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자료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한 대화마당 – 새만금사업의 의사결정과정의 적정성 문제

새만금사업의 의사결정과정의 적정성 문제

이시재 교수(가톨릭대 사회학, 새만금 생명학
회)
seejaelee@catholic.ac.kr

머리말
정부는 2001년 5월25일 새만금사업의 재개를 결정하였다. 환경단체들, 지역주민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은 정부의 결정이 부당하고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정책결정에
있어서 적정절차란 무엇이며 새만금사업의 의사결정과정을 적정절차라는 측면에서 검토하고 이러
한 의사결정과정에 찾을 수 있는 사회학적인 함의를 분석하였다.

1. 새만금사업의 의사결정과정
1) 새만금사업의 정치적 결정
새만금사업은 1986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북도민의 정서를 달래
기 위해 이 지역의 대규모 간척사업을 지시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 지시를 받은 농수산
부는 1987년 3월부터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였고, 농수산부의 검토의견으로는 사업의 경제성이 있
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1월4일 경제부처 장관회의에서는 군장(군산-장항)산업단
지와 새만금지구의 간척사업을 검토하였으나 경제기획원은 새만금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의견
을 내놓아, 군장산업단지계획만 추진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노태우 대통령후보도 서해안고속도로, 군산산업기지와 외항건설, 대불공단과 목포항개
발, 아산만 산업기지와 신항만건설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초의 공약내용에는 새만금
사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1987년 11월 21일 유세차 전주를 방문한 김영삼후보
가 새만금지구를 부산만큼 크게 발전시키겠다고 공약하자, 노태우 후보도 1987년 12월10일, 선거
를 6일 앞두고 새만금사업 추진을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대통령선거에서 전북지방의 표를 겨냥
한 공약이었으나 노태우 후보는 전북지역에서 13.7%의 지지율을 얻었을 뿐이었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정부 부처간에도 지지와 반대가 갈렸다. 농수산부는 처음부터 이 사업을
추진한 부서이고 노태우 후보가 이를 선거공약에 포함시키자, 12월12일 새만금사업의 추진계획
을 발표하였다. 또 1988년 2월 농림수산부는 농업진흥공사에 시달하여 이를 새만금사업을 담당하
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제기획원 등 다른 경제부처는 처음부터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새만금사업은 군장산
업단지와 중복투자이며,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1990년 예산에는 새만금사업 예산이 전면적
으로 삭제되었고, 1991년에도 당초의 예산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1991년 2월 노태우 대통령
이 전주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새만금사업의 예산 지원을 요구받고 즉시 추경편성을 지시하였지
만 예산부처에서는 역시 이것도 반영시키지 않았다. 1991년 7월 16일 김대중 총재는 노태우 대통
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새만금사업을 선거 공약이니 만큼 약속대로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고, 노태
우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반영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김대중 야당당수의 요구가 워낙 강해서 추가
경정예산에 반영시킬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약속이 있던 다음날, 여야당은 200억원
의 새만금사업비가 포함된 추경예산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김대중 총재의 이러한 강력한 요구로 1991년 11월 28일 새만금사업을 착공하게 된 것이다. 1992
년의 대통령선거에서도 새만금사업은 선거공약의 대상이 되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
영삼 민자당 총재는 새만금사업을 적극 추진, 전북의 지도를 바꾸어 놓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해 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새만금사업을 5년 내에 완공할 것을 공약하였다.
1995년의 지방자치선거에서 유종근 후보는 새만금사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공약으로 내걸어 새만
금사업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유종근 후보는 국내의 예산지원으로는 지지부진하니 외자
를 포함한 민자를 유치하여 새만금지구에 복합산업단지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997년의 대
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이인제, 그리고 이회창 후보가 일제히 새만금지역을 공업단지로 발전
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기성 정치인가운데 누구도 새만금사업을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새만금사업은 초기부터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 농업진흥공사가 이 사업을 맡으면서 농지조성
이 주목적으로 되어 있었으나, 전라북도는 조성된 토지의 57%를 비농업용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
하였고, 농수산부도 1/3정도를 비농업용으로 전용할 것을 주장하는 등 목표자체가 명백하지 않았
다.

2) 새만금사업에 대한 반대운동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정부부처 내에서조차도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였다. 노태우 대통
령이 김대중 신민당 총재와 새만금사업으로 담판을 벌이고 있을 때 최각규 당시 부총리 겸 경제
기획원장관은 신중한 검토를 위해 추경예산에 반영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새만금사업을 예산
반영을 둘러싸고 경제기획원과 농수산부(당시)간에 갈등이 일어났다. 경제기획원은 새만금사업예
산은 기존의 농수산부 예산가운데서 전용하도록 하였으나 농수산부는 이에 반발하였고, 농수산부
의 부서간에도 예산배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 1991년 11월에 이미 착공한 새만금사업에 대
해서 경제기획원은 1992년 예산에 당초 한푼도 반영하지 않다가 농수산부의 이의제기로 100억
원을 배정하였다. 기획원에서는 새만금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새만금사업
은 이와 같이 예산배정이 되지 않아 공기도 4-5년 늦추어 잡았다. 새만금사업은 1994년에도 예산
이 없어서 진척을 보지 못하였다. 착공3년째 재정지원은 전체 사업비의 6%에 머물러 있었다.
