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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사회운동의 레퍼토리로서의 재판투쟁-새만금 소송을 사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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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5_이시재.pdf

<새만금 소송 토론회>

새만금 갯벌 보전 운동에 있어서의 새만금 소송, 판결의 의의

-사회운동의 레퍼토리로서의 재판투쟁 (새만금 소송을 사례로)

이시재(가톨릭대학교, 사회학)

1. 서론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재판투쟁은 한국의 환경운동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다.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재판투쟁은 환경단체의 직접적인 행동, 지
역주민들의 반대운동, 전문가들의 논전, 삼보일배, 국제적인 지원운동과 같은 생명운동 등과 함
께 여러 가지 사회운동의 레퍼토리의 하나이다. 재판투쟁에는 환경단체, 전문가. 지역주민들, 전
문가 등이 모두 가담하여 전개하였다는 의미에서 일련의 종합적인 운동레퍼토리라고 말할 수 있
다. 이러한 재판운동의 결실로서 금년 1월에는 4년간의 심리 끝에 원고측의 주장을 대체적으로
수용한 조정권고안의 제시가 나왔고, 피고(정부)측이 조정안의 수용을 거부하자, 2월4일에는 실
질적으로는 원고승소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지금 이 소송은 원고와 피고가 다같이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계류중이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의 조정권고 및 판결은 새만금사업의 당위에 대한 법
률적인 판단으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새만금사업의 당위나, 판결의 근거가 되는 논지에 대한 검증은 피하기로 한다.
이 논문에서는 재판투쟁이 사회운동의 레퍼토리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지적하여 앞으로의 새만
금반대투쟁의 일환으로서 재판투쟁의 의미, 다른 운동 레퍼토리의 구성 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
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법 혹은 재판과 사회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법은 사실에 기초한다. 그래서 통상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은 실증법이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영향에 다
시 법에 반영되어 법은 항상 사회와의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모든 사실이 법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며 법적 질서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다. 사
회적 규범, 윤리, 도덕은 법은 아니지만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기초를 이루고 있다. 법과 사회와
의 상호변화를 가져오는 요인들 중 가운데 사회운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운동은 사
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고, 또한 현상유지의 법에 대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재판관은 일차적으로는 실증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지만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지 않
을 수 없다. 그런 사례들은 무수하게 존재한다. 재판관이 판단컨대 실증법이 사회적 변화를 반영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하여 법이 바뀌거
나 정지되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재판은 그 판결을 통해서 법을 만드는 효과를 발
휘하기도 한다. 실증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만 재판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 국제적인 규범
의 변화, 시민의식, 사회통념, 사회통합 등 다양한 요소들이다.
최근의 우리사회에서 여성차별을 철폐하는 여러 가지 법률이 만들어졌다. 이 법률들은 양성평
등에 대한 국제적인 규범의 변화와 국내에서의 여성운동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그 결
과 정부여당에서 이를 수용하여 법제화한 것이다. 호주제의 폐지를 담은 법률의 파장은 대단히
클 것으로 판단된다. 가족의 구조, 친족관계, 계승문제, 상속문제, 재산관계 등 그 변화의 파장
은 더 없이 확대될 것이다.
한편 사회운동 차원에서 재판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사회운동은 현재의 질서에 대한 변화
를 추구하거나, 아니면 변화의 움직임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운동은 체제의
변혁 또는 변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새만금재판의 가능성과 한계를 검토하고자 한다. 사회운동
의 레퍼토리로서의 재판의 효용과 한계를 다같이 검토하는 것과 같다.

