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초록정책 관련자료

환경갈등 해결을 위한 민간환경단체의 역할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191_Ecopeace2000(국문)서주원.hwp

환경갈등 해결을 위한 민간환경단체의 역할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1. 한국에서 갈등구조의 발생원인
– 정책결정자들에게 있어서 성장, 개발우선주의의 팽배
– 환경정책결정과정에서 폐쇄성
– 정책수행과정에서의 강압적 관료성

2. 갈등구조의 유형
– 정부정책(국책사업)에 의한 갈등
동강댐 건설사업, 새만금 간척사업, (핵, 유연탄)발전소 건설사업, 각종오염시설(소각장, 쓰레
기 매립장, 핵폐기물처리장, 분뇨처리장 등) 건설사업, (공항, 항만, 도로 등 )대규모 토목공사
등의 국책사업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사실 사업시행자와 건설업자
의 이해에 의해서이거나 그 사업의 시행에 따라 막대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일차적 피해자인 지역주민과 민간환경단체가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 기업개발사업에 의한 갈등
이 경우 이익집단과 피해집단이 더욱 명확해진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지역정치인이 개발사
업에 의한 이익집단이 되고 지역주민은 피해자가 되는데 민간환경단체는 환경파괴의 방지를 위
하여 주민의 편에서 개발을 저지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증대를 위한 무분별한 개발이 주
를 이루며 해인골프장이나 용화온천 등의 개발사업이 이 범주에 속한다.

– 지역간 환경갈등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이후 광역지방자치단체간 개발에 의한 이익과 환경오염에
의한 피해가 명확히 구분되어지는 경우 이들 간에 갈등이 일어난다. 위천공단 건설을 둘러싼 대
구지역과 부산, 경남 지역간의 갈등이 대표적이며 오염시설의 입지의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
타난다. 이때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와 피해지역의 주체가 명확히 구분되므로 갈등의 양상도
첨예하다. 피해지역의 모든 사회집단(민간환경단체를 포함하여)이 개발추진측에 강력히 반발하
게 된다. 이때 정부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함으로써 더욱 갈
등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

– 식민지적 상황에서의 종주국 혹은 다국적 기업이 발생시키는 갈등
매향리와 직도에서의 폭격연습장, 미군부대에서의 환경오염과 그 피해는 한국의 영토 안에서
오염자가 다른 국가이므로 갈등의 구조가 복잡해진다. 불평등한 행정협정(SOFA)으로 인하여 일반
적인 갈등의 해결과정으로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인 맥도
날드 햄버거, 레슬레의 경우처럼 불안전 식품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경우도 다른 갈등구조를 갖는다. 이 경우 민간환경단체는 직접적인 피해주민과 함께
갈등구조를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할 뿐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갈등의 당사자가 된다.

3. 민간환경단체의 역할
민간환경단체를 포함한 시민운동단체는 1980년대 후반이후 우리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
회집단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87년 민주화로 인해 열리게 된 정치적 기회구조의 확장, 시민운동
단체의 주체적 조건 성숙, 시민적 지지의 증대 등 내,외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개발사업이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합리적 과정 없이 결
정되었을 뿐 아니라 개발우선주의에 의하여 갈등구조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민간환경
단체는 중간조정자가 아닌 갈등구조에 편입된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한 당사자로서 기능하게 된
다.

– 주민 조직화
다양한 환경문제에 관한 정보를 선별하여 그 속에 자신들의 주장이나 요구를 담아 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관심이나 지지를 획득한다.

– 사회여론화, 국제여론화
정책형성과정이나 환경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 및 요구를 환경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하여 환경문제를 사회적 이슈나,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시켜 정책결정자로 하여금 진지하게 고
려하도록 만든다.

– 직접적인 압력 행사
정부기관의 환경정책의 문제점을 쟁점화하여 그 해결을 촉구하는 역할이다. 대중집회나 캠페
인,

– 다양한 세력의 결집(전문가 집단, 정치적 이해집단, 문화예술계 등)
갈등과정에서 다양한 집단을 결집하여 다양한 양태로 갈등의 모습을 표출시킨다. 여론화의 훌
륭한 수단이 된다.

– 대안 마련 및 제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방법 및 정책대안을 마련하여 정책결정자 및 정치인에게 제공한다.

