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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지역을 살리기 위한 한·독 공동 심포지엄 – 간척의 정치경제학과 새만금

박순열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sypark@snu.ac.kr

1. 서론

새만금 간척사업은 1991년 시작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33km 이르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쌓아
4만여 ha 이르는 갯벌을 공식적으로는 농지와 호수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새만금 간척은 그 물리
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찬반을 둘러싸고 지난 몇 년간 진행된 사회적 갈등의 폭과 깊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안이다. 전북지역을 제외한 국민 대다수가 사업의 실효성과 간척으로 인
한 생태계 파괴를 근거로 새만금 간척에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지속되고 있고, 그로 인
해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갈등과정에는 환경운동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와 인
접지역의 주민이 제기한 삶의 지속성, 생명과 평화에 대한 주장이 한편에 있고, 전북 지역의 정
치, 경제, 사회 부문의 지배세력과 농림부가 주장하는 지역발전, 국토확장, 그리고 안정적인 쌀
공급에 대한 주장이 다른 한편에 존재함으로써 서로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와 유사한 대립과 갈
등의 구조는 새만금 뿐 아니라 전남 영암, 함평, 무안, 그리고 경기도의 시화호와 화옹만 간척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대규모의 간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간척사업에서 기대되는 직·
간접적인 지역발전효과와 국토확장, 그리고 안정적인 식량생산을 주장하고, 간척을 비판하고 반
대하는 사람들은 간척이 야기한 생태계의 변화와 훼손, 그로 인한 지역공동체 분열과 해체와 같
은 사회적 문제,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 과장된 사업의 기대효과 등을 지적한다. 문제는 이처럼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간척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한국에
서 대규모 간척사업 이면에서 그것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이해관계는 무엇이고, 그것이 새만금 간
척사업에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2. 발전의 상징으로서의 대규모 간척

한국에서 국가에 의한 대규모의 간척은 1960년대 농업생산기반을 확충하고 농경지 면적을 확장하
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기간(1962-1966)인 1963년, 당시 기준으
로 동양최대인 동진강 간척사업 (3,968ha)과 지산간척사업(40ha)이 착공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규모 간척은 60년대에는 17,215ha, 1970년에는 18,716ha, 1990년에서 91년까지 18,982ha가 준
공되었다. 80년대 이전 간척사업 대부분이 농업위주 간척사업으로써 농지조성 및 수자원 확보가
주목적이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인구증가, 경제 및 사회발전 등으로 인한 급증하는 토지수요
에 대처하여 농지조성, 수자원확보, 공업 및 도시용지, 관광휴양지 및 내수면 양식장 등의 목적
으로 행해졌다. 물론 서해안에서 행해진 간척의 기원은 고려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
나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국가에 의한 대규모 간척은 이전의 민간에 의한 중?소규모
의 간척과 몇 가지 다른 특성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간척의 규모와 위치는 조수간만의 차와, 유속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
에 의존한다. 60년대까지의 간척이 주로 소규모의 농지조성을 위해 간조 때에 간석지로 노출되
는 부분을 방조제로 막는 단식간척이었음에 비해, 이후에는 간조 때에도 노출되지 않는 부분까지
를 방조제로 막아 담수호를 조성한 다음, 주변에 내방수제(內防水劑)를 축조하여 내부 간석지를
토지로 개발하는 복식간척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과학기술발전이 중요한 요인이기
도 하지만, 60년대 이전까지 민간에 의해 상대적으로 쉽게 간척이 진행될 수 있는 갯벌의 상당부
분 농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간척사상 최대의 난공사를 공사의 기술진에 의
해 성공”했다거나 “사업규모가 방대하고 시공여건이 어려운 심해 간척사업으로 설계에서부터 시
공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전문가들의 연구 및 자문을 실시하여 추진”하는 것 자체가 발전한 한국
의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것이다. 간척과 관련과 과학기술의 발전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대 IBRD
와 세계은행으로부터의 차관으로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기술진 및 경제전문가에 의존하였던
것에서 시작한 국내의 간척과 종합토지개발사업은 1970년 베트남의 메콩 삼각주(Mekong Delta)지
역의 55,000ha에 대한 기술지원사업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아르헨티나 등을 포함
하여 1994년까지 9개국, 48개 지구에 3678만 달러의 기술용역사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
다.
