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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과학기술·환경 갈등 해결 방안 모색 – 외국의 핵폐기장 부지 선정 과정이 주는 교훈

원전관련 홍보기구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홈페이지(http://www.knef.or.kr/)에 가보면 [방사
성폐기물 특집]이라는 제목 하에 핵폐기장 건설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홍보물이 올려져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그 안에 있는 메뉴 중 하나로 ‘해외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라는 항목이 있는데,
여기 보면 “전세계 30여 국가에서 수십 년 동안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안전하게 운영해왔”으
며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건설된 주변지역은 보다 풍요롭고 살기좋은 곳으로 변모되었다”는 선
전 문구와 함께 프랑스, 영국, 일본, 스웨덴에서 ‘성공리에’ 운영되고 있는 핵폐기장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들에는 이미 별탈없이 잘 하고 있는 일을 우리나라만 유별나
게 반대가 심하다’는 식의 선전은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한 논법이다. 아마 별다른 사전지식 없
이 이런 홍보물만 접한 사람이라면, ‘환경의식이 앞선 선진국들에서도 하고 있다니 큰 문제가 없
나보군’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선전은 중요한 사실을 여럿 빼먹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부지 선정에도 아무
런 시사점을 주지 못한다. 우선 이는 선진국들에서도 그간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 왔고 종종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감춤으로써 그
런 경험들으로부터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아예 박탈한다. 또한 이러한 선전은 그
런 식의 ‘성공 사례’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하는 과정을 제대로 짚지 않은 채 단순히 결과만
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

외국의 부지 선정 실패 사례들

물론 외국에서의 실패 사례에 대해 국내 원전옹호론자들이 전적으로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그들의 대체적인 주장은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둘러싼 외국에서의 논란이 고준위폐기
물 영구처분시설 사업에만 한정된 것이며,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약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 1990년대 들어 핵폐기물 처분에서 엄청난 실패를 맛
본 후 국가 핵폐기물 관리정책의 전환을 경험한 두 나라인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 이런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의 부지 선정 실패였다(이에 대해서는 아
래에서 다시 서술한다). 미국에서 근 20년 이상을 끌면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네바다 주 유
카산 역시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의 유일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이다. 최근 외국의 규제
기구나 정책자문기구들에서 내놓은 보고서들도 고준위폐기물 처분을 주된 초점으로 삼고 있는 것
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의 부지 선정은 이제 논란을 벗어났다고 판단한다
면 이는 큰 오산일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수의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
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 많은 수는 환경의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고 반핵운동도 약했던 1960년대
이전에 지어졌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진국의 경우 1990년대 들어서면서 중저준위폐
기물 처분장의 부지 선정에도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
과 같다.

* 벨기에에서 핵폐기물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기구인 ONDRAF/NIRAS는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반감기가 짧은 저준위폐기물을 천층처분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는 조사 작업을 벌였고, 과학적
·공학적 근거에 따라 98곳의 후보지를 선정해 보고서로 발간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98개 지
역 모두에서 거부되었다. 다급해진 벨기에 정부는 기존에 이미 핵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는 지역
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 부지를 물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아울러 ONDRAF/NIRAS는 부지 선
정에 임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했다. 이는 지역 당국, 두 개의 대학, 지역 주민들이 지역적
파트너쉽을 형성해 핵폐기장 계획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현재 네 개의 지역이 단계
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에서는 “협력적인 공동의사결정 방식을 통한 지역공동체들의 자발적 참
여”에 근거해 저준위폐기물 시설 부지를 선정하려는 시도가 1990년대 초에 있었다. 이 과정 자체
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정부가 애초에 계획한 대로 과정을 끌고갈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
다. 예컨대 연방정부는 지역공동체와 의사결정과정을 돕는 태스크포스에 의해 합의된 내용을 받
아들이기를 거부했다.

* 스위스의 핵폐기물 처리 담당기구인 NAGRA와 GNW는 1993년에 중저준위폐기물을 위한 동굴처분
장 후보지로 벨렌베르크(Wellenberg)를 선정하고 지하 탐사를 시작하기 위한 사업승인 신청을 했
다. 스위스의 승인 절차는 연방, 주(州), 해당 지역공동체 모두로부터의 승인을 필요로 하며, 이
에 더해 주로부터 특별 채굴 인허(mining concession)를 얻어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해 1994년 해
당 지역주민들은 찬성의 뜻을 나타냈으나, 1995년 6월 벨렌베르크가 속한 니드발덴 주는 주민투
표를 통해 52%의 반대로 채굴 인허를 부결시켰다(‘doughnut’ effect). 이후 NAGRA는 첫 번째 주
민투표에서 미비했던 요소들을 인정하고 정부가 설립한 독립 위원회인 EKRA의 제언을 따라 수정
된 프로젝트(관리감독과 번복가능성 강조, 단계적 시행, 부지 선정 기준 공개, 대중참여 보장
등)를 제안했으나 2002년 9월의 주민투표는 57%의 반대로 이를 재차 부결시켰다.

