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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지향)일기] 혼자 하는 상상의 슬픔

혼자 하는 상상의 슬픔

비건(지향)일기 – 지미④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비건을 지향하는지 궁금하다. 대도시 서울 한중간에 사는 나는 주로 소비하는 인간으로서 비건을 다룬다.

가장 일상적인 장면은 편의점, 가게, 마트에서 제품을 살 때 알레르기 성분 표시 항목을 확인하는 일이다. 또 두부 요리에 관심이 많아졌다. 직접 식사 준비를 하는 게 잦지는 않아서 주로 레시피를 모은다. 그러면서 몰랐던 문화 출신의 향신료나 요리법도 조금 알게 되었다. 잘 먹었던 나물 요리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많은 조리나 강한 양념 없이도 기분 좋게 식사한다. 옷을 입을 때는 원단을 확인한다. 새 옷 구매를 줄이고 온∙오프라인의 구제(빈티지) 가게에서 사는데 종종 확인이 어렵다. 옷이 사고 싶을 때마다 인터넷 세상에서 사이즈와 함께 원단을 표기하는 계정들을 하나씩 발굴한다. 최근에는 염색을 하고 싶어서 비건 탈색약, 염색약을 찾아봤었다. 아직 색깔을 못 정해 구매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계속 혼자, 동물성 어쩌구를 안 먹고 안 쓰려는 사람이 된다. 무언가 필요해서 사거나 사용할 때는 “비건 OO”하고 검색해 제품을 찾는다. 비건 인증마크가 붙은 것을 산다. 그러니 나머지 것들이 왜 비건이 아닌지는 뒷순위다. “이 염색약은 뭐가 문제지? 왜 밀가루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크래커에는 꼭 ‘소고기’가 포함되어 있지?” 이런 질문도 괜찮은 대체재를 찾으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채식에 몰두할수록, 먹고 입는 비건 실천에 머무를수록, 동물을 먹지 않으려는 노력과 시도가 성공적일수록 내 일상에서 어떤 존재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횟수는 줄어든다. ‘고기’를 동물로 인식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소비재의 변경이 곧 살아있는 존재로 동물을 마주하는 기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동물이 매일 매 순간 인간이 먹고 입고 쓰기 위해 고통받고 있다. 이는 아주 오래되었고 다국적 대기업의 기반으로써 우리 사회의 조건이고,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결된 존재로서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인간종이 당연하게 이 세상을 유지하고 사는 것은, 시공간이 분리되어 사실 자체를 모르도록 은폐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른 척해도 된다는 적극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건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방법이 혼자 ‘고기’와 거리 두는 일 뿐이라면, 이 은폐와 폭력에 대해 구조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모색할 수 없다. 개인의 실천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선택권의 보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나도 매일 그 실천을 위해 애쓴다) 인간은 소비하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집단적 주체로 행위하고 발언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건이라 먹고 입을 수 없어 힘든 나’를 넘어서서 이 사회에 누굴 초대하고 환대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

꾸준히 멀어지던 사회적 거리가 코로나로 더 심해지고, 디지털 관계의 강화는 소통과 공감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편견을 강화했단다. 분리와 고립은 방어기제를 키우고, 방금 만난 타자를 믿기 어렵게 만들며, 예외적 상황을 만났을 때 대응할 기술을 키울 기회를 뺏는다. 앞으로 더 자주 올 팬데믹에서 변혁과 전환을 상상할 수 있으려면, 내가 오늘 기댄 폭력을 이웃의 것과 연결된 것으로 인지하고 그 시작과 끝을 질문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와 다른, 예측 불가능한 타자를 기꺼이 경험하자. 그 타자에는 폭력의 당사자, 비인간 동물 역시 있어야 할 것이다. 보편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사회 안에서 타자를 만나 존엄을 나눌 수 있을 때, 그제야 견고한 체제에 낸 금이 쩍-하고 갈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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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날 궁금해하고 경험해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대담하게 쓴 문장이 가득하다. 그만큼 부끄럽고 조심스럽다. 작은 지면에 주어진 일기라는 형식에 기대어, 주장하듯이 스스로에게 하는 염원만 한껏 했다. 그러니 내가 다시 겸허해질 수 있도록 대화를 걸어주면 좋겠다. 나는 긴장하고 적대하기보다 당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할 것이다.

김 현지

김 현지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김현지(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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