한편 1994년1월 동양최대의 시화호의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시화호는 환경단체들이
우려하던 바와 같이 급속하게 오염되었다. 담수호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1996년 6월 수자원공사
는 시화호의 담수화를 끝내 포기하고 오염된 물을 방류하고 해수로 채우기로 하였다. 시화호 사
건은 환경단체들에게도 새만금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되었고, 환경부도 새만금호
간척 사업지 일대의 환경영향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거쳐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환경부
의 조사에 의하면 이때 새만금호의 물 공급원이 될 만경강과 동진강 하류의 질소농도는 농업용
수 수질기준을 6배나 초과하여 오염이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화호의 담수화포기를 보고 모
든 언론들은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97년 농수산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만금호 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서도 새만금호의 수질이 화학
적 산소 요구량 등 각종 오염도에서 시화호 수준을 훨씬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당시)
이미경 의원은 환경부의 자료에 기초하여 새만금호가 시화호 보다 오염이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
하였다.
199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간사회의에서 경부고속전철, 시화호, 새만금간척사업을 김영삼 정권
의 3대 부실사업으로 규정하여, 전면적으로 재조사하기로 하였다. 4월 27일 감사원은 한달 동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특별감사에 돌입하였다. 1998년 9월 감사원은 그 동안 새만금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특별감사결과에 의하면 새만금간척사업 자체가 잘못된 계획, 설계, 시공 등
모든 면에서 총체적 부실이라는 것이다. 또 원래 계획하였던 농지조성에서 복합산업단지로 변경
하였을 경우, 총사업비는 당초의 2조원에서 무려 5배가 넘는 1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지적하였
다. 언론에서도 새만금사업의 축소,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김성훈
당시 농림부장관은 영산강 4단계 사업의 포기를 발표하여 간척사업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
자, 김대중 대통령도 영산강 4단계 사업의 포기와 갯벌보존에 호감을 나타내었다. ‘과거 정권들
에게 의해 호남지역 개발이 소외되어 왔지만 덕분에 버림받을 뻔한 땅이 결과적으로 아껴놓은 땅
이 되었다고’ 영산강지역의 간척사업의 전면철회에 공감으로 표시하였다.
환경부는 농업진흥공사가 제출한 수질예측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그것이 매우 허구에 지나지 않
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새만금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다.
환경단체가 처음으로 새만금사업반대운동에 뛰어든 것은 1997년이었다. 11월 김제경실련, 녹색연
합, 녹색주민연대(군산)는 서해안 살리기 심포지엄을 김제에서 열었다. 1998년 1월 14일 전북환
경운동연합은 새만금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2월2일에는 녹색연합이 제3
회 세계습지의 날을 맞아 새만금지구 등 각종 간척 및 매립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 환경운동연합은 3월 6일 전국 36개지역 사무국장단회의를 전북환경운동연합에서 개최, 기자회
견을 통해서 새만금종합개발사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하였다.
1998년 9월 7일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경실련 등 39개의 시민단체는 새만금간척사업백지화를
위한 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100인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어 10월에는 전북지역 시민, 사회단
체소속 각계인사 100명이 새만금간척사업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99년 1월 9월 유종근 전북지사는 새만금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발표하고 시민단체에서 요구해
온 민관공동조사를 수용한다고 발표하였다. 한편 전북출신의 국회의원들은 새만금사업의 계속추
진을 결의하였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도 새만금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전라북도는 새만금사업과 관련하여 지역주민의 피해를 보상하는 업무를 하고 있을 뿐, 새만금사
업의 전체를 두고 계획을 세우거나, 추진, 혹은 중단해야 하는 결정을 할 입장이 아니었다. 유종
근지사의 발표는 농림부 등 다른 부서와 의견조율을 거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새만금간척에 대해서 외국의 환경단체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99년 1월 21개의 한일환
경단체들이 새만금사업을 중단을 요청하는 새만금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또 5월에는 코스타리카
에서 열린 람사협약 총회에서도 새만금지구가 국제적으로 중요습지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하였
다.
공동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새만금간척 반대운동은 지속되었다. 전북 부안 지역의 주민들
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2000년 1월 30일 세계습지의 날을 기념하여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 안 사람들>과 공동주최로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매향제를 개최하여 반대운동의 결의를 다졌다.
2000년 3월에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 지역 1,000인 선언이 서울에서 발표되었다. 3월 26
일에는 부안의 해창 갯벌에 70여구의 장승을 세워 장승제를 거행하였다. 7월 1∼2일에는 환경운
동연합 전국회원대회가 해창 갯벌에서 개최되어 새만금간척 중단을 위해 시위하였다.
한편 2000년 11월 1일 생태경제학연구회는 새만금공동조사 특히 경제성분석의 허구를 지적하고
새만금사업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 11월 14일에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4대 종교 성직자들 2,000명이 새만금 갯벌을 살
리자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반대운동이 거세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대통령은 ‘새만금사업은
생각만해도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하였다.
2001년 3월 종교계, 환경단체, 사회단체의 연합체인 생명평화연대는 19일을 기하여 새만금 간척
중단 단식농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학교수 340인의 새만금간척반대 선언도 발표되었다. 한편
부안의 해창 갯벌에는 불교 승려와 천주교 사제가 임시 사찰과 기도의 집을 만들어 농성에 들어
갔다.

