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관련자료

회상: 이상한 나라 ‘서울’에서

회상: 이상한 나라 ‘서울’에서

엄마한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몰면서 밭과 논을 경작하고,
강아지, 고양이, 닭 등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대했던 바
엄마는 펄쩍 뛰는 정도가 아니었다.
차라리 내 앞에서 죽어버리겠다는 ‘선언’ 이상의 끔찍한 수사에 자식으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농사일은
물려주기 ‘죽도록 싫은’ 게 부모다. 부모 맘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그래
도 ‘흙’이 좋은 게 천성같다.
작은 두 눈으로 세상을 언제 보았을까. 그래도 서너살쯤일게다. 토담의 초
가집에서 대나무 이파리를 따서 접어
배를 만들어 우물에 띄어 ‘후후’ 불어 행진을 하게 하고, 대나무 가지로 경
운기 흉내를 내면서 ‘통통통’
소리를 내며 이웃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게 당시의 유일한 기억이다. 손이
부러터라 흙을 만지며 해가 지고
별이 떠도 이골목 저골목에서 놀다 집에 온다. 물론 오전에 꺾어 놓았던 대
나무는 엄마의 손에 회초리가 되어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어린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근대’라는 희한한 것과의 만남이다. 중학교
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타본 ‘버스’와
‘도시’라는 근대문명의 집합에 대해 많이 당황스러웠다. 옷차림도 마을에
서 놀다 더럽혀진 것을 입고 학교에
가면 절대 안 되는 ‘청결’과 ‘위생’을 말하는 학교교육의 ‘훈육’ 대해 나
는 적응을 하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건물 안에서, 똑같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자란, 적어
도 ‘도시’라는 공간은 여전히 부담스러웠고,
그런 급우들 또한 그랬다.
유일한 친구는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만난다. 유년시절의 기
억과 동네 어르신들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한 꼬불꼬불한 논길, 크기는 넉넉하지 않지만 그래도 피라미와 붕어가
많이 사는 마을 저수지, 밤만 되면
뭐가 나온다는 공동묘지, 마을 한가운데 뭐라 말할 것같은 당산나무. 버스
에 내려 논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와
저수지 둑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두 팔을 벌려 서
쪽 ‘꼬치방굴’을 보면 해가 산아래
나무에 걸려 내려오거나 저수지 물에 비춰 황금색 비닐의 파동같은 게, 그
모습이 마냥 좋다. 또 있다.
집에 오면 내 두 눈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누런 황소, 어디서 왔는지 모르
게 옆에 있는 누렁이, 누렁이한테
항상 뒤져서 부엌 어디서 나오는 야옹이. 사춘기 뭘 안다고 철학적 흉내를
내고 싶을 때, ‘사는 게 바로
이런 거지, 오락실에서 ‘갤러그’를 했다는 둥, 짜식들, 뭘 모르지’. 그런
생각이다.
대학을 나와 서울에서의 생활은 유년시절 그런 ‘근대’의 풍경에서 숨쉬기
가 만만하지 않다. 더 복잡함의 조합이
서울에 있다. 물을 돈주고 사먹는단다. 하늘에 별이 도심의 큰 건물덤 속
에 숨어 보이지 않고, 개울가의
물이 졸졸 떨어지는 소리도, 바닥에 낙엽들이 쭈빗쭈빗 서서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는 모습도 없다. 간신히
찾아야 만나는 낯설음에 적응해야한단다.
이번 추석 때 마을에 갔다. 논이 다 어딜 가고 버드나무와 키보다 더 큰 억
새풀이 논을 가득 채웠다. 농사를
지으시며 나누었던 마을 어르신들의 숱한 이야기만큼이나 온갖 잡풀이 자라
고 있었다. 들판에 사람이 안 보인다.
들도 그런 게 싫을 게다. 누군가 제 논길로 걸어다니며 나누는 사람의 대화
를 몇 년 동안 듣지 못했다.
그 길을 걷기 위해서 고향에 가련다. 그게 전부다.
회상은 항상 고향에서 시작해서 고향에서 끝난다.

글 : 이형진 (환경운동연합 신입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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