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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쓰레기제로운동과대안적생활양식 – 쓰레기 제로 운동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제언

1.’쓰레기’는 다분히 감정이 섞인 어휘
이다.
영어의 ‘Waste’도 아까운 물건을 허비해 버린다는 뜻을 지녀 어감은 다르지만 마
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쓰레기를 만들어낸
사람들, Waste를 유발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섞여 있다. 이런 면에서 쓰
레기는 품질(Quality)과
반대말이다. 특히 우리는 질이 낮거나 주위에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이 좋은 물건
들이 진열된 곳에 섞여서 버젓이 좋은
물건처럼 행세할 때 분노를 느끼고 “이 쓰레기 같으니라고!” 하고 중얼
거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거기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그런 상황을 방치한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갖
게 된다. 서구의 선진국과 일본은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서 그 외의 나라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선진국의 지위를 유
지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는
제품은 이미 들어간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가차없이 폐기된다.
그렇게 가혹하지는 않지만 농경문화에서 발달한 유교문명에도 나름대로 쓰레기를
대하는 엄격한 기준이 있다. (농촌환경에서는
집안을 청결하게 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쓰레기
는 쓰레기들끼리 모아서 처분하고 쓸모
있는 것은 쓸모 있는 것끼리 모으는 것이 정리정돈이고 청소이며 동양에서는 이
활동을 도덕교육의 첫째가는 커리큘럼으로
생각해 왔다. 그렇게 분리하고 정돈해서 생겨나는 것이 질서이다. 이것은 엔트로
피를 떨어뜨리고 가용한 에너지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불교는 이러한 유교(儒敎)적 관점과는 좀 다르게 쓰
레기를 바라보는 것 같이 생각된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냄새나는 더러운 물에서 탐스런 꽃이 핀다는 점에서 더욱
고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쓰레기 제로운동은 혐오 대상인 쓰레기 자체를 정화하여 가치있는 존재로 다시 태
어나게 하는 생명운동으로서 불교의 성격에
꼭 맞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 여기서 현대 서양문명, 유교문명 그리고 불교 간의 우
열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독특한 가치관으로 우열을 비교해보아야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
할 뿐 아니라 어차피 우리나라에 공존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세 가지 문화라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역할분담을 하는 것
이 바람직할 것이다.
산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높이는 것
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불량품의 발생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발생한 불량품을 정확하게 솎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제품에서 조그만
흠이라도 찾아내서 그런 제품을 분리해
내는 활동 그 자체만 본다면 이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불량품을
시장에 많이 내보내면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고 그러면 멀쩡한 제품들도 인기가 없어서 재고로 쌓이게 된다. 이런 재고
품은 쓰레기까지는 안 되더라도 헐값에
팔려나가 아까운 줄 모르게 오·남용된 후 금새 쓰레기로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
업에서 품질 유지를 위해 엄격한 관리를
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생산공정에서 불량품이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
이 쓰레기를 줄이는 첩경이다. 일본의 오노·다이이치(大野耐一:1912-1990)는
토요타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면서 토요타 생산방식이라는 혁신적인 생산관리 방식
을 창안했다. 이는 린(Lean) 생산방식이라고도
알려진 것으로서 이 방식을 도입한 많은 사업장들이 작업속도를 크게 향상시키면
서 재고·작업지연·불량품·사고발생을 현저하게
줄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업방식의 모토는 낭비(일본말로는 無 , Muda)를 철
저히 배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품질경영 프로그램인 식스·시그마(Six Sigma)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서 일본식 경영기법이
영미 등 서구 선진국에 거꾸로 전파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동양적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서양문명을 수용한
일본의 독특한 문화적 토양에서 발달한 경영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제품의 불량률을 낮추어서 결국 쓰레기를 줄이려면 정확하게 작동하는 기계장치
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근로자가
주의를 집중하여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혁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 등 비인격적인 심리학에 기초한 서양
의 경영방식보다는 덕(德)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유교(儒敎)적 경영방식이 일반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사
업은 단순히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으로만 볼 수 없고, 사람과 사람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 때문에 사람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수 천년 동안 이어져 온 유교문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
다.

