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관련자료

에너지정책심포지엄 –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1.
1956년 미국의 셸 연구소에서 일하던 지질학자 하버트(King Hubbert)는 미국의 산유량이 1970년
대 초 최대치에 달한 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년간 미국내 여러 유전의 산유량과
미국 전체의 산유량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 추정 매장량을 분석한 결과, 산유량이 종모양 곡선의
형태에 따라 증가하다가 정점에 도달한 후 줄어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하버트의 발표는
그 당시에도 왕성하게 번영하던 석유업계에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런 이유
에서 거의 모든 석유 전문가들과 석유회사들의 냉소적인 거부에 부딪쳤다. 이들은 하버트의 발표
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공격했고, 그의 예측은 1971년에 들어맞았음이 확인
될 때까지 거의 무시되었다.
1971년 봄 하버트의 예측을 일관되게 거부하던 석유회사들은 최후의 일격을 당했다. 1970년 최대
치에 도달했던 미국의 산유량이 1971년에 들어서면서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버
트의 예측은 완벽하게 확인되었고, 그후 지금까지 미국의 산유량은 그가 제시한 종모양 곡선에
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에 알라스카 유전과 멕시코만에서 거
대한 유전이 발견되고 이곳에서도 석유가 생산되고 있지만, 산유량의 감소 추세에는 변함이 없
다.
하버트의 정확한 예측을 많은 석유산업 관련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감정적인 것
으로 이들이 석유 산업 같은 고수익 산업을 회색빛으로 칠하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
은 일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때까지 여러 차례 석유예언자들이 나타났지만 이들의 예측이 모
두 틀렸기 때문인데, 이들은 하버트도 또 한명의 거짓 예언자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1971년
하버트의 예측이 확인된 후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석유산업이 계속해서 고수익을 창출하
며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도 전세계의 많은 정치인, 경제학자, 투자자, 석유
산업 종사자들은 석유산업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격이 조
금 올라갈 수는 있지만, 산유량이 줄어들고 석유가 품귀현상이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가격이 올라가면 경제성이 없던 석유매장지로부터도 석유가 생산되기 때문
에, 수요가 충족되지 않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류 산업계와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대부분 하버트의 예측을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지만, 예언
의 적중은 몇몇 석유지질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 지질학자는 그후 하버트의 모델
을 이용해서 전세계의 석유 매장량과 산유량 추이를 분석했고, 이 분석에 따라 산유량이 언제 최
대치에 도달할 것이며 그후 얼마만한 속도로 감소할 것인가에 관한 예측치를 내놓고 있다. 하버
트 모델의 영향을 받은 석유자원 연구자 중에서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가장 신뢰할 만
한 결과를 내놓는 사람은 콜린 캠프벨(Colin J. Campbell)이다. 캠프벨도 하버트와 마찬가지로
셸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석유자원 분석가로 일했는데, 그후 그는 빈의 유명한 석유자원 분석회사
인 페트로컨설턴트(Petroconsultant)로 옮겨 그곳의 매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세계
산유량 변화를 예측했다.
페트로컨설턴트의 데이터베이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그곳에는 다른 연
구소나 정부기관은 접근할 수 없는 많은 유전들의 산유량과 매장량에 관한 자료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다른 분석보다 신뢰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
러한 이유로 미국의 CIA도 페트로컨설턴트와 거래한 최대 고객이었다. 캠프벨은 자신의 분석을
통해 세계의 산유량도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모양 곡선을 그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는 몇가지 파라미터를 가지고 분석을 하는데, 하나는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과 앞으로 발견될 유
전의 누적 석유 매장량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해마다 생산된 석유의 양이다.
석유의 누적 매장량은 지금까지 해마다 발견된 유전을 추적해서 그것을 외삽(extrapolation)한
그래프를 가지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그래프도 기복이 심하고 오른쪽으로 꼬리가 길게 늘어지기
는 하지만 거의 종모양 곡선을 그리는데, 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작은 유전들이 발견되다가 점차
거대한 유전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어 발견량이 정점에 달한 후 유전의 크기와 발견량이 점차 줄
어들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과 이 곡선에 따라 앞으로 발견될 유전의 매장량을 모
두 더한 것이 누적 석유매장량이 되고, 그 이상의 석유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지질학자들은
이 양을 채굴가능한 석유의 총량이라고 부르는데, 캠프벨은 이 양을 약 1800기가배럴로 잡고 있
다. 이 값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액체 석유를 대상으로 한 것이
고, 그 밖에 심해(해수면에서 2000미터 이하)와 극지방에서 뽑아내는 석유, 타르석유 등을 모두
합하면 전체 매장량은 약 2100기가배럴로 올라간다. 주류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석유가격이 올라가
면 비경제적인 석유까지 모두 경제성을 지니게 되므로 석유의 매장량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의미
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땅 속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 양은
추정치를 결코 크게 넘지 못한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생각이다.
