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자료

새만금 지역을 살리기 위한 한·독 공동 심포지엄 – 새만금사업의 결정과정과 문제점

이시재 (가톨릭대 사회학)
seejaelee@catholic.ac.kr

노무현대통령(당시는 당선자)은 2003년 2월11일 전주 전북대에서 열린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
전’ 국정토론회에서 새만금사업을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원칙을 지켜나가되 휴경 보상을 하고 있
는 농지면적이 새만금의 몇 배가 되는 만큼 농지로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있어야 한
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는 또 간척지를 얼마나 간척·개발해야 하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면서, 전북도민들이 의견을 모아달라고 부탁하였다.
노무현대통령의 이 발언은 새만금사업이 농지개발을 위한 사업이라는 농림부 및 농업기반공사
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새만금사업의 전개에 전혀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이러
한 결정이 새만금 방조제를 완성하여 갯벌을 죽이고 비농업용 토지를 만들어 갈 것인지, 갯벌을
살리면서 개발을 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일부만 방조제를 쌓아서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명
백하지 않다. 대통령도 그 부분에 대한 복안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 정권인수위원회가 구상
한 동북아경제중심구상에는 새만금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인천지역의 IT 및 금융허브의 구
상, 광양만의 물류, 소재구상, 부산항의 구상 등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고, 새만금지역은 새 정
부의 경제구상에 들어 있지 않다. 대통령은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새 정부의 경제구상에 포함
되어 있지도 않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전북도민들에게 약속하였다.
쌀을 증산하기 위한 명분으로 시작된 새만금사업. 그러나 쌀의 증산의 명분이 없어진 마당에
새만금사업의 계속추진을 천명한 이날의 발언은 또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
다. 새만금사업은 원래부터 지역의 불균형발전에 대한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정치적으로 결정한 사
업이며, 경제적 타당성도 환경생태적인 적합성도 고려하지 않았던 사업이다. 이제 이 사업의 당
초의 결정, 또 시민단체의 반대로 중단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 그리고 사업재개를 둘러
싼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검토를 하고자 한다.

새만금사업은 정치적 결정이었다.

새만금사업은 1986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북도민의 정서를 달래
기 위해 이 지역의 대규모 간척사업을 지시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 지시를 받은 농수산
부는 1987년 3월부터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였고, 농수산부의 검토의견으로는 사업의 경제성이 있
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1월4일 경제부처 장관회의에서는 군장(군산-장항)산업단
지와 새만금지구의 간척사업을 검토하였으나 경제기획원은 새만금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의견
을 내놓아, 군장산업단지계획만 추진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노태우 대통령후보도 서해안고속도로, 군산산업기지와 외항건설, 대불공단과 목포항개
발, 아산만 산업기지와 신항만건설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초의 공약내용에는 새만금
사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1987년 11월 21일 유세차 전주를 방문한 김영삼 후
보가 새만금지구를 부산만큼 크게 발전시키겠다고 공약하자, 노태우 후보도 1987년 12월10일, 선
거를 6일 앞두고 새만금사업 추진을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대통령선거에서 전북지방의 표를 겨냥
한 공약이었으나 노태우 후보는 전북지역에서 13.7%의 지지율을 얻었을 뿐이었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정부 부처간에도 지지와 반대가 갈렸다. 농수산부는 처음부터 이 사업
을 추진한 부서이고 노태우 후보가 이를 선거공약에 포함시키자, 12월12일 새만금사업의 추진계
획을 발표하였다. 또 1988년 2월 농림수산부는 농업진흥공사에 시달하여 이를 새만금사업을 담당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제기획원 등 다른 경제부처는 처음부터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새만금사업은 군장
산업단지와 중복투자이며,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1990년 예산에는 새만금사업예산이 전면적
으로 삭제되었고, 1991년에도 당초의 예산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1991년 2월 노태우 대통령
이 전주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새만금사업의 예산 지원을 요구받고 즉시 추경편성을 지시하였지
만 예산부처에서는 역시 이것도 반영시키지 않았다. 1991년 7월 16일 김대중 총재는 노태우 대통
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새만금사업을 선거 공약이니 만큼 약속대로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고, 노태
우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반영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김대중 야당당수의 요구가 워낙 강해서 추가
경정예산에 반영시킬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약속이 있던 다음날, 여야당은 200억
원의 새만금사업비가 포함된 추경예산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김대중 총재의 이러한 강력한 요구로 1991년 11월 28일 새만금사업을 착공하게 된 것이다.
1992년의 대통령선거에서도 새만금사업은 선거공약의 대상이 되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
고 김영삼 민자당 총재는 새만금사업을 적극 추진, 전북의 지도를 바꾸어 놓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해 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새만금사업을 5년 내에 완공할 것을 공약하였다.
1995년의 지방자치선거에서 유종근 후보는 새만금사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공약으로 내걸어 새
만금사업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유종근 후보는 국내의 예산지원으로는 지지부진하니 외자
를 포함한 민자를 유치하여 새만금지구에 복합산업단지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997년의 대
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이인제, 그리고 이회창 후보가 일제히 새만금지역을 공업단지로 발전시
킬 것을 약속하였다. 기성 정치인가운데 누구도 새만금사업을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새만금사업은 초기부터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 농업진흥공사가 이 사업을 맡으면서 농지조
성이 주목적으로 되어 있었으나, 전라북도는 조성된 토지의 57%를 비농업용으로 사용할 것을 주
장하였고, 농수산부도 1/3정도를 비농업용으로 전용할 것을 주장하는 등 목표자체가 명백하지 않
았다.