근대 과학기술은 그 환원론적 성격으로 인해 생태계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보다는 인간의 직접적
인 이해관계에 따라 생태계를 분할하고 해체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생태적 변화와 훼손을 필연
적으로 야기한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간척의 규모가 커질수록 생태적 변화와 훼손이 그
만큼 심각하게 야기된다는 점이다. 또한 대부분의 간척이 바다와 강이 연결된 갯벌에서 이루어지
는데, 갯벌은 생태적으로 민감할 뿐만 아니라 바다, 강, 그리고 육지 생태계를 연결시키는 핵심
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태적 변화와 훼손은 바다와 강 양쪽 모두에서 심각하게 나
타난다. 또한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일반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전문가에 의해 독점됨으
로써 보통사람들의 전통적인 경험과 지식을 부정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간척과정 뿐만 조성
된 토지의 활용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과학기술과 국가권력에 종속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대규모의 간척은 막 대한 인적, 경제적 자원의 동원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필요한 인적, 경제
적 자원을 동원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에 의해 수행되었다. 국가는 간척 위치와 규모,
동원할 인적, 경제적 자원의 양, 조성된 토지의 용도 등에 대한 결정을 독점하였다. 물론 이는
간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60년대 이후 진행된 대부분의 지역개발사업에도 해당되는 하향
식 개발전략이다. 지난 40여 년 간 이런 하향식개발전략의 일차적인 수혜지역은 수도권과 동남
해안권이고, 주된 산업부문은 제조업이었다. 대규모의 간척사업은 주로 서해안에 집중되었는데,
이 지역은 수도권과 동남 해안권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안정적인 식량을 제공하는 배후지로서 선
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의 간척사업은 지역주민의 의지에 상관없이, 때로는 그들의 의지
에 반하여 시행되었다. 또한 국가에 의한 일방적인 정책결정은 지역주민과 그들의 공동체를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였을 뿐 아니라 바다, 갯벌, 그리고 강과의 오랜 상호작용을 통하여 획득
한 전통적인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였다.
대규모 간척은 국가적인 수준과 지역적인 수준 모두에서 정치인, 관료, 건설업자를 포함한 상공
업자의 이해관계를 묶어주고 또 실현하는 중요한 매개이다. 서해안 지역은 수도권과 동남해안권
과 비교해 보았을 때 오랫동안 정체되어온 저발전(underdevelopment)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이
런 저발전지역은 지역 내부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생적 혹은 아래로부터의 발전전략을 수립하
는데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발전은 국가의 대형 공공사업이나 대기업 공장
의 지역유치와 같이 외부자본의 유치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 지역에 대규
모 간척이 시작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외부로부터 대규모의 자본이 유입되어 지역 경제를 활
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간척이 진행됨에 따라 기존에 존재하던 좁은 도로들이 새롭게 확·포장되
어가고, 방조제 준공 이후 조성된 농지와 산업단지 등은 지역발전의 중요한 상징임과 동시에 중
요한 지역기반시설이 된다. 따라서 중앙과 지방의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대규모의 간척공사의 유
치는 지역발전에 대한 자신들의 기여를 상징하는 것으로써 해당지역에서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
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중앙과 지방의 건설업자들은 방조제공사와 방조제 준공 이후의 다양한
용도의 용지 조성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지역에서 발주되는 공사의 규모와 기
간에 비교했을 때 중앙정부에 의한 대규모 간척공사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루어
진다. 또한 이런 일련의 토목공사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노동력 고용효과와 지방정부의 세수증대
효과도 가져온다. 또한 지역 지배계급은 새롭게 형성된 사회기반시설들로 인해 발생하는 토지와
건물의 가격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의 간척공사는 해당 “공간의 번
영”을 통하여 정치인, 관료, 그리고 상공업자의 이해관계를 연결하고 실현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
다. 그러나 이런 공간의 번영이 지역 주민과 공동체의 번영으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부
분의 경우 공간의 번영은 지역민들에게서 전통적 삶의 양식을 앗아가고, 토지와 주택가격을 상승
시키고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3. 새만금의 정치경제학

1991년에 시작되어 현재 진행중인 새만금 간척 사업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의 주장이 있지만 사
업 시작의 직접적인 계기는 92년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전북 지역의 지지를 얻기 위