3.

쓰레기를 줄이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 모두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버려진 것에서도 가능성을 바라보고 소중하게 재
활시키는 태도야말로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잠재력이 있다고 하겠다. 이 부분이 불교를 포함한 제반 종교 철학사상
이 담당할 영역이다.
여기서 평소에 생각해 오던 근본적인 문제의식 하나와 작은 실천의 예 하나를 소
개하고자 한다.
우선 지나친 경쟁 시스템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
는 문제의식을 갖는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자연계에서 동종의 생물 간에는 경쟁보다는 협동이 지배적인 질서임을 주장한다.
경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이
지배적인 관계형태가 될 때 그 종의 생존력은 크게 약화된다는 것을 여러 예를 통
해 보여주었다.
사실 경쟁 시스템은 인류 수천년의 역사에서 지속 가능성이 검증되지 못한 아직
200년밖에 안 된 시스템이며, 지구상의
북대서양을 둘러싼 지역에서만 물적 번영을 가져온 시스템이며, 인류가 고등종교
와 문화를 통해 수천년 동안 전승해 온
겸양과 협동의 인성교육과 도덕률을 일시에 뒤집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의 표
를 보면 전통적인 인성의 모델과 시장경쟁이
요구하는 인간성의 모델이 극명하게 대를 이루고 있다.

자료출처 : “Can the Greeting
of industry be profitable” http://exergy.se

희망과 상업적 메시지
위 표를 보면 어느 쪽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태도이고 어느 쪽이 자원을 절약하는
태도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다만
오늘날 부모들의 희망이 반드시 위와 같을까 하는 데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경쟁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져오고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것이 경제학의 진리
로 되어 있으나 목적달성을 위해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경쟁에 능한 성취 지향적 인간상은 사치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최고급의 도구와 다량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을 당연한 생활조건으로 여기게 된다. 중고품이나 재활용품은 이들의
도구함에 있을 자리가 없다. 그런 물건을
사용하는 것은 경쟁력에 지장을 가져온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국 최상의 경쟁
조건이 경쟁에서의 승리와 성공을 거의
보장해 주기 때문에 경쟁의 도구로서의 물건의 유효한 수명은 아주 짧다. 군사무
기의 제작과 운용이 어느 재화보다도 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일방적이고 무제약적인 경쟁보다는 공정한 룰에 따른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고 조
화를 이루는 사회 시스템과 교육 철학이
확립되어야만 쓰레기 제로화를 향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피부에 와 닫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
다. 아주 부지런하게 매일 정리하지
않고 일을 하다보면 프린트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책상 위에 쌓이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시간을 내서 그 문서들을
들추어보면 문서더미의 밑바닥에는 몇 달씩 지난 것도 깔려 있어서 다시 보지 않
을 것이 분명한 것들이 많다. 그중에는
이면지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량을 차지한다. 그런데 스테이플러로 집어
놓은 문서들을 해체하여 한 장 한 장
이면지로 정리를 하다보면 하루 온종일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예사이다. 연구
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단순한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쉽게 든다. 그냥 있는 자리에선 그것
도 할 만 한데 사무실을 옮기거나 이사를
할 때는 그럴 만한 시간이 나지 않아서 그냥 몽땅 버리거나 아무렇게나 박스에 담
아 이삿짐으로 옮기게 된다. 종이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이면지를 골라내는 것은 시간으로 계산하면 분명 비효율적이고
손해 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이라는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정당화가 된다
면 그것은 너무 얄팍한 논리가 아닌가?
부지런하게 일상적으로 서류정리를 해서 그날그날 불필요한 문서를 이면지로 분리
하든지 게을러서 그렇게까지 못 한다면 날을
잡아 장시간의 단순한 분리작업을 하든지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쓰레기를 없는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선 정리와 청소를 잘 하는 부지런
한 사람이 되든지 뭇 생명이 함께 나눠
써야 할 자원의 낭비를 아까워하는 의식의 소유자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는 되어
야 할 것이다.

글 :이병욱( LG환경연구원 원장 )

자료출처 : 한국불교환경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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