석유의 발견량은 이미 1960년대에 최대값에 도달했다. 그 후에도 간혹 거대 유전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것이었다. 지금도 석유탐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발견되는 유전의 크기는 60년대에 발견된 거대 유전에 비해서 아주 작고 또한 탐사 횟수
에 비해 발견 성공률도 크게 떨어졌다. 1960년대에는 해마다 발견되는 석유의 양이 연간 40기가
배럴이었지만, 현재는 연간 6기가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해가 갈수록 발견되는 석유
의 양은 크게 줄어들어 갔지만, 이에 반해서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은 급속하게 증가해왔다. 따라
서 1980년 경부터는 석유의 발견량이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결국
우리는 이미 20년 전부터 석유대차의 적자 시대에 살게 되었다.
석유의 생산은 유전이 발견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에서의 정점은 발견에서의 정점
에 비해 시간적으로 수십년 뒤에 나타난다. 종모양의 석유생산 곡선에서 최대값은 총 누적 매장
량의 절반이 생산되었을 때 도달하는데, 캠프벨의 분석에 따라 총 매장량을 1800기가배럴로 잡으
면 900 기가배럴이 생산된 시점에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다 타르석유, 혈암석유, 극지방 석
유, 심해석유 등을 합해서 매장량을 2100 기가배럴로 잡으면 최대값에 도달하는 시점은 약 1050
기가배럴이 생산된 때가 된다. 캠프벨에 의하면 2001년 말 현재 전통적 의미의 누적 석유 생산량
은 873기가배럴로 거의 최대값에 도달했다. 전세계의 연간 석유소비량이 27기가배럴(하루 7500
만 배럴)이므로 2002년이 지나면 900기가배럴이 되어 총 매장량의 절반이 사라지게 된다. 심해석
유나 타르 석유 등을 모두 합해서 석유 생산량의 최대값을 추적할 경우에는 이 시점이 오른쪽으
로 조금 밀려나는데, 이 경우 절반이 생산되는 시점은 2008년 경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늦어
도 2008년 경부터는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이 시점은 심해나 극
지방의 석유 생산이 환경적인 요인이나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당
겨질 수도 있다.
석유 매장량을 따질 때 우리는 보통 앞으로 40년 또는 50년 쓸 수 있는 양이 남았다는 식으로 표
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방식은 석유생산 추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일반
시민이나 정치인에게 석유생산에 대해 크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40년이나 50년이라
는 햇수는 보통 현재 남아 있다고 추정되는 매장량을 소비량으로 나눈 값인데, 이러한 숫자는 앞
으로 4,50년간은 인류가 현재와 똑같은 수준으로 풍족하게 석유소비를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다
는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말하자면 앞으로 4,50년 동안은 석유생산의 지속성이 보장되
므로, 현 세대와 다음 세대 초까지는 석유와 관련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석유 생산량이 종모양 곡선을 그린다는 점을 고
려하면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석유 사용 연한은 매장량을 소비량으로 나누는 산술적인 방식으
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매장된 석유의 절반이 퍼올려지고 생산량이 최대값에 도달한 후
에는 석유 생산량이 서서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할 경우 처음에는 땅 속의 압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유정으로부
터 저절로 석유가 솟구쳐 올라온다. 그러므로 첫 유정 설치 후 후속 유정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석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땅속에서 점점 더 많은 석유가 땅 위로 퍼올려지면 압력
이 줄어들고 땅 속 석유의 점성도 높아져서 올라오는 석유의 속도가 감소하며, 따라서 생산되는
석유의 양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석유가 땅속에 상당히 남아 있다 하더라도 압력이 크
게 떨어지고 점성이 높아져서 석유가 올라오는 일이 중단된다. 이때에는 뜨거운 물이나 이산화탄
소 또는 메탄가스를 주입해서 석유를 퍼올려야 하는 시점이 되는데,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더라
도 퍼올리는 속도는 자체 압력에 의해서 솟구치던 때에 비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어느 한 유
전에서 퍼올릴 수 있는 석유의 양은 처음에 증가하다가 최대값에 도달한 후에는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각각의 유전에서의 석유 생산량과 이들 유전 전체의 석유생산량이 종모양을 그린다는 것은 석유
가 앞으로 4,50년 사용할 것이 남아 있다는 표현이 얼마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대로 앞으로 4,50년 간 석유부족을 겪지 않고 지낼 수 있고, 그 후에
도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대로 값이 많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어떻게든 석유가 발견되고 그것
이 사용될 수 있다면, 지금부터 석유부족에 대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그러나 만일
1956년 미국 산유량에 대한 허버트의 예측이 들어맞았듯이 세계 석유 생산량이 종모양 곡선을 그
린다면, 수년 후부터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는 세계 전체 그리고 일
국의 경제와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석유 부족이 전세계의 정치,경제,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우리가 이미 여러차례 경험
한 바 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는 인류문명이 석유라는 에너지자원