정부 내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정부부처 내에서조차도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였다. 노태우 대
통령이 김대중 신민당 총재와 새만금사업으로 담판을 벌이고 있을 때 최각규 당시 부총리 겸 경
제기획원장관은 신중한 검토를 위해 추경예산에 반영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새만금사업을 예
산반영을 둘러싸고 경제기획원과 농수산부(당시)간에 갈등이 일어났다. 경제기획원은 새만금사업
예산은 기존의 농수산부 예산가운데서 전용하도록 하였으나 농수산부는 이에 반발하였고, 농수산
부의 부서간에도 예산배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 1991년 11월에 이미 착공한 새만금사업에
대해서 경제기획원은 1992년 예산에 당초 한푼도 반영하지 않다가 농수산부의 이의제기로 100억
원을 배정하였다. 기획원에서는 새만금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새만금사업
은 이와 같이 예산배정이 되지 않아 공기도 4-5년 늦추어 잡았다. 새만금사업은 1994년에도 예산
이 없어서 진척을 보지 못하였다. 착공3년째 재정지원은 전체 사업비의 6%에 머물러 있었다.
한편 1994년1월 동양최대의 시화호의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시화호는 환경단체들
이 우려하던 바와 같이 급속하게 오염되었다. 담수호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1996년 6월 수자원공
사는 시화호의 담수화를 끝내 포기하고 오염된 물을 방류하고 해수로 채우기로 하였다. 시화호
사건은 환경단체들에게도 새만금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되었고, 환경부도 새만금
호 간척 사업지 일대의 환경영향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거쳐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환
경부의 조사에 의하면 이 때 새만금호의 물 공급원이 될 만경강과 동진강 하류의 질소농도는 농
업용수 수질기준을 6배나 초과하여 오염이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화호의 담수화 포기를 보
고 모든 언론들은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97년 농수산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만금호 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서도 새만금호의 수질이 화학
적 산소 요구량 등 각종 오염도에서 시화호 수준을 훨씬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당시)
이미경 의원은 환경부의 자료에 기초하여 새만금호가 시화호 보다 오염이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
하였다.
199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간사회의에서 경부고속전철, 시화호, 새만금간척사업을 김영삼 정
권의 3대 부실사업으로 규정하여, 전면적으로 재조사하기로 하였다. 4월27일 감사원은 한달 동
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특별감사에 돌입하였다. 1998년 9월 감사원은 그 동안 새만금관련 감
사결과를 발표하였다. 특별감사결과에 의하면 새만금간척사업 자체가 잘못된 계획, 설계, 시공
등 모든 면에서 총체적 부실이라는 것이다. 또 원래 계획하였던 농지조성에서 복합산업단지로 변
경하였을 경우, 총 사업비는 당초의 2조원에서 무려 5배가 넘는 1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지적하
였다. 언론에서도 새만금사업의 축소,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환경부는 농업진흥공사가 제출한 수질예측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그것이 매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새만금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다.
환경단체가 처음으로 새만금사업반대운동에 뛰어든 것은 1997년이었다. 11월 김제경실련, 녹색