이상의 사례들은 최근 핵폐기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중저준위폐기장 역시 예외
가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핵폐기장 부지 선정 방식의 변화와 최근의 경험들

선진국들은 최근 고준위폐기장과 중저준위폐기장에서 공히 실패를 경험하면서 이에 대응해 핵
폐기장 부지 선정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의 부지 선정 방식이 과학적·공학적 기준에 근
거해 일단 부지를 선정한 후 이에 수반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사후적인(reactive) 대응을 하는 식
이었다면, 최근 국제기구나 정책자문기구들에서 적극 권고하고 있는 것은 부지 선정 초기부터 과
학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까지를 사전에(proactive) 고려하며 변화하는 상황을 그때그때
과정에 반영하는 단계적 진행(Adaptive Staging) 방식이다.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RC) 산하의 방
사능폐기물관리위원회(BRWM)가 2003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단계적 진행 방식의 필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는 주로 고준위폐기물의 처분을 위해 작성된 것이지만, 중
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의 부지 선정 과정에도 충분한 함의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 체계적 학습 추구
기술적 학습뿐 아니라 사회적 학습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지 선정 이전에 시범 단계를
두어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단계에서 이해당사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사회적 학습의 장을 제
공해야 한다.
– 번복가능성/회수가능성, 유연성
부지 선정과 핵폐기장 건설 과정의 각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이전 단계로 되돌릴 수 있
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한다. 많은 자원이 이미 소모되었을 때는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이유가 아닌 사회적 이유로 부지 선정 결정을 번복한 사례가 스
웨덴과 핀란드에서 있었으며 이는 부지 선정 과정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증진시킨 바 있다. 이
를 좀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선택지를 복수로 구비할 필요가 있다.
– 감사가능성, 투명성, 무결성
원전산업계는 비밀주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선정 기준이나 중간 과정을 공개하지 않
고 최종 결과만 공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킨다. 독립적인 검토기구
를 설립하고 정보를 공개하며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처음 단계부터 참여를 보장해야 한
다. 상당수의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참여가 법 조항에 의무로 명시되어 있다.
– 대응성
장기적인 스케줄을 미리 짜지 말고, 충분한 학습 경험을 축적하고 앞 단계의 학습 경험이 이후
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히 확보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프랑스와 영국의 실패 사례, 그리고 단계적 진행을 성공적으로 적
용한 스웨덴과 핀란드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변화 경향(과 이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실패)을 들여다볼 수 있다.

* 프랑스의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선정은 여러 차례 굴곡을 겪었다. 1990년 이전까지 프랑스의 부
지선정 과정은 주민참여나 지역 관리들과의 협조 없이 거의 전적으로 기술적 판단에 의거해 추진
되었다. 그러나 핵폐기물 처리를 담당한 기구인 ANDRA가 지역으로부터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함
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1989년에 이전까지 이루어진 모든 부지 조사에 대해 모라토리움을 선언하
고 의회 산하의 기술영향평가 기구인 OPECST에 앞으로의 진행 방향 제시를 의뢰했다. 국회의원
Christian Bataille가 주도한 청문회 과정은 1991년에 Waste Act의 통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15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어 처분장 부지의 물색, 폐기물 처리 방법의 연구, (동굴처분 외의) 다
른 선택지 조사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프랑스의 부지 선정은 다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1991년 법에 의해 프랑스
는 2006년 전까지 적어도 두 곳의 후보지를 국회에 제출해 논의에 부쳐야 했다. 먼저 한쪽 방향
은 Bataille가 중재자가 되어 해당 지역공동체, 지역 관리들, 지질학 전문가들간을 엮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해당 지역의 동의를 얻어 1994년 부지 적합성 조사를 위한 4곳의 후보지(모두 치
밀한 퇴적암 지질)를 발표했는데, 이 중 두 곳은 지역주민의 반대와 과학적 증거의 미비 때문에
제외되었고,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거쳐 1998년 12월 한 곳(동부에 위치한 Bure)이 후보지로 선정
되어 현재 시추공을 뚫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 방향에서는 지질학 전문가들과
ANDRA가 흑연 지질로 된 후보지를 탐색했는데, 문헌 조사를 통해 200곳의 후보지를 15곳으로 압
축한 후 1999년 10월 이 목록을 정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Bataille가 중재한 과정과는 달리 여기
서는 이 사실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모든 절차가 진행되었고, 정부가 15곳의 후보지
와 공식적 접촉을 가지기 전에 반대 입장을 가진 NGO에 의해 2000년 1월 후보지 목록이 인터넷상
에 폭로되었다. 그 결과 15곳 후보지 모두에서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대가 나타나면서 정부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양상이 빚어졌다. 정부는 선정 과정을 중단했고 결국 이 중 어느 곳도 선
정이 되지 못했다.

