임워너, MGM, 20세기 폭스, 소니, EMI 등 거대 미디어 기업들과 이들
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들을 멤버로 하는 ‘자유무역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산업연대(EIC-
Entertainment Industry Coalition for Free Trade)’가 구성되었다고 한다. 세계 문화계가 구체
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자, 미국중심의 거대미디어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
과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연대기구를 구성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미국의 압력도 구체적으
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이후 미 대사관의 경제참사관은 한국의 제 영화단체들을 방문하
여 스크린쿼터제의 축소 및 폐지를 설득해왔다. 또 3월 26일에는 미국재계협의회 마이런 브릴리
언트 부회장이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한미투자협정(BIT)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의 걸림돌로 스크린쿼터제를 지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화
답하듯, 한국의 일부 경제관료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4월 9일 민주당 강봉균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스크린쿼터제의 축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
스크린쿼터 논쟁의 불을 지핀 이후로 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일부 언론과 일부 경제관료들의 마녀
사냥식 ‘스크린쿼터 흔들기’가 계속되고 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가 가지
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 결코 어려운 싸움은 아닐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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