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관련자료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협약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협약

오존 협정(Ozone Treaty)

오존층은 지표에서 10-50km 상공에 있는 성층권에 있다. 오존 분자는 보통의 2개의 산소원자대
신 3개의 산소 원자를 가지고 잇다. 오존층은 우리를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의 어떤 파장의
해로운 효과로부터 보호해준다. 특별히 UV-B. 성층권의 오존의 상당한 감소는 지구 표면에 도달
하는 UV-B방사선의 증가를 유발시킨다.

UV-B방사 수위의 증가는 피부암의 증가,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백내장 등의 눈병의 발병 ,백내
장 그리고 식물, 동물 합성물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928년에 발견된 CFCs
(Chlorofluorocarbons)는 에어졸, 무스, 냉장고, 에어컨, 용매, 소화기 등에 많이 쓰인다. 이
CFCs는 오래 지속되고 이 물질의 방출은 성층권에 까지 닿아 오존의 감소를 야기시킨다. 이러한
오존의 감소는 1985년에 남극에서 발견된 오존 구멍을 통해 확인되었고, 그 이후 중위도와 고위
도 지역에서 오존의 감소가 관찰되고 있다.

UNEP에서는 1977년부터 이 문제를 다루어 오고 있다. UNEP의 후원 하에 각국의 정부들은 1985년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회의에 모였다. 이 회의를 통해 정부들은 오존층 보호를 공약했고 대
기의 작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에 서로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오존층을 감소시키는 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는 1987년 승인되었고 지금까지 5번 수정되었
다. 통제 조항들은 4번의 조정을 통해 강화되었다.(1990 런던, 1992 코펜 하겐, 1995 비엔나,
1997 몬트리올, 1999 베이징) 몬트리올 의정서는 인간이 만든 오존 감소 물질의 방출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회의에 참가한 국가들의 목록에 자세히 나와있다. 국가들은 몬트리올 의정서 모임 때와 비엔나
회의에서 적용된 진행의 규정에 동의 했다.1991년 12월 3일 베이징에서의 11번째 모임에서 채택
된 조정 및 수정안에 관한 고시는 2000년 1월 28일 UN사무총장에 의해 각 참가국들에게 전달되었
다. 적어도 20개 회원국들이 비준한 베이징 수정안은 2000년 1월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그 날까
지 완료되지 못한 조항에 대해서는 차후 비준된 날로부터 19일 후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회의

1981년 집행위는 오존층 보호를 위한 협정에 필요한 글로벌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실무팀을 조직
했다. 그것의 목적은 오존의 감소를 다룰 일반 협정의 체결을 책임지는 것이다 첫째로 일반협정
은 원칙적으로 문제를 다룰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나서 참가국들은 세부적인 통제 사항을 정한
의정서에 동의를 해야 하는 좀 더 어려운 작업에 착수했다.

비교적 쉬워 보였던 첫번째 단계도 실제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1985 비엔나에서 마침내
체결된 오존층 보호 협정은 완벽해 보인다. 참가국들은 오존층을 약화시키는 인류의 행동 때문
에 발생한 부작용으로부터 인류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동의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조치들은 강구되지 못했다. 오존을 해치는 어떤 물질도 언급되지 않는
다. 협정의 부록에 CFCs만이 감시되어야 할 화학 물질로 언급된다. 협정의 주 취지는 연구의 장
려, 국가간 협동과 정보의 교환이었다. 그것만을 준비하고 동의 하는 데 조차도 4년이 걸렸다.
20개국이 비엔나에서 사인을 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것을 급하게 비준하려고 하지 않았다.
협정은 미래의 의정서를 준비하게 했고, 수정과 의견 조율의 과정을 구체화시켰다.

과정의 복잡함과 끝없어 보이는 논쟁으로 인해 비엔나 협정은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처음으로
참가국들은 원칙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지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전에 지구의 환경 문제를 다
룰 것에 동의 했다. 전문가들이 취해져야 할 구체적 수단을 찾기 시작함으로써 지난 1985 년 5월
에 Joe Farman 박사가 이끄는 영국 과학자들의 논문을 출간했다. 그 논문은 남극 대륙의 심각한
오존 감소에 관한 첫번째 증거를 제공하였고, 조속하고 확실한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
다. 그 결과, 1987년 9월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동의가 이루어졌고 몬트리올 의정서가 체결되었
다.

오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

수 차례의 진지한 회의와 협상 후에 1987년 9월 16일 몬트리올 국제 민간 항공 협회 본부에서 오
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의정서가 마침내 체결되었다. 그것은 몇 달 전 사람들이 생각 했던 것 보
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이었다.

협상의 미묘함은 몇 개의 국가들-특히 개발 도상 국- 의 그룹의 특별한 상황을 다루는 조항을 포
함한 마지막 협약에 반영되었다. 낮은 소비 율을 가진 개도국들은 그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의정
서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정서는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학적인 증거가 강해짐에
따라 보다 엄격하게 되거나, 완전한 재협상 없이도 조정될 수 있다.물론, 협정서는 오존 파괴물
질의 제거를 최종 목표로 삼고있다. 세계 소비량의 약 82%을 차지하는 29개 국가와 유럽연합국가
들 이 비준을 한 의정서는 1989년 1월 1일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의정서는 단지 실현되었던 첫 단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동의 되었을 때 그 후의 경과는
엄청 빠르게 진행되었다. 더 엄격하고 광범위한 통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들
이 발견되었고 정부와 각 산업들은 누가 믿었던 것보다 더욱 더 신속하게 대처하였다.

이 문서는 http://www.unfccc.int에서 발췌한 것으로 UNEP angel 김준호님이 번역한 것입니다.

자료제공 : UNEP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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