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순환 활동소식

미나마타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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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중일 동아시아 환경시민회의가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물 오염과 건강의 영향’이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번 회의는 한중일 동아시아 환경정보 네트워크의 주최로 지난 2006년 중국 서안에 이어 한중일간의 수질 오염 방지를 위한 긴밀한 연대를 위해 모였습니다. 일본은 최대 환경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을 교훈으로 아시아권역의 수질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사건이 다시금 발생하지 않기 위하여 향후 환경NGO들의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입니다. 



▲제4회 한중일 동아시아 환경시민회의 ⓒ박종학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미나마타병은 이타이이타이병과 함께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공해병으로 꼽힌다. 그리고 아마도 일본 미나마타지역의 주민들이 수은으로 오염된 바다의 물고기를 섭취하면서 뒤틀림 등의 증세가 나타난 불치의 병이란 것이 대부분이 알고 있는 미나마타병의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병이 첫 발병 후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또다시 발생했고, 그 후 캐나다와 아시아 몇몇 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산발적,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지금도 이 병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세계적인 보도사진작가 유진 스미스의 1972년 작 ‘목욕하는 도모꼬’. 사진속의 도모꼬는 수은에 중독된 어머니
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미나마타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76년 2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미나마타병은 수은 중독 현상으로, 수은에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생물의 먹이연쇄를 통해 최종적으로 어패류를 섭취한 사람에게 수은이 다량 축적되어 발병한다. 증상은 근육의 뒤틀림과 경련, 시력·청력 저하 및 손실, 후각·미각 장애, 두통과 요통, 현기증, 건망증, 체력저하 등으로 보통 몇 가지 증세가 함께 나타나며,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수은을 일부 배출할 수 있는 치료법만 나왔을 뿐,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평생을 진통제와 함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나마타병의 첫 발생, 구마모토현 미나마타만

이 병이 처음 발견된 곳은 일본 구마모토현의 미나마타만 일대로, 남부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1952년 이상행동을 하는 기형 물고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52년에는 바다가 검붉게 변하며 해변으로 밀려온 물고기를 먹은 고양이, 개 등이 불과 물속으로 뛰어드는 등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그 다음해에는 주민들의 손발이 뒤틀리는 등 중추신경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그리고 56년 미나마타시에 살던 6살의 타나카가 처음으로 증세를 보고하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구마모토의 미나마타병을 발견하고, 59년 ‘미나마타병의 원인은 수은으로 추정된다’라는 보고서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미나마타만 근처에 있던 일본질소비료회사 칫소공장이 아세트알데히드를 만드는 과정 중 수은을 촉매제로 사용하면서 이것을 폐수와 함께 오랜 기간 방류했던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후 칫소공장은 얼마 되지 않는 위로금으로 주민과의 분쟁을 해결하려 하였고, 정부는 미나마타지역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나 정화, 보상 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1960년 미나마타의 발생이 끝났다고 보고, 새롭게 발병한 환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당시 인정된 111명의 피해자 중 47명이 사망하고, 현재 보상을 받고 있는 피해자와 미인정 피해자를 합치면 총 27,000여명에 이르는 공해병 환자들이 생기게 된다.


또다시 발생한 제 2의 미나마타병
 


▲ 제 2의 미나마타병이 발생한 니가타현의 아가노강. 강 주변 주민들은 대부분의 단백질원을 아가노강의 물고
기를 통해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이 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아가노강의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철재


1959년 일본 니가타현의 아가노강에 집단적인 물고기 폐사가 발생한다. 그리고 62년부터 손발이 저리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등 인근 주민의 건강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64년에는 고양이가 스스로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는 등 구마모토지역에서도 일어났던 ‘자살고양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구마모토 미나마타병 확인 이후 9년 만인 1965년, 니가타 미나마타병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정부는 첫 미나마타병 발생 이후 수은을 사용하는 질소회사 등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고, 정부정책의 개선도 없었다. 니가타지역의 미나마타병은 아가노강 근처에 있던 쇼와전공이 수은을 수년간 폐수와 함께 내보내면서 발생했던 것인데, 쇼와전공은 당시 정부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고 수은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 위험성을 과소평가 한데다, 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사전에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 니가타 쇼와공장이 있던 부지. 회사는 아세트알데이드 제조 과정에서 사용한 수은을 그대로 강으로 흘려보내
아가노강의 오염을 일으켰다. ⓒ한숙영


공해를 사회문제화 한 원점, 니가타 미나마타병

쇼와공장과 국가를 상대로 1967년부터 시작된 니가타 피해자들의 소송은 2004년까지 이어졌다. 67~71년에 벌어진 1차 소송은 주민의 승리로 끝났고 73년 체결된 보상협정을 통해 미나마타병이라고 인정되면 이 협정에 근거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정부의 미나마타병 인정 기준이 어려워지자, 미인정 피해자들을 비롯한 새로운 피해자들이 82년 2차 소송을 벌여 95년 국가의 최종 해결안을 통해 쇼와전공과 해결 협정을 체결한다. 당시 함께 진행되었던 구마모토 미나마타병 소송도 국가의 최종 해결안을 받아드렸다. 그러나 미나마타병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칸사이 소송은 2004년에 이르러서야 원고의 승소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일본 행정부는 사법부의 이러한 판단을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니가타 미나마타병과 관련된 일련의 활동들은 미나마타병이라는 공해병을 사회문제화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니가타 미나마타병이 공식 발표되었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나마타병이란 이름만 겨우 들어봤을 뿐, 유기 수은중독으로 인한 병이라는 것과 이러한 병을 일으키는 질소공장 등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긴 소송이 벌어지고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미나마타병의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반공해의 여론이 환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구마모토현의 미나마타병을 ‘공해의 원점’이라 한다면, 니가타의 미나마타병은 ‘공해를 사회문제화한 원점’이라고 불린다.