3) 공동조사단의 활동
정부는 환경단체의 요구를 받아 들여 1999년 4월 19일 새만금사업에 대한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
하여, 환경성, 수질, 그리고 경제성 영역에 관해 조사, 분석을 의뢰하였다. 공동조사단은 국무총
리실 수질개혁기획단이 주관하여 새만금사업 환경영향공동조사계획을 수립하였다. 공동조사단은
단장(1인), 환경단체와 정부가 동수로 추천한 민간전문가(각각 10인), 그리고 정부관계기관에서
파견된 위원(9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부기관에서 파견된 위원들은 조사사업에 필요한 자료
협조와 행정지원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사기간은 1999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지
14개월이었다.
조사단의 구성에 있어서도 민간단체의 추천은 대학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있었으나, 정부에서는
대학교수이외에 정부출연기관, 예컨대 국토연구원 등의 연구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
와 민간단체가 각각 10명씩 연구위원을 추천하였지만, 각 분과는 반드시 동수로 구성된 것은 아
니었다. 예컨대 환경영향분과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4 : 3, 수질분과에서도 민간과 정부가 4 :
3, 그리고 경제성분과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2 : 4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과구성의 불균형
은 조사과정, 조사결과의 조정과 합의형성에 큰 장애이었다.
공동조사단의 보고는 종합적인 결론이 없이, 조사단장이 위원들의 개별적으로 제시한 의견서를
취합하여 종합의견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공동조사단장은 조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종합
적인 결론을 낼 수 없도록 연구자회의에서 결정하였다. 조사단당의 종합의견서에 의하면 민간위
원 20명중 11명은 계속시행, 9명은 사업중단을 주장하였으며, 정부위원은 위원장을 제외한 9명가
운데 7명은 계속시행을 2명은 입장을 유보하였다. 정부위원들의 의견을 공동조사의 종합보고에
반영, 기재하는 것은 정부, 민간의 공동조사의 의미를 크게 왜곡하는 것이었다(김성은 2000).
수질분야위원회는 환경부가 제시한 수질예측모델링의 결과를 검토하여 동진강 수역에서는 농업
용 호소기준에 적합하지만, 만경강유역에서는 총인(T-P)항목에서 농업용수 기준을 맞출 수 없다
는 결론이 나왔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새만금사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새로운 기술 등이 발달
하면 10년 후에는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을 하였다.
경제성분야에서는 새만금사업의 추진 측에서는 편익/비용비율이 1.25로서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
는 주장을 하였으며, 반대측에서는 편익/비용 비율이 0.22∼0.29로 전혀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
을 하였다.
환경성영향분야에서는 기후, 해양오염에 대해서는 조건부로 새만금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었으나 저서생물, 생태계의 파괴 등에서는 불가라는 입장이었다.
공동조사단은 위원들이 개인적으로 조사활동을 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을 뿐, 분야별 토론이나
전체 모임에서의 논의가 없었다. 최종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개별보고를 취합하여 제출하였
을 뿐, 전체적인 의견조율이 없었던 것이다. 경제성분야에서 그 만큼 의견의 차이가 있었으면 연
구방법, 기준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이 필요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공동조사단의 연구에서는 연구방법과 범위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정작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이해를 반영시키는 노력이 없었다. 새만금지역에서 어민들은 새만금사업
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지만 공동조사단이 그들을 면접, 조사한 적이 없다. 또 환경단체들을 비
롯한 지역단체들의 의견도 공동조사단에서는 수렴하지 못하였다.
공동조사단의 결과에 대해서는 환경단체들의 강한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 또 조사단장의 일방적
인 종합의견의 발표가 있자, 조사단에 참여하였던 일부의 학자들이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여 이
를 반박하였다.

4) 쟁점과 대안토론
2001년 연초에 정부는 공동조사결과를 무시하고 새만금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국무총리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새만금사업을 추진한다’고 언명하였고, 새만금현장을 방문하
여 ‘농업은 생명산업’이라고 글을 남겨, 새만금간척을 통해 농지를 확보한다는 의지를 표명하였
다.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이러한 거대개발사업에 대해 그 환경적인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는 기관이다. 지속가능위원회에서는 공동조사결과를 토대로 새만금사업의 환경적 타당성을 검
토한 결과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것을 밝혔다(동아일보, 3월 14일자). 지속
가능위원회는 이것을 바탕으로 국무조정실에 새만금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하였다.
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장,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지속가능위원회 위원장의 3자는 2001년 5월중에
쟁점토론회, 대안토론회를 거쳐, 평가위원회의 평가결과에 기초하여, 물관리 정책민간 위원회,
수질대책 관계장관회의 등을 통해서 사업의 재개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지속가능위원회와 청
와대 복지노동수석은 토론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국
무조정실은 토론과정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속가능위원회의 주장으로 토론회를 가지기로
하였으나 국무조정실은 이것을 요식 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 지속가능위원회와 국무총리실은 4
월 30일 쟁점토론, 5월 3∼4일 대안토론을 하기로 하였으나 환경단체의 반발로 일주일 연기되었
다. 이때 국무조정실과 지속가능위원회와의 사이에 ‘만약 환경단체가 또 다시 참가를 거부하면
토론회를 거치지 않고 최종 결정을 한다’고 합의문까지 작성하였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형성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는 국무조정실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국무조정실의 공동주최로 5월 7일에 쟁점토론, 5월 10, 11일에 대안토론
이 열렸다. 이 토론을 바탕으로 양측에서 추천하여 구성한 평가위원회의 평가결과를 정부에 보고
하여 국무총리실에 제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5월 7의 쟁점 토론에서는 공동조사단의 참가자들
이 대부분 주제발표를 하고 학자들이 이를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대안토론에서는
환경단체 관련학자들과 농림부관료 및 관련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하였다.