연합, 녹색주민연대(군산)는 서해안 살리기 심포지엄을 김제에서 열었다. 1998년 1월14일 전북환
경운동연합은 새만금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2월2일에는 녹색연합이 제3
회 세계습지의 날을 맞아 새만금지구 등 각종 간척 및 매립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 환경운동연합은 3월6일 전국 36개지역 사무국장단회의를 전북환경운동연합에서 개최, 기자회
견을 통해서 새만금종합개발사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하였다.
1998년9월7일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경실련 등 39개의 시민단체는 새만금간척사업백지화를
위한 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100인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어 10월에는 전북지역 시민, 사회단
체소속 각계인사 100명이 새만금간척사업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99년 1월 9월 유종근 전북지사는 새만금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발표하고 시민단체에서 요구
해 온 민관공동조사를 수용한다고 발표하였다. 한편 전북출신의 국회의원들은 새만금사업의 계속
추진을 결의하였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도 새만금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
다. 전라북도는 새만금사업과 관련하여 지역주민의 피해를 보상하는 업무를 하고 있을 뿐, 새만
금사업의 전체를 두고 계획을 세우거나, 추진, 혹은 중단해야 하는 결정을 할 입장이 아니었다.
유종근 지사의 발표는 농림부 등 다른 부서와 의견조율을 거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새만금 간척에 대해서 외국의 환경단체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99년 1월 21개의 한
일환경단체들이 새만금사업을 중단을 요청하는 새만금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또 5월에는 코스타
리카에서 열린 람사협약 총회에서도 새만금지구가 국제적으로 중요습지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
하였다.
공동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새만금간척 반대운동은 지속되었다. 전북 부안 지역의 주민
들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2000년 1월 30일 세계습지의 날을 기념하여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 사람들'(이하 ‘부안사람들’)과 공동주최로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매향제를 개최하여 반대운
동의 결의를 다졌다. 2000년 3월에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 지역 1000인 선언이 서울에서
발표되었다. 3월 26일에는 부안의 해창 갯벌에 70여 구의 장승을 세워 장승제를 거행하였다. 7월
1-2일에는 환경운동연합 전국회원대회가 해창 갯벌에서 개최되어 새만금간척 중단을 위해 시위하
였다.
한편 2000년 11월1일 생태경제학연구회는 새만금공동조사 특히 경제성분석의 허구를 지적하고
새만금사업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 11월14일에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4대 종교 성직자들 1000명이 새만금 갯벌을 살
리자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반대운동이 거세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대통령은 “새만금사업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하였다.
2001년 3월 종교계, 환경단체, 사회단체의 연합체인 생명평화연대는 19일을 기하여 새만금 간
척 중단 단식농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학교수 340인의 새만금간척반대 선언도 발표되었다. 한
편 부안의 해창 갯벌에는 불교 승려와 천주교 사제가 임시 사찰과 기도의 집을 만들어 농성에 들
어갔다.

