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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다시 시작된 항소심, 피해자들이 탄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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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른 항소심, 피해자들 가해기업 엄벌촉구에 한 목소리

 

©환경운동연합(2021)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어떤 예외적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국민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해기업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장모님과 배우자를 잃은, 유가족 송기진씨의 말이 울려퍼졌다. 그는 항소심 재판부가 뒤틀린 정의를 바로잡아야 하며,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올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하기도 한 최 회장이 ESG를 강조하기 전에, 아직도 진행중인 이 참사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씨는 국민들에게도 호소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화학제품들이, 이 땅에서 다시는 생산되어서는 안됩니다. 더 이상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18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법원삼거리에 다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들이 다시 법원을 찾은 이유는 가해기업들의 항소심 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날의 기자회견은 가습기살균제 10주기 비상행동(준)이 주최했다.  2011년 산모들의 원인모를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참사가 오는 8월에 공론화 10주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상규명과 가해기업들의 책임이행이 더딘 상황에서 다시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환경운동연합(2021)

 

10개의 피해자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연대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가 참여했으며 CMIT/MIT 원료를 사용한 가해기업들의 항소심에 대한 공동대응을 우선과제로 삼았다.
같은 날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윤승은)가 주재한 첫 공판기일이 열렸다. 공판준비 절차는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사건의 쟁점들과 절차를 정리하는 단계이다. 검찰은 항소의 이유를 낭독했다. 원심 재판부의 판단에 사실의 오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보고서 중 연구자들의 일부 증언을 취사선택하고 가습기피해자들의 억울한 피해진술 내용을 무시했으며 일부동물실험 결과를 인과관계 판단의 절대적 증거로 삼았다는 내용들이었다.
가해기업 측 변호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항소기각을 주장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은 대규모 인명피해 사건으로서 끔찍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자들의 책임을 명백히 밝혀서 기업들이 매출증대와 이윤추구라는 금전적 이해라는 취지에 국민건강을 도외시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에 피고인도 동의하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2021)

 

“그러나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정도의 증명과 책임주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형사사법의 대 원칙아래 이뤄져야합니다.“
공판은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되었다. 하지만 직접 방청한 피해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1심의 잘못된 판단을 뒤집을 의지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판사는 원칙을 강조했고 피고인 측은 허점을 파고들었으며 검사는 버벅거렸다.


“처음부터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는 점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이 사건의 단독 사용자는 3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옥시사건과 혼합 사용자들을 묶은 것입니다. 이는 공소시효 완성을 피하기 위해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법리를 무리하게 적용한 겁니다.”


변호인들은 공소장의 빈틈을 찾아냈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PHMG와 CMIT 원료를 사용한 가해기업 모두를 과실범의 공동정범으로 엮은 것을 비판했다. 과실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반례들도 계속 언급했다. 이미 판매를 중단한 회사도 그 이후 다른업체의 판매까지 과실범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피해자의 제품 사용일이 제품 생산 일자보다 앞선 부분이 있다고도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시는 얘기는, 그런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형사법적 인과관계는 오직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이 되어야합니다. 이런과정을 1심에서 46회 공판기간 동안 진행했고 이러한 원심의 성실한 심리를 항소심에서는 함부로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판례에 따라 항소를 기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부의 질문도 이어졌다. 가해기업들 간의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려면 일단 주의의무가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검사의 특정이 부족하다고 했다. 또한 검사가 제기한 원심의 전문가 증언에 대한 오독 문제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보완을 요구했다.

“문서제출명령 관련 의무기록사본은 채택가능합니다. 형사소송 원칙에 따라 봤을 때 아직 정식 신청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기재된 내용들을 봤을 때 의무기록 사본에 대한 문서제출명령 외에는 필요성 판단이 어렵습니다.”

재판장은 “항소심에서 검사가 해야할 건 원심의 판단이 합리적의심이 아니다 라거나 합리적 의심이 이런 이유로 해결되었다 라고 구체화”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 주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지가 밝혀져야 할 것.”이며 “항소심의 특성상 항소인인 검사가 항소이유서에 담은 입증 방법과 관련해 이렇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걸 미리 알려드립니다.” 라고 부연했다. 준비 기일 이후 신청서를 낼때는 유념해 작성하라는 권고까지 했다.


“참나…”

©환경운동연합(2021)

 

피해자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빈틈을 파고들고 집요하게 묻는 가해기업 측 변호인의 질문에,  판사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한 검사측의 실수 때문이었다. 당초 생각한 전개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어느 피해자는 실망감을 넘어 욕이 나오는 심정이라고도 말했다.

공판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은 사용제품이나 질환, 피해등급에 상관 없이 제품의 원료를 만든 SK의 형사책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몸으로 계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해기업과 법원은 가해자가 없다고 합니다. 너무 답답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김치원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의 참담했던 심정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겉으로는 멀쩡했는데 폐가 다 망가지셨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이런 기업들이 지금도 떳떳하게 기업을 유지합니다.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이석범씨는 지난 4월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려야 했다. 임종 직전에 의사는 제품의 영향으로 이미 폐가 기능을 못해 가슴근육으로 호흡을 하고 있다며 마음의 준비를 권고했다.  그는 “어떤 제품을 사용했는지를 막론하고 피해자들 모두의 문제”라며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대한민국 사법부는 죽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환경운동연합(2021)

 

왕종현씨의 짧은 소회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항소심에서는 부디 가해 기업에 대한 엄정한 판단을 촉구했다.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을 받아온 가해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원심 재판부는 동물실험 등이 없었음을 비롯해 제품 사용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결과는 피해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에게 비판 받았다. 과학적 방법론상 연구의 불가피한 한계점을 잘 못 이해한 면이있고 10여개의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해 판단하기 보다는 개별 연구의 미비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다음 재판일정은 7월 13일 오후4시에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첫 준비기일의 답답함을 검사측이 만회할 수 있을지 아니면 피해자들의 한숨이 깊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피해구제 포털에 따르면 5월 14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7,447명이고, 이 중 1,657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지원대상자는 4,170명이다.

 

노란리본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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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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