토론회는 언론에서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보고하였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 큰 기여
를 하였다. 예컨대 경제성평가에 있어서 찬성 측의 근거의 하나가 된 CVM(Contingent Valuation
Method)에 의한 식량안보가치의 추정에서 CVM기법의 방법론적인 오류가 지적되었다. WTP(will
to pay)의 설문에 응답한 사람은 1,000명 가운데 262명, 이 262명을 평균하여 지불의사의 총액
을 추정하였으나, 무응답자의 처리는 적어도 0원을 지불하겠다는 가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국토확장효과의 개념적 오류, 이중계산 등 새만금사업에 따른 편익부분만 크게 부풀려
계산하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만금에 의해 만들어진 토지의 가치는 그 토지가 생산하는 서
비스의 가치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추진 측의 논리는 경제학의 이론이 적용될 수 없
는 억지라는 것이다.
이 사업의 총비용이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고, 감사원의 지적과 같이 두 배 이상이 되고 있는 상
황에서 비용편익(BC)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곽승준, 2001). 감사원의 계산
에 따르면 농지조성원가는 평당 70,000원이다 그러나 지금 부안 지역의 농지가격은 평당 25,000
원이며, 영산호 간척지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12,000∼14,000원정도로 분양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비용은 모두 국고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산이 맞지 않는 것
이다.
수질문제에 있어서도 전라북도에서는 설사 총인(TP)이 기준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농사를 짓는데
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환경부에서는 전라북도의 자료를 이용하여 검토
해 보면 전라북도의 녹지관리규정으로는 새만금호의 수질환경을 보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인
이 기준치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를 넘어서 훨씬 비관적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의 입장은 확고하
였고, 그 근거는 명백하였다.
환경성의 평가 에 있어서는 7명의 연구자가 각기 다른 영역을 연구하여 4개의 부분에서는 개선하
면 사업재개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다른 세 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
다. 그럼에도 다수결이라는 이유로 찬성파가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대안토론에 있어서 새만금사업 반대측에 대안을 내도록 하고 있으나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 자
체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새만금사업을 벌려놓고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당하면 대안
을 내야 하는 쪽은 추진 측이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대안의 전제로
서 (1) 지금 쌓은 방조제를 일부 변경하여 그 구조물을 활용한다는 것, (2) 갯벌을 죽이지 않을
것, (3) 전라북도 및 지역주민들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올 것을 전제로 여러 가지 대안을 제
시하였다. 한편 추진 측에서는 만경강 쪽의 수질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방조제를 완성하고 내부
개발에 있어서는 수질이 좋지 않다는 만경강 쪽의 개발은 차후에 미루고, 동진강 쪽을 먼저 개발
한다는 순차 개발안을 제시하였다. 양측의 입장은 큰 차이가 있었다. 반대측은 갯벌을 살려 지역
주민과 생태계를 살린다는 것이고, 찬성 측은 수질유지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선
갯벌을 막아 동진강쪽을 먼저 개발한다는 것이다. 3일간의 토론으로 모든 문제가 제시되었다. 찬
성과 반대측에서 입장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는 보였다. 찬성 측에
서는 더 이상 경제성이 있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었고, 식량안보나 쌀 문화 쪽으로 논법을 바꾸
어 갔다. 수질개선 쪽에서도 객관적인 데이터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5) 평가위원회와 정부결정과정
평가위원회는 찬성측에서 추천한 4명, 반대측에서 추천한 4명으로 구성되었다. 평가위원들 가운
데 찬성 측 인사들은 토론회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회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측은 부분적으로 자리를 비운 적은 있었지만 대체로 끝까
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가위원회의 속기록을 보면 한 사람씩 입장 개진이 있었지만, 토론회
의 내용을 근거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자기가 속한 기관의 입장, 추천자의 입장
에 충실하게 주장을 하였다. 위원장도 해외출장을 근거로 단 한차례의 회의로 끝내려고 하였다.
문안작성을 위한 소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에 제시하는 문안을 작성하였다. 문안에는 양론을 다
기술하고 결론에 이를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찬반양쪽의 주장과 문제점을 검토하여 ‘대통령께
서 결단’을 내리도록 건의하는 것으로 종료하였다.
