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활동소식

‘에너지 안보’ 핑계로 기후 대책 뒷걸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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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진단

6‧1 지방선거 이후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이행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16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한 데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5일 오늘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공개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을 확대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정부의 친원전 기조에 지자체가 편승할 기류도 짙어졌다. 내년 운전기한 만료를 앞둔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 문제가 뜨거운 부산의 경우, 박형준 부산시장은 선거 기간 중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다수 세계의 원전들도 한 번에 끝나는 경우는 없다. 대개 80년, 100년을 쓴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신임 내각도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 “원전이 친환경 녹색에너지로 분류되는 건 국제적인 추세”라는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확대 기조에 내세운 핵심 키워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다. 지난달 21일 개최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공청회에서 공개된 정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법제화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이행하면서도 최근 에너지 위기로 인해 원전 비중을 확대하는 다른 국가의 정책 변화를 우리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제시됐다. 프랑스, 영국, 폴란드 같은 국가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원전의 추가 확대를 선언했다는 것인데, 유럽 국가는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재생에너지에 더 공격적인 투자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유럽 벨기에 북해의 해상풍력 단지. 사진=European Union (2019)

에너지 위기 속에서 최근 유럽연합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5월 유럽연합은 2030년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기존 32%에서 45%로 상향하고 3,000억 유로를 투자하겠다는 새로운 정책(REPowerEU)을 발표한 바 있다.

원전 늘리기 재생에너지 줄이기, 거꾸로 가는 윤석열정부

유럽 일부 국가에서 선언한 원전 확대가 실제로 이행될지도 미지수다. 지난달 14일 유럽연합 의회 환경 및 경제위원회는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안에 대한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올해 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녹색분류체계에 원전과 가스를 포함시키는 안을 발표하며 시민사회로부터의 비난과 회원국 간 분열에 시달려야 했다. 녹색분류체계는 녹색 산업에 대한 금융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녹색경제활동의 분류 원칙과 기준을 의미한다. 만약 이번 달 초 열릴 유럽연합 의회 전체회의에서 과반수의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면 집행위는 안을 취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만약 유럽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이 빠진다면, 이미 430억 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안은 프랑스전력공사(EDF)는 노후 원전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원전 산업 살리기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신규 원전 건설에 필요한 정부의 인허가 절차를 최대한 단축해서라도 원전 산업계 일감을 ‘조기 창출’하겠다는 방향이다.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해 계속운전 신청기한을 수명 만료일 2~5년에서 5~10년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임기 내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최대한 많이 승인하겠다는 의미다. 원전 산업계가 누릴 이익은 극대화되는 반면 원전 확대로 악화될 고준위핵폐기물 처리와 사고 위험에 대한 대책은 부실하다. 포화 상태인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특별법 마련과 전담조직 신설과 같은 형식적 방안만 제시했을 뿐이다. 고리원전 2~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95%에 이르렀고 월성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가 포화돼 조밀건식저장시설을 추가 건설하는 실정이다. 원전을 추가 건설하고 기존 원전을 수명연장한다면 고준위핵폐기물의 포화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확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뒤늦게 원전을 추가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유럽이 했으니 한국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자는 논리대로라면, 유럽연합의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포함될지 불투명한데다, 설사 포함되더라도 고준위핵폐기물 영구 처분장과 사고저항성 연료의 확보 기준을 한국 원전이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원전은 ‘녹색’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원전은 가장 경제적 에너지원이라는 산업계의 주장을 고려한다면, 왜 정부가 나서서 원전을 녹색으로 둔갑시키면서 투자 유치와 지원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도 떨어진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는 신한울 3·4호기 건설로 인해 송전선을 추가 확보해야 문제도 있다. 현재 울진의 신한울 1·2호기에서 시작돼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230km 구간의 장거리 송전선 건설 사업도 지역사회 반대에 따라 기약 없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원전 건설만 허용한 채 추가 송전선 확보를 뒷일로 미루고 지역사회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면 밀양 송전탑과 같은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22년 6월 18일 부산역 일대에서 열린 6.18 전국탈핵행동이 진행됐다. 이날 참가자들은 고리 2호기 폐쇄 및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를 촉구했다. 사진=이상범/울산환경운동연합

화력발전 못 줄이는 원전 확대, 탈석탄 정책은 문재인정부 따라하기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는 화석연료 감축 효과는 없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늦추는 방향으로 제시됐다. 원전을 확대하면서 기존 계획보다 화력발전을 더 감축하거나 대체하는 방향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승인한 9기 석탄발전 중 2기를 취소·전환했다. 나머지 석탄발전 사업은 그대로 추진돼 현재 강릉과 삼척에서 4기의 석탄발전이 건설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석탄폐지 선언에 동참했지만, 석탄발전을 2030년까지 폐지하겠다는 아일랜드 등 유럽 14개국과는 달리 ‘2050년 탈석탄’을 표방해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3월 탄소중립법이 발효되며 탈탄소 전환을 본격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석탄발전 퇴출 기조나 정책 방향을 전혀 표방하지 않았다. 조속한 탈석탄 목표 설정과 이를 도출하기 위한 공론화 방안이 빠진 것이다. 올해부터 연료비에 온실가스 배출권가격을 반영하는 환경급전 제도가 시행됐지만, 낮은 배출권 가격과 천연가스 연료비 상승에 따라 석탄발전 감축 효과는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원전 정책을 뒤집은 것과 달리, 윤석열 정부의 석탄발전 감축 정책은 실종됐거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에 그쳤다.

석탄발전이 경제성을 잃고 좌초자산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석탄발전에 대한 출구 전략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있었다. 강릉과 삼척에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 4기를 중단하면 연간 배출될 2,8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아도 된다. 해당 석탄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포스코와 삼성은 국내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 기업이다. 이들 기업의 탄소중립 선언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석탄발전 같은 탄소집약 인프라의 증설이 아닌 처분은 필수불가결하다. 방법은 있다. 정부가 신규 석탄발전 중단 방향을 명확히 하고 에너지전환지원법 마련을 통한 탈석탄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시대착오적 재생에너지 목표 하향조정, 재생에너지 위축 우려

태안 석탄 화력발전소 (2016년 11월). 사진=이지언/환경운동연합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가 재생에너지 목표를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추세가 일반적인데, 그 반대 방향, 즉 재생에너지 목표를 이전 계획보다 낮추는 사례는 사실상 없었다. 지난해 정부는 국제사회에 제출한 새로운 2030년 감축목표에 따라 화력발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20%에서 30%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맞바꾸기식 정책 방향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목표를 30%에서 20%대로 다시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이미 최하위 수준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 풍력 발전 비중은 4.7%로 G20 회원국 중 가장 낮은 편이고, 세계 평균인 10%의 절반을 밑돈다. 20개 가까운 국내 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RE100(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이니셔티브)을 선언하면서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와 상반된 정책 신호를 선언한다면 정책 후퇴와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탈탄소 전환 위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하는 흐름이 세계적 추세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담긴 재생에너지 전략으로는 ‘태양광 풍력 산업의 고도화’와 ‘미래형 전력망 구축’ 정도가 전부다. 민간 중심에서 공공 주도의 풍력 개발 방식으로 바꿔 계획입지와 주민 참여를 규정하는 제도 도입이나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확보를 촉진하기 위한 경매제 도입과 같은 산적한 정책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의 의지에 기댈 상황이 결코 아니란 의미다. 재생에너지 정책이 올바로 가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각별한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

※함께사는길 2022년 7월호에 게재된 이지언 활동가의 글에서 일부 편집했습니다.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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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 활동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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