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관련자료

[월간문화연대특집] 전력권력과 에너지 전환 – 에너지권력이 문제다

개별 에너지 이용자들은 중앙 에너지 권력자의 선전을
대부분 성찰 없이 피동적으로 받아들인다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는 모두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공급구조를 낳는다. 화석연료 중에서 현대
산업사회가 가장 크게 의존하는 석유는 특히 그러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석유는 거대 초국적 자
본이나 독점 국영공사가 퍼올린 원유에서 시작되어 전세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형태로 공급된
다. 석유 소비자는 특별한 생각 없이 주유소나 가게에서 석유를 사다 쓰지만 그는 초국적 거대
자본의 말단에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는 이러한
종속성에 대해 전혀 자각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석유 가격이 크게 오른다거나 할 때 자신의 종속
적인 위치를 조금 알게 된다. 이때도 종속성의 성격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석유 가격
이 오를 때면 으레 석유수출국기구가 등장하고 그 구성국가들이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비난받지
만, 석유공급의 긴 사슬 뒤에 숨어 있는 거대 자본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다. 석유수출국기구 구성국들이 원유 생산을 1-2% 줄이면 석유가격이 갑자기 뛰어오르고, 이
때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측은 시장에서 가격을 통제하는 초국적 석유자본인데도 이들은 대부분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석유가격 파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석유자본인 엑슨-모빌이나 영국석
유(BP) 또는 셸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한번이라도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대정전의 혼란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중앙집중적인 공급 구조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
은 석유나 가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거의 모두 전선망을 통해서 이들 발전시설에 연
결되어 있다. 하나의 커다란 발전소에 연결되어 있는 소비자의 수는 백만명이 넘는다. 100만 킬
로와트급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백만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도시 전체에 전기를 공급한다. 이들
발전소로부터 오는 전기는 거의 끊어지는 적이 없다. 가끔 정전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일
은 아주 드물게 그리고 기술적인 결함이 아니라 심한 번개와 같은 자연적인 이유로 인해서 일어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재해로 인해 전기공급이 잠시 중단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전기는 일상적으로 언제나 쓸 수 있는 것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있고, 따라서 사람들
은 중앙집중적인 전기공급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 종속되어 있으면
서도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의 위험은 대규모의, 그리고 긴 시간 동안의 정전 같은 비상시에 드러
난다. 1977년 뉴욕시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극심한 약탈로 수천명이 체포되는 혼란상이 있
었는데, 이러한 혼란은 대다수의 뉴욕 시민이 그들 자신의 에너지 종속성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
었다면 그토록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들은 미리 그러한 사태에 정신적으로나 물
질적으로 대비했을 것이고, 정전이 길어지면 당연히 대응수단을 내놓았을 것이다. 에너지 종속으
로부터 이미 벗어난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들은 정전과는 아무 상관없이 불을 밝힐 수 있었을 것
이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은 조금도 대비하지 못했고, 이는 극심한 혼란을 낳았다. 그 후에도 이
들은 전혀 대비하지 않았고, 그 결과 2003년 8월 15일 대정전의 혼란을 맞았던 것이다.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공급되는 화석에너지와 원자력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은 책임의식의 부재라는 위험을 낳는다. 이들이 에너지를 사용함으로 인해서 핵
폐기물이 발생하고 온실가스가 방출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쓰는 에너지는 저 멀리
외딴 곳에서 생산된 것이다. 소비자는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
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우라늄 광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사능 피해를 입는지, 원자력발전
소에서 얼마나 위험한 핵폐기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잘 모른다. 멀리서 이러한 것들을 한번도 보
지 못한 그들의 감각이 여기까지 미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석유나 가스를 태워서
자동차를 몰 때나 가스관을 통해서 공급된 가스를 태워서 요리를 하고 난방을 할 때 방출되는 온
실가스도 사람들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감각으로 더욱 더 알기 어려운 것이
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에너지 소비에 대해서 책임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책임의식
의 부재가 결국은 자신의 에너지 사용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이는 핵폐
기물이나 기후변화라는 위험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거대 중앙집중 시스템

거대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시스템에의 종속성은 에너지 이용자가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종속성은 중앙 공급자에 의해서 끊임없이 주입된다. 공급자는 다양한 홍
보장치를 통해서 자신이 공급하는 에너지가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서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심
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처럼 선전한다. 개별 에너지 이용자들은 이러한 중앙 에너지 권력자의 선
전을 대부분 성찰 없이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로 인해 그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좀처럼 자
각되지 않는, 그리고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는 종속의식이 단단히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주입된 의식은 당연히 특정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앙의 에너지 권력자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
용한다.

예를들어서 핵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중앙의 전기공급자는 핵폐기장을 건설하지 못하면 원자력발
전소가 문을 닫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전기 공급이 끊어진다고 선전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 소
비자는 이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핵폐기물 처분장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서, 그러
면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게 되는데 어떻게 전기를 얻자는 말이냐, 자동차, 냉장고, 에어
컨 모두 쓰지 않으면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같은 에너지 이용자들이 내놓는 비난의 말
은 어느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식 밑바닥에서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들은 종속을 거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핵폐기장을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건설에 반대하는 후보지 지역 주민이나 원자력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지역이기주의라고 비난하거나 기 소르망의 표현을 빌어 ‘진보의
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스템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우리가 만일 자기 스스로 에너지원을 찾아내어서 그것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쓴다면 중앙집중적
인 에너지 공급 시스템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 사용에 대한 책임의
식을 갖게 된다. 산업사회 이전의 사회에서 에너지는 대부분 나무를 태워서 얻었다. 그리고 대부
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숲에서 나무를 구해와야 했다. 숲의 나무는 한정되어 있었고, 해마다 자라
나는 나무의 양도 정해져 있었다. 숲의 나무는 에너지 조달을 위해서 적절하게 관리되어야 할 대
상이었던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하우베르크 지역 사람들은 해마다 자라서 채워질 수 있는 양 만
큼만의 나무를 베어 내어서 에너지로 사용했다. 한국의 전남 완도군 충도에서는 최근까지도 섬에
서 자라는 숲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나무를 공동체 차원에서 벌채하고 관리했다. 이
는 섬 주민들이 숲의 나무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런
데 독일 하우베르크나 전남 충도에서의 에너지 조달은 현재의 중앙집중적인 방식이 아니라 주위
에서 에너지원을 찾는 분산적인 조달 방식이었다. 자신의 에너지 이용이란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
은 이러한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에너지 조달의 경우에는 쉽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글 : 이필렬 (송통신대 교수 prlee@knou.ac.kr)

자료출처 : 월간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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