2. 사회운동의 레퍼토리로서의 재판투쟁

Charles Tilly, ‘정치적 요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일련
의 수단‘으로 레퍼토리를 정의하고 있다. 그는 농민저항의 역사를 분석하여 농민들이 동원할
수 있는 저항의 수단이 그 시대에 따라 매우 제한적이며, 역사의 변화와 더불어 저항수단의 세트
고 바뀐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저항은 수단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한다는 <공변성 (covariation)>에 역점을 두고 있다. 또 저항의 수단은 하나의 수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용가능한 수단의 조합 혹은 세트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레퍼토리의 변화를 우리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폭력가두행진이 중심이었던
한국의 학생운동은 1980년대에 폭력적인 탄압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
은 화염병을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환경운동의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매
우 제한되어 있다. 언론을 이용한 입장의 발표, 피켓팅, 퍼포먼스 등 ‘평화적인’ 방법이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삭발, 단식, 농성, 삼보일배 등 자기희생을 통하여 상대
방을 감동을 유발하려는 전술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일본의 공해투쟁은 1960년대 미나마타 공해병 소송, 욧카이치 소송, 이타이이타이병 소송 등
반공해운동이 재판투쟁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물론 지역주민들이나 지식인들의 투쟁이 없었던 것
은 아니었지만, 재판투쟁을 통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그리고 법조인들이 운동
이 참여하여 재판에 관여하였다. 일본의 공해소송은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과 같이, 30년
이상 지속된 것이 많고, 변호사들이 일생을 이 재판에 걸고 있다. 변호사들은 일면 운동에 가담
하여 운동을 확산시키고 재판에 임하여 사건을 ‘키우는’ 일을 해 왔다. 욧카이치 석유공단의
공해소송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더라도 피해자가 특정할 수 있으면 잠재적인 가해자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례를 남겨, 그 후 가와사키시 등 대기오염에 의한 공해병(천식 등) 문제 해결에
큰 돌파구를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재판투쟁이 반공해운동의 주요한 레퍼토리로 동원된 것은 말
할 것도 없이 수많은 법조인, 전문가들이 재판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며, 일본의 사법부가 공해문
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것은 일본전체가 1960년
대 이후 지역운동, 사회운동이 고양된 시기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민주화는 전후에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지만, 이것을 시민들이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운동의 뒷받침이 필요
했던 것이다. 1963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혁신자치체와 주민운동이 바로 그것의 증거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해재판의 전통은 이사하야만의 간척문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에서도 여전
히 동원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30-40년 전부터 공해문제를 재판을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이 정착되었으나 왜 우리
나라에서는 재판운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았던가? 이것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나, 우선 몇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인들의 민주의식이 크게 발전하였고, 사법
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는 제도적인 발전의 요인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민주화이
후 사람들은 재판을 통해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성차별에
의한 고용차별이 재판을 통해서 해결된 사례도 있고, 노동자의 권리(퇴직금, 해고 등)가 재판을
통해서 보장된 경우도 있었다. 재판은 법률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지만, 사회적 통념의 변화를 전
적으로 무시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민주의식의 고양으로 재판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의 재판
의 유효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 다음으로 환경문제와 같은 공익성이 큰 사건에 대한 헌신적인 변호사들의 운동이 재판투쟁
의 레파토리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변과 같은 변호사단체들이 인권, 노동,
여성, 환경 등 사회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운동이 있기에 사회운동단체들이 재판을
운동의 수단으로 동원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이 법률센터를 만들어 전속 법
조인이 일할 수 있게 한 것도 새만금재판을 가능하게 한 구체적인 요인이다. 만약 환경단체가 통
상의 변호사를 고용하여 재판을 진행한다면, 비용의 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전문성, 정열의 측
면에서 도저히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재판을 지원하는 전문가의 존재이다. 정부의 프로젝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자연과학자들의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새
만금사업의 경우에는 정부와 환경단체가 각각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공동조사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환경단체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는 학자들이 있고, 이들이 재판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였다. 지식인집단내의 이와 같은 분화가 없었더라면 변호사들의 소송의 진행에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재판이 사회운동의 레퍼토리로서 동원될 수 있는 30-40년 전의 일본과 같은 상황과 조건들이
한국에서도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3. 레퍼토리로서의 새만금소송