5월 25일 오전, 국무총리실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가 열렸다.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는 1999
년 5월 공동조사단을 발족시킨 기관이며, 공동조사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새만금사업을 ‘조
정’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이 위원회는 2000년 8월 공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제출된 시점에서
회의를 열어 이를 심의하여야 하였으나, 그 동안 회의를 열지 못하다가 2001년 5월 25일 새만금
사업 재개결정을 앞두고 열린 것이다. 이 위원회에서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알려졌으
며, 전체위원 22명 가운데 17명이 참석하여, 위원장을 제외하고 반대가 8명, 적극 찬성이 5명,
그리고 3명은 조건부 찬성(일부 언론에서는 ‘중립’으로) 보도되었다. 이러한 의견의 분포로서는
당연히 이 안건은 부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민간위원회의 위원장은 미리 준비한 결정
문을 읽고 이의가 없는지 물어보고 그것을 회의결과로 오후의 물관리정책위원회에 보냈다(위원
장 증언). 결정문에는 새만금사업이 찬반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점, 그
리고 정부는 이제 정치적인 결단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민간위원회 위원장은
물관리민간위원회는 자문위원회이며, 찬반투표를 할 필요도 없고 한 적도 없다고 증언하였다. 위
원장은 설사 부결시킬 수가 없다면 결정을 유보하고 다시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무조정실에서는 물관리 민간 위원회에 평가위원회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보고서를 변조하였
다. 평가위원회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였지만, 국무총리실에서는 ‘정부의 결단’으로 표현
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사안이기 때문
에 대통령이 직접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국무총리는 몇 차례나 새만금사업의 재개를 표명하였고, 국무조정실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의 조정과정에서도 강행의사를 표시하였기 때문에 이를 심의, 결정할 주체로서는 부적합한 것이
라고 평가위원회에서는 보고 있었다. 또 2000년 동강댐 백지화도 대통령이 결정을 내렸고, 환경
의 날 축사에서 직접 발표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중대한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
는 것이다.
문서변조에 대한 항의를 받고, 오후의 물관리 정책위원회에서는 다시 그 문건을 원래대로 바꾸었
다고 보도되었다. 물관리 정책위원회는 국무총리 주재 하에 건설교통부, 환경부, 농림부, 해양수
산부 장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날 회의에는 유종근 전라북도 지사도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
서는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의 자문내용을 바탕으로 이른바 <순차적 개발>의 방식에 따른 새만
금사업의 재개를 결정하였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5월 7일의 쟁점토론, 5월 10, 11일의 대안토론, 그리고 평가위원회의 결과
보고를 토대로 대통령에게 5월 25일 저녁 ‘새만금의 사회적인 합의도출 과정보고 및 건의’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평가회의와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가 합의하지 못
했는데도 국무조정실이 주도한 물관리 정책조정위에서‘사업추진’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사회
적 합의와 국민여론을 무시한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정부가 사업을 강행하면 반대여론이 확산돼 더 큰 갈등과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며“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어려우므로 대통령이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
했다. 지속가능위원회의 이 보고서에 대해 대통령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 정부는 공동조사, 민간위원회, 쟁점 및 대안토론, 평가위원회 등의 절차를
거쳐서 정부에서 사업의 재개를 결정하였다고 하겠지만, 형식적인 민주적인 절차조차도 철저히
무시한 결정방식이었다.
(1) 공동조사에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으면, 대안을 찾던지, 아니면 사업을 백지화시켜야 마땅
하다.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사람들은 행위자이며 그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내라
고 압박해서는 안된다. 새만금사업이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하면, 그렇지 않다는 대안을 내는 것
은 사업자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이 대안 없이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
한 것이다.
(2) 쟁점토론에서 문제점이 확인되고 찬성파의 논리가 허구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 허구의
논리에 근거하여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평가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장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평가회의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다시 검토하여야 하
는 것이 타당하다.
(4)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에서 다수가 반대를 하였으면, 그 상위의결기구인 물관리 정책조정
위원회에 그 결과가 보고되고 그것에 의해 결정을 유보해야 함에도 새만금사업재개를 결정한 것
이다.
(5) 물관리 정책 조정위원회는 공동조사, 쟁점토론, 평가회의, 물관리 정책 민간위원회의 심
의 등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그것들과는 관계없이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정치적 결정이 선행하고 추진된 사업이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이제는 모든 절차와 과정, 연구성과, 토론의 결과, 대안의 검토를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사업의
재개를 결정하였다. 그 동안 정부와 시민사회, 혹은 환경단체간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던 갈등해
결의 방식, 갈등의 제도화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6) 재개결정 이후
정부의 새만금사업 재개결정이 나자,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지속가
능발전위원회를 비롯하여 환경관련 정부 위원회로부터 54명의 환경단체, 대학교수 등이 탈퇴를
선언하였다. 환경 및 사회단체들은 5월 30일 ‘새만금 갯벌 살리기 10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
다. 또 6월에는 세계적인 환경단체 <지구의 벗>의장 나바로씨가 한국을 방문하여 새만금 반대시
위를 하였다.
