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관련자료

몸의 보약 흙집

문명은 많은 폐해를 몰고 왔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을 빼앗아 갔다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한
다. 몸을 기대고 사는 집만 해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흙집은 하나 둘 사라지고 첨단 기술로 무
장한 아파트며 주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모든 일을 손으로 조작하는 디지털 시대에 옛
삶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 발짝 뒤떨어진 생각일 수도 있겠다.

주거 방식이 달라지면서 흙집은 이제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우리 주변에는 옛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이 많다. 그네들은 한결같이 없고 힘들게 살던
옛날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든다. 볏짚으로 지붕을 덮고 황토집에 살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
금의 삶이 아무리 편리해도 소박하고 정이 묻어나던 그 때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 가끔 이 땅 구
석구석을 떠돌아다니다 보면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초가나 흙담을 대할 때가 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지곤 한다. 그 평화로운 정경은 나를 한없이 침잠하게 한다.
욕심을 거두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이어가는 그네들이 부러워 뵈는 것도 어쩔 수 없으며.

필자는 네모 반듯한, 콘크리트로 덧칠해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햇수로 4년째를 접어들지
만 왠지 거북스럽다. 뭔가 빠진 듯하고 답답해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 모름지기 집이란 몸
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연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는 편리할
지언정 사람살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눔의 정을 찾을 수 없다. 핵가족 시대와 함께 등장한 아
파트는 쉬고 먹고 자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은 지나친 편견일까? 요즘들어
삭막하던 아파트 문화가 보다 친근하고 따듯한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가난했을망정 초가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닐 때였으니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다. 아버지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볏짚으로 지붕을 이어 덮고, 집을 둘러싼 안벽을 황토
로 덧이겨 발랐다. 산에서 파온 황토는 물을 붓고 이기면 차져서 찐득거리고 마르면 단단해졌
다. 그 흙으로 벽을 바르는 일이 왜 그렇게 싫었던지, 시멘트로 치장된 다른 집들을 보면 그렇
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나이 삼십대 중반에 이른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초
가에서 살던 그 때가 그래도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사철마다
바뀌는 들판이며 산 색깔은 그 얼마나 눈부셨던가.

우리는 지금 비까번쩍한 미래 주택들이 속속 선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초가와 흙집을 보기
란 매우 어렵다. 아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께 주장하고자 한다. 자연
이 주는 혜택을 반도 누리지 못하는, 아파트에서 벗어나 흙집을 손수 짓고 살라고 말이다. 사실
흙집에 대해 좀 알고 나면 콘크리트숲에 둘러싸여 사는 지금의 삶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자연
을 거스르며 사는 것인 지 알게 된다.

흙은 생명이다. 저버릴 수 없는 고향이다. 우리는 흙을 떠나 살 수 없으며 흙의 일부일 뿐이
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 속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환토관(還土觀)이라 한다. 그러나 현대인
들은 이러한 흙의 상징적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흙, 곧 땅을 재산의 수
단으로 삼는다든지 문명이 만들어낸 온갖 찌꺼기를 흙 속에 묻음으로써 인류의 고향을 망가뜨리
고 있다.

요즘들어, 일부이긴 하지만, 흙집을 짓고 살겠다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어린 시절 흙담으
로 둘러쳐진 초가에서 살던 때가 못내 그리운 까닭이다. 게다가 흙집의 효능이 하나 둘 밝혀지면
서 육체적인 편안함 보다 정신적인 안정을 더 챙기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는 것 같다. 도시 문명
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이렇게 흙과 함께 하는 생활, 흙과의 친화와 교류, 흙으로의 회귀를 간절
히 원한다. 첨단문명이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이 때, 그 편리하고 좋다는 신식주택을 마다하
고 흙집에서 살겠다는 것은 자연과 좀더 가까이 함으로써 시달린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가꾸겠다
는 의지이리라.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집,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집,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집. 흙집은 이런 욕구를 채워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흙집의 진가는 여름과 겨울철에 잘 나타난다. 여름에는 뜨거운 열기를 차단해서 시원하게 하
고 겨울에는 냉기를 막아 따듯하게 해준다. 흙집은 또 바람이 술술 통해 따로 가습기를 틀거나
인위적으로 환경을 바꾸지 않아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흙집은 우리 나라 기후와 풍토에 가
장 알맞은 집이다. 사계절 쾌적한 온도를 유지해 주고 여름철의 습기를 흡수했다가 건조한 계절
에 뿜어주는 이상적인 건축 형태이다. 황토 한 숟갈에는 무려 2억 마리에 달하는 미생물이 들어
있어 누런 이 흙을 가까이 하면 몸이 튼튼해진다고 한다.

흙집은 요즘 짓고 있는 어떤 집보다도 수명이 오래 간다. 5백년 동안 그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
다. 수명이 다해 허물면 거기서 나온 쓰레기(건축자재)는 고스란히 자연 속으로 되돌아간다. 버
릴 게 하나도 없다. 쏟아져나온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여느 집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이다. 흙이 질병의 치료나 건강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어떤 이는 흙집에 살면서 그 흔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흙으로 만든 물(흔히 지장수라고 부른다)은 신비한 효험을 지니고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돗물, 샘물, 우물물을 한 말쯤 부은 독에 깨끗한 황토를 떠다가 체로 걸러서 넣는다. 이
렇게 해서 하룻밤 정도 지나고 나면 흙은 바닥에 가라앉고 질 좋은 물이 만들어지는데, 이 물을
차게 마셔도 되지만 끓여 먹으면 더욱 좋다. 또한 이 물로 몸을 씻기도 하고, 김치나 장을 담글
때 쓰면 한결 좋은 맛을 낸다. 지장수는 100。C의 온도에서도 변질되지 않으며 영하 25도로 냉동
해도 효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지장수로 ‘궁중신약’을 만들어 병
든 사람을 치료했다고 전한다.

흙의 효능은 옛 의서(醫書)에서도 잘 나타난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같
은 의서에서는 흙을 다른 약초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치료제로 보고 있다. 요즘 대도시 곳곳에 생
겨나는 이른바 찜질방은 황토의 효능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후끈하게 데운 찜질방에서 20분 정
도 누워 땀을 빼면 황토에서 우러나온 원적외선에 의해 몸안에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오고 혈액순
환이 잘 된다고 한다. 특히 신경통이나 생리 불순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중년 부인들이 많이 찾
고 있다.

장작불 땐 흙집 방에 누워 있으면 몸으로 느끼는 따스함이 보일러나 가스로 전달되는 온기와
는 다르다. 뭐랄까, 어머니 무릎베개에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사방에서 번져오
는 풋풋한 흙 냄새.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피로가 금세 풀리는 기분이다. 흙집 굴뚝에서 나는 연
기는 또 얼마나 목가적인지… 옛 사람들은 황토가 벽사(벽邪)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제
를 올리는 곳이나 출산을 했을 때 금줄과 함께 황토를 뿌려놓거나 뭉쳐놓았다. 이렇게 해서 악귀
나 부정(不淨)이 깃들지 못하게 했다. 서낭제를 올릴 때 새끼 금줄을 둘러치고 황토를 깔아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연과 함께 살고자 했던 옛 사람들. 오늘날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계. 전자 문명은 생활에 편
리함을 가져다 줄 지는 몰라도 인간적인 삶에 절실히 필요한 지혜랄지 사람 사는 진
짜 ‘멋’과 ‘맛’을 빼앗아가고 있다. 토방의 아랫목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자료제공 : 병원과희망
글: 김동정·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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