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순환 활동소식

[기고]’제방 공화국’ 벗어나려면

신록이 완연한 늦봄이다. 마침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가 내려 삼라만상을 가득 채운 생명의
속삭임을 듣는다. 최근 한 달간 영호남 일부 지역을 빼고는 적당한 비가 오셨다 하니, 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의 발걸음도
약간은 가벼워졌을 터이다. 이렇듯 생명의 기운을 일으켜 북돋워 주는 비지만 언제나 반가운 손님인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태풍을 동반하는 장마철 큰비는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었다.

조지 스튜어트는 ‘폭풍우’라는 소설에서 “건초 수확기의 뇌우는 내각을 갈아 치우고 기온이 약간만
변해도 왕좌가 흔들린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해는 오래 전부터 가뭄과 함께 국운을 좌우하는 천기의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재해가 왕의 부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근신하고자 했던 피정전(避正殿)이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던
진휼(賑恤)은 물을 잘 다스리는 일이 국가의 중대사였음을 보여준다.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오늘날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태풍 ‘매미’와 ‘루사’가 몰고 왔던
기습폭우로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원의 재산 피해를 입었던 것이 바로 작년과 재작년이다. 따라서 수해 예방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추진돼야 할 정책의 하나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방향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있다. 매년
재해복구비 7조원과 치수사업 예산 1조여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수해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홍수에 무기력하고 매년 더 큰 피해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홍수에 대한 이해가 근본부터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치수대책은 댐을 만들고 제방을 높여 더 튼튼하게 쌓거나 강바닥을 긁어내어 낮추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는
비가 새는 집에서 지붕을 고치기보다는 마룻바닥에 양동이를 대어 물을 받겠다는 것과 같다. 홍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강이 범람해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예외적인 사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극히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현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과 재작년 수해가 극심했던 곳은 예외없이 인위적으로 물길이 바뀐 지역이었다.
제방을 높이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붙여 물을 가두어둘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불어난 강물이 제 물길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최근 제방 사면에 콘크리트 호안블록을 붙여 논란을 빚고 있는 창녕 우포늪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침수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던 지역은 원래는 늪이었으나 60년대 이후 농업진흥공사가 매립해 논이나 밭으로 개간한 곳이다.

제방을 튼튼히 쌓아 홍수피해를 막아보겠다는 시도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언젠가 더 큰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수해예방의 원칙은 강과 늪에 우리들이 빼앗았던 공간을 가능한 한 돌려주어 물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탄핵 기각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단기적 경기 부양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잠재력을
튼실하게 할 수 있는 쪽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원칙이 수해 예방에도 적용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인내심을
가지고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정책을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치수대책에 요구되는 자세일 것이다.

글/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서울신문 2004년 5월 17일자 <녹색공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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