니가타 미나마타병 사건이 주는 의미

일본은 현대의 여러 주요한 질병에 대한 정책적 부재에 대해 ‘미나마타병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고 이야기 한다. 1,2차의 미나마타병을 겪으면서 임기응변적인 대처는 피해의 확대와 재발을 야기하고, 초기대응의 지연은 인권을 침해하고 행정에 대한 불신을 확대해 결국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크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된 것이다.

또한 니가타 미나마타병에서 보듯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점이 아니라 면으로 발생한다. 피해를 복귀하는데 있어 환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역 전체의 문제로서 환경오염을 파악해 대처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지역 내에 위치한 기업에 대해 국가의 관리와 규제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자체나 지역 시민조직이 기업과의 협정 등을 통해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내용은 2차 소송 후 맺어진 해결협정에도 ‘기업 활동에 있어서 지역 환경, 지구 환경의 보전에도 사회적 책무를 완수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37년 동안이나 진행된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한 피해 주민들의 소송은 4대 공해 재판으로 불리며 공해피해자구제법제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소송의 승리는 공해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도록 했으며, 그들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1992년 니가타 지역의 미나마타병을 주제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아가에 살다’의 한 장면.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미나마타병을 사회문제화 하여 공해병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숙영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나마타병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가 훼손한 환경이 결국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그 피해를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환경의 역습’이다. 우리가 지금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있는 환경과 생태계가 언젠가 그 피해를 그대로 인간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위기감은 환경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미나마타병

안타깝게도 미나마타병은 아직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일본 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가 모두 이뤄지지 않은 문제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제3, 제4의 미나마타병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만, 스라바야 가성소다 공장, 필리핀 민다나오 금광, 이리간 염소공장, 타이 차오프라야강, 인도 카르강, 캄보디아 대만기업에 의한 불법 투기사건 등이 모두 수은 중독과 관련된 사건들이다.

그 중 급격한 개발도상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중국의 경우는 특히 우려스럽다. 중국은 70년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아무르강과 합류해 오호츠크해로 흘러드는 송화강이 수은에 오염되어 70여명의 주민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오염원은 길림 아세트알데히드 공장과 염료공장, 전지, 전동측정기, 금광 정련공장 등이었다. 이러한 수은 오염 외에도 중국의 물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중국의 강과 하천, 호수의 70% 이상이 오염된 상태며 그 중 30% 가량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5급수라는 보고도 있다.




▲ 중국 회하강의 오염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 참석자. 80년대 심각한 물 오염이 발생한 회하강에 대해 90년대부터
중국정부는 강력한 복원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주변 기업의 불법 폐수 방류가 계속되면서 큰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다. ⓒ한숙영


이러한 시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나마타병의 의의를 바탕으로 한 전 지구적인 교류와 협력일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던 지역의 경험을 교류하여 지역적, 국가적인 공동의 예방과 대응을 해야 하며, 이것은 현재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피해 주민들이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누구보다도 바라고있는 일일 것이다.



니가타 피해주민 하루오씨의 이야기


▲ 물고기를 잡던 모습을 보여주는 니가타 미나마타병의 피해 주민 하루오씨. 그는 니가타 미나마타병의 2차
소송 원고로 참여했으며, 피해자 환자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숙영


“저는 공장에서 17km 떨어진 아가노강 하류 야스다시에 살았습니다. 여관 등 숙박업을 하던 사람이 많은 작은 마을이었죠. 아가노강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이 강에서 얻은 물고기는 마을 주민의 주요 단백질원이었습니다. 겨울엔 눈이 3m나 쌓이고 여름엔 강이 범람해 큰 가축을 기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59년, 제가 29살이 되었던 해 물고기의 집단 폐사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형태가 이상한 물고기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 것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주워다 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강 근처에 있던 쇼와공장의 폐기된 카바이트 통이 무너지면서 강으로 흘러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공장이 환경 문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964년 니가타 대지진 전후, 강의 물고기를 먹은 마을 고양이들이 벽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인 62년에는 주민들에게 손발이 저리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등의 증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것이 미나마타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심한 두통과 건망증, 이명 등에 시달렸고 냄새도 잘 맡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냄새를 맡지 못해 음식의 맛은 혀로만 느끼고 있고, 73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48일간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손이 떨려 담배 재를 떨어낼 수 없어 담배도 끊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제 가족들 모두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친구에게 미나마타병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 미나마타병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저는 미나마타병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병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심했기 때문에 가족과 형제들에게도 한동안 이 사실을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74년, 미나마타병 환자 신청서를 시청에 냈습니다. 주변에서는 돈이 필요해 거짓으로 아픈 척 한다는 편견도 심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75년 시에서 재검사 통보가 왔고, 저와 함께 재검을 한 모든 주민들이 인정을 기각 당했습니다.

우리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자식들이 나로 인한 주변의 편견으로 힘들어할까봐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함께 소송을 벌이기로 결정했고 결국 마을 15명의 환자들 중 3명이 원고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습니다. 도쿄 환경청 앞에서 가두시위도 하고, 구마모토 피해자들과 함께 조속한 UN 국회청원을 요청하는 활동도 벌였습니다. 도쿄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줄 때 그들이 격려해주던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1995년 12월 우리는 이겼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후원해준 사람들과 여론 때문에 더 이상 요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공동제소이기 때문에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8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구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은 끝났지만 피해 주민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더 이상 이런 일을 겪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미나마타병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사건의 교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자료관을 개관했습니다. 부디 우리가 했던 활동들이 이렇게 남아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 2001년 니가타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쇼와공장과의 해결협정을 통해 받은 기금으로 건립한 자료관 ‘환경과 인간의 만남의 관’ ⓒ한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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