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안전

[활동기사] 사망 1만4천명, 피해 경험 67만명…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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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이제 화평법을 업그레이드 해야 할 때

 

ⓒ환경운동연합(2022)

 

“해충박멸업자들이 야기한 위험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일반 시민이다. 지금과 같은 방제법을 계속 고집할지 결정을 내리려면 현재 벌어지는 상황과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화학살충제의 남용을 통해) 살아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묵인하는 우리가, 과연 인간으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카슨이 던진 질문이다. 그녀가 저서 <침묵의 봄>을 통해 무분별한 화학방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1962년에 내놓은 이 메시지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했을까. 화학안전에 대한 이 통찰은, 우리 사회에선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있고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해구제 신청자 7651명, 사망자 1742명, 정부 지원대상자 4334명.
잠재적 사용자 627만0000명, 건강피해 경험자 67만 명, 사망자 1만4000명.

1월 31일 기준 피해구제 신청현황과 2020년 발표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피해산정 추정치다. 막대한 숫자들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준다.

“우리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일들은 국민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서글프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도가 구멍 난 상황에서 운에 따라 누구라도 겪을 법한 일이었다. 건강에 좋다는 광고문구를 믿고 쓴 화학제품이 사실은 안전문제 검증조차 안 되었던 것이란 사실은 충격이었다. 배신감을 장작으로 삼아 불매운동은 활활 타올랐다. 2016년 여름 화살은 옥시로 집중됐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학기업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죄’ 후폭풍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은 법원의 소극적 판단

언론보도에 따르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2017년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신현우 전 옥시 레킷벤키저 대표는 여전히 원료 공급사인 SK케미칼의 책임을 주장한다. 원료물질인 PHMG를 소개·제조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6년 검찰수사 당시 SK케미칼은 PHMG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될지 몰랐다고 주장했고, 검찰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법망을 피해갔다.

이후 CMIT/MIT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기업들(SK·애경·이마트 등)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졌고, 1심 결과는 2021년 1월 12일에 나왔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아쉬웠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3부(재판장 유영근)는 PHMG 원료공급사로서 SK케미칼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SK케미칼 연구팀장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형사합의 23부는 원료물질을 공급한 SK가 (옥시 등의) 사용을 중지시킬 의무가 있다고 보진 않았다. 이러한 법원의 소극적인 판단은 ‘SK애경이마트 등이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는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고도 무죄’를 받았다는 후폭풍에 가려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신 전 대표의 옥중 인터뷰(관련기사 : [단독] 옥시 전 대표, 첫 옥중 인터뷰 “가습기살균제 sk케미칼 무죄 참담”)가 나온 지도 벌써 1년이 흘러버렸고 사실을 확인할 길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료공급업체와 제품생산 업체의 진실공방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하지 않은 제품이 공급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료를 공급하는 기업과 이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모두가 안전성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하도록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환경운동연합(2022)

 

‘화평법’을 업그레이드 할 때가 왔다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그 용도대로만 사용하도록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19년부터 1톤 이상 기존 화학물질 등록을 시작했다. 이러한 제도개혁의 성과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라는 비싼 대가가 필요했다. 이 작업은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톤수별로 유예기간을 정해놓았고 2030년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물질을 등록할 때 용도와 노출 시나리오에 대한 점검까지 완벽하게 되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또한 등록 이후에 위해성 심사가 내실 있게 진행될지도 의문이다. 현재 국립환경과학원이 위해성 심사를 전담하는데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모두 커버하기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부처의 공조가 가능하도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의 개편을 통한 통합적인 화학물질 정보관리가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환경부가 관할하는 범위에 한정돼 있으며, 관계부처(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화학안전 강화를 위해 REACH라는 유럽의 관리제도를 들여왔는데, 아직도 최적화가 덜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샀는데 소프트웨어는 10년 전에 출시된 버전을 같이 써야한다면 이 상황을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업그레이드를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물이 엎질러지고 나면 때는 이미 늦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 아닐까 생각도 든다.

광범위한 피해양상과 더딘 구제절차, 가해기업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는 사법절차의 난맥상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수습을 위한 사회적 비용은 계속 늘어만 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케미포비아’나 ‘No케미족’ 같은 낯선 용어를 앞세우며 지나치게 ‘소비위축’을 걱정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관점부터 바꿔야한다. 화학안전제도가 불필요하고 줄여야 할 비용이라는 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은 우리 사회에선 이미 낡은 생각이다. 관건은 다시 사전 예방이다.

내가 무죄를 받았다면 SK케미칼을 조사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SK케미칼이 거짓말을 한다는 확신을 했고, 수감 이후 시간과 사비를 투입해 연구를 진행했다. 출소 이후에도 계속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것이 내가 피해자에게 속죄하는 방법이다.

언론에 보도됐던 신현우 옥시 전 대표의 의지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까. 이 참혹한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사건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애석하게도 남은 건 후회뿐이다.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대 대선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찍을 후보가 없다는 자조가 횡행한다. 환경공약은 여전히 실종됐고, 생명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관심은 더 떨어진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정책들의 역주행은 가능할까?

 

노란리본기금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홍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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