에 얼마나 크게 종속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석유가 지닌 힘이 얼마나 큰
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있었다. 이들 사건은 20세기에 일어난 두차례의 대전이었는데, 두 전쟁
에서 모두 석유는 후속 역사의 향방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이는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석유를 하나의 종속변수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석유는 전함과 전투기뿐만 아니라 군인과 전쟁물자의 운송수단을 움직이는
데 필수적인 연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는 전쟁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였다. 1차대전 당시 독일-오스트리아군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모두 제3국으로부터
석유를 조달하고 있었다. 독일-오스트리아군은 주로 루마니아 유전으로부터 석유를 얻었고, 연합
군은 중동지역의 유전에서 석유를 공급받았다. 두 진영은 모두 자기에게 필요한 석유를 확보하
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적의 석유 공급원을 파괴하는 책략을 세우고 작전을 수
행했다. 독일은 루마니아 유전뿐만 아니라 카스피해 연안의 바쿠 유전을 손에 넣음으로써 필요
한 석유를 확보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서양을 지나는 유조선에 잠수함 공격을 가함으로
써 연합군의 석유 보급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 말기
에 루마니아 유전과 바쿠 유전은 영국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독일의 전쟁수행
능력도 고갈되고 말았다. 바쿠 유전이 파괴되었을 때 독일이 확보하고 있던 석유의 양은 수개월
정도 쓸 수 있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결국 독일은 항복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도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독일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1차대전 때와 마찬가지
로 이번에도 히틀러 독일은 바쿠의 유전을 점령하려 했지만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이 독소 조약을 파기하고 전선을 동서 양 방향으로 수천 킬로미터 늘리는 위험을 무
릅쓰고까지 소련을 침공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카스피해 연안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
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942년 가을 독일군이 바쿠 유전을 얻기 위한 전투를 벌이는 동
안 히틀러는 “바쿠 유전을 얻지 못하면 전쟁은 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의 ‘예언’대
로 독일은 2년 6개월 후 결국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1973년의 제1차 오일쇼크는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가 값싸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을 것으
로 낙관하고 있던 미국과 유럽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OPEC 회원국들이 이스라엘 지원 철회를
요구하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 석유수출을 중단하자 석유 가격은 1970년의 배럴당 1.8달러에서 배
럴당 11.65달러까지 치솟았고, 이로 인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이어졌다. 1979년의 제2차오일
쇼크는 이란 혁명으로 촉발되었는데, 이번에는 제1차 오일쇼크 때와 달리 이란의 산유량만 줄어
들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이 산유량을 늘렸기 때문에 석유 부족분은 전체 소비의 4-
5%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차오일쇼크를 경험한 세계는 석유확보 경쟁에 휩싸였고, 주문
량이 실제 소비량보다 매일 300만 배럴이나 더 많은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석유
가격은 배럴당 13달러에서 배럴당 34달러로 치솟았고, 이 상태는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
고 석유생산을 재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차 오일쇼크 때는 석유 부족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석유시장과 소비자들이 여기에 그런
대로 적응하기만 했다면,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심리적인 패닉 상황은 이
성적인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결과 석유 가격은 세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러한 패닉
현상은 그 후로도 OPEC가 산유량을 줄이거나 줄이겠다고 위협할 때마나 되풀이되었고, 2000년 가
을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에 OPEC에서는 하루 산유량을 약 100만 배럴 줄이려는 협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파로 국제 시장에서의 석유가격은 그 전에 18달러선이었던 것이 최대 35달
러까지 상승했다. 하루 100만 배럴이란 양은 전세계의 하루 산유량 7500만 배럴과 비교하면 1.4%
밖에 안되는 것이었지만, 이는 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전세계의 석유가격을 두배 가까이
끌어올렸으며, 유럽 몇 개국에서는 국민들의 대규모 데모까지 유발했다. 이러한 사태는 인류가
석유 종속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캠프벨 등이 예측하듯이 앞으로 수년 후 세계 산유량이 정점에 도달했다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석유부족 현상은 상시적인 것이 되고 상황은 해가 갈수록 악화된다. 예측 곡선에 따르면 그때부
