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이 폭우와 태풍이 무섭다
비건(지향)일기 시즌2 – 지미⑥
비건(지향)일기 시즌2
안녕하세요. 비건(지향)일기의 지미입니다. 거의 세 달 만에 인사드려요. 햇빛이 뜨거운 8월에 돌아오겠다고 했었는데요. 바쁜 일들 끝내고나니 그새 초가을 같은 9월이 시작되었네요.
8월은 폭우와 가뭄으로 슬픈 소식이 많아 힘든 한 달이었어요. 9월에 들어서니 태풍이 오고요.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오늘 부산과 제주에는 대피령이 내려졌어요. 다들 괜찮으실지 걱정입니다. 비건(지향)일기 시즌2는 기후재난으로 떠난 이들을 추모하며 시작합니다.
동물도 이 폭우와 태풍이 무섭다
폭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차도와 지하철 역사, 지대가 낮은 길거리, 시장 안쪽, 주차장까지 도시 곳곳에 빗물이 들어차는 영상이 여기저기에서 올라왔다. 기후재난이 대도시에까지 왔구나 싶었다. 관악구 세 가족이 반지하에서 나오지 못하고 떠난 소식은 내가 서울을 얼마나 왜곡하여 이해해왔는지 반성하게 했다. 인프라가 집중된 도시는 재난에 덜 위험하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알아보니 관악구의 반지하에는 이전부터 침수가 많았다고 한다. 여름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한 동네였고 누가 취약한지 예측가능한 것이었다면,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 아니었나. 기후위기가 예고되었을 때, 정부는 관악구만이 아니라 모든 취약주거와 지역에 대해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실 내가 모르는 건 도시 안에서의 불평등만이 아니었다. 2020년 폭우를 기억하는가? 축사를 탈출해 지붕으로 대피한 소의 사진은, ‘소고기’나 축산업자가 아닌 ‘소’의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실린 적이 있었나?하는 낯선 질문을 하게 만들 정도로 며칠 내내 언론에 가득했다. 도로를 건너가는 이십여 명의 소, 축사에 갇혀 나오지 못한 소, 수면 위로 고개만 겨우 내민 소의 얼굴도 있었다. 살고자 하는 그 얼굴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가 살아있구나, 생명이구나’하는 생소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인지시켰다.
우리 사회에 어떤 경종을 울려주었으나, 그 이면에는 전남 구례에서만 소 572명이, 전국에서 1213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고 다수는 폭우로, 또 다수는 폭우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떠난 현실이 있다. 살아남은 소는 ‘소 90310’의 경로로 미루어보아, 폭우 이전처럼 도축장으로 갔을 것이다. 지붕 위에 있던 그 소들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없기에 1213명의 소가 언제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번 폭우를 거치며 동물의 죽음이나 피해를 알리는 소식을 봤었나? 숫자로 그 무게를 따지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찾아보니 8일에서 11일까지 4일 동안 농림축산식품부가 집계한 경기도∙강원도∙충청남도의 ‘축산 피해’는 총 8만6천552명이라고 한다. 단지 축사가 비에 잠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8만6천552개의 죽음이고 사건이며 재난이다.
‘축산 피해’ 중 8만 명 이상은 닭이었다. 낮은 지대, 취약한 배수시설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닭은 땀샘이 없어 원래 고온다습한 환경에 취약하고 고온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즉 폭우와 폭염이 더 심각해지는 이 여름이 닭에게는 위험한 삶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돈으로 환원하지 않고, 온전히 닭들의 고통을 말하고 그 죽음을 추모하고 싶다.
2020년 여름 지붕 위에 올라간 소들은 구조되었다는 기사로 마무리되었고, 이번 8월의 폭우는 해가 나면서 그새 지나간 일이 되었으며, 9월과 함께 태풍이 왔다가 또 가고 있다.
이상기후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는 ‘전례없음’의 위력에 우리를 겁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회복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재난이 온다는 것이, 비슷한 죽음이 반복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각각의 재난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들이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나에게 비건은 같이 살겠다는 지향이다. 도시에서, 점점 심해지는 이상기후에도 잠기지 않은 집에서, 선택된 기사들을 통해 어떤 얼굴을 보고 소식을 알게 되는 나의 위치에서 비건은 자주 ‘소비하지 않음’으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당연히 죽을 거라 여겨지는 어떤 존재들이 살고자 한다는 걸, 그럼에도 결국 떠났다는 걸 안다.
여전히 아주 작은 지면이지만, 살고자 하는 눈을 봤고 생을 전해 들었다. 지워진 존재를 돌아보고 다시 기억하는 일부터, 죽음을 모른 척하지 않는 용기로부터 우리의 이상한 관계를 다시 잡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