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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운하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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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경연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경부고속철, 새만금간척사업, 수도이전 모두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사업들이다. 충분한 검증과 합의를 거쳐야할 사업들이 표를 얻기 위한 정치선동의 수단으로 변질돼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빚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대규모 개발사업을 앞세워 표를 얻으려는 구태는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전 시장의 경부운하 건설 계획이다. 이에 맞서 최근 범여권은 남북운하 개발을 북한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부운하와 남북운하는 저마다 물류난 해소와 남북평화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골재채취사업이라는 본질을 감추기 위해 환경을 상품으로 판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개발 사업을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로 분칠하는 시대라지만, 운하 건설이 환경개선사업이라는 해괴한 주장이 먹히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뱃길을 내려면 구부러진 물길을 직선으로 펴고 강바닥을 깊이 파내 큰 돌을 쏟아 붓거나 시멘트를 발라야 한다. 홍수 때 상류에서 내려와 바닥에 쌓인 토사와 오물을 제거할 목적으로 거의 매년 강바닥을 긁어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상수원이다. 하천과 호소가 취수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운하 건설은 곧 마실 물 포기를 뜻한다.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오염도 문제지만, 선박 사고가 발생해 독성물질이라도 유출되면 상수원을 아예 폐쇄해야 한다. 독일에서도 라인강과 다뉴브강에서만 한 해 400건의 선박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 사고와 폐기름 무단투기로 흘러드는 오염물질의 양이 한 해 200톤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운하를 이용한 화물운송은 대표적인 사양산업에 속한다. 운하는 석탄이나 시멘트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대규모 화물의 장거리 운송을 담당해왔지만, 최근 전자, 기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그 역할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독일에서 운하 관련 종사자 수는 1960년대 30,000명에서 2004년 7,600명으로 감소했다. 주운 회사 수, 매출액, 보유 선박 수 등이 모두 줄어 정부 보조금 없이는 단 하루도 유지되기 힘든 상태다. 미국에서도 내륙주운 물동량은 지난 10년간 30%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륙국가가 이런 정도라면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운하를 이용한 화물운송이 경제적일 리 없다. 갑문 19개가 설치된 530km의 물길을 바지선이 36시간에 주파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공상소설에 가깝다. 건설비용과 유지관리 비용도 문제다. 경부운하 건설비용은 20조원을 훨씬 넘어설 것이 분명하지만, 20조원으로 가정한다 해도 km 당 건설비는 370억원에 달한다. 이는 복선철도와 고속도로 건설단가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범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운하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임진강 뱃길을 열기 위해 32억톤의 모래를 채취한다는 발상은, 장소와 명분이 다를 뿐 경부운하 건설 계획을 그대로 빼닮았다. 임진강에 인접한 한강하구는 작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골재채취가 금지된 곳이다. 한강하구를 평화지역으로 선포한다는 명분만 있으면 법을 무력화시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를 파괴해도 좋다는 것인가? 맹목적인 개발은 남과 북의 경제와 환경, 더 나아가 평화까지도 망치는 지름길이다. 정치권의 ‘묻지마’ 운하타령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5월 4일자 기고 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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