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자료

새만금 지역을 살리기 위한 한·독 공동 심포지엄 –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요?”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요?”
-새만금 어민들의 외침을 들으며

글 : 함한희 (전북대 문화인류학)
hanheeh@moak.chonbuk.ac.kr

I. 국민과 민족 사이에서

본 연구팀은 지난 2001년 5월 새만금간척개발사업(이하 새만금사업)의 강행이 결정된 이후 현
재에 이르기까지 이 사업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서해안가 마을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
로 새만금사업의 영향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하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김제군, 군산지역 일대
의 5개 마을이 그 대상이 되었다. 이 발표에서는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태를 중심으로 거슬러 올
라가면서 어민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다. 현재 어민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이들
의 고민, 고통, 갈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이 발표의 목적이다.
새만금지역에서 실시한 지난 2년 여 동안의 조사내용을 살피면, 이 지역의 바다와 갯벌의 환경
이 변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새만금사업의 개발방향도 여러 차례 바뀌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마다 어민들의 희비는 엇갈리고 지역사회의 혼란도 가중되었다. 처음부터 지역어민들은 새만금
사업의 계획에 대해서 부정적이었고, 반대에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전라북도의
전폭적인 선전에 힘입어서 많은 지역민들이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새만금사업지구가 복합산업단지가 되면서 첨단산업단지와 국제항구가 들어서고, 첨단영농단지
및 수산양식장도 만들어진다고 선전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정부에서는 새만금사업의 절대
적인 필요성과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적극적인 선전공세를 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1999년 이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갯벌생태계의 훼손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
었다. 때마침 담수호인 시화호도 정화작용에 문제가 생겨서 썩어들어가고 있었던 터였다. 환경단
체들이 중심이 되어서 새만금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
로 정부에서는 “새만금환경영향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고 그 조사결과에 따라서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코자 했다. 공동조사단의 조사가 끝나고 정부는 새만금사업의 지속을 결정하였다. 한
편, 민관공동조사단의 결과 발표 및 공청회 등을 통해서 지역 어민들은 새만금사업의 실제 방향
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정부가 선전한 것과는 다르게 간척지가 전면 농지로 전환된다
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역민들은 개발된 농지에 대한 특혜를 받을 수 없다고 하는 정부의
토지불하원칙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역민들은 크게 실망하였고, 정부에 대한 배반감도 더해져갔다. 방조제 공
사로 생활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던 지역민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었
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일시에 무너져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환경운동 단체 및 종교단
체 등 외부로부터의 자극도 받으면서 어민들 내부에서는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
게 되었다. 생업활동에 전념하는 어민들일수록 새만금사업 반대의 목소리를 높혔다. 바다지키기
자치회를 운영하기도 하고, 어촌계 재조직 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런가하면, 마을청년회가
중심이 되어서 각종 행사를 마련하여 공동체 회복을 꾀하여 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민들의 활
동은 내부로부터의 위기 의식과 외부로부터의 각종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코자 하는 노력에서 출
발한 것이었다.
어민들 스스로가 세운 자구책이 지속되면서 근근히 살아가던 시점에서 또 한번의 위기가 닥쳤
다. 지난 2월 11일, 전국순회 국정토론회 전북지역 간담회에서 노무현대통령당선자의 발언은 이
들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린 사건이었다. 노 당선자는 새만금간척사업의 지속을 확인하였고, 개
발 방향도 수정할 것을 약속하였다. 새만금사업이 지속될 것이라는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에 보았
다고 하는 이 지역 어부들은 다소 냉소적인 어조로 말하였다. “이제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지
만, 그래도 개발을 계속한다고 확정하니께, 어찌 살찌 걱정스럽네요”라고 말한다.
마침 대보름행사의 하나로 풍어제가 한창인 계화도리를 찾았을 때, 어민들은 풍물을 치면서 사
라져가는 풍어제의 의미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부들은
만선의 꿈은 아예 꿀 수도 없게 되었고, 먹고 살수 있을 만큼의 고기라도 잡혔으면 하는 바램으
로 풍어제를 지내고 있었다. 풍어제가 어쩌면 올해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나
오는 어부들의 몸짓과 소리는 처절해 보이기 까지 하였다.
“정부가 무슨 발표를 해도 이제는 믿지 않아요. 조금 있으면 또 바뀔 건데요. 언제 또 바뀔른
지 누가 압니까?” 풍물을 치는 도중에 숨을 잠시 멈춘 어부들은 제각기 자기 말을 한다. 그 가운
데 가장 폐부를 찌르는 발언을 한 사람은 한평생 고기를 잡았다는 김씨였다.
“우리 어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가 죽겠다고 하는데 왜 모르는 척 하
는 거지요?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는다고 해서 몇 백 억을 갔다주는 판인데, 우리는 안 어려웁니
까? 어려운 건 그 쪽(북한)이나 우리나 다 마찬가지지요. 우리도 곧 굶어죽게 되어 있습니다. 계
획대로 한다면 2004년, 내년이면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어업은 이제 끝장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지요. 굶어죽을 지경입니다. 북한사람들만 굶어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
다. 왜 그쪽은 도와주고, 우리는 왜 차별하는 거지요?”
김씨의 발언은 국민보다는 민족이 앞서는 정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
민의 생존이나 복지가 더 우선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냐는 그의 반문은 충격적이다. 국민과 민족,
생존과 개발의 문제가 서로 얽혀서 어민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국민 개개인의 생존을
소홀히 하면서 국가차원의 개발정책이나 민족화합 정치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반문하는 어부
김씨의 항의가 섞인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심사숙고해진다.