10월에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해 온 학자들이 모여 새만금생명학회를 구성하여 향후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조사, 연구하여 새만금사업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정부는 2001년 8월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원래 시민단체 등 반대측의 논리도 수용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위원회에는 새만금사업에 의문을 갖고 있거나 반대하는 민간인들
은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01년 가을, 정부가 쌀의 과잉생산으로 수매정책에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쌀 생산 그 자체를
조정할 뜻을 발표하였다. 미곡생산을 위해 새만금 간척을 해야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
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미곡수매의 불안이 전라북도지역에 확산되는 가운데 부안 지역의 어
민들의 새만금 반대운동도 다시 활성화되었다. 종전과 같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어민들은 갯벌이 죽어버린 시화호를 방문하고, 어족자원을 보전하기 위해 갯벌보전 활동을 하며
새만금사업의 반대를 위한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2. 새만금사업 의사결정의 사회학적 함의
1) 새로운 세계관에 적응하지 못한 프로젝트
새만금간척사업은 1991년에 착공하였다. 정부 내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는 있었지만
정치의 논리에 밀려 추진되어 왔다. 1980년대말에는 간척사업에 대한 의문이 거의 없었다. 정부
에서도 새로운 공업용지는 간척지에서만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새만금
사업을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였다. 지난 90
년대 한국 시민들의 환경의식은 꾸준히 향상되었다. 시화호에서도 갯벌의 죽음을 경험하였다. 동
강에서는 생태적인 이유로 사람들은 댐 건설을 반대하였다. 의사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민주의
식도 크게 향상되었다.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의 일부로서 시작하였고,
공장공해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반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였다. 1990년대 환경과 생명, 그리고 생
태계가 중요한 키워드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가치지향이 점차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전에는 새만금에 대해 조용히 있었는데 왜 지금 야단인가? 이것은 지역주민들 가운데 새만
금간척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지난 10년간은 그야말로 문명전환의 기간이었다.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던진 메시지는 지구절멸의 위기가 기후변화로, 생물종다양성의 감소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해안선, 그것도 육지의 유기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보는 관점도 제시되었다(장회익 담). 새만
금은 바다생명의 젖줄이라는 것이다. 바다생명이 그 어린 시절을 보내는 젖 꽂지를 없애고 바다
와 육지를 차단한다면 바다의 생명, 나아가 육지의 생명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갯벌은 생명
의 탄생지이다.
새만금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예감 때문에 싸우고 있다. 동강
댐 반대운동과 다른 또 하나의 측면은 갯벌이 생명의 보고라는 의식 때문인지 불교계, 가톨릭
등 기독계 등 종교계의 참가가 활발하였고, 이들이 도입한 개념은 ‘생명’사상이다.
새만금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구시대의 개발연대와 평화와 생명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
이하는 세력간의 갈등이다. 지금도 찬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새만금
을 시작한다면 그만두겠지만 이 만큼 쌓아 놓았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이러한 논리는 이념적으
로는 개발논리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개발이데올로기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기획되어, 지금 그 보다 빠른 속도로 변
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조응할 수 없는 불행을 갖고 있다.

2) 개발기관의 존재
새만금사업은 농업기반공사의 조직의 사활에 걸린 사업이다. 전북지역의 투자와 지역개발을 고려
한다면, 군장산업단지조성이 진행중이고, 다른 개발사업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왜
농업기반공사는 새만금사업에 매달리고 있는가? 조직의 사활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군장공단은
건설교통부산하의 토지공사에서 맡아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기방공사와는 관계가 없다.
또 전라북도는 군장산업단지는 충남과 걸쳐 있어서 전북도의 사업이라고만 할 수 없기 때문에 새
만금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농림부-농업기반공사는 다른 모든 국책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당초 예산을 적게 잡아, 정책결정
과정을 통과시킨 다음에 설계변경, 공사기간의 연장, 물가상승 등을 이유를 내세워 예산을 부풀
려 갔다 . 새만금사업도 당초 1991년에는 1조 3,000억 원이었으나 1998년에는 1998년 2조 510억
원으로 불어났고, 1999년에는 3조 489억 원로 올려 잡고 있다. 그러나 새만금사업에 대한 감사원
의 감사결과는 비용을 너무 적게 책정하였고, 따라서 수익성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농
지조성을 한다고 할 때 새만금사업은 5조 9,530억 원이 들것이며, 복합산업단지를 조성할 경우
내부 개발비까지 포함하여 28조 5,529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다(감사원, 1998). 새만금사업
의 내부자가 발언하였듯이 이 사업은 ‘두고 두고 해 먹을 수 있는 사업’이 된 것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군사체제와 경제를 유지하는 골간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정부와 토건
업자들로 구성된 강력한 복합체가 존재한다. 이것을 토건국가복합(construction-state complex)
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G. McCormack, 2000). 새만금사업은 지역정치인, 토건업자, 중앙의
농림부 등의 강한 연합전선 속에서 추진되어 왔다. 그 가운데 일부 학자들이 전문성의 배타성 우
월성을 팔아서 이를 합리화시켜 온 것이다.
시화호와 동강댐건설, 전국에 지금 댐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수자원공사, 새만금간척, 화옹호간척
에 매달리는 농업기반공사, 그리고 전국에 공업단지와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토지개발공사
등 개발기관들은 매년 일정한 일을 확보하여야 거대한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 댐건설, 간척, 공
업용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하더라도 그런 것들의 건설이 수요자의 입장에서 건설하는 것
은 아니다. 개발기관의 존속을 위해서 댐을 건설하고, 간척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정
할 없는 것이다. 댐건설을 반대한 지역주민들이 수자원공사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러
한 토건국가적인 성격을 정확하게 보고있기 때문이다.