* 영국의 사례 역시 지역주민의 참여와 투명성이 결여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잘 보
여준다. 1990년대 초, 핵폐기물 처분을 담당한 기구인 NIREX는 multi-attribute utility
analysis를 거쳐 셀라필드 인근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부지 적합성 연구를 위해 지하암반 조사
를 위한 연구시설 승인을 요청했다. 지역 당국인 컴브리아 군 의회가 계획 승인을 거부하자
NIREX는 항소했고, 66일간에 걸친 기나긴 청문회 절차를 거친 끝에 결정의 책임은 환경부 장관에
게 넘어갔는데 청문회 조사관은 환경부 장관 역시 승인 요청을 거부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제출했
다. 결국 1997년 NIREX는 셀라필드 후보지를 포기했다.
NIREX의 승인 요청이 거부된 배경에는 NIREX의 부지 선정 연구가 오랜 기간 동안 투명성을 견
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NIREX는 셀라필드 외에 대안으로 고려되었던 후보지 목록
을 공개하지 않았고, 핵폐기물 처분장이 해당 지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는 부지 적합성이 판
명된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해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NIREX는 청문회에 임박
해 뒤늦게 투명성을 높이고 대중자문 과정을 운영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지역주
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다.
1997년의 실패는 이후 영국 핵폐기물 관리정책의 대대적인 전환을 불러왔다. 1999년의 의회 청
문회는 정부가 지하 처분을 계속 추진하되, 그 정책은 다양한 쟁점들을 고려해 결정되어야 하며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다양한 시민참여 방
식(여론조사, 워크샵, 합의회의, 시민패널, 포커스 그룹 등등)을 계속 시도하고 있으며, 올해 핵
폐기물 관리를 감독할 새로운 독립기구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NIREX는 과거의 실패를 거
울감아 1999년에 새로운 투명성 정책(지역주민의 의견수렴, 정보 제공, 정책결정에 도달한 과정
공개)을 채택했고 이는 초기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스웨덴과 핀란드는 현재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선정에서 가장 ‘앞서나간’ 사례라는 평가를 받
고 있다. 이 두 나라는 핵폐기물 처분 사업자와 지역공동체간의 파트너쉽, 권한의 일부 이양, 협
력, 협상이 부지 선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라는 교훈을 가장 잘 인식해 단계적 접근을 시도
한 경우이다. 이 두 나라는 특히 EU의 환경영향평가법에 포함된 주민참여 조항을 이용해, 이를
사회영향평가를 포괄하는 주민참여의 기회로 이용했다.
스웨덴의 오스칼삼(Oskarshamn) 지역의 경험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이 어떻게 연관된 모든 집단
들간의 유효한 의사소통의 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Oskarshamn model’). 스웨덴
의 핵폐기물 처분 담당기구인 SKB가 1992년에 오스칼삼(이곳에는 이미 핵시설이 위치해 있었다)
을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거명하자 시 의회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첫 번째는
시에서 토론과 조사 과정에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을 Nuclear Waste Fund에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SKB와 규제기구인 SKI, SSI가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포럼 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었다. 토론을 위한 준거집단을 자연스럽게 51명의 시 의회 의원들이 되었지만, working
group, public meeting, 세미나, 청문회 등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참여시키려
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1995년 SKB는 시 당국에 동굴처분장을 위한 부지적합성 조사를 수용하겠
는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타진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시 의회는 투표를 통해 49:1로 SKB가 부
지 조사를 시작해도 좋다는 최종 승인을 내렸다.

글 : 김명진(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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