한 여야의 정치적 타협이다. 이후에 계속된 새만금 사업의 부침(浮沈) 또한 간척사업 자체의 타
당성에 대한 논쟁에 기반하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환경에 의해 좌우되었다. 2001
년 5월 사업추진의 지속여부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중앙정부가 서둘러 사업
의 지속결정을 내린 것 또한 2001년 4월 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전북에서 패배했다는 것, 그리
고 2002년의 지방자치체 선거라는 정치적인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
다. 이런 점은 1991년 갑작스런 착공식이 이뤄지기 전 30여 년 동안 수 차례에 걸친 국내외 기관
이 행한 타당성 조사에서 새만금지역의 간척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이 거의 없다고 평가되었다는
점, 사업이 시작된 후에도 중앙정부 내에서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
면 더욱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간척 사업은 중앙정부와 전북지역 주민 대다수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시작되었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
한 대규모 간척이 갖는 일반적인 특성이 전북의 정치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01년 현재 전북인구는 1,922,000명으로 전국인구의 4.0%이다. 지역내 총생산은 경상가격으
로 전국의 3.5%(2000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도내 생산구조별(98년 기준)로 보면 농림
어업이 14.4% 광공업 27.1%, 건설업 13.4%, 서비스업 30%, 정부 및 민간 비영리 서비스 생산자
가 13.7%를 차지하고 있다. 재정자립도(99년 기준)는 전국 평균이 63.8%인데, 42.5%로서 전남
(41.4)과 제주(42)에 이어 낮다. 전북의 인구가 60년에는 전체인구의 9.6%, 70년에는 7.7%였으
나 근래에는 4.0% 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점, 국내총생산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비율(GRP)이 68년
6.6%, 76년 5.0% 85년 4.1%, 88년 3.8%, 그 이후 현재는 대략 3.5%라는 점은 전북지역이 수도권
이나 동남해안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발전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비록 90년대 초반부터 ‘환황해
안시대’나 ‘서해안 지역 개발사업’이라는 화려한 개발계획이 수차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90
년대 중반까지도 눈에 띨만한 성장이 전북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수도권과 동남권에 비한 전북지역의 상대적인 저발전과 낙후를 표현하기 위해 전북내에서는 ‘2%
경제’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사실 전북의 인구와 총생산은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전국 대비 4-5%를 차지고 있음에도 굳이 2% 경제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는 전북지역
이 제조업 I부문의 생산액기준으로 국민경제에서 68년 1.6%, 78년 0.7%, 88년 0.9% 93년 1.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에서 ‘2% 경제’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 그리고 다른 지
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북낙후관련백서』의 발간은 전북 저발전의 현황 그 자체뿐만 아니
라 그에 대한 지역의 인식과 정서를 잘 드러내준다. 즉 저발전에 대한 강조를 통하여 성장과 발
전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의 저발전 상황은 이념적으로는 경제성장과
공업화를 향한 요구를 지역사회의 목표와 핵심적인 가치로 자리하도록 했고, 사회·정치적으로
는 전북 내에서 대안적인 정치세력이나 시민사회의 성장을 성숙하지는 못하도록 하는 구조적 제
약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지역내의 저발전은 발전에 대한 열망을 강화하여 그나마 존재하는 대안
적인 세력의 입지를 극도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북의 저발전이 공업화와 산업화를 통한
일반적인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생태적으로 건전한 대안 발전으로의 도약을 위한 가능성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자원의 한계로 인해 그 또한 가능성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발전에 필요한 내부적인 정치, 경제적 자원이 제한된 지역은 일반적으로 외부자본의 유치나 중앙
정부의 지원을 통한 발전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외부자본을 유치하는 과정은 지역사회가 자본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하고, 동시에 개별 산업체가 지역사회에 야기하는 (의
도적, 비의도적인) 사회적, 생태적 부담을 지역사회가 묵인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지역 내의 자연
과 사회의 질을 희생하도록 강제한다. 중앙정부의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의존은 지역이 정치, 경
제적으로는 중앙정부에 종속되도록 유도하고, 지방정부가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중앙정부의 태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 “아래로부터의 발전”을 어
렵게 한다.