3) 적정과정(Due process)의 상실
김홍우교수는 시민정치의 모델로서 due process를 주장하였다(김홍우 2001). Due process는 법
적 규정이 명시화되어 있지 않거나 애매한 영역을 ‘적정감각'(due sense)에 의해 그 과정을 제도
화한다는 것이다. Due process는 정치과정에 있어서 규정에 없다고 해서 정의롭지 못한 자의성
이 개입해서는 안되며, 그 결과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방향이어서도 안 된다. 또한 이해당
사자들의 共感을 얻을 때까지 ‘자유로운 공적인 공간’과 열린 시간의 기획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Due process론은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자의성을 배제하는 논리로서, 형식논리(규정성)에 맞선 실
질적인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론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적정감각은 항상 보편
적인 것은 아니며, 일정한 패러다임, 가치지향, 세계관에 기초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
러다임, 가치지향, 세계관이 얼마나 널리 수용되고 있는가 문제이다.
새만금문제와 관련하여 due process의 검토를 해보면 다양한 층위와 영역의 적정감각이 존재하지
만 그것보다도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과정에서조차 적정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자의적인 해
석, 문서의 변조, 학문적인 기준의 왜곡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due
process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적정감각을 잃고 있다.
갯벌에서 맨손어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갯벌은 삶의 터전이다. 누구에게 소유권이 귀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랫동안 관행에 의해 갯벌에서 조개를 캐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
권’과 같은 존재하는 것이다. 관행어업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는 일인당 3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까지 보상하였다. 이들이 하루에 갯벌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3∼5만원, 적게 잡아도 월평
균 100만원은 될 터인데 겨우 3개월 분, 혹은 10개월 분을 지불하고 관행어업권을 박탈하였고,
갯벌파괴로 인하여 영구히 그들의 생업이 빼앗겼다. 새만금주변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려 25,000여명이다. 새만금의 간척에 의해 이들에게 어떤 혜택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물론이다. 바다-갯벌-육지로 이어지는 생태환경의 순환과정에서 인간도 일부 참여하고 있는 이
자연의 물질대사과정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것, 이것은 근대적인 소유권개념의 폭거에 다름 아니
다. 신시도 근방에서는 이렇게 어업권을 상실한 어민들이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한다고 벌금을 내
어야 하고 구금되는 일조차 있다고 한다. ‘자연법’과 국가를 매개로 하는 법체계의 모순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적정성을 결하고 있다.

4) 지역주의정치
새만금사업은 지역주의정치의 산물이다. 대통령의 선거공약에서부터 이 지역의 선거민을 의식한
것임은 물론이고,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당수이었을 때 새만금사업의 착공을 요구한 것도 지역이
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번 갈등과정에서 새만금지역의 어민들만 반대운동을 하였지만
전라북도의 언론, 여론지도자, 지방자치단체,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지역발전’을 위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새만금사업을 추진하였다. 전라북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극
히 어려운 분위기이었다. 특히 지역언론은 새만금사업은 전라북도의 발전에 사활이 걸린 것처럼
선전하여 지역여론을 동원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지역신문에서는 새만금사업의 재개결정
을 ‘정치권 노력의 결실’로 평가하였다(전북일보 2001. 5. 25). 지역신문은 지역의 정치인들
이 ‘협박 반 읍소 반’으로 국회에서 새만금 예산확보에 힘을 썼다고 평가하였다
새만금사업이 지역의 숙원사업이라고 표방하지만, 구체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
갈지 분명하지 않다. 앞으로 10여년 동안 공사기간 중에 연간 2,000억원 정도의 재정이 투입될
것인바, 중요한 수주업자들은 서울에 본사를 갖고 있는 거대건설업자들이다. 지역에 하청이 발주
된다고 하더라도 지역의 경제적인 혜택은 매우 한정적이다. 농지조성이 된다면 그것을 불하 받
아서 농사를 지으면 소득이 크게 향상된다는 보장도 없다.
왜 그러면 지역의 여론지도자나 정치가들은 새만금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가? 하나의 분명
한 전제가 있다. 지역의 농민들이나 여론지도자들은 새만금사업이 농지조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
니라, 상당부분 공업용지로, 도시개발로 이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약속을 한바가 없지만, 새만금사업이 애초 계획될 때 농공 복합개발을 계획했었고, 전라북도에서
도 산업기지로서의 개발을 염두에 둔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의 문제가 선결
되어야 한다. 첫째는 비농업적 개발을 전제로 하는 환경영향평가, 경제성평가 등을 전면적으로
다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라남북도에 널리 조성되어 있는 공업용지(군장산업기지, 대불
공단 등)에서 유휴지의 이용이 급선무이지 새로운 공단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검
토 등이다.
새만금사업은 지역의 경제적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처방으로 제시되었으며, 지역개발
을 바라는 지역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지역개발에 어떤 기여를 할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새만금사업 재개결정을 앞두고 대통령은 ‘답답하다’는 표현으로 정책결정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고 한다(한겨레신문, 2001. 4. 2). 김대중 대통령은 양당 당수시절 1991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과 담판을 새만금사업을 착공시킨 당사자이다. 새만금사업의 재개결정이 지지부진해지자, 대통령
은 수질기획단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조정실장을 바꾸어 그의 추진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하였
다. 동강댐건설 백지화를 2000년 6월 환경의 날에 발표한 대통령은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한발
비켜 서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는 새만금사업을 재고하여야 한다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보
고(2001년 5월 25일)도 무시하였고 국무총리실에서 진행한 무리한 결정과정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에 이 사업에 대한 집착을 보인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된 지금
에도 지역주의정치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5) 갈등의 제도화의 실패
1990년대이래 한국에는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서 하나의 유형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 지역주민
들이 환경문제를 제기하면 전문환경단체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동에 참가한다. 새만금사
업 반대운동의 경우에는 전국 조직이 지역운동보다 앞서서 운동을 주도하였다. 공공사업의 경우
정부는 관민합동으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책을 논의한다. 그리고 그 결과 민관합동조사연
구를 통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정, 의사 결정하는 방식이다. 동강댐 건설반대운
동은 이러한 패턴에 따라 환경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사례이다. 이러한 방식은 1990년대의 환
경문제의 해결방식으로 자주 등장하였다.