새만금소송은 2001년부터 시작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은 원고단이 요구한 방조제 물막이공사 중
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공사중지를 명하였다. 그 후 그 명령은 다시 취소되었지
만 가처분신청이기는 하였지만, 새만금공사 중단의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2001년 5월24일 정부가 새만금사업의 재개를 결정하였을 때, 환경단체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쟁점토론이나 대안토론에서는 새만금사업의 부당성이 충분히 지적되었고, 대안의 제시에 있어서
도 지금까지 투입한 공사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전라북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
각되었지만, 정부는 이것을 환경단체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그러한 열패감에 빠져 있
었을 때 방조제공사의 중단이라는 가처분은 새만금 반대운동에 큰 활력이었다.
그러나 새만금운동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소송만 계속된 2003년 봄에 수경, 문규현
신부 등이 시작한 새만금 갯벌에서부터 서울까지의 60일에 걸친 삼보일배는 운동에 새로운 기운
을 불러 일으켰다. 삼보일배는 한국의 사회운동에 또 하나의 레퍼토리로 등장하였다. 재판에 직
접적인 영향을 어떻게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으나, 삼보일배 이후 새만금에 대한 국
민적인 관심이 고양되고,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 기간 동안
에 일부의 전문가들 사이에 전라북도의 개발욕구도 어느정도 충족시키고, 갯벌도 상당히 보전할
수 있는 부분간척안이 나오기도 하였다. 한편 농업기반공사는 방조제 공사의 완공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서둘러 제4공구공사를 마무리하였다.

3.1. 조정권고에 담긴 메시지

2004년 11월에 최종변론을 마치고, 2005년 2월에는 재판부에 의한 조정권고가 제시되었다. 재
판부와의 지속적으로 접촉한 변호인단에 의하면, 법리적인 문제에서는 원고측의 승소가 확실하지
만 재판부는 그 판결의 현실적인 파장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법리적인 문제
보다도 사회적, 정치적 파급효과를 걱정하고 있었고, 원고단에 대해서 반대편에서도 수용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한다.
재판부가 제시한 조정권고는 (1)새만금 간척지 용도특정과 개발범위에 대한 논의를 위한 위원
회 설치 (2)환경단체와 정부의 추천에 의한 공동위원회 구성 (3)결론이 날 때까지 방조제공사 중
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조정권고에 대해서 환경단체, 지역주민 등 원고단에서는 환영의 의
사를 표명하였지만, 정부(농림부, 전라북도)는 이를 거부하였다.
조정권고를 뒷받침하는 논거는 법률적 근거라기보다는 새만금사업의 실체적인 평가에 근거하
고 있다. 실체적인 평가의 논점은 4가지이었다. 첫째는 새만금간척지의 용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농림부를 제외하고는 전라북도, 역대대통령 등 모두가 새만금을 복합산업단지로 조성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농림부조차도 그런 숨은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농지조성
이라는 목적에 맞추어 환경성, 수질평가, 경제성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농지조성은 지
금 우리나라의 농업사정상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새만금사업은 사업의 진정한 목
적과 절차 및 수단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담수호 관리면에서, 시화호, 화옹호의
사례에 비추어, 환경부의 의견에서도 확인될 수 있듯이 농업용수로도 부적합하며, 복합산업단지
를 조성할 경우 그 부적합성은 더욱 확실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성의 평가는 편익과대계
상, 이중계산 등의 오류가 지적되는 등 문제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갯벌의 가치
에 대해서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갯벌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단계에서 새만금사업에 의해 갯벌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 조정권고문에는 생태가치에 대한 재판관의 가치관을 읽을 수도 있다. ‘새만금 갯벌이 매립
될 경우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면서 희귀종의 멸종을 초래하여 지구생태계의 종다양성도 훼
손될 것으로 보인다’고 부분이 있으나 이것은 종다양성에 대한 재판관의 인식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심지어 ‘새만금은 제2의 시화호가 되어서는 안된다. 새만금을 제2의 시화호로 만드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이 될 것’이라고 조정
권고안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고 있다.