이러한 전북의 저발전 상황과 강한 발전에 대한 욕망은 새만금 간척사업이 중앙정부에 의한 대규
모 공공사업으로서 갖는 정치경제적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지역발전을
일거에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인 것으로 정치적으로 포장되었을 뿐 아니라 그 사업의 규모나 투
여된 자본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현재까지 진행된 간척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새만금 간척사
업의 시작과 지속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김대중을 정점으로 한 중앙과 전북지역의 정치세력에
게 지역 내에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에 의해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전북지역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만들어지고 또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
서 이들은 간척사업의 지속과 확장에 중요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지역건설업체
는 현재까지 진행되는 외곽방조제 공사가 중앙의 거대 건설회사에 의해 수행됨으로써 직접적인
참여에는 제한적이었지만, 방조제 준공 이후의 내부 조성공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중요
한 사업확장의 기회를 획득할 수 있게된다. 지역의 상공업자들은 간척과 함께 정비되는 주변 사
회적 기반시설에 따른 지역 내의 지가상승, 시장과 사업기회의 확장에 대한 이해관계를 지닌다.
지방정부는 간척사업의 진행과정에서 이미 상당부분의 예산 집행을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지역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수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도청, 도의회, 상공회의소, 그리고 언론을 포함한 전북 지역내의 사회경제적 엘리
트들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새만금 간척사업의 지속과 복합산업단지 조성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이런 이해관계가 지역주민의 이해관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주민은 훼손된 삶의 질과 상승한 생활비용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
식을 찾도록 강제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갑작스럽게 시작된 공사는 규모, 위치, 사업방식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
서 지역주민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양식과 이해관계는 균형발전, 국토확장, 지역발전이라
는 거대담론 속으로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론형성과정이 대규모 간척사업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정치인, 관료, 상공업자들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이후의 사회적 갈등에서도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역주민들의 삶
의 양식이 새만금 갯벌과 연관된 생태계와의 오랜 상호작용과정에서 획득된 것이라면, 지역주민
의 목소리가 정책결정과정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이 획득한 자연에 대한 경험과 인식뿐 아니
라 생태계의 가치와 의미 또한 외부로부터 유입된 과학기술과 전문가들에 의해 주변화되고 억압
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역주민들이 언제나 생태적으로 건전한(ecologically sound)
삶의 양식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삶의 양식 대부분은 주변 생태계에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생태적 수용능력(carrying capacity) 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새만금과
같은 대규모의 간척사업은 단기간에 걸쳐 막대한 생태적 변화를 초래한다. 문제는 과학기술을 이
용한 대규모의 간척사업이 중앙정부,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전문가에 의해 수행됨으로써 지역민
들이 특정한 방식의 개발양식-즉 자연은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가능하고, 자연
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능력의 증대가 곧 발전이라는-을 정당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의 과정과 결과는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정책결정과정에서 사라짐과 동
시에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와 훼손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새만금 간척사업을 포함한 대규모의 간척사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서 환경보존, 생명, 지역발
전, 국토확장, 식량공급과 같은 다양한 쟁점들이 등장하고 논의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는 대규모 간척사업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논의에서 한
쪽이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제기된 다양한 쟁점
과 논리는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excuse)일 뿐이며 명분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지배계급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여전히 어둠 속에 있
을 뿐 아니라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스스로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확대재생산의 과정과
결과는 지역주민들이 오랜 기간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한 삶의 양식과 인식이 외부로부
터 유입된 생활양식과 근대적인 과학기술에 의해 주변화되고 사라지는 공간의 번영이다. 지역주
민의 삶의 고양이 아닌 공간의 번영을 위한 발전전략은 필연적으로 급격한 생태적 변화와 훼손
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이 강력한 국가와 결합하는 경우에 상황은 더욱 급속하
게 진행된다. 지역주민과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발전양식은 대규모의 간척의 배후
에 존재하는 정치경제적 논리와는 다른 지역주민의 삶과 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한 새로운 논리에
서 출발하여야 한다.

자료출처 :시민환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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