터 산유량이 매년 약 2% 정도씩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사태
는 오일쇼크 때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오일쇼크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사태만 수습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했다. 그러나 산유량이 최대값에 달한 다음부터는 계속 감
소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에, 석유 부족으로 인한 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석유 가격은 급
등할 것이고,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인 경쟁과 갈등이 고조될 것이며, 개별 국가에서는 국
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서 비극적인 형태로 폭발할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석유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자원 부족으로 인해 벌어진 극적인 사태를 경험
했다. 이 사태는 2001년 1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달 동안 간헐적으로 일어났던 정전사태이
다. 우리에게 캘리포니아 정전사태는 전력시장의 구조개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것은 전력생산의 연료로 쓰이던 천연가스의 부족과 이
로 인한 가격 폭등이다. 당시에 한국에서도 전력시장 구조개편(자유화) – 한국전력 민영화 – 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쪽에서는 캘리포니아 정전사태가 섣부른 전력
시장 개편의 위험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한국전력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
부에서는 캘리포니아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캘리포니아에서 전력시장 자유화가 왜곡된 형태로 이
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전력시장 자유화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면
그러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조합과 정부의 주장 모두 부분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전력시장 자유화
(deregulation)는 발전부문과 전력판매 부문을 분리시키고 전력공급 구조를 크게 바꾸어버림으로
써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도매가격은 자유화하고 소매가격은 상한선을 정한 불
완전한 자유화는 도매가격이 소매가격보다 훨씬 높아져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
일 자유화 이전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또는 소매가격도 완전 자유화했다면 캘리포니아에
서 대대적인 정전사태를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진영은
정전 사태의 원인인 전력부족을 유발한 당시의 천연가스 부족과 가격급등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2000년 초부터 미국에서는 천연가스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
다. 이 현상은 2000년 말까지도 해소되지 않았고, 급기야는 가스가격이 다섯배 이상 폭등하는 결
과가 벌어졌다. 가스 가격의 폭등은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 이유는
캘리포니아의 발전소 중 상당수가 가스화력발전소였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80년대 이
래 로스앤젤레스 등지의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청정연료인 천연가스를 쓸 것을 권장했고, 발
전업자들에게는 대부분 가스화력 발전소만 건설승인을 내주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전력의 상
당 부분이 가스화력발전에 의해서 생산되는 결과가 생겼고,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은 곧바로 전력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산유량이 최대값에 달하고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천연가스 소비를 늘려서 석유 부족
분을 대치하기만 하면 70년대의 오일쇼크 같은 혼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석유 부족과 기후변화 그리고 생태계 파괴까지 염려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는 천연가
스 사용을 늘리는 것이 석유 고갈에 대비하고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천연가스가 과연 얼마 동안 석유 부족분을 대치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천연가스가 석유부족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들은 천연가스의 매장량이 앞으로 짧게는 65년, 길게는 수백년까지도 사용할 것이 남아있다고 주
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수백년이라는 숫자는 바다속이나 땅 속 깊은 곳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
되기만 할 뿐인 메탄수화물(methanehydrate)까지 포함시켰을 때 나오는,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
는 것이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앞으로 65년 정도 쓸 것이 매장되어 있다고 보아야 옳은 것이다.
그러나 천연가스의 경우에도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두가지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하나는
천연가스의 소비량이 전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65년이란 기간이 현재의
매장량을 현재 소비량으로 나눈 값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비의 급증은 사용연한을 크게 줄인다.