3.2. 본안 판결문에 담긴 의미

조정권고에 대해 정부측에서 거부의 답변을 받고, 재판부는 2월4일 판결을 하였다. 판결문은
2001년 5월24일 원고단이 농림부장관에게 제출한 공유수면매립면허 등의 신청을 거부한 농림부장
관의 거부처분을 취소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며, 농림부장관은 현재 진행중인 새만금방조제 공사
에 관해서 여러 가지 사정변경이 생겼기 때문에 원고측의 취소신청이 있는 이상 농림부장관이 이
를 변경처분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즉 농림부장관은 1991년의 새만금사업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면허 처분 및 사업시행인가 처분을 취소하라는 것이다.
이 판결의 핵심은 과연 새만금사업을 취소할 수 있을 정도로 사정 변경이 있었던가라는 점이
며, 재판부의 판단은 충분히 재고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조정권고문에서 제시
한 4가지 점에 대해서 자세하게 논증하면서, 새만금사업과 관련하여 사업목적, 환경조건, 경제
성, 갯벌의 가치 등에서 중대한 변화가 생겼으며, 이 변화에 기초하여 요구한 변경처분을 거부
할 수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판결문은 물론 원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농림부장관의 위법사항만 적시하면 되
는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에서는 법리상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확실하게 논증되었다
고 보지 않았던 갯벌의 가치에 대해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갯벌의 가치는 생태가치
에 대한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현대건설이 천수만 간척사업을 할 때만 해도 아무
도 갯벌의 가치를 주장하지 않았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 국민들의 환경의식의 변
화, 시화호와 화옹호의 실패, 철새나 생태환경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의 변화 등이 갯벌의 가치
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판결문에서는 갯벌의 생태계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철새나 조개 등 생물의 생
명권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성산 도롱뇽재판, 이사하야의 망둥어재
판에서와 같이 생물들은 재판의 법률적 당사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새만금재판에서는 그들
의 생명을 배려하는 판결을 하였다. 또한 새만금재판에서는 미래세대에 대해서도 배려하고 있어
서, 그들도 실질적인 법률적 당사자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한편 새만금 재판에서는 2001년 5월의 새만금사업 재개결정에 대해서는 그 형식적 절차를 인정
하여 적법하다는 인정을 하였다. 2001년 5월의 결정에 대해서는 필자가 다른 논문에서 이미 지적
한 바가 있었지만, 이것은 형식면에서나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 ‘적정과정’을 거치지 않은 결정
이었다. 5월초의 쟁점토론과 대안토론, 그리고 그 토론에 대한 평가자회의, 그 평가자회의 결과
에 대한 ‘보고문서 조작’의 문제, 그리고 총리실에서의 민간합동 수질기획단의 결정과정 등에
있어서 수많은 하자가 있었지만, 재판에서는 그 실질을 무시하고 형식만을 가지고 적법판단을 내
렸다. 이러한 적절하지 못한 과정을 재판은 정당한 것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농림부장관의 위법판단에는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원고의 적법 당사자의 문제
에 있어서도 재판부는 소극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농립부장관에게 공유수면매립허가 취소요구
는 새만금간척사업에 의해 영향을 받을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의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만 적법한
원고자격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규현 신부, 최열 당시환경운동연합 대표, 윤준하
서울 환경운동연합 의장 등은 원고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 판단은 앞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
칠 것이다. 노사관계에서 제3자개입이 한때 불법이었지만, 지금은 허용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
국의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는 환경단체로서는 대단히 판단을 해 준 것이다. 법대로 한다면 방사
능폐기물처분장 반대투쟁은 그 지역민만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말하자면 새
만금의 생태환경에 대해서는 그 지역에 살고 있고, 생업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사업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고측의 주장, 즉 헌법에 보장된 국민
의 환경권은, 그 절차, 대상, 내용, 주체, 행사방법 등 하위법률이 없는 한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의 이유이었다. 말하자면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이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서는 하위법률
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의 환경권은 현재로서는 선언적인 의미밖에 갖
지 않는 것이다.

