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로 사는 방법 : 비건 지향을 시작하며
비건(지향)일기 – 시아(1)
비건(지향)일기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비건(지향)일기에 새로운 필진으로 참여하게 된 시아입니다. 많은 분들과 비건 지향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으려니, 이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존재와 지향을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저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함께 이야기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로 사는 방법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인식 속에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유난 떠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주장이 강요처럼 들렸고, 나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개를 먹는 것은 반대하고, 나름대로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야.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풀만 먹고 살 순 없잖아?‘ 거기까지였다, 나의 생각은.
그러다 2016년, 우연히 <잡식 가족의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채식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제법 교만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공장식 축산’이라는 과정을 알았다. 돼지들이 강제 수정으로 1년에 약 2.4회의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도,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고 몸집이 불어난 돼지들이 생후 6개월 만에 도축장으로 보내진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내가 한 번도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사실도.
영화는 태어나서 돼지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감독 윤이 산골마을 농장에서 돼지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 고기를 소비할 수 없어진 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육식을 하는 가족들과의 경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내가 갖고 있던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과 다르게 윤은 강요하지 않았고, 공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존재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윤이 내내 고민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제야 내가 그간 타자로 치부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동물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고통을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생명의 공존을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그들’이라고 부를 때도 ‘우리’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 길로, 나는 밥상에 올라오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리하게도, 현대사회에는 생산과 소비의 영역을 분리해 죄책감을 지워주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나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며 내가 먹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함께 산다는 것은 원래 불편한 일이다.
물론 결심을 한 뒤에도 실천으로 가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보면,이라는 식이었다. 그때의 내가 몰랐던 것이 있다면 ‘비건은 도전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어쩌다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비건은 성공과 실패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지향이고 실천이다. 어차피 이 도시에서 완전히 무해한 음식만을 섭취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은가. 작은 포도 한 알도 지구 반대편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온갖 연료를 태우며 운송되는 시대에.
다만, 패배주의에 젖지 않으면 된다. 냉소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더 나은 곳을 바라보면 된다. 지향은 앞을 보는 일이고, 그 순간부터 뒤로 걷는 일은 없다. 그러니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우리의 지향을 향해 가면 된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탄생한다. 조금 불편하면 뭐 어떤가, 나는 오래 ‘우리’로 살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나의 비건 지향은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