4, 동강댐 백지화의 과정과 민간환경단체의 역할
영월지역에 댐을 건설하려는 계획은 멀리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까이는 1985년과
1988년에도 검토되었다. 그러나 타당성 조사 결과 댐건설 예정지로 부적절하다는 평가에 의해 추
진이 중단되었다가 90년의 영월지역의 홍수를 계기로 건교부와 수자원공사가 본격적으로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게 되었다.
동강댐 건설을 둘러싸고 건설교통부, 수자원공사, 일부의 수몰예정지역 주민들이 건설추진을,
그리고 환경단체, 언론을 통한 여론, 지방자치단체(강원도, 영월군 등), 해당지역 주민 그리고
환경부는 대체로 반대의 입장에서 2000년 6월 5일 대통령의 백지화 선언이 있기까지 2년여 동안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
동강댐의 갈등구조에서 민간환경단체의 역할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댐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영월군에서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댐건설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
했고 이에 반해 수몰 대상지역이 많은 정선군 주민들은 영월댐건설반대대책위를 구성하여 곧바
로 군민 궐기대회를 갖는 등 댐건설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선군의 경우에는 97년 9월 댐
건설 예정지 고시 이전까지는 적어도 수몰되는 지역의 주민들과 그외의 주민들 모두 반대하는 입
장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강이 댐건설 후보지로 기정 사실화되고 예정지로 발표되면
서 수몰지역 주민들은 댐건설에 찬성하여 보상책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런데
영월군 주민들은 초기에는 댐건설을 찬성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이다가 96년 10월부터는 영월댐건
설반대추진위원회를 구성, 반대운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환경단체의 동강댐반대운동이 본격화
되고 지역주민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등 조직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수몰지역주민들의 보상중심 운
동은 약화된 반면 영월군 주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운동은 점차 강력하게 진행되었으며 99년
들어서는 정선군 지역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운동도 활발히 재개되었다. 또한 영월·정선
·평창 3개군 의회의 반대 결의, 강원도지사의 댐건설 반대발표 등으로 지역주민과 자치단체, 도
차원의 반대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일차적 이해관계에 있는 지역주민들의 조직화가 어떠
한 내용과 형태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갈등의 해결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둘째, 국내는 물론 국제연대활동을 통해 다양한 운동방식을 구사하고 시민 참여의 극대화에 주력
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댐건설 계획 초기단계부터 활동한 주민들과 달리 민간환경단체들은 댐
건설에 대해 주민들의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기에 동강댐 반대운동에 들어가게 되었
다. 이 무렵까지 민간환경단체는 동강댐 건설계획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으며 당시엔 댐반대
운동이 환경운동의 중요 영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대규모 개발사업저지운동이
대부분 그렇듯이 주민들만의 반대로는 운동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특히 정부가 주도하는 대
형 국책사업의 경우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추진되기 때문에 국민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설득
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대중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민간환경단체들은 주
민생존권 차원에 머무른 동강댐 반대운동을 전국 이슈화하기 위해 동강현지 답사, 엽서제작 등
을 통해 동강의 비경을 알려나가는 일을 시작으로 해서 공개토론회 개최, 각계 원로 100인 선언
발표, 동강사진전, 포스터·스티카·티셔츠 등의 제작을 통해 댐 건설의 문제점을 여론화시켜 나
갔으며 주민투쟁위와 결합하여 건교부장관 항의방문, 동강댐백지화 결의대회, 동강지키기 범국민
서명운동, 서울시내 10개 지역 집중캠페인 등 조직적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98년 12월에는 ‘동강
댐 건설계획 연내 백지화’를 목표로 전국민 참여를 호소하는 신문광고를 시작했으며 12월 중순
엔 시린 발목을 물에 담근 채 한강 잠원지구에서 여의도 선착장까지 뗏목시위를 벌여 동강댐 반
대 운동의 절정을 이뤘다. 이때부터 더욱 가속화된 동강댐 반대운동은 소설가와 시인 등 문학인
들의 성명, 산삼 심는 사람들 ‘농심마니’의 성명, 한나라당 반대성명 발표 등 직업과 계층을 불
문한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었으며, 99년 3월 PC통신 네츠고가 넷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
에서 투표자 중 무려 91%가 동강댐을 반대할 만큼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교
부가 댐건설 연내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자 환경연합은 99년 3월 각계인사 33인과 함께 ‘동강댐
백지화촉구 33일간 밤샘농성’에 돌입했으며 이 농성에는 무려 2천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또
한 국제적인 환경단체에 연대를 제안하여 그린피스·지구의 벗·시에라클럽 등 세계적인 환경단
체들이 동강댐 백지화 촉구 지지서명과 대통령에게 보내는 항의서한 등을 보내왔으며 유럽·미국
·인도·태국 등에 있는 국제 NGO단체들은 서울에서 ‘동강댐반대공동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
다. 동강댐반대운동이 국제적으로도 확산되자 김대중대통령은 사견임을 전제하고 동강댐 건설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고 이로서 건교부의 동강댐 건설계획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
다.
셋째,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전문가들의 조직화 및 대안제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건
교부와 수자원공사는 수도권지역의 홍수예방과 용수공급을 위해 동강댐 건설을 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환경연합은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회, 방송 출연, 언론 기고를 통해 공급위주의 물관리 정
책을 수요관리 위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물부족의 원인이 과다한 수요예측과 누수율 때문이
라는 것과 동강댐이 수도권 홍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밝혀냈다. 또한 동강일대 동굴 분포도
조사를 통해서 수자원공사가 엉터리로 동굴 수를 축소·조작한 것을 규명해냈다. 특히 댐건설에
대한 대안운동으로 펼친 물절약범국민운동은 정부의 공급위주 물관리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
게 했다. 대통령 지시로 ‘영월댐 건설종합타당성조사를 위한 공동조사단’을 만들 때에도 전문가
구성 및 운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결국 동강댐 건설 백지화 결론을 이끌어냈다.

admin

admin

(X) 초록정책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