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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지향)일기] 일하는 엄마의 매우 소극적 비건지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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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의 매우 소극적 비건지향일기

비건지향일기 – 경숙

 

 고기를 줄이자는 말은 아이들에게서 먼저 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기후 위기가 정말 심각한 것 같다며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더니, 고기도 좀 줄이고, 텀블러도 꼭 챙기는 것부터 실천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함께 노력해 보자고 결심했지만 실천은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출근하는 길. 저녁을 먹고 학원을 가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더욱더 바쁜 시간. 돼지고기 한 근 사서 고추장 양념으로 휘리릭 볶아내고, 상추 같은 쌈거리랑 차려내면 밥을 하는 사람은 손쉬운 한 끼라서 좋고, 밥상을 받는 아이들은 고기반찬이 나와서 좋은 모두가 만족하는 한 끼 밥상이 된다. 일하는 엄마에게 손쉬운 한 끼는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포기가 쉽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기 없는 밥상을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각종 나물 반찬, 비빔밥, 두부전골, 음식을 조리하는 시간은 길어졌는데 메뉴는 단조로워졌다. 밥을 하는 나도 힘들고, 먹는 식구들의 만족도도 떨어지는 밥상은 결국 다시 고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기 없는 밥상에 대한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너무 강박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천하기였다.
먼저 일주일 중 하루를 고기 없는 날로 정해 실천하기로 했다. 주로 주말이 고기 없는 날로 정해지는데, 시간이 쫓기지 않고 고기를 대체할 음식을 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두부를 이용한 음식도 전골이나 두부조림만 했었는데, 두부 강정, 두부 스테이크, 두부 샐러드, 면 두부를 이용한 스파게티 등 다양한 음식들을 시도하고 먹으면서 고기 없는 밥상은 행복해졌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엄마의 노동력으로 이뤄지지만 여기서는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한다.

 두 번째 실천 과제로는 고기를 먹더라도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반찬으로 먹어서 소비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오로지 고기만을 구워먹어 배를 채운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온 식구가 한 번에 kg 단위의 고기를 먹어치웠었다. 고기를 주식이 아닌 반찬의 개념으로 격하시키고 것만으로도 소비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고기를 줄이겠다고 인식을 하고 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유혹도 너무 많았다. 사소하게는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운 배달 치킨 냄새부터. 티브이와 유튜브 등 여러 다양한 매체를 틀면 나오는 고기를 잔뜩 먹어치우는 사람들의 먹방까지. 마치 모든 사회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런 환경에서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 피곤한 퇴근길 그냥 고기나 구워서 한 끼 때울까? 치킨 시켜 먹이고 말까? 하는 유혹을 매일 받지만 꾹 참아 이겨내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감자라도 볶는다.

 비건 지향 일기에 내 이야기를 써도 될까 고민했다. 고기를 완전히 배제할 자신이 없어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한 사람에서 열 사람으로 늘어나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까. 매우 소극적 비건지향인으로서 함께 하자는 말을 건내고 싶어서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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