그리고 천연가스 생산량도 석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절반이 생산되어 생산량이 최대치에 도달하
면 점차 줄어든다. 그러므로 매장량을 소비량으로 단순하게 나누기만 한 것은 상황의 전개를 왜
곡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석유 부족분을 가스로 대치하면 가스 소비
가 더욱 늘어나서 가스 생산량이 최대값에 도달하는 시점과 가스생산이 줄어드는 시점이 훨씬 빨
리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유 부족분을 가스로 대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대단히 어리석
은 낙관일 뿐이고, 가스가 석유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메꾸어주고 기후변화
를 완화시켜줄 훌륭한 에너지원이라고 하는 생각은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3
지구의 평균 대기온도가 올라가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굳어
졌고, 이미 우리 눈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태들도 벌어지고 있다. 남극대륙의 거대한 빙
산이 떨어져 나가고, 북극의 빙산 두께가 줄어들고, 그린랜드의 빙산이 녹아내리고 있을 뿐만 아
니라, 남태평양의 투발루 같은 섬나라는 해마다 해수면이 높아져서 면적이 줄어가고 있다. 그러
나 한쪽에서는 여전히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 신빙성이 없는 것, 인간의 화석
연료 소비라는 활동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최근
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비욘 롬보그가 The Skeptical Environmentalist라는 책에서 기후변
화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다.
롬보그 같이 한쪽에서 계속 ‘지나치게’ 낙관적인 –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 주장을 하
는 사람들이 있고, 그의 책을 출판한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담당자나 이 책을 조선일보에 소
개한 이상돈 교수 같이 그러한 주장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기후변화가 현재는 아
주 미미한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고, 추정을 통해서 예측해야만 하는 미래의 일이며, 본질적으로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타격을 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후변화가 일
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기후변화에 대비한 활동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돌리는 것은 내일과 다
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기후변화를 위한 정부간 패널'(IPCC) 회의를 위해서 모이는 수천명
의 각국 학자들이 회의 때마다 확인하는 사실이다. 이들은 가장 최근에 열린 회의에서 현재와 같
은 추세대로 온실기체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21세기에는 지구평균기온이 섭씨 최저 약 1.6도,
최대 약 6도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평균 기온이 IPCC 학자들이 예측한 최저치인 섭씨
1.6도만 상승해도 지구생태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1.6도 상승이란 평균값이기 때문에 기온
분포에서 최대치는 훨씬 더 커진다. 겨울에는 추운날이 많아지고 여름에는 아주 더운날이 많아지
는 것이다. 독일의 기상학자들은 현재와 같이 대기중 온실기체가 증가할 경우 2050년의 지역별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들은 평균기온이 섭씨 1도 가량 상승하지만, 여름의 경우 바이에
른 지방에서는 기온이 평균 섭씨 5도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평균기온은 1도 올라갔지
만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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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이란 공정성(equity)과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여러 세대들 사이의 공정성과 동일한
세대 내의 공정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재생가능한 자원
은 그것이 새로 생겨날 수 있는 양만큼만 소비하고, 재생불가능한 자원은 그것을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범위 안에서 재생가능한 자원으로 대치할 수 있는 정도로만 소비하며, 오염물질의 배출
은 환경이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함으로써, “미래 세대의 삶의 기초가 위
협당하지 않도록 하고, 미래세대든 현 세대든 모든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 안정 속에서 조화롭
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속가능성이란 자원의 슬기로운 이
용뿐만 아니라 슬기로운 배분까지 포괄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사회의 확립은 과
학기술,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원 중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이다. 수송 분야에서는 거의
100%에 가깝다. 플라스틱 등의 합성화학 소재, 의약품, 농약 등의 화학제품 생산에서도 석유의
비중은 거의 100%이다. 그러나 인류의 석유 사용방식은 지속가능성의 원리와는 조금도 조화되지
않는다. 석유는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닌 재생불가능한 것이고, 2010년이 되기 전에 생산량이 줄
어들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그것을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소비해야 하고, 그 사용량을 기후변화와 같이 생태계에 충격을 주는 결과를 낳지 않는
수준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를 모두 기후변화도 일으
키지 않고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부터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석유 소비를 줄이지
도 않고 석유를 대신할 재생가능 에너지를 개발하려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은 채, 석
유소비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결국 기후변화와 석유자원 고갈을 가져올 것이고,
미래세대의 삶의 기초를 파괴할 것이다.