새만금사업의 중단, 그리고 공동조사의 실시

정부는 환경단체의 요구를 받아 들여 1999년 4월19일 새만금사업에 대한 민관공동조사단을 구
성하여, 환경성, 수질, 그리고 경제성 영역에 관해 조사, 분석을 의뢰하였다. 공동조사단은 국무
총리실 수질개혁기획단이 주관하여 새만금사업 환경영향공동조사계획을 수립하였다. 공동조사단
은 단장(1인), 환경단체와 정부가 동수로 추천한 민간전문가(각각 10인), 그리고 정부관계기관에
서 파견된 위원(9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부기관에서 파견된 위원들은 조사사업에 필요한 자
료협조와 행정지원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사기간은 1999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
지 14개월이었다.
조사단의 구성에 있어서도 민간단체의 추천은 대학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있었으나, 정부에서
는 대학교수이외에 정부출연기관, 예컨대 국토연구원 등의 연구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정
부와 민간단체가 각각 10명씩 연구위원을 추천하였지만, 각 분과는 반드시 동수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환경영향분과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4:3, 수질분과에서도 민간과 정부가 4:3,
그리고 경제성분과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2:4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과구성의 불균형은 조
사과정, 조사결과의 조정과 합의형성에 큰 장애이었다.
공동조사단의 보고는 종합적인 결론이 없이, 조사단장이 위원들의 개별적으로 제시한 의견서
를 취합하여 종합의견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공동조사단장은 조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종합적인 결론을 낼 수 없도록 연구자회의에서 결정하였다. 조사 담당의 종합의견서에 의하면 민
간위원 20명 중 11명은 계속시행, 9명은 사업중단을 주장하였으며, 정부위원은 위원장을 제외한
9명 가운데 7명은 계속시행을 2명은 입장을 유보하였다. 정부위원들의 의견을 공동조사의 종합보
고에 반영·기재하는 것은 정부, 민간의 공동조사의 의미를 크게 왜곡하는 것이었다(김성은
2000).
수질분야위원회는 환경부가 제시한 수질예측 모델링의 결과를 검토하여 동진강 수역에서는 농
업용 호소기준에 적합하지만, 만경강유역에서는 총인(T-P)항목에서 농업용수 기준을 맞출 수 없
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새만금사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새로운 기술 등이 발
달하면 10년 후에는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을 하였다.
경제성분야에서는 새만금사업의 추진 측에서는 편익/비용비율이 1.25로서 경제적 타당성이 있
다는 주장을 하였으며, 반대측에서는 편익/비용 비율이0.22-0.29로 전혀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
을 하였다.
환경성영향 분야에서는 기후, 해양오염에 대해서는 조건부로 새만금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의
견이었으나 저서생물, 생태계의 파괴 등에서는 불가라는 입장이었다.
공동조사단은 위원들이 개인적으로 조사활동을 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을 뿐, 분야별 토론이
나 전체 모임에서의 논의가 없었다. 최종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개별보고를 취합하여 제출하
였을 뿐, 전체적인 의견조율이 없었던 것이다. 경제성분야에서 그 만큼 의견의 차이가 있었으면
연구방법, 기준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이 필요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공동조사단의 연구에서는 연구방법과 범위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정작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이해를 반영시키는 노력이 없었다. 새만금지역에서 어민들은 새만금사업
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지만 공동조사단이 그들을 면접, 조사한 적이 없다. 또 환경단체들을 비
롯한 지역단체들의 의견도 공동조사단에서는 수렴하지 못하였다.
공동조사단의 결과에 대해서는 환경단체들의 강한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 또 조사단장의 일방
적인 종합의견의 발표가 있자, 조사단에 참여하였던 일부의 학자들이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여 이
를 반박하였다.