3.3. 소송의 테두리—그 안과 밖

재판은 원고대리인 변호단이 그 판단을 법률에 근거하여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
린다. 그런 의미에서 원고대리인들의 재판전략은 소송의 요체이다. 그래서 재판관은 법률에 의
하지 않고 당사자간의 조정을 선호하였다. 조정권고문이 대단히 실체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재판관은 판결문을 낭독하기 앞서, ‘저희 재
판부의 생각은 아직도 이 사건을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
이 가장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여 조정권고가 거부된 것에 대해서 안타깝
게 생각하고 있다.
재판의 판단은 그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의미에서 가장 최종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
든 사회적인 현상을 법률로 규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법률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궁색함을 갖
고 있다. 재판이 끝난 다음 어떤 어민이 ‘법원판결은 보강공사를 하라는 뜻인데 4공구를 다시
터야 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4공구가 막히면서 어민들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하였
다. 그 호소에 대해 변호사는 ’모든 것을 법을 통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 4공구를 다시
트는 문제는 어민과 환경단체가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상의 담론에서 알 수 있듯이 법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가 없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재판
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영역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해결,
사회운동을 통한 해결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재판투쟁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운동의
레퍼토리로서 한계를 갖고 있다.
조정권고문이나 판결문에는 운동단체에서 주장한 내용, 학자들의 논문, 그리고 증언 들이 폭넓
게 인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판관은 현장 답사도 하고, 관계자들의 증언도 폭넓게 들
었고 관련문헌을 면밀하게 검토하였기 때문이다. 소송과정의 테두리 밖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소
송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는 대단히 많다. 또 반대로 재판의 결과, 새만금반대운동
은 용기를 얻고 그 반면 이를 추진하는 세력들은 곤경에 빠져 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재판관이 이를 판단하여 새만금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재판투쟁이
사회운동의 레퍼토리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4. 맺음말

새만금반대운동은 환경단체의 반대운동, 삼보일배와 같은 성직자들의 생명평화운동, 법조인들
이 중심이 된 재판투쟁, 그리고 전문가집단에 의한 연구조사와 대안연구 활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운동의 레퍼토리가 한 묶음이 되어 새만금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삼보
일배와 재판투쟁은 그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 전술과 전략의 집약이었다. 삼보일배는 그 극한적
인 방식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던 것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동원함으
로서 그 후의 환경단체의 삭발투쟁, 직접행동 등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재판투쟁은
소수의 변호사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전문가집단은 독자
적인 집단행동을 하기보다는 재판에 도움을 준다든지, 대안연구를 위해 조사를 한다는 방식으로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정작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환경단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환경단체들은
한때 새만금문제를 중심과제로 삼아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삼보일배 때도 지원세력으로 스
스로 자임하였고, 재판에서도 보조적인 역할에 임해야 했다. 말하자면 환경운동은 지금 새만금
운동과 관련하여 한편에서는 재판투쟁을 지원하여야 하겠지만, 독자인 레퍼토리를 재구성할 필요
가 있다. 재판을 통해서 그 만큼 성과가 있었다면 그 다음은 환경단체가 그것을 뒤를 이어 나갈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접행동, 성직자들의 삼보일배, 전문가들의 활동, 새만금반대운동은 핵폐기장반대운동이나 동강
댐반대운동과 같이 그 중심이 지역에 있는 경우와 달리, 얼마간의 어민들의 반대운동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주민들의 대다수는 새만금간척사업을 찬성하고 있다.

출처/ 환경법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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