석유 사용은 현 세대 안에서도 모든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인 안정 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것을
저해한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국지적으로 존재하며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국가들의
사회.경제체제는 바로 이와 같이 한정되어 있고 멀리 국지적으로 쏠려 있는 에너지 자원인 석유
나 가스에 기반하고 있다. 이들 산업국가에서 석유나 가스는 산업사회 자체를 유지시키는 필수적
인 재화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들 자원은 그것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채취되어야 하고 운송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산업국가들의 전지구적인 화석 에너지 이용에 바탕을 둔 경제체제는 필연
적으로 모든 경제 과정의 세계화를 낳게 된다. 현재와 같은 세계 단일시장 위에서 작동하는 신자
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지역에 기반한 경제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분산적,분권적인 지역경제,
작은 규모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생산 시스템은 세계 단일시장에서 중앙집중적이면서도 세계
어디로나 뻗어갈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 거대 자본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석유 사용은 20대
80의 사회를 만드는 신자유주의 발흥의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동세대 내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다.
석유에의 종속은 국제평화를 저해하고, 결국 전쟁까지도 유발함으로써 정치.사회.경제적 안정을
저해한다.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는 국지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
인 요소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 위한 쟁탈전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생산된다는 것, 영국, 프랑스, 옛소련, 인도, 파키스탄 같은 국가에
서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된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하여 핵무기를 만든 것은 널
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화석연료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석유가 20세기에 일어난
많은 전쟁들, 그리고 21세기 첫 전쟁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음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석유는 20세기 말에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미국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알제
리, 나이지리아, 아프가니스탄 내전, 체첸 전쟁 그리고 2001년 9.11 테러와 그후의 미국-아프가
니스탄 전쟁의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 체첸 전쟁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와 체첸 분리주의자들간의
민족 갈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도되고 평가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체첸이 카스피해
연안의 바쿠 유전으로부터 흑해 노보로시스크 항구에 이르는 석유 수송로의 길목에 놓여 있고,
그곳을 러시아의 석유 파이프라인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체첸이 독립하면 당연히 석유 수송로의
일부가 체첸의 지배권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는 러시아의 석유수송에 심대한 장애로 작용할 것이
다. 체첸의 독립은 또한 이 지역의 다른 국가나 자치구역을 자극하여 석유생산이나 수송과 관련
해서 러시아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로서는 체첸을 독립시켜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체첸으로서는 독립하여 석유 파이프라인을 관할하는 것
이 현재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둘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이 아니
라 높은 파이프라인 통과료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서 체첸을 달래려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1997년 초에 러시아 정부는 연간 백만 달러를 통과료로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하였으나, 체
첸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톤당 2.2달러로 협상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러시아와 체첸
간의 석유를 둘러싼 분쟁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9.11 테러는 흔히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은 미국과 거기에 대항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간의 싸움
으로 비쳐지고 평가되곤 하지만, 테러가 일어나기 전의 탈레반과 미국 석유회사의 관계를 자세
히 살펴보면 여기에서도 석유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테러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카스피해 주변의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을 아프가니스탄에 건설
하려는 미국 에너지회사 유노칼(UNOCAL)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정부에 대한 탈레반 정부의 암묵적
인 동의와 그후의 배신이었다. 탈레반은 미국 정부와 유노칼 및 사우디 델타 석유 등의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고 내전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쟁취했지만 파이프라인 건설에 끝내 동의해주지 않았
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고, 이에 대응해서 탈레반이 먼저 미국을 공
격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후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수반이 된 카르자이는 미국 유노칼의 석유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많은 분석가들은 이러한 경력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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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가능 에너지원은 석유 같은 화석연료와 달리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본 조건을 제공한다. 화
석 에너지원은 한정된 지역에 집중적으로 한정된 양만 존재하지만,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지구 전
역에 분산적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화석연료와 달리 절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이것을 이용하는
기술도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는 거대 화력발전소나 대규모 정유공장의 기술과 달리 소규모 기술
이다. 풍력은 소형 또는 대형(발전용량 1000킬로와트 내외) 풍력발전기를 가지고 지구 어디에서
나 이용할 수 있고, 태양에너지는 넓이가 수십 제곱미터도 안되는 광전지나 집열판만 설치하면
전기나 난방.온수열로 전환된다. 소수력 발전기도 작은 규모의 것이라도 계속해서 물이 흐르는
개울물에 설치하면 물의 흐름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전기를 얻을 수 있다. 지름이 1.5미터도 안되
는 신형 물레방아에 발전기를 달아 흐르는 물에서 계속 돌리면 다섯가구가 쓰고도 남는 양의 전
기가 생산된다. 이와 같이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화석에너지원과 달리 중앙집중형이 아니라 분산