공개토론

2001년 연초에 정부는 공동조사결과를 무시하고 새만금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
다. 국무총리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새만금사업을 추진한다”고 언명하였고, 새만금현장을 방
문하여 ‘농업은 생명산업’이라고 글을 남겨, 새만금간척을 통해 농지를 확보한다는 의지를 표명
하였다.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이러한 거대개발사업에 대해 환경적인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
는 기관이다. 지속가능위원회에서는 공동조사결과를 토대로 새만금사업의 환경적 타당성을 검토
한 결과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것을 밝혔다(동아일보, 3월14일자). 지속가능
위원회는 이것을 바탕으로 국무조정실에 새만금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하였다.
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장,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지속가능위원회 위원장의 3자는 2001년 5월중
에 쟁점토론회, 대안토론회를 거쳐, 평가위원회의 평가결과에 기초하여, 물관리 정책민간 위원
회, 수질대책 관계장관회의 등을 통해서 사업의 재개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지속가능위원회
와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은 토론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
고, 국무조정실은 토론과정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속가능위원회의 주장으로 토론회를 가
지기로 하였으나 국무조정실은 이것을 요식 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국무조정실의 공동주최로 5월7일에 쟁점토론, 5월10, 11일에 대안토론
이 열렸다. 이 토론을 바탕으로 양측에서 추천하여 구성한 평가위원회의 평가결과를 정부에 보고
하여 국무총리실에 제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5월7의 쟁점 토론에서는 공동조사단의 참가자들
이 대부분 주제발표를 하고 학자들이 이를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대안토론에서는
환경단체 관련학자들과 농림부관료 및 관련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하였다.
토론회는 언론에서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보고하였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 큰 기여
를 하였다. 국토확장 효과의 개념적 오류, 이중계산 등 새만금사업에 따른 편익부분만 크게 부풀
려 계산하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만금에 의해 만들어진 토지의 가치는 그 토지가 생산하
는 서비스의 가치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추진 측의 논리는 경제학의 이론이 적용될
수 없는 억지라는 것이다.
이 사업의 총비용이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고, 감사원의 지적과 같이 두 배 이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편익(BC)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곽승준, 2001). 감사원의 계
산에 따르면 농지조성원가는 평당 70,000원이다. 그러나 지금 부안 지역의 농지가격은 평당
25,000원이며, 영산호 간척지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12,000-14,000원 정도로 분양하게 될 것
이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비용은 모두 국고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수질문제에 있어서도 전라북도에서는 설사 총인(TP)이 기준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농사를 짓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환경부에서는 전라북도의 자료를 이용하여 검
토해 보면 전라북도의 녹지관리규정으로는 새만금호의 수질환경을 보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
인이 기준치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를 넘어서 훨씬 비관적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의 입장은 확고
하였고, 그 근거는 명백하였다.
환경성의 평가에 있어서는 7명의 연구자가 각기 다른 영역을 연구하여 4개의 부분에서는 개선
하면 사업재개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다른 세 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
다. 그럼에도 다수결의 입장에서 볼 때 찬성이 많다는 이유로 찬성의 결론을 내렸다.
또 대안토론에 있어서 반대하는 측에서는 대안의 전제로서 (1) 지금 쌓은 방조제를 일부 변경
하여 그 구조물을 활용할 것 (2) 갯벌을 죽이지 않을 것 (3) 전라북도 및 지역주민들에게 경제적
인 이득을 가져올 것을 전제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추진 측에서는 만경강 쪽의
수질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방조제를 완성하고 내부개발에 있어서는 수질이 좋지 않다는 만경강
쪽의 개발은 차후에 미루고, 동진강 쪽을 먼저 개발한다는 순차 개발안을 제시하였다. 양측의 입
장은 큰 차이가 있었다. 반대측은 갯벌을 살려 지역주민과 생태계를 살린다는 것이고, 찬성 측
은 수질유지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선 바다를 막아 동진강 쪽을 먼저 개발한다는
것이다. 3일간의 토론으로 모든 문제가 제시되었다. 찬성과 반대측에서 입장의 변화가 일어난 것
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는 보였다. 찬성 측에서는 더 이상 경제성이 있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었고, 식량안보나 쌀 문화 쪽으로 논법을 바꾸어 갔다. 수질개선 쪽에서도 객관적인 데이
터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절차적 하자 투성이로서의 사업재개결정