II. 생존권운동 1: 계화의 풍년풍어제

올해의 대보름행사는 작년과 비교하여서 외형적으로 커졌고, 행사의 내용도 다양해졌으나 참석
하는 주민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고, 분위기도 침체되었다. 지난 해 대보름행사에는 외부인들도
마을주민들도 활기찬 분위기에서 모여들어 봉수제 및 풍년풍어제를 지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
만금사업에 대해서 마을주민들 스스로 적극적인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자신들의
생존권도 스스로 지켜야한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주민들의 자치적 움직임이 가장 고조되었던 지
낸 해의 풍년풍어제가 떠올라 현재 이들이 받는 고통의 무게가 더 무거워 보였다.
내가 지난해 계화도리 대보름행사개최 예정에 대한 안내를 전달받은 것은 2월 초였다. 장금마
을 앞 갯벌에서 장승세우기 행사를 비롯한 각종 대보름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계화도 주민들
과 ‘부안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행사이므로 모두들 기대가 컸다. 그런데 행사를 앞둔 며칠 전
갑자기 예정된 대보름행사가 취소되었다. 장승이 미처 완성되지 않아서였다. 다소 아쉬워하던 차
에, 대보름 하루 전인 2월 25일, 대보름 행사가 그대로 열릴 것이라는 전갈을 받았다. 나는 취소
된 행사가 갑자기 다시 열리게 된 뒷이야기를 마을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마을 청년회가 단
독으로 대보름행사를 개최하도록 계획을 바꾼 것이었다. 장승이 미완성되었다는 이유로 마을행사
를 취소시킬 수 없다는 것이 마을청년회 측의 생각이었다 즉 마을행사인 만큼 주민들이 자치적으
로 조촐하게 대보름행사를 마련하겠다는 뜻이 들어있었다. 마을청년회에서는 서둘러서 행사를 진
행시키고, 계획되었던 장승제 대신에 풍년풍어제로 행사내용도 바꾸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주민들의 자치의식과 그 실천적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의 청년회는 이 행사를 통해서 주민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하였다. 그 동안 계화도
가 새만금반대추진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자 주민들은 득과 실의 양면을 모두 경험하고 있던 터였
다. 득도 있었지만,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커지면서 마을사회가 점차 의존적, 수동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고 내부의 갈등도 커져갔기 때문이었다. 마을사람들 스스로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는 반성도 있었다. 당시에 있었던 행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러 곳에서 이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이 행사에서 마을주민들은 자신들의 생계양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그
리하여 대보름행사내용도 봉수제 대신에 풍년풍어제를 강조하였다. 원래는 행사의 명칭도 봉수제
였던 것을 <봉수제 및 풍년풍어제>로 바꾸었다. 주민들이 기리고 싶은 것은 봉수대에 대한 역사
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절실한 생계양식의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었
다.
둘째, 相生정신의 인식을 재확인코자하는 의도가 있었다. 마을사회에서 농민과 어민들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있었고 특히 새만금사업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점을 개선
코자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풍년풍어제라는 이름 아래서 농민과 어민의 화합을 강조하였다. 풍년
도 빌고, 풍어도 비는 주문과 제의식을 통해서 함께 살아야하는 점을 다시 강조하였다. 농민과
어민이 함께 어려워지면서(올해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운동이 있었음) 마을의 농민들도 행사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면내의 수협장, 농협장이 함께 참석하여 차례로 축하인사를 하고 (축
사의 순서는 면장-수협장-농협장임), 부안군농민회에서 대표자도 참석하여 축하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모든 행사를 앞으로는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말들을 나누었다.
셋째로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연례행사인 보름행사의 주최를 각 부
락이 윤번제로 하기로 정해지면서 그 비용도 각 마을이 조금씩 나누었다. 번거롭고 노력이 많이
드는 음식장만은 한 마을이 돌아가면서 맡기로 정하였다. 지난 해에는 하리마을이 맡았다. 하리
마을 주민들은 새만금사업에 대해서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각종 마을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고 있었다.