적, 분권적인 기술 시스템,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전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다지 크지 않으며, 첨단적이지 않은 기술을 적
용하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화석 에너지의 경우와 달리 큰 권력, 큰 시장, 큰 기술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이용은 거대 자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거대 기술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고,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시장 중심으로부터 지역시장
중심으로 회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재생가능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기술은 화석연료나 우라늄을 이용하는 에너지 기술과 내재적으로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소규모, 분산적, 분권적이며, 개인의 차원에서 또는 공동체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다. 또한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고갈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화석연료의 경우와 달리 에너지원을 확보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다. 재생가
능 에너지 기술에서 이용하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은 대부분 지구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자원을 얻기 위해 국가나 지역 또는 자본 사이의 경쟁이나 싸움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에너지, 특히 전기라는 현대사회의 필수적인 재화를 중앙 권력이나 거대 자
본에 종속되지 않고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거대 전력회사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
현재의 전력공급 시스템은 소비자가 전력회사에 완전히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비자는 중
앙집중적 전선망으로부터 전기가 공급되어야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만일 발전소가 고장나
거나 송전망이 고장나면 전기 공급은 중단되고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다. 2001년 1월 미국
은 물론 전세계에서 화제가 되었던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는 바로 중앙집중적인 전선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대다수 전기 소비자들은 거대 전력공급회
사의 전선망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전력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력이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
들 중 상당수가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민들 중에는 정전
사태와 무관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거대 전력회사의 전선망으로부터 전
기를 공급받던 사람들이 아니라 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직접 생산해서 전기자급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예를들어 자기 집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전기를 생산해서 쓰던
사람들에게는 정전 사태가 아무 피해도 입히지 않았던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도 전선망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
우 재생가능 전기가 흐르는 전선망의 규모는 대부분 좁은 지역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령
수백개의 태양광 발전시설과 수십개의 풍력발전기가 전선망에 연결되는 경우 전선망의 크기는 하
나의 작은 마을을 포괄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규모는 원자력발전소 하나에 연결되는 전
선망의 규모보다 훨씬 작다. 재생가능 전기의 전선망은 규모가 커질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규모가 어느 정도에 달하는 마을에서는 그 안에서 충분히 자급할 수 있는 재생가능 전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가능 전기가 소규모의 전선망에 연결되는 경우에는 그 전선망 전체가 마비되어 정전을 가져
오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마을의 모든 발전시설이 파괴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나의 발전소에서 전선망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아
니라 많은 발전시설에서 전기가 생산되고 분배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주택의 태양광 발전기
가 고장나면 그 주택에 정전이 일어날 조건이 발생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택이 마을의 전선망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다른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남는 전기를 공급받으면 정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주택의 발전시설에서도 전기가 모자라서 정전된 곳으로 전기가 들어올 수 없는 경우에만 정
전이 발생할 뿐이다. 그러므로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은 화석에너지나 원자력 기술이 개별 소비자
를 거대 전력공급 시스템에 종속시키는 것과 반대로 이들을 이 시스템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기능
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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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가능 에너지의 이용은 화석에너지원의 고갈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
서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을 없애 준다. 지속가능한 사회란 자원의 지속적인 이용
과 평화로운 번영이 가능해야만 성립될 수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의 이용은 에너지의 지속적인
이용을 가능하게 해주고, 사회구조를 지역중심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필요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 시스템으로부터 재생가능 에너지
에 바탕을 둔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우리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현재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유
럽 몇몇 나라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의 도입을 위해서 약간의 노력을 펼치는 것 정도다 대부분이
다. 한국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여기저기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이의 필요조건인 에
너지 시스템 전환을 위한 움직임의 싹은 발견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확립해야
만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사회
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에너지 시스템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글 : 이필렬(방송통신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

자료제공 : 에너지대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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