이 토론회에 대하여 평가위원회는 찬성 측에서 추천한 4명, 반대 측에서 추천한 4명으로 구성
되었다. 평가위원들 가운데 찬성 측 인사들은 토론회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참석하지 않
았다. 토론회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측은 부분적으로 자리를 비운 적
은 있었지만 대체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가위원회의 속기록을 보면 한 사람씩 입장
개진이 있었지만, 찬성자들은 토론회의 내용을 근거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자기
가 속한 기관의 입장, 추천자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였다. 위원장도 해외출장을 근거로 단 한차례
의 회의로 끝내려고 하였다. 문안작성을 위한 소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에 제시하는 문안을 작성
하였다. 문안에는 양론을 다 기술하고 결론에 이를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찬반양쪽의 주장과
문제점을 검토하여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리도록 건의하는 것으로 종료하였다.
5월25일 오전, 국무총리실 물 관리 정책 민간위원회가 열렸다. 물 관리 정책 민간위원회는
1999년 5월 공동조사단을 발족시킨 기관이며, 공동조사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새만금사업
을 ‘조정’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이 위원회는 2000년 8월 공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제출된 시점
에서 회의를 열어 이를 심의하여야 하였으나, 그 동안 회의를 열지 않다가 2001년 5월 25일 새만
금사업재개결정을 앞두고 열린 것이다. 이 위원회에서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알려졌
으며, 전체위원 22명 가운데 17명이 참석하여, 위원장을 제외하고 반대가 8명, 적극 찬성이 5
명, 그리고 3명은 조건부 찬성(일부 언론에서는 ‘중립’으로) 보도되었다. 이러한 의견의 분포로
서는 당연히 이 안건은 부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민간위원회의 위원장은 미리 준비한
결정문을 읽고 이의가 없는지 물어보고 그것을 회의결과로 오후의 물 관리 정책위원회에 보냈다
(위원장 증언). 결정문에는 새만금사업이 찬반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정부는 이제 정치적인 결단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민간위원회 위원
장은 물 관리 민간위원회는 자문위원회이며, 찬·반 투표는 할 필요도 없고 한 적도 없다고 증언
하였다. 위원장은 설사 부결시킬 수가 없다면 결정을 유보하고 다시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무조정실에서는 물 관리 민간 위원회에 평가위원회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보고서를 변조하였
다. 평가위원회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였지만, 국무총리실에서는 ‘정부의 결단’으로 표현
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사안이기 때문
에 대통령이 직접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국무총리는 몇 차례나 새만금사업의 재개를 표명하였고, 국무조정실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의 조정과정에서도 강행의사를 표시하였기 때문에 이를 심의, 결정할 주체로서는 부적합한 것이
라고 평가위원회에서는 보고 있었다. 또 2000년 동강댐 백지화도 대통령이 결정을 내렸고, 환경
의 날 축사에서 직접 발표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중대한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
는 것이다.
문서변조에 대한 항의를 받고, 오후의 물 관리 정책위원회에서는 다시 그 문건을 원래대로 바
꾸었다고 보도되었다. 그 문건에서 ‘대통령의 결단’ 부분을 존중한다면, 물 관리 정책위원회는
결론을 내리지 말고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물 관리 정책위원회는 민간위원회
의 보고를 바탕으로 새만금사업의 ‘순차적 개발’ 방식을 결정하였다. 물 관리 정책위원회는 국무
총리 주재 하에 건설교통부, 환경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장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날 회의
에는 유종근 전라북도 지사도 참석하였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5월 7일의 쟁점토론, 5월 10,11일의 대안토론, 그리고 평가위원회의 결
과보고를 토대로 대통령에게 5월 25일 저녁 ‘새만금의 사회적인 합의도출 과정보고 및 건의’라
는 제목의 이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평가회의와 물 관리 정책 민간위원회가 합의하
지 못했는데도 국무조정실이 주도한 물관리 정책조정위에서 ‘사업추진’ 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
은 사회적 합의와 국민여론을 무시한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
는 또 “정부가 사업을 강행하면 반대여론이 확산돼 더 큰 갈등과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며 “새
만금 사업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어려우므로 대통령이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위원회의 이 보고서에 대해 대통령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 정부는 공동조사, 민간위원회, 쟁점 및 대안토론, 평가위원회 등의 절차
를 거쳐서 정부에서 사업의 재개를 결정하였다고 하겠지만, 형식적인 민주적인 절차조차도 철저
히 무시한 결정방식이었다.
(1) 공동조사에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으면, 대안을 찾던지, 아니면 사업을 백지화시켜야
마땅하다.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사람들은 행위자이며 그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안
을 내라고 압박해서는 안된다. 새만금 사업이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하면, 그렇지 않다는
대안을 내는 것은 사 업자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이 대안 없이 반대한다
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2) 쟁점토론에서 문제점이 확인되고 찬성파의 논리가 허구라는 것이 밝혀 진 이상, 그 허
구의 논리에 근거하여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평가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것은 사회 적 합의를 이
루기 위한 장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평가회의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다시 검토
하여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4)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에서 다수가 반대를 하였으면, 그 상위의결기구 인 물관리 정
책조정위원회에 그 결과가 보고되고 그것에 의해 결정을 유 보해야 함에도 새만금사업재개
를 결정한 것이다.
(5) 물관리 정책 조정위원회는 공동조사, 쟁점토론, 평가회의,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
의 심의 등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그것들과는 관계없이 의사결 정을 한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정치적 결정이 선행하고 추진된 사업이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치
자, 이제는 모든 절차와 과정, 연구성과, 토론의 결과, 대안의 검토를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사업
의 재개를 결정하였다. 그 동안 정부와 시민사회, 혹은 환경단체간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던 갈등
해결의 방식, 갈등의 제도화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새로운 변수: 쌀의 과잉생산