III. 생존권운동 2: 거전의 어촌계 설립 움직임

2002년 봄부터 새만금사업의 영향을 받는 어촌마을에서는 어촌계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어업
중단 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촌계설립움직임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이 어촌계
는 비법인 어촌계로써 어민들의 궁색한 자구책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어업이 금지된 상태에
서 어민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어촌계를 설립하여 공동작업에 임하고자 하였다. 어촌계의 가입자격
은 일년에 60일 이상 바다에 종사하고 주위사람들로부터 어업종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출자금을 내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출자금은 각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난다. 대체로는 20만원부터 50만원까지로 정하고 있었다.
현재는 새만금구역 내의 조업이 금지되어 있어서 어촌계를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다. 그러나 이 지역 내에서는 현실적으로 조업을 하고 있다. 제방공사가 완공되지 않아서 아직
은 바다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어민들로서는 계속 바다에 나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어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조치가 된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근 십년 지속되다가 2002년 3
월 각 지역에서 어민들의 요구가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어민들의 요청이 인정되
어서 조건부로 어촌계 설립에 대한 허가도 났다. 즉 어민들이 새만금사업이 완성되어서 현실적으
로 조업이 불가능해졌을 때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어촌계 설립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 가운데는 실제로 어업을 중단한 사람들도 어
촌계에 가입하기를 원하였다. 이 때문에 마을내 의견이 나뉘어졌다.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어촌계
가 설립되자, 나이가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킨다고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어촌계 설립 후 있을 어떤 경제적 이득으로부터 노인들을 소외시키려한다는 것이 이들
의 불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과거 어촌계의 활동과 그에 대한 정부 측 보상
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이러한 분란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어촌계 설립움
직임과 갈등은 과거의 유산이다. 돈지마을의 경우 조업구역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
고, 625명이나 어촌계 가입을 하였다. 거의 어업을 포기한 사람들도 기회만 있으면 다시 바다에
나가려고 한다는 사실과 다시 있을 수 없는 보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마을주민들이 가지고 있
다고 점을 보여주고 있다.

IV. 생존권운동 3: 계화주민들의 바다지키기

계화 주민들은 지난 7월 17일 제헌절에 몰려든 외부인들의 조개 캐는 모습-일부 바다 길을 모르
는 사람들도 차를 끌고 들어와서 갯벌에 빠뜨려 견인을 해 가는 모습, 외지인들이 끌고 온 차로
경운기가 들어갈 수 없는 모습, 그레가 아닌 갈코리로 땅을 헤집어 종자들이 햇볕에 드러나 죽
게 되는 모습, 쓰레기로 바다가 오염되는 모습 등-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부녀회를 중심
으로 바닷가와 가까운 장금, 하리, 2리, 4리 마을은 자신의 생계수단인 바다를 지켜야 할 필요성
을 깨닫게 된다. 각 마을에서 3-4명을 뽑아 교대로 장금마을 앞에서 갯벌로 들어가는 길을 지키
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바다를 지켜야 하는 일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
지 않았다. 바다를 지키려면, 그 날은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많았다. 특히
부녀자 일인 가정의 경우에는 이 자치조직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또 긴급한 일이 일어
난 경우에도 이 자치조직에 자발적인 참여가 힘들었다. 그러자 각 마을에서는 긴급마을회의를 소
집하여 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하고자 하였다. 다음은 2001년 8월 19일에 있었던 2리 마
을의 회의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曰) 궁극적으로 우리 생계를 유지하자는 면에서 육지 사람을 통제헐려고 하는 거잖아요. 돈으
로 대체할 경우 부득이하게 일이 있을 경우에만 제외하고 되도록 가서 지키는 방향으로 해야지,
돈 얘기하면 안될 것 같아요….. 우리 동네만은 어머니, 아버지 병원 일이 아닐 경우에는 한 사
람도 빠짐없이 나가는 방향으로…

(曰) 바다 막는 사람만 다니고 안 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 만원씩 받지만, 앞으로 벼도 베
야하고 바쁜데, 전부 다들 만원씩 내고 안 나가면 우리 동네는 누가 나가서 지킬 것이냐 이거죠.