새만금사업 반대의 경우에도 문제해결을 위해 이러한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새만금사업 반대
운동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였다. 공동조사단의 구성 자체가 큰 문제이었다. 정부기
관에서 파견된 인사들이 공동조사단에 참가하였고, 분과구성에 있어서도 균형을 갖추지 못하였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조사연구자간의 공개적인 토론이 없었기 때문에 의견의 조정이나 합
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생략되었다. 공동조사의 결과를 두고 공개적인 토론이 있었더라면 좀
더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공동조사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조사
의 결과에 대해서 그것을 이해당사자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적정과정이 문제가 되었다. 경제학이면 기본적인 명제를 공유한 가운데 공동
연구가 수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방법의 자의적인 왜곡에 의하여 전문가의 특권적 지
위를 방패로 새만금사업을 옹호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였다. 학문의 세계가 다양
한 방식으로 검증되고 부적정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력화를 단순화시켜 운동주체가 상대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새만금사업 반대운
동에서 NGO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새만금사업은 초기에 예산부족으로 지지부진하였으나 지난 2
년 간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반대운동으로 인하여 중단된 상태이다. NGO의 세력화의
방법은 제도적인 방법, 비제도적인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토론회에 참여
를 두고 내부토론이 있었을 때 우리는 ‘제도를 통한 대장정'(Long march through institution)
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의 일각을 이루고 있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 NGO의 대표들이
참가하고 있고, 청와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과 같은 제도적인 기관과 교감하며 때로는 협력하
면서 새만금사업을 중지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세력화와 제도화는 정치적 기회구조(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의 확대와 밀
접하게 관련 있다. 제도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각종 위원회에 참가할 수 기회가 확대되
었으며 언론과 대중적인 동원을 바탕으로 시민운동의 정치적 기회가 확대된 것이다(구도완,
1996).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내부에서 상당한 의견의 편차가 있다는 것이 또한 시민운동
에게는 정치적 기회구조의 확대와 관련 있다. 동강댐 건설반대의 경우에는 강원도를 비롯하여 지
방자치단체가 반대를 하였고, 환경부도 반대하였으며 오직 건설교통부만이 추진을 주장하여, 정
부내의 다양한 의견의 존재가 표출되었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도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는 반대의
견을, 그리고 감사원에서는 사업의 부당성,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는 사회적 합의형성을 주장하
였다. 정부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시민운동의 세력화, 제도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강행발표가 있는 다음 환경단체, 학자, 시민단체와 관련된 인사들은 지속가능발전위원
회, 물관리 정책민간위원회, 환경부의 정책자문회의 등의 참가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
회견을 하였다. 새만금사업의 결정과정은 제도화를 통한 세력화의 가능성을 배제하게 된 것이
다.

결 론
이 논문은 새만금사업의 의사결정과정이 얼마나 적정성을 결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새만금사업은 정책결정, 추진과정, 그리고 중단과 재개과정에 심각한 절
차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사업의 결정자체가 정치적인 결정이었고,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 전
라북도 등의 무리한 추진, 그리고 공동조사단활동에 관련된 문제점, 그리고 사업 재개의 의사결
정에 있어서의 절차적인 결함 등 다양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적정하지 못한 결정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만금지
역의 갯벌을 비롯한 서해안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역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앞으로 수 10년
간 국민의 세금을 잘 못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 불행한 것은 시화호의 경우와 마찬가지
로 그러한 잘못된 결정에 대해 후대에 책임을 지는 정치가가 없고, 그것에 대해 반성하는 학자들
이 없다는 점이다.
새만금사업은 지난 10년간 우리사회와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식과 제도가 크게 변화한 가운데 전
개되어왔다. 그 동안에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도 진행되었고, 사람들의 환경의식도 변하였다. 새
만금사업은 개발시대의 프로젝트로서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사업이다. 갯벌의 생
명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부 환경운동가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0년 이내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인식이 시민운동, 학계, 문화계, 종교계로 확산되고 있다. 새만금사업논쟁
은 우리는 지난 10년 간 개발과 환경보전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 NGO 등 시민사회의 성장과
세력화, 토건국가복합의 견고한 구조의 변화, 정부정책과정의 변화, 대항전문가의 등장 등 변화
의 와중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과 구태의연한 사고와 행동을 고수하려는 세력간의 갈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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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환경운동연합홈페이지 http://kfem.or.kr
녹색연합홈페이지 http://www.greenkorea.org
농업기반공사 새만금사업단 홈폐이지 http://www.karico.org/saemangeum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하는 부안사람들 홈페이지 농발게 http://www.nongbalg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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