정부의 새만금사업개재결정이 나자,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지속가
능발전위원회를 비롯하여 환경관련 정부 위원회로부터 54명의 환경단체, 대학교수 등이 탈퇴를
선언하였다. 환경 및 사회단체들은 5월 30일 ‘새만금 갯벌 살리기 10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
다. 또 6월에는 세계적인 환경단체 <지구의 벗> 의장 나바로씨가 한국을 방문하여 새만금반대시
위를 하였다.
10월에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해 온 학자들이 모여 새만금생명학회를 구성하여 향후 새만금사업
이 진행되는 과정을 조사, 연구하여 새만금사업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가겠다고 다짐하
고 있다.
정부는 2001년 8월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원래 시민단체 등 반대측의 논리도 수
용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위원회에는 새만금사업에 의문을 갖고 있거나 반대하는 민간인들
은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2001년 가을에 쌀의 과잉생산으로 수매정책뿐만 아니라, 앞으로 쌀 생산 그 자체를 조
정할 뜻을 밝혔다. 실재로 2003년도분 쌀의 수매가격을 전년도의 가격대비 2% 인하하기로 하였
다. 그 대신 농가의 충격 완화를 위해 2003년에는 논농업 직불제를 도입하여 800억 원을 지불하
기로 하였다. 또 정부는 휴경지에 대해 1ha당 300만원의 휴경 보상을 하기로 하였다. 지금 현재
쌀의 재고량은 1190만 섬으로서 저온저장비용만 연간 8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쌀
수입량은 전체 국내소비물량의 4%에 지나지 않지만, 2004년부터 도하개발아젠다(DDA)가 발효되
면 추가개방이 불가피하고, 국제시장보다 4.9배나 높은 국내의 쌀 가격은 무너지게 되어 있으
며, 쌀의 증산은 불가능하다.
쌀의 과잉생산이라는 변수에 대해 농림당국자들은 2001년 봄 당시 전혀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새만금재개 결절 강행이후에야 농업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였다. 새만금간척의 재개를 위해 국민
을 속인 것이다.

농업기반공사, 농림부는 손을 떼라

노무현대통령이 새만금지역을 농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여, 문제는 좀 더 분명해 졌
다. 지금까지 농림부는 농지조성을 내걸고, 전북도는 산업단지, 물류단지 등 비농업분야의 발전
을 통해서 전라북도의 발전을 구상하였다. 농업기반공사는 동아건설이 조성한 김포매립지를 비
싼 가격에 사들여 농지조성으로는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게 되자, 비농업용으로 개발분양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농업기반공사는 농지조성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땅장사만 한 꼴이 된 것이
다. 이제 노대통령의 발표로 더 이상 새만금이 농지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논의
를 전개하여야 한다. 농지조성이라는 허구의 목적에 근거한 논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
농업용지 조성을 위한 새만금사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는 새만금사업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새만금사업은 더 이상 농지조성기
금을 이용할 명분도 없으며, 농업기반공사의 사업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농림부는
이 사업의 당초부터 다른 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처 이기주의적 행동을 해 왔다. 농림부는 새
만금사업을 통해 예산을 늘리고 인원을 증대시키며, 퇴직자들의 일자를 마련하기에 좋기는 하겠
지만,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새만금환경을 파괴하여 미래세대의 권리를 빼앗아 왔다. 농업
기반공사는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이는 일거리를 가지기 원하기 때문에 새만금사업에 매달리고 있
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토건국가’적 개발사업이다.