曰) 나는 돈이 필요하다고 봐요.(벌금을 내야 된다는 것임) 돈(벌금) 안내면 누구든지 생합잡을
려고 하지….

(1시간 가량 논쟁 끝에 바다지키기 행사에 안 나가는 사람들은 2만원의 벌금을 책정하였다. 그리
고 일인가구이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4가구에는 벌금을 1만원으로 정하였다. 전업농인 10가
구도 벌금납입에서 제외시켰다. 예외조항은 결혼식·병문안·상가집 방문의 경우이고, 그 외에
는 마을의 51가구 전체가 다 바다를 지키는데 참여해야 한다고 결정되었다.)

결국 바다와 갯벌이 오염되면서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러한 득단의 조치가 나
오게 되었다. 주민들은 생존권 확보를 위해서 힘을 모으면서 공동체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그
러나 이러한 자발적인 조치는 이웃마을인 돈지나 창북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들
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조금 남은 갯벌을 사이에 두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갈등이 커져
가고 있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하는 모습 속에서 결국 어민들 사이의 내분과 갈등이 증
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V. 지역엘리뜨와 지역 어민의 간극

전라북도 지역의 여론을 선도하고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층인 정치인, 언론
인, 경제인들은 대부분 새만금사업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 사업이야말로 전라북도가 발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믿음이 새만금사업을 찬성하는 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리하여
2003년 2월 11일 전북지역 토론회에서 확인된 새만금사업의 지속 추진은 전라북도 내 권력층에서
는 노 대통령 당선자의 ‘뜻밖의 선물’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도청 및 산하기관 언론에서는 고무되
는 분위기 아래서 새만금지역개발의 새로운 구상을 시작하였다(전북일보 2003년 2월 12일자). 전
라북도에서는 전문가를 총동원하여 전라북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새만금 토지이용계획을 마
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도 새만금사업의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또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
가에 대한 탄탄한 구상도 없을 것이다. 그러노라면 새만금사업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또
오리무중이다. 지역민들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이 사업의 방향과 내용이 언제 또 바뀔지는 아무
도 모른다. 정부나 지역자치단체에서는 환경단체와 몇몇 학자들이 새만금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
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작 지역어민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있다.
어민들의 호소는 정말 다양하다. 방조제를 막으면 절대로 안된다고 하는 주장에서부터 거의
다 막았으니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이다. 또 ‘이제 새만금은 지겹다.
반대할 기력도 없다. 안 막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너무 지쳤다.’고 하는 자포자기
성 호소도 있다. ‘우리 앞에서는 이제 새만금 말하지도 말아요’라고 하는 분노의 소리도 있다.
이 지역사람들은 새만금사업 대한 의견을 말할 때는 여러 가지의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낼 때가 있다. 이 지역의 정치인, 언론인, 그리고 기타의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같
은 소리로 말한다. 지역의 권력층인 사람들이 오히려 지역주민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킨다는 점이
고 그 사실이 이들을 더욱 실망시키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든다.
새만금사업을 추진시키고, 지속시키는 일을 지역의 엘리뜨들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왔다. 그
리하여 지역민들과의 깊은 골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그 간극을 메꾸기 힘들만큼 벌어져 있다. 그
러나 정작 엘리뜨들은 그 간극의 심각성도 인식하지 않을뿐더러 지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
려고 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나온다고 해도 지역민들의 상황
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음을 이들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 이제까지 엘리뜨집단이 세운 계획들
이 지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역사적인 교훈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중심부
가 새만금의 신구상에 대해서 장미빛 청사진을 그릴 때 지역민들은 희망을 접고 있다. 평생직업
이었던 어업을 놓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떠나서 어디로 흘러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이 이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자료출처 : 시민환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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