어떤 시나리오도 타당성이 없다

노대통령이 새만금의 내부 개발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다면,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경
제적 타당성 등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농지조성을 목적으로 할 때와 비농업용지로 사
용할 때는 오염부하량, 토지조성비, 대체적인 방안모색 등에 있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검토가 필
요하다. 만약 새만금을 비농업용으로 사용할 경우, 얼마나 많은 토석이 추가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며, 그 만한 토석을 어디에 채취할 수 있는지 검토하여야 한다. 또 비농업용일 경우, 오염부하
량의 증가로 바다에 미칠 영향이 얼마인지도 전면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또 지금 서해안에는
가까이는 군장공업단지가 수요부족으로 지지부진하고, 대불공단에 입주업체가 없는 가운데 새로
운 공단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검토하여야 한다. 또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토지수요가 많
은 산업유형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검토하여야 한다. 1999년 현재 감사원의 보고에 의하면 비농업
용으로 새만금을 개발했을 때 총비용은 약 29조라고 한다. 그렇다면, 토지조성비용이 과연 경제
성이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새만금의 개발방향에 대해서는 어떤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타당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농지조성
의 시나리오는 노무현대통령에 의해 폐기하였다. 비농업용 이용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이 검증되
기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 경제성 평가, 사회적 합의 등 다양한 절차가 필요하다. 공동조사의
결과, 감사원의 보고, 서해안지역의 기존 공업단지의 사정, 환경, 종교 시민단체들의 반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더라도 비농업용 이용도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 갯벌을 보존하고, 지역주민
들의 생계를 보장하며, 또 투하된 자본을 최대한 회수한다는 방향에서 새만금간척사업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는 새만금의 땅을 이용하며 무엇을 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어떤 비용(경제적, 환경적, 사
회적)을 얼마나 지불할 것인가를 검토하기 위해 새만금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전라북도뿐만 아니
라, 전문가, 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을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노무현대통령
은 2월 11일 토론회에서 ‘간척지를 얼마나 간척, 개발하며,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새롭게 검토해
야 한다(조선일보, 2.11)’고 발언하였다. 간척의 정도나 활용방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으
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 발언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노무현정부는 그 전망 불투명한 프로젝트를 위해 거대한 생명의 보고, 새만금 갯벌을 파괴하면
서까지 새만금사업을 추진해야 하는가? 원칙과 명분을 중시한다는 노무현정부는 지금이라도 새만
금사업의 첫 단추를 잘 못 뀌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참고문헌

감사원 국책사업감사단, 1989, 감사결과 처분요구 및 권고·통보
개번 맥거번, 2000, 허울뿐인 풍요, 창작과 비평사
곽승준, 2001, 새만금사업 경제성 평가, 『새만금공개토론회 주제발표자료』 (국무조
정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2001년 5월7일
구도완, 1996, 한국환경운동의 사회학, 문학과지성사
국민일보, 1990년∼2001년까지 검색
(한국언론재단, www. kpf.or.kr), key word : 새만금
김홍우, 2001, Due process와 한국정치의 재조명(미발표논문), 대화아카데미 발표
농림부, 2001.4 새만금자료
동아일보, 1990년∼2001년까지 검색
(한국언론재단, www. kpf.or.kr)
새만금사업 환경영향조사단, 새만금종합보고서, 2000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의 편파적 운영에 대한 환경사회단체 기자회견문.
손정수, 2001, 새만금사업대안검토, 『새만금공개토론회 주제발표자료』,
(국무조정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2001년 5월10일
윤성규, 2001, 새만금공개토론종합토론자료 (환경부수질보전국장의 보고로서 새만금호 수질보전
대책이 어렵다는 내용)
이시재, 2001, 새만금간척사업의 중단과 대안적 발전방향의 모색,
『새만금공개토론회 주제발표자료』
(국무조정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2001년 5월10일
임삼진, 2001, ‘새만금문제’의 의식,『새만금공개토론회 주제발표자료』
(국무조정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2001년 5월10일
장세환, 2001, 새만금은 계속추진되어야 한다.
『새만금공개토론회 주제발표자료』
(국무조정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2001년 5월10일
전북일보, 1987∼1990년까지 신문기사
조승국, 2001, 경제성평가 분야에 대한 평가『새만금공개토론회자료』
(국무조정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2001년 5월7일
중앙일보, 2001년 5월27-29, <실패한 국책사업>기획연재
한겨레신문, 1990년∼2001년까지 검색
(한국언론재단, www.kpf.or.kr), key word : 새만금
Lee, Seejae, 2000, The Environmental Movement in Korea and Its Political Empowerment,
Korea Journal, Vol. 40. No.3, 2000(Autumn)

Website:
환경운동연합홈페이지 http://kfem.or.kr
녹색연합홈페이지 http://www.greenkorea.org
농업기반공사 새만금사업단 홈폐이지 http://www.karico.org/saemangeum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하는 부안사람들 홈페이지 http://www.nongbalge.or.kr/

자료출처:시민환경연구소

